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달 별 사랑 고블 씬 북 시리즈
홍지운 지음 / 고블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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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음악이 흐르는 커피숍에서 진하고도 따뜻한 커피 한 잔과 함께 하기 좋은 소설이었습니다.


<우주 달 별 사랑>이라는 제목과 표지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거친 세상 속에서 피어나는 아련한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후의 감정은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귀여우면서도 웅장한 사랑의 대서사시를 본 것 같은 기분에 젖어 한동안 그 안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소년과 소녀가 보여주는 사랑은 연애 감정 같은 게 아니라 모든 세상을 아우르는 심장과 같은 거였습니다. 너와 내가 서 있는 이 우주와 지구, 달, 별 모든 걸 감싸 안는 감정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달 등대라는 작은 세상 속에서 오가는 우주선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지키던 소년 핀이 있었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에 오히려 나쁜 사람이 더 많다고 했어.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해서 반드시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라고 했고"

-p.38


자신을 지켜주던 할머니를 잃은 소녀 메이는 자신을 도와줄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할머니가 착한 사람이 나를 도와줄 거라고 했어. 그리고 핀은 나를 도와주겠다고 했어.

그렇다면 핀은 착한 사람인 거지?"

-p.37



그렇게 만난 그들은 생존을 위한 싸움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신비한 소녀 메이는 달나라에서 살고 있던 선주민, 월인이었습니다. 달을 개발하고 개척하는 일을 맡은 회사에서는 무차별적인 개발을 하였고, 이 과정에서 많은 월인과 광부들의 희생이 따랐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표현을 하는 건 마땅치 않았습니다.



메이는 동족을 잃고 마침내 할머니까지 잃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마저 빼앗길 위기에 처해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마지막 힘을 써서 메이를 날려보냈는데, 그 힘에는 아마도 메이가 좋은 사람을 만나서 생존하고 존재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들어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할머니의 소원이 그림자에 실려있던 모양인지 달 등대지기를 하는 소년 핀이 메이를 발견하여 구출합니다. 언뜻 보아도 지구인과는 다르게 생긴 외모 때문에 조용히 숨기는 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걸 직감합니다. 자그마한 소녀의 사연을 듣고는 돕기로 결정합니다.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물방울 안에 들어있던 소녀가 신기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길을 잃지 않게 돕는 게 자신의 사명이기 때문이라는 말로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을 설명합니다. 소년 핀은 누구보다도 용감하고 또렷한 힘이 있었습니다.



메이는 월인 특유의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 언제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몰랐습니다. 게다가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내 감추고 있었기에 - 우리 표현으로 하자면 초능력 같은 걸 원활하게 쓰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켜야 하는 것, 지키고 싶은 것들을 위해서 자신의 능력을 되찾아 갑니다.



좋은 사람이라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지만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었던 그들 앞에 요안이라는 야망가가 나타납니다.




"너무 겁먹지 않아도 돼. 나는 좋은 사람이야.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고 나도 그들을 좋아해. 너도 그렇게 될 거야."

-p.113


하지만 그의 '좋은 사람'은 다른 사람은 전혀 동의할 수 없는 자신만의 기준에 비추어 보았을 때를 말합니다. 애초에 메이의 시련은 '좋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바로 그, 요안 때문에 시작되었던 겁니다.


핀의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었죠.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사람치고 그런 사람 없다고.


아마도 이 자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이 소설은 외로움 속에 있던 이들이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합니다.



