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는 없다 - 소아과 진료실에서 차곡차곡 쌓아가는 아이와 나를 위한 씩씩한 다짐들
김지현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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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8367일째 육아 중인 엄마입니다.

 

그동안 육아를 하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 전부다 제 탓인 거 같아서 마음을 졸여왔어요. 그게 신체적이건 정신적이건 원인은 다 나 때문이라는 생각에 많이 괴로웠어요. 임신했을 때 잘못했던 거, 키우면서 못해줬던 거, 좀 더 강하게 키우지 않았던 점 등등이 떠올라서 속상했죠.

 

배탈이라도 나면 전날에 뭔가를 잘 못 먹여서 그렇구나, 얼굴이나 목에 두드러기가 돋으면 침구 세탁 시기를 놓쳤구나 하면서 자책하곤 했어요. D-day 날짜를 보면 아시겠지만, 저희 아이는 이미 성인이에요. 하지만 여전히 아픈 건 제 탓이라는 생각에 미안해지곤 합니다. 이런 생각이 도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참 털어내기 힘들더라고요.

 

하지만 마냥 감상적으로 자책만 하는 타입은 아니라서 바로바로 대책을 내놓습니다. MBTI로 따지자면 INFJ 이기는 한데, 거의 INTJ에 가까운 타입이라 언뜻 냉정해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속상해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는 거 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니 일단 바로 대책을 생각하고 그에 맞게 행동한 후, 미안해하는 스타일이에요.

 

이런 성향이기에 아직까지는 아주 큰 어려움 없이 잘 지내왔고, 그리고 버텨왔던 거 같아요. 여전히 진행 중인 문제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점점 좋아지리라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나마 어렸을 때는 제가 전적으로 돌보며 케어해야 했지만, 이제는 어른이니까 그렇게까지는 손이 가지 않는다는 점이 다행이겠죠.

 

저는 혼자서 20년 동안 아이를 키운 입장에서 모든 순간이 힘들고 버거웠었어요. 하지만 그래도 불안함을 스스로 처리하고 적합한 케어를 함으로서 지금까지 잘 버텨왔던 거 같아요. 육아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아이가 다쳤거나 아플 때 반드시 냉철해져야 한다는 거였어요. 허둥대거나 당황해서 소리부터 지르거나 하면 오히려 아이가 불안해하니까요.

 

7살 난 아이가 기침이 그치지 않아 피검사를 할 때 채혈이 잘되지 않아 곤란할 때도, 애가 불안해할까 봐 어머나, 피가 보글보글하네? 콜라 같다 그치?” 하며 농담하고 잠시 밖에 나가 울고 돌아왔었어요.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쇼케이스를 들이받아 머리에 유리를 뒤집어썼을 때도 일단 다친 데는 없는지 살피고 꼼꼼하게 털어내며 반짝이는 게 트리인 줄 알았다며 농담했고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때까지 아토피가 없어지지 않는 걸 보면서 많이도 자책했었어요. 임신한 줄도 모르고 술을 마셔서 그랬을까, 자장면을 많이 먹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애 아빠가 계속 실내 흡연을 해서 그랬을까... 스트레스가 너무 심한 시기를 보내서 그랬을까 생각하면 끝도 한도 없었죠.

 

김지현의 <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는 없다>를 읽으면서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가지 문제를 떠올렸어요. TV 보며 단무지를 먹던 아이가 갑자기 눈이 돌아가면서 숨을 못 쉬었던 그때, 애 아빠가 옆에서 얘 왜 이래?”라고만 할 때, “조용히 해.” 한마디 하고서 아이를 거꾸로 하고서 등을 세게 치며 숨 쉬라고 했던 그날. 해결이 된 후 안아서 불 꺼진 조용한 방에서 한참 안아주며 괜찮아했던 일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요. 조금만 주의를 더 기울일걸. TV를 보는 대신 아이를 보고 있을걸... 그런 죄책감이 항상 남아있었어요. 물론 모든 사고를 제가 막아줄 수는 없기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거도 사실이에요. 그렇기에 저는 참 잘했어라는 생각과 조금 더 잘하지 그랬니?”라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갖게 되었던 거 같아요.

