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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는 날 - 존엄사의 최전선에서, 문화인류학자의 기록
애니타 해닉 지음, 신소희 옮김 / 수오서재 / 2025년 7월
평점 :
아직까지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찾아오는 명확한 사실이에요. 그렇지만 그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하고, 최후까지 인간다운 모습으로 존엄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되도록 피하고 싶은 화두이기도 하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미국 문화인류학자 애니타 해닉은 <내가 죽는 날>에서 바로 이 주제를 세심하게 다루고 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이라는 걸 어떻게 맞으면 좋을지, 과연 나는 마지막을 어떤 모습으로 남기게 될지 참 생각을 많이 했어요. 반드시 끝을 맺는 우리의 삶이 보다 인간답기를 바라는 마음, 고통을 멈추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이 도서는, 한 번 읽고 그냥 덮는 책이 아니라 각자의 성찰을 이끌어내는 양서였답니다.
내가 죽는 날/ 애니타 해닉
이 책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자 하는- 하지만 자살과는 다른 관점에서 보아야 하는 –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의료진의 이야기를 담아낸 기록이에요. 저자는 수년 동안 법적으로 조력 사망이 허용된 미국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환자들이 마지막 순간에 내리는 결정이 그들 자신에게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기록했어요.
그 과정에서 겪는 환자와 가족의 이별, 감정, 윤리적인 딜레마 그리고 의료인들이 말하는 내용까지 생생하게 담아내어 독자는 정말 그 현장에서 함께 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죠. 암이나 루게릭, 파킨슨 등으로 앞으로 치료가 불가능함에도 죽을 때까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말 가슴 아팠어요.
이런 고통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목소리를 들으며 조력 사망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요. 남은 이들과 마지막 시간을 충분히 함께하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삶의 주도권을 자신에게 두려 하는 모습이 용기 있어 보이기도 했죠. 저자가 섬세하게 묘사한 현장을 보면서 이는 환자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존엄사와 조력 사망: 미국의 사례와 한계점
책에서 다루는 '존엄사'와 '조력 사망'이라는 개념은 우리나라의 연명의료 중단과는 다른 의미예요. 존엄사는 미국에서도 특정 주에서만 법적으로 허용하는 제도로, 회복 불가능한 말기 환자가 스스로 약물을 처방받아 복용함으로써 삶을 마감할 권리를 뜻해요. 그리고 이를 조력 사망으로 부르는데요, 환자가 스스로 결정하여 약물을 복용한다는 점에서 ‘안락사’와는 달라요. 안락사는 타인이 직접,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생명을 끝내는 걸 의미하거든요.
미국은 1997년 오리건주에서 존엄사법을 제정해서 조건을 충족하는 환자에게만 의사의 도움을 받아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했어요. 그 이후로 워싱턴주, 몬태나 주, 버몬트주, 캘리포니아주 등 일부 주에서 유사한 법을 시행하게 되었죠. 그렇지만 <내가 죽는 날>에서도 말하듯, 한계와 논란이 존재해요.
존엄사와 관련한 의사는 분명하지만 허가를 받는 타이밍이 잘 맞지 않으면, 병이 악화되어 스스로 약물을 투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발생해요. 그리고 어떤 환자는 약물을 복용했음에도 잘 듣지 않아서 살아나버리기도 했는데요, 왜 내가 죽지 않았느냐며 울부짖는 장면에서는 무언가가 속에서 울컥하는 걸 느꼈어요.
그 외에도 이 책에서는 생명 윤리, 종교적인 이유와 같은 사회적 합의 부족으로 계속되는 논쟁에 대해 소개하기도 했어요. 내가 죽는 날은 복잡한 현실과 개인의 존엄하게 죽을 권리,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솔직히 서술하기에 독자로 하여금 다각도의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어요.
우리나라 존엄사 현황과 논의 동향
우리나라는 2018년 2월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고 있어요.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여 무의미한 연명의료(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를 중단할 수 있다는 법인데요, 단지 생명만 연장할 뿐 환자에게는 고통을 주는 의료 행위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에요.
하지만 이는 스스로 약물을 복용해서 죽음을 택하는 조력 사망이나 의료진이 직접 생명을 끊는 안락사와는 달라요. 현재 우리나라는 조력 사망과 안락사가 금지되어 있어요. 하지만 웰다잉과 관련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연명의료결정법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거나 조력 사망 도입을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는 여론은 형성되고 있죠.
연명의료중단 신청 조건
연명의료중단을 하려면 엄격한 조건을 충족시켜야 해요.
1)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이 함께 환자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이 임박한 '임종 과정'에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
2) 환자 본인이 연명의료중단을 원할 것. 의식이 분명해서 직접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면 서면으로 작성해야 해요. 만일 그렇지 않을 때는 평소에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족 2인 이상의 일치하는 진술로 확인해야 해요. 만일 뜻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가족 전원이 합의하면 연명의료중단이 가능하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몇 년 전 병원에 입원했을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접수 안내를 본 적이 있었어요. 이건 건강한 상태일 때 미리 작성하는 문서인데요, 19세 이상의 성인이라면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밝히는 서류에요. 미래에 혹시라도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이에 따라서 원하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저도 관심을 두고 있어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보건소, 병원 등)에서 충분히 설명을 듣고 작성, 등록하면 되고요, 언제든지 변경하거나 철회할 수 있으니까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요.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기는 한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미리 신청해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답니다.
내가 죽는 날이 남긴 것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걸, 솔직히 거의 1년 정도는 잊고 있었어요. 몇 년 전 혈압 측정이 불가능한 상태까지 갔을 때는, 죽음이란 나에게 멀리 있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었으면서 어느 정도 건강한 상태가 되니 그새 잊어버렸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미리 준비를 잘 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내가 죽는 날>은 죽음이란 우리에게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입에 올려서는 안되는 단어가 아니라는 걸 되새겨 주는 도서였어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보고 사랑하는 이와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란 무엇인가도 떠올리게 해주었죠. 존엄한 죽음을 맞을 권리에 대한 고민 그리고 논의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어요.
맨 뒤편의 독서모임 가이드를 참고하여 토론 주제로 삼아도 좋을 거 같고요,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듯해요. 우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으며 고민해 보아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