저는 종종 공허한 바다에 떠있다는 감정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소설을 읽고 나면, 잠시나마 그 바다에서 나를 떠받히고 있는 무언가가, 누군가가 있다는 걸 느낍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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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결사 수첩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시부사와 다쓰히코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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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저는 음모라거나 비밀리에 활동하는 지하조직에 대한 흥미를 가졌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실제 했다는 걸 잘 모르는 채 간간이 주워듣던? 혹은 주워 읽던 내용만으로 상상하곤 했죠. 외국 영화이나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가슴설레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나이를 먹었기에 이런 쪽으로는 흥미가 없는 줄 알았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나가는 사이에 갑자기 과거의 제가 소환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결국 여전히 비밀스러운 조직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신기한 이야기가 가득 펼쳐져 있는 페이지에 사로잡혀 버렸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좀비를 좋아하니 꼭 한 번 만나봐야겠다고 하지 않는 거처럼, 비밀 결사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가진 신비함 혹은 괴이함 등에 매료되기는 했지만 실제로 만나는 일만큼은 사양하고 싶습니다. 막연하게 재미있다고 여겼던 단체가 실제로는 상상 이상의 기묘함을 갖추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비밀결사 수첩>은 주로 서양 유럽권의 조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꼬리를 물면서 현대로 이동합니다. 각종 매체에 등장하기 때문에 이름만 알고 있었던 그노시그파라거나 장미 십자단, 프리메이슨, KKK 등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놀라운 사실들을 만났습니다.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딸에게 전해줄 때는 신났었는데, 그 내용이 방대해서 막상 여기서 풀어보려니까 이야기보따리가 잘 안 풀어지네요.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있길래 저러나 싶다면 직접 책을 만나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어릴 때 의심스러운 조직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든 좋아할 만한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흥미본위로 읽어도 좋지만 여기서 다루는 조직에 대한 스토리를 대략적으로만 파악하고 있어도 미드나 영드, 스릴러 소설은 물론 이런 결사가 등장하는 다양한 매체에 대한 이해도도 올라가리라 생각합니다. 때문에 잡학으로서 알고 있어도 좋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기괴하거나 잔혹한 이야기에 약하다면 펴지 않는 게 좋습니다. 무언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오컬티즘이라거나 흑미사, 악마주의와 같은 이야기들이 넘쳐흐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기괴하거나 나쁜 조직은 아니지만 신념을 표현하는 방법이 지금의 기준과는 달라 버겁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람을 죽여 제물로 바치는 장면은 종종 등장하곤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저런 정도의 잔인한 일은 벌어지지 않으며 상상 속에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해왔었습니다. 그러나그건 그러길 바라는 제 자신의 작은 소망이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비밀 결사는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서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제물로 삼기도 하며 때로는 육욕의 향연을 벌이기도 합니다. 요즘 자꾸만 소환되는 라스푸틴도 그런 맥락에서 이 책에 들어있습니다. 최근의 소환은 어쩌면 러시아의 누군가와 이름이 비슷해서 그러는 거 같기도 한데, 아무튼 보니 엠의 '라 라 라스푸틴'을 들으면서 읽어도 좋습니다.



혹자는 '비밀 결사'니까 음지에서만 은밀히 움직이는 조직이겠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실은 조지 워싱턴 이래 미국 역대 대통령 거의 모두가 프리메이슨 고위직 회원(p.133)이라는 사실만 봐도 음지에서만 활동하는 건 아니라는 걸 쉽게 깨닫습니다.



다만, 이 책의 원문 라이선스가 1984년인데다가 1965년에 연재했던 글을 66년에 책으로 묶어 나갔다는 이력을 참고해야 합니다. 즉, 60년대 이후의 미국 대통령은 프리메이슨 회원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혹시 <비밀 결사 수첩>을 만나기 전의 저처럼 오해하는 분이 있을까 저어 되어 덧붙인다면,



프리메이슨은 KKK가 아닙니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비밀 결사 조직에 대해 다루면서 역사 속에서 그들은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두루 다룹니다. 그러므로 책과 함께 서양사까지 짚어보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결론을 내자면 이 책은 재미있고, 시부사와 다쓰히코의 수첩 시리즈 3부작의 첫 번째 권이니 다음 시리즈들도 기대중입니다.