 

<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는 없다>는 부모가 아이의 건강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도서에요. 저자는 소아과 의사이면서도 두 아이를 키운 엄마로서의 경험과 의견을 이 책에 담아내었죠. 육아를 하면서 건강 문제는 결코 피할 수 없기에 이럴 때 부모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행동은 어떻게 하는 게 옳은지를 제시하고 있어요.

 

저자는 부모의 의연함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아이가 아플 때 부모가 불안해하거나 당황하면 아이에게도 그 감정이 전달되기 때문이에요. 부모가 어떻게 판단하고 대처하는 게 좋은지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는데요, 그 반대의 경우도 있어서 안타까웠어요. 물론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같겠지만 뭐가 중요한지는 제대로 판단해야 하지 않겠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책에서는 자녀의 건강 문제를 의학적인 관점으로 그리고 부모 자식 간의 신뢰 소통 문제로도 풀어나고 있어요. 경중은 있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아프면서 자라게 되기에 부모의 반응과 태도에 따라서 정서적인 안정감에 차이가 생긴대요. 정말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 가득한 책이지만, 역시 부모도 사람인지라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는 역시 고민이에요.

 

<아프지 않고 크는 아이는 없다>는 부모가 아이의 건강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는 도서에요. 책임감 있는 태도와 환경 그리고 의연한 자세와 소통 등 다양한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으므로 부모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양서랍니다.

 

육아라고 하기에도 좀 그런 생후 8367일 딸을 키우는 엄마인 저에게도 많이 도움 되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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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씨아저씨네, 차별 없는 과일가게 작고 단단한 마음 시리즈 2
공석진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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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일 년 가까이 신뢰할 수 있는 판매자의 채소를 정기구독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쇼핑몰이나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의 상세페이지는 소비자의 신뢰를 얻도록 구축하는데다가, 클린 하지 않은 리뷰도 많은 탓에 처음에는 일단 한 번 구입해 보자는 생각으로 주문했었죠. 그런데 받아보니 샐러드 채소도 다양하고 싱싱하니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는 주 112회차 단위로 꾸준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에게 진정한 신뢰를 주는 건 참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일단 믿을만한 곳이라는 인식이 쌓이고 나면, 어쩌다 한 두 번의 실망스러운 상황은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일부 채소의 신선도가 낮다거나 겨울에 살짝 얼어서 오는 경우 같은 거 말이죠.

 

<공씨아저씨네>는 십수 년간 온라인으로 과일가게를 운영하면서 이와 같은 신뢰를 쌓아왔습니다. 농민과 세상을 위하는 마음으로 운영해온 사장님의 남다른 철학이 소비자에게 오롯이 닿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수오서재의 작고 단단한 마음시리즈 중 하나인 <공씨아저씨네,>는 온라인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공석진 사장님의 에세이입니다. 단순히 과일을 어떻게 팔아왔다는 운영 방식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농민과 이 땅의 문제, 그리고 유통 시스템의 어려움과 함께 저자의 독특한 철학을 깊이 있게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과일을 통해서 바라본 세상 이야기다. 자랑스럽고 귀한 농민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차별이 일상인 부조리한 한국 사회를 향한 비판이며, 매일같이 온몸으로 실감하는 기후 위기에 관한 르포다. 14년간 과일장수로 살아오며 느꼈던 바를 진솔하게 적어보았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길, 누군가에겐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길,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길 겁도 없이 감히 바라본다. -p.12,13

 

공씨아저씨는 14년 동안 온라인으로 과일을 판매하면서 차별 없는 과일이라는 철학을 지켜왔습니다. 우리는 마트에서 과일을 고를 때 외형이 반지르르하니 예쁘거나 알이 크고 단단한 것, 새빨갛게 잘 익은 사과처럼 색을 보고 선택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일들은 로얄과로서 상당히 비싼 가격에 거래되곤 합니다.

