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호텔 스토리콜렉터 101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김미정 옮김 / 북로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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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 호텔>을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폰지 사기'인데요, 이 수법은 상당히 오래되었으며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며 피해자를 낳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기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요.



외부에서 보면 어떻게 저런 방식에 속는 건가 의아하기도 하고 욕심이 지나치니 어리숙하게 넘어가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 테두리 안에 있다면 눈치채지도 못하고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폰지사기가 얼마나 오래된 수법이냐 하면 1920년대에 시작했으니 100년도 넘었군요.



당시 이탈리아 출신의 금융인인 찰스 폰지라는 사람이 저지른 사기 수법이에요. 그가 다니던 은행에서 이자수익인 척하면서 신규 가입자 예금을 헐어 먼저 가입한 사람에게 지급하는 사건이 벌어졌었죠. 결국 은행은 망했고 찰스 폰지는 망하기 전에 돈을 가지고 튀면 된다는 교훈을 얻고 말았습니다.



폰지는 국제반신우표권을 가지고 차익거래를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짜요. 그리고 투자자들의 수익을 배분하는 척하면서 뒤늦게 가입한 사람들의 돈을 분배했죠. 이런 폰지 사기 방식에 누가 속나 싶지만 우리나라 영화 '마스터'의 모티브가 된 조희팔 사건만 해도 집계상 5조 원대의 사기를 쳤어요.



최근으로 따지면 모 유튜버 사건도 있었고 루나 대폭락 사건도 있었죠. 아니 이건 현재 진행형일까요? 분명하게 폰지 사기라고 밝혀진 건 아니지만 이와 관련된 작전이었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그러니 폰지가 기획한 이 방식은 10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으니 제법 역사가 깊네요.



이번에 읽은 <글래스 호텔>은 1970년대 초부터 2008년 12월까지 진행되었던 버나드 메이도프 사건을 모티브로 했어요. 한화로 약 73조 원 규모이니 어마어마하죠. 메이도프는 일반인을 상대로 하지 않고 국가 펀드나 대형 금융사 등 굵직굵직한 곳을 대상으로 했어요.



증권사를 설립하고 처음에는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가 나중에 사기를 치기 시작했던 거라서 모두 감쪽같이 속았나 봐요.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역임한 경험도 있고 수익률도 10%를 보장하니까 은행도 여기에 투자를 해버렸죠. 그래서 메이도프는 점점 성장세를 탔어요.



하지만 알고 보면 투자금만 받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이 사람의 명성과 규모를 믿고 투자하려는 사람이 줄을 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오랜 시간 동안 사기 행각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도래하자 사람들이 원금 상환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결국 탕진했음이 드러났고 자수했죠.



스티븐 스필버그, 존 말코비치, 케빈 베이컨 등 유명인들도 피해를 입었어요. 많은 투자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기도 했고요. 메이도프는 150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갇혔는데 작년에 옥사했다고 해요. 이 사건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라 전체적인 맥락은 폰지 사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주인공인 빈센트는 조너선 알카이티스라는 사람을 만나 그의 트로피 와이프로 - 실제로 혼인 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 지냈어요. 그가 폰지 사기를 저지르고 있다는 건 몰랐죠. 다만 돈의 왕국에 들어가 살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고 지냈어요. 알카이티스의 재력이 신기루였던 것처럼 빈센트 역시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도 그러하다고 생각했죠.



이 소설에는 등장인물이 제법 많은 편이에요. 마치 바닥에 흩뿌려 놓은 퍼즐이나 유리조각처럼 낱낱이 흩어져 있는데 그것들을 주워모으는 시점도 각기 달라요. 전체적인 흐름 속에 가끔 과거나 미래가 침입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요. 뿌려놓은 떡밥을 회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자 자신이 물고기가 되어서 떡밥과 미끼를 모두 물어와야 해요.



마치 조너선 알카이티스가 뿌려놓은 사기의 씨앗 같은 거랄까요. 그가 세운 거대한 돈의 왕국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가며 그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았어요. 빈센트처럼 방관하며 돈의 맛만 익혀가는 사람도 있었고, 측근은 종말을 알지 못한 채 함께 진행하기도 했죠.



지금까지 실제하고 있다고 여겼던 돈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린 그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충격과 슬픔을 달랬어요. 빈센트는 원래의 자신을 찾기 위해 바로 사라져버리고요. 이 소설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면에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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