그는 이단과 탐미의 아이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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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을 위한 레이 달리오의 원칙 - 일과 삶의 성공을 위한 나만의 원칙 만들기
레이 달리오 지음, 조용빈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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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워런 버핏이 주름잡았다면 21세기는 레이 달리오가 금융계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금융계의 스티브 잡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리더십과 성공을 향한 추진력이 상당한 사람입니다. 저처럼 경제에 무지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거의 대부분은 알고 있는 기업인인데요, 저는 이번 기회를 통하여 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전에 그 시기를 한두 달 정도의 오차는 있었지만 미리 캐치해 냈다는 사실로 유명합니다. 이런 위기가 오기 전에 포트폴리오를 꾸려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던 거죠. 현재는 전 세계 자산 1위인 헤지펀드 매니저로서 성공적인 자리에 위치해있습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었기에 12세 때 골프장 캐디로 일했습니다. 여기서는 월스트리트 투자자들이 자주 찾아 골프를 치며 담소를 나누곤 했는데 이때 어깨너머로 정보를 듣고 투자하는 방식까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수합병에 대한 정보를 듣고 과감하게 그동안 모은 돈인 300달러를 투자해서 3배의 수익을 얻었습니다.



이런 과정으로 고등학생 때는 수천 달러를 벌어들이고 대학에 진학, 이후에는 하버드 MBA를 시작하면서 뉴욕증권거래소에 입사합니다. 이렇게 그의 역사가 시작되었던 겁니다. 이후에는 성장과 멈춤을 반복하면서 점점 더 커져나가는 성공 가도를 달리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가 처음부터 부유한 집에서 부모님이 '너 한 번 해봐라'하면서 전달한 시드머니를 가지고 키워나갔다면 존경심이나 이 책에 대한 신뢰도가 반감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류의 자기 계발서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 '나 따라 해봐라 요렇게'라는 글을 쓰는 게 대부분이니까요.



하지만 그의 생애와 이 책에 적혀있는 내용들을 따라가다 보니 그가 얼마나 확고한 원칙으로 일생을 살았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일생 주기에 맞는 플랜을 따라가는 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특히 저처럼 계획을 세우기만 하고 실천하기는 어려워하는 사람이라면 장기 플랜은 더욱 그렇습니다.



플래너를 적어가면서 일주일 단위, 월간 단위로 계획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이는 단기간의 목표이고 성찰이기에 조금씩 수정해가면서 조정할 수 있습니다. 연간 계획이라 하더라도 막연히 다이어트하자거나 책을 몇 권 읽자는 식의 막연하고도 두루뭉술한 식으로만 정합니다.



그렇기에 일생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 가능합니다. 그러나 <레이 달리오의 원칙>을 손에 들고는 무언가 애초에 잘못된 생각을 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계획 이전에 '원칙'이 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계획은 때에 따라 수정할 수 있어야 하지만 제대로 수립한 원칙이라면 제 편한 대로 수정해서는 안 됩니다. 애초에 꼼꼼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원칙'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과정으로 진행해야 할까, 만일 평소에 고찰을 많이 하거나 판단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면 <레이 달리오의 원칙>을 따라서 자신만의 룰을 정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미 레이 달리오는 2017년 Principles(한국은 2018에 출판) 한 바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은 그의 원칙을 배우고 따르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 원칙은 레이 달리오 자신이 세운 거라 그에게 잘 맞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스스로에게 맞는 Principles을 세우도록 도왔습니다. '나만의 원칙'을 통해서 인생의 전반을 설계하도록 가이드 하는 내용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자신만의 원칙 설계


연습1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자

연습2 현재 닥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최선의 원칙을 도출하는 방법

연습3 인생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5단계 과정 마스터하기

연습4 가장 큰 2가지 장애물을 극복하고 실수로부터 배우는 방법을 알아보자​


그리고,


연습5 인생의 여정에서 당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이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은 굵직한 핵심만을 담았습니다. 어떻게 자신의 원칙을 만들면 좋은지 간단 명료하게 요점만을 짚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말 그대로 '핵심'. 그렇기에 원칙 설계를 위한 가이드는 충분합니다. 게다가 책을 쭉 읽고 나서 행하고자 하면 분명 잊어버릴 거라는 걸 그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충분한 여백을 두었습니다. 그저 읽어보고 이해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다소 적게 설정되었지만 실제로 실천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적어야 하는 쪽에서는 충분한 공백을 두었습니다. 생각을 적어나가고 실천하기 충분하도록 칸을 설정하였습니다.