 

그런데 저자는 모든 과일이 이런 외형만으로 판단되는 세상이 그르다고 말합니다. 모든 과일은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농민을 향한 그의 마음과 상통합니다. 물론 상업적인 이익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농민들이 정성을 다해 생산한 과일을 존중하며 공정한 거래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저는 제주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파치 귤을 많이 얻어먹곤 했습니다. 제주에서 귤을 사 먹으면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을 정도로 이상하게 자꾸만 집에 귤이 쌓였습니다. - 여담이지만, 저는 귤을 사 먹은 적도 꽤 많습니다. 사회성 부족인 게지요. - 어쨌거나 파치와 구입한 귤을 비교해 보면 크기나 외형 차이는 있지만 오히려 더 돌코롬 한 게 맛있을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선과장에서 다락다락 뒹굴면서 크기별로 선별하는 건 상품성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서도 한동안 이해하지 못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선물용이라거나 제수용 정도는 외형을 보아야 한다는 걸 이해하고 있습니다. 다들 크고 반지르르한 걸 좋아하지만,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너무 큰 과일은 한 번에 먹기 힘들어서 예전처럼 소담한 게 마음에 듭니다.

 

약간 옆길로 새었지만, 아무튼 과일은 크고 작고 예쁘고 못났건 간에 모두 농부의 정성이 들어간 작물입니다. 공씨아저씨는 바로 이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14년간 과일가게를 운영해 왔습니다. 소비자가 과일을 만나는 건 단순히 구매하는 행위가 아니라 농민과의 연결고리가 형성된다는 걸 책을 읽으며 깨달았습니다.

 

책에서는 우리나라의 유통 시스템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합니다. 정성스레 재배한 농작물을 대형 마트와 유통 업체들에게 불리한 가격으로 출하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인데다가 소비자는 비싼 가격으로 만나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는 농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게 됩니다.

 

그래서 공씨아저씨는 정성을 다해 과일을 키워내는 농민들과 직접 관계를 맺고 소비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소비자와 농민 간의 신뢰를 구축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믿고 있으며 건강한 유통 생태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로열과 만을 취급하는 건 아니며 흔히 B급이라고 말하는 과일까지도 제값을 받고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공씨아저씨네를 만난 지 얼마 안 된 회원들은 물건을 받아보고 실망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믿고 주문했는데 별로 상태가 좋지 않은 과실을 받아보면 화가 날 테니 그 소비자들을 탓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부러 그런 걸 보내는 건 아니며 이동 중에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은 감안했으면 합니다.

 

이 책을 통해서 느낀 점이라면

1) 과일 (물론 채소도 그렇겠지만,)은 자연에서 온 선물이다.

2) 변화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작물 생태계가 참 슬프다.

3) 어떻게 살아가고 생각해야 하는가, 삶의 태도를 배웠다.

 

그리고 소비라는 행위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거래를 한다는 의미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동반해야만 서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된다는 점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구입하는 과일 하나하나 모두 농민의 땀과 노력의 결실이라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자 합니다.

 

농민과 함께 성장하는 삶에서 가슴 찡함을 느끼기도 하고 그와 함께 했던 농민 분이 일을 그만두시거나 돌아가셨을 때는 저 역시 슬펐습니다. 농민을 생각하는 공씨아저씨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책의 초반에 저자는 공씨아저씨네가 1인 회사, 구멍가게로 남는 게 목표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욕심이 없는 회사라고 생각했는데요, 책을 다 읽고 나니 이만큼 욕심이 많은 업체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욕심과 신념을 끌고 갈 수 있는 그의 꿋꿋함이 부러웠습니다.