질문과 팁에 따라서 생각하고 하나씩 채워나가며 자신의 원칙을 만들어 나가는 겁니다. 만일 앞 부분의 설명이 필요 없다면 본격적인 페이지인 120쪽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읽어본 바에 의하면 레이 달리오의 '말'을 베이스로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을 만나면 처음부터 읽어보기 바랍니다.


"'목표'와 '갈망'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목표는 이성적으로 원하는 것이다. 감정적으로 원하는 것과 같으면 금상첨화다. 만약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원한다면 그건 갈망이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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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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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자기 이외의 누군가가 마음을 담아 만들어 주기 때문에 몸과 마음의 영양이 되는 것이다. -p.267"


영화로도 제작된 일본 작가 오가와 이토의 장편 소설 <달팽이 식당>을 읽다가 마음에 와닿는 한 구절을 옮겨보았습니다. 푸르르면서도 따스함이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 덕분에 추운 날씨임에도 훈훈하게 읽어내려갔습니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코끝에 와닿는 어떤 향기들이 저를 고스란히 시골의 한 작은 식당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은 영화 속의 음식과 상냥한 주방의 장면들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저는 활자만으로도 그 기분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체격이 작고 가녀린 린코(혹은 링고)가 전하는 메시지 그리고 식재료를 대하는 마음이 참 좋았습니다.



<달팽이 식당>은 이미 100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소설입니다. 오가와 이토라고 하면 비교적 최근 작품인 츠바키 문구점>을 떠올리는 독자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잔잔하고 아름다운 소설을 피하는 편이라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달팽이 식당도 이번이 첫 만남입니다.



누구에게나 첫 번째 만남이란 무척 중요합니다. 식당의 문을 열고 조심스레 들어간 저는 그렇게 잔잔한 느낌으로 링고를 만났습니다. 지금까지 쌓아 올려왔던 게,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음에도 다시 시작할 결의를 다진 그녀를 어떤 표정으로 만나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가만히 지켜보는 사이에 - 향긋한 음식의 향기가 코끝을 스치고 - 힐링의 감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 정성이 먹는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이게 되었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가재도구와 함께 남자친구가 사라져버렸음을 깨닫습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낌새도 없이 그녀의 전 재산까지 들고 없어졌습니다. 다행히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남겨준 겨된장 항아리만은 무사했습니다.



당황하거나 슬퍼하지는 않았지만 별안간 목소리가 나오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겨우 남아있는 동전 몇 개를 들고 겨된장 항아리를 껴안은 채 엄마가 살고 있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엄마가 묻어놓은 돈을 가지고 달아날 셈이었는데, 애완 돼지 엘메스에게 들키는 바람에 야단법석이 일어납니다.



어린 시절의 상처를 안고 있기에 여기서 살고 싶지는 않았지만 별 수 없었던 링고는 엄마의 집 창고를 빌려서 작은 식당을 엽니다. 그게 바로 '달팽이 식당'입니다. 모든 걸 다 잃어버렸지만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레시피까지.



여러 음식점에서 일하며 요리사를 꿈꿔왔던 그녀인지라 세계 각국의 요리법까지 섭렵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아직은 남아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깨달았기에 조용한 시골 마을의 작은 식당 요리사가 되기로 합니다.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천천히 나아가는 자신이 되기로 합니다.



손님을 위한 음식을 천천히 준비하는 식당이니만큼 손님은 하루에 한 팀만 받기로 합니다. 손님의 성격이나 사연, 필요에 맞는 요리를 내기로 결정합니다. 그런 마음이 닿아서였을까요, 달팽이 식당에서 식사를 한 손님들에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딸을 데리고 멀리 떠나갔던 구마씨의 아내 시뇨리타가 돌아온 게 바로 그 시작점이었습니다. 그 후로 상복만 입고 있던 할머니, 거식증 걸린 토끼를 돌보길 원했던 어린 소녀 등의 소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합니다. 유명세를 치르면 안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쨌든 달팽이 식당은 점점 성장해 나갑니다.



그리고 링고에게 커다란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제는 자신이 음식을 통해 치유와 기적을 맛볼 차례입니다. 그런 그녀를 저는 활자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였습니다.