 

나는 과연 그렇게 살아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흔들리고 힘든 때도 있었을 텐데, 자신의 의지를 뚜렷이 지켜내온 사장님께 박수를 보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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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팩트 커피, 커피 하는 마음 작고 단단한 마음 시리즈 1
김종진 지음, 김종필 사진 / 수오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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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의 커피 사랑은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엄청납니다. 그래서 커피 전문점이라는 간판을 단 매장이 계속 생겨나는 거죠. 저희 집 근처에도 올 3월 역세권 신축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상가에 저가형 커피 두 군데와 파리바게뜨 카페까지 해서 세 군데가 생겼습니다. 이미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 테이크아웃 개인 카페와 이디야가 있는데도 말이죠.

 

커피를 좋아하는 소비자로서는 다양한 커피숍이 집 근처에 다수 생긴다는 게 어쩌면 즐거운 일일지도 몰라요. 하지만 운영하는 분들 입장에서도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에 가끔은 씁쓸해집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의 창업 설명회를 듣고 퇴직금을 끌어모아서 오픈하는 분들이 대다수인 현실에서 과연 제대로 공부하고 열정과 사랑을 갖고 시작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많은 가맹 본부에서는 그럴듯한 말로 유혹하는데- 문턱이 낮아서 진입이 쉽다, 본사에서 다 알아서 해주니까 걱정 말아라, 에스프레소만 내릴 줄 알면 나머지는 그냥 거저 하는 셈이다, 레시피가 간단하거나 아니면 원팩 조리 방식이니 간단하다... 이런 말들로 현혹합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세상 모든 일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직장 생활을 해왔음에도, 다른 장사를 하면서 다 겪어봤음에도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적은 노력으로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됩니다. 아무리 테이크아웃 위주라고 하더라도, 원팩 조리와 에스프레소 추출만으로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쉽게 돈을 벌 수는 없습니다. 1, 2인 창업으로 가능하다는 말은 그만큼 자기 자신을 갈아 넣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매출이 늘어나서 감당이 안 된다면 직원이나 아르바이트를 고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고정비가 증가하면서 결국 점주가 가져가는 수익은 전보다 줄어들 수 있습니다. 커피숍 나들이를 즐기는 저는 종종 과연 이런 구조가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물론 현명하게 운영하며 균형을 잘 잡은 사장님들도 계실 테니 쓸데없는 오지랖임이 분명합니다.

 

이번에 읽은 <매뉴팩트 커피> 에세이를 읽으며 또 한 번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형제가 함께 전공과 관계없는 커피 시장에 일찌감치 뛰어드는 걸 보고, 부모님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떠올려보기도 했습니다. 저희 딸이 대학 졸업반이기에 괜히 그런 부분이 신경 쓰였던 거 같습니다.

 

매뉴팩트는 애호가들에게 유명한 장소입니다. 각 지점마다 고유의 특색을 살려서 운영하며 고객에게 좋은 커피를 전하기 위한 노력을 그치지 않는 사장이 있는 곳입니다. <매뉴팩트 커피> 에세이에는 커피숍을 운영하면서 느꼈던 희로애락이 담겨있는데, 희망찬 그들의 행보를 보면서도 어쩐지 글에서 조금 씁쓸한 느낌이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겪어왔던 모든 일과 시간이 늘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었기에 은연중에 독자인 제게 전해졌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커피를 향한 진솔한 마음과 10여 년간의 끊임없는 노력, 장인 정신이 오롯이 다가왔습니다. 만화책이나 소설책도 아닌데, 실제로 이렇게 꾸준히 자신의 꿈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구나 감탄했습니다.

 

대학 때 지도 교수와의 면담 스토리는 제게도 큰 울림이 되었습니다. 원래는 일단 취업을 하고 10년 후쯤 커피가게를 하고 싶었기에 솔직하게 교수님께 말씀드렸다고 합니다. 좋아하는 커피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일단 회사에 들어가서 돈을 벌고 그리고 나중에 커피가게를 열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수님은 꿈을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며 10년을 보낸다면 그 잃어버린 10년은 누가 보상해 줄까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과 관련된 분야에서 몸담고 있어야 합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건 경험이니까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p.48) 이 말씀은 저자의 마음에도 큰 파문을 일으켰지만 저 역시 그랬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엉뚱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게 과연 맞는 방법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돈을 보고서 취업을 택하기보다는 관련 업종에 뛰어들어서 생태를 익혔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경험하면서 오늘의 <매뉴팩트 커피>를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 일을 묵묵히 해내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과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매뉴팩트 커피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또한 성장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방문해 본 적이 없지만, 시간과 체력이 허락한다면 꼭 찾아가 보고 싶습니다. 이곳에서 맛보는 플랫 화이트는 과연 어떤 맛일까요? 몹시 궁금합니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만남은 없었고 모든 만남이 스승이었다. 앞으로 만나게 될 새로운 인연은 또 어떤 결과를 만들까. 우연한 만남으로 매뉴팩트가 만들어진 것처럼 인연을 가벼이 여기지 않기를, 다짐한다.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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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의 아포리즘 필사책 - 니체, 쇼펜하우어, 데카르트, 칸트, 키르케고르
에이미 리 편역 / 센시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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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좋은 문장을 만난다는 건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에요. 오랫동안 책을 읽어왔지만 기록하지 않으면 내용은 금방 휘발되어 버리고 나중에는 그 책을 읽었다는 기억마저도 사라져버리기도 해요. 그렇기에 책을 읽었을 때의 감정, 중요한 문장을 수집하는 활동을 병행하곤 하는데요, 그마저도 손으로 직접 기록하지 않으면 남는 게 거의 없어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걸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저는 꾸준히 그래왔던 거 같아요. 기억나지 않으니 다시 한번 읽으며 되새길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독서라는 행위가 나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않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가끔은 필사를 하며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하지만, 모든 책을 베껴 쓸 만큼의 의지력이 없기 때문에 이 역시 실천하지 못해요.

 

그런데 최근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의 아포리즘 필사책>을 만나서 고민을 덜었어요. 이 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니체, 쇼펜하우어, 데카르트, 칸트, 키르케고르 이렇게 다섯 철학자의 대표적인 아포리즘을 모아서 필사하도록 구성했어요. 길지 않은 문장을 읽고 느끼고 정리하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내 안을 휘젓던 갈등을 가지런히 풀어낼 수 있답니다.

 

이전부터 쓰고 있던 <마음에 힘이 되는 하루 한 문장 영어 필사>와 마찬가지로 180도로 완전히 펼쳐지는 제본 방식을 택했어요. 그래서 글을 쓰는 사이에 옆 페이지가 달려들어 펜을 치는 일이 없답니다. 필사 책을 쓸 때는 보통 꾹꾹 눌러서 책에 상처를 입히거나 서진으로 누르잖아요. 하지만 어느샌가 스르르 미끄러지면서 결국 툭 하고 닫혀버리죠.

 

하지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의 아포리즘 필사책>은 깔끔한 제본 방식이라 그럴 염려가 없답니다. 잉크가 잘 번지지 않는 미색의 용지라 항상 깨끗하게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원본을 한 번 읽고 느끼고 적어나가는 기쁨을 누리기에 충분한 필사책이에요. 책이 무겁지 않으니 펜 한 자루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필사하며 철학을 가슴에 담을 수 있죠.

 

며칠 동안 책과 함께 하면서 느낀 점은, 철학가의 사상을 매일 만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였어요. 매일 아침 그리고 저녁에 한 문장을 필사하면서 의미를 되새기는 동안 불편했던 그리고 혼란스러웠던 생각을 돌이킬 수 있었어요. 어릴 적부터 쌓여있던 불편한 감정, 마음의 상처를 이겨내는 힘이 되고 있답니다.

 

단순히 왼편에 있는 글을 옮겨 쓰는 게 아니라 내용을 이해하고 내 안에서 더 크게 성장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의 아포리즘 필사책>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주 오래전 철학자들이 남긴 말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교훈을 주고 생각과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죠.