과거의 저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쁜 얼굴로 음식을 먹는 걸 보며 행복해했습니다. 지금은 퇴색해버린 게 아닐까 싶지만, 역시 내가 만든 혹은 제공하는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이를 보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링고처럼 하나하나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지만 저는 제가 있는 자리에서 단 한 사람을 위한 요리를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링고의 요리를, 먹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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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것들의 역사 - ‘다빈치’부터 ‘타이타닉’까지 유체역학으로 바라본 인류사, 2022 한국공학한림원 추천도서
송현수 지음 / Mid(엠아이디)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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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끝내는 인류사+과학 교양서


'로마제국의 수로'부터 '챌린저 호 폭발'까지 과거와 현재를 거쳐 미래로 향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들어있습니다.


끝없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유체역학은 비단 공식에 국한된 게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 태초부터 함께 했음을 이해합니다.


타이틀은 '한 권으로 끝내는'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어떻게 한 권으로 끝낼 수 있겠습니까.


애초에 그렇게 단순한 학문이 아닌걸요. 그렇지만 약간의 어그로를 끌면서 이 책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뭔들 마다할까 싶습니다.



물포자인 저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은 데다가 신기한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화학, 물리 기말고사 공부하는 애한테 말을 시킬 정도였으니까요. 중간에 공식이 하나도 안 나온다면 거짓말이지만, 그건 그냥 눈에 장착되어 있는 스킵 기능으로 살짝 넘어갈 수도 있으니(아니 그러면 안 되잖아?) 즐겁고 재미있게 읽어나가기만 하면 됩니다.


"물과 공기처럼 흐르는 것의 과학인 유체역학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미 유체역학 시리즈 3부작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커피 얼룩의 비밀>, <이렇게 흘러가는 세상>,<개와 고양이의 물 마시는 법>을 통해서 세상 속에서 흘러가는, 이야기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의 <흐르는 것들의 역사>를 통해 세계사를 통해 알아보는 유체역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물리를 포기한 자로서는 유체역학이라니 접근조차 가당치 않지만 뭘 포기했던지 상관없이 - 심지어 세계사를 포기했다 하더라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만은 변함없습니다. 제목에 이끌려 책장을 넘기기만 하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흥미로운 세상에 갇혀버릴지도 모릅니다.



얼마 전 종방한 <슈룹>은 재미와 잔잔한 감동을 두루 던져주는 드라마였습니다. 거기에서 중전이 심소군에게 술을 가르쳐 준다며 마주 앉았던 신이 있습니다. 심소군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장면이었지만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계영배 - 가득 참을 경계하는 잔-를 통해서 힐링의 순간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책 20페이지에 바로 계영배의 원리가 등장하지 뭔가요. 그렇지 않아도 내 마음 한구석은 그래, 나도 잘 하고 있구나 하는 위로를 받고 나머지 한구석은 원리가 뭘까? 궁금해했었던 터라 무척 반가웠습니다. 사이펀과 같은 원리로 잔에 70% 이상 술이 차면 잔 중앙 기둥 속의 숨겨진 관으로 술이 모두 새어버리는 거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정확한 원리는 아직까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니 오히려 그게 신기했습니다.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밝혀나갈 과학의 세상이 많이 남았다는 점에 조금은 안도합니다. 빼빼로에 초콜릿을 입히는 데에도 공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던 강의실에서의 충격을 앞으로도 느끼고 싶습니다.



<흐르는 것들의 역사>를 통해서 다빈치가 그림이나 공학뿐만 아니라 해부학이나 혈류 역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타이타닉이 침몰할 수밖에 없었던 당위성도 깨달았습니다. 후버댐이나 챌린저 호의 이야기까지 이르르는 동안 몰랐던 이야기와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과도 함께했던 유체역학 이야기들을 읽으며 지금도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역시 저는 신기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과학의 즐거움을 더 많이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책은 물리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는 저조차 재미있게 읽을 만큼 잘 쓰였습니다. 어릴 때 이랬더라면 물리를 반만 포기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과학이나 신기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성인도 신나게 읽기 좋은 교양서로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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