 

기본적으로 우울과 불안 약간의 강박과 공황 비슷한 것을 안고 있는 제게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어요.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건 외부에 있지 않고 내면에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어요. 매일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의 아포리즘 필사책>을 필사하면서 철학적인 사유를 이어가는 생활 그 자체도 제게 행복 한 스푼을 더해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앞으로도 이런 철학적 사유를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싶기에 꾸준히 필사하며 한 문장 한 문장을 가슴에 아로새기기로 했답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의 아포리즘 필사책>에 수록된 내용은 지나치게 무겁지 않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만나볼 수 있어요. 낮은 문턱을 가볍게 넘어간 후에는 깊고도 묵직한 울림을 얻게 되기에 철학 하는 생활, 깊은 사유의 골짜기를 산책하고 싶다면 한 번 만나보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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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은 맛있다 네오픽션 ON시리즈 32
강지영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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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꿈의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전할 말이 있어서 현몽하는 신비한 일이라면 한 번쯤 경험해 보셨을 거예요. 하지만 대개 꿈이라는 사실을 알아채고 나름대로 의미를 해석해 보고는 그리고 다시 일상을 살아가죠. 그렇지만, <하품은 맛있다>의 두 주인공은 그러지 못했어요.

 

가정 형편이 아주 좋지 못해서 생활비와 학비 아니 생존비를 벌어야만 했던 주인공 이경이 있었어요. 이경은 특수청소를 하며 일당을 받고 무겁고 어두운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죠. 마치 악몽 같은 현실을 살아가던 어느 날, 고독사 현장에서 수많은 스노볼을 발견하고, 소장님의 허락을 받아 하나를 챙겼어요.

 

그리고 그날 이후로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생생한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아름다운 외모에 재력을 가진 연예인 지망생 다운이 되어 살아가는 꿈이었죠. 아름다운 엄마가 꼼꼼히 케어하며 럭셔리한 삶을 살지만 다운은 그게 싫어서 연예인이 되려고 해요.

 

다운은 엄마에게 키 작고 못생긴 특수청소부가 된 꿈을 꾸었다고 해요. , 다운의 꿈은 이경이었고 이경의 꿈은 다운이었던 거예요. 만일 스토리가 이렇게만 흘러갔다면 주인공은 이경/다운 중 하나의 삶을 택하는 식으로 결정되었을 거예요. 하지만 <하품은 맛있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다운은 이경이 스노볼을 발견했던 현장에서 녹아내려 한참 퍼내야 했던 바로 그 죽은 자였어요. 이경은 꿈을 통해 다운의 과거를 보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운도 눈치채기 시작했어요. 자기의 꿈은 이경이라는 대학생의 미래라는 사실을.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의 생각과 몸을 조금씩 지배하기 시작했죠. 다운은 엄마에게조차 자세히 설명할 수 없는 꿈을 노트에 기록했어요. 고독사 현장에서 발견된 바로 그 노트였죠. 다운이 이경의 시간을 꿈꾸고 기록하고 나면 현실의 노트에도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어요.

 

이경은 부유한 미모의 대학생인 다운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낱낱이 목격하면서 사건에 말려들어요. 다행히 소장님은 이경의 이런 고민을 이해해 주었고, 경찰 출신답게 함께 사건을 풀어 나가려 해요. 하지만 이경 앞에는 더욱 절망적인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살인자의 쇼핑몰>을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라면, <하품은 맛있다> 역시 맛있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결이 상당히 다른 작품이기는 하지만 자연스러운 흐름과 숨겨진 떡밥을 회수하는 실력이 좋아서 흥미롭거든요. 이경과 다운은 꿈이라는 하나의 매체를 통과하며 어떤 결론을 맺을지 내내 궁금해진답니다.

 

 

마무리가 깔끔하여 더욱 만족스러운 소설.

<하품은 맛있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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