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 호텔 스토리콜렉터 101
에밀리 세인트존 맨델 지음, 김미정 옮김 / 북로드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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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래스 호텔>을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은 용어가 있습니다. 바로 '폰지 사기'인데요, 이 수법은 상당히 오래되었으며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며 피해자를 낳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여기 속아넘어가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아요.



외부에서 보면 어떻게 저런 방식에 속는 건가 의아하기도 하고 욕심이 지나치니 어리숙하게 넘어가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그 테두리 안에 있다면 눈치채지도 못하고 빠져나오기 어렵습니다. 폰지사기가 얼마나 오래된 수법이냐 하면 1920년대에 시작했으니 100년도 넘었군요.



당시 이탈리아 출신의 금융인인 찰스 폰지라는 사람이 저지른 사기 수법이에요. 그가 다니던 은행에서 이자수익인 척하면서 신규 가입자 예금을 헐어 먼저 가입한 사람에게 지급하는 사건이 벌어졌었죠. 결국 은행은 망했고 찰스 폰지는 망하기 전에 돈을 가지고 튀면 된다는 교훈을 얻고 말았습니다.



폰지는 국제반신우표권을 가지고 차익거래를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짜요. 그리고 투자자들의 수익을 배분하는 척하면서 뒤늦게 가입한 사람들의 돈을 분배했죠. 이런 폰지 사기 방식에 누가 속나 싶지만 우리나라 영화 '마스터'의 모티브가 된 조희팔 사건만 해도 집계상 5조 원대의 사기를 쳤어요.



최근으로 따지면 모 유튜버 사건도 있었고 루나 대폭락 사건도 있었죠. 아니 이건 현재 진행형일까요? 분명하게 폰지 사기라고 밝혀진 건 아니지만 이와 관련된 작전이었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그러니 폰지가 기획한 이 방식은 10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으니 제법 역사가 깊네요.



이번에 읽은 <글래스 호텔>은 1970년대 초부터 2008년 12월까지 진행되었던 버나드 메이도프 사건을 모티브로 했어요. 한화로 약 73조 원 규모이니 어마어마하죠. 메이도프는 일반인을 상대로 하지 않고 국가 펀드나 대형 금융사 등 굵직굵직한 곳을 대상으로 했어요.



증권사를 설립하고 처음에는 정상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가 나중에 사기를 치기 시작했던 거라서 모두 감쪽같이 속았나 봐요. 나스닥 증권거래소 위원장을 역임한 경험도 있고 수익률도 10%를 보장하니까 은행도 여기에 투자를 해버렸죠. 그래서 메이도프는 점점 성장세를 탔어요.



하지만 알고 보면 투자금만 받을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이 사람의 명성과 규모를 믿고 투자하려는 사람이 줄을 이었거든요. 그래서 그 오랜 시간 동안 사기 행각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도래하자 사람들이 원금 상환을 요구했어요. 그래서 결국 탕진했음이 드러났고 자수했죠.



스티븐 스필버그, 존 말코비치, 케빈 베이컨 등 유명인들도 피해를 입었어요. 많은 투자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기도 했고요. 메이도프는 150년 형을 받고 교도소에 갇혔는데 작년에 옥사했다고 해요. 이 사건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소설이라 전체적인 맥락은 폰지 사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주인공인 빈센트는 조너선 알카이티스라는 사람을 만나 그의 트로피 와이프로 - 실제로 혼인 신고를 한 건 아니지만 - 지냈어요. 그가 폰지 사기를 저지르고 있다는 건 몰랐죠. 다만 돈의 왕국에 들어가 살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하고 지냈어요. 알카이티스의 재력이 신기루였던 것처럼 빈센트 역시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도 그러하다고 생각했죠.



이 소설에는 등장인물이 제법 많은 편이에요. 마치 바닥에 흩뿌려 놓은 퍼즐이나 유리조각처럼 낱낱이 흩어져 있는데 그것들을 주워모으는 시점도 각기 달라요. 전체적인 흐름 속에 가끔 과거나 미래가 침입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어요. 뿌려놓은 떡밥을 회수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자 자신이 물고기가 되어서 떡밥과 미끼를 모두 물어와야 해요.



마치 조너선 알카이티스가 뿌려놓은 사기의 씨앗 같은 거랄까요. 그가 세운 거대한 돈의 왕국 속에서 사람들은 살아가며 그의 정체를 의심하지 않았어요. 빈센트처럼 방관하며 돈의 맛만 익혀가는 사람도 있었고, 측근은 종말을 알지 못한 채 함께 진행하기도 했죠.



지금까지 실제하고 있다고 여겼던 돈이 허망하게 사라져버린 그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충격과 슬픔을 달랬어요. 빈센트는 원래의 자신을 찾기 위해 바로 사라져버리고요. 이 소설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면에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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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순서만 바꿔도 살이 빠진다 - 다이어트가 필요 없는 건강한 식습관
박민수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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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터라면 주목해야 할 바로 그 책! 거꾸로 식사법 박민수 박사의 <먹는 순서만 바꿔도 살이 빠진다>입니다. 원푸드 다이어트라거나 유명한 쉐이프업 방법을 사용했지만 결과가 별로였다면 이 방법을 사용해 보는 건 어떨까 합니다. 같은 식사를 하더라도 순서를 바꾸면 살이 빠지는 신기한 방법이거든요.


먹고 싶은 걸 꾹꾹 참다 보면 어느 날 급발진하게 마련. 그러다 보면 요요가 오고 몸에서는 기아를 대비해서 조금만 먹어도 저장하려고 하니 정말이지 나와의 싸움을 격하게 벌여야 합니다. 20,30 대 때에는 옷 태가 나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등등 다양한 이유 때문에 살과의 전쟁을 하지만 중년 이후로 들어가면 건강에 직결된 문제라서 더욱 신경을 써야 해요.


저는 20대 때 일주일 동안 굶어보기도 하고 점심만 먹는 다이어트도 해보았어요. 3일 동안 사과만 먹은 적도 있고 당시에 구하기 어려웠던 자몽을 구해가면서 덴마크 다이어트를 한 적도 있었죠. 그러나 모두 허사로 돌아갔어요. 체질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포기했었죠.


먹고 싶은 대로 먹다 보니 결국 작년에 큰일이 났었고 그 뒤로는 신경을 쓰게 되었어요. 꾸준히 오랫동안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탐색하다 보니 먹는 순서를 바꾸면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바로 시작을 했어요. 이 책을 만나기 전부터 쭉 진행하고 있었던 거예요.


매 끼니마다 이렇게 먹으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실제로 그러지는 못하고 있어요. 그렇지만 되도록 채소를 먼저 먹은 후 단백질 종류를 먹고 맨 마지막에 탄수화물을 먹는 거예요. 맨밥을 어떻게 먹나 싶을 거예요. 사실 완전히 맨밥으로는 저도 아직 무리에요. 그래서 사진처럼 참치를 먹는 날에는 아주 조금 남겨서 밥과 함께 먹기도 해요.


빵을 먹는 날에는 훨씬 수월해요. 기본 간이 들어가 있으니까요. 채소는 되도록 드레싱을 치지 않고 먹고 있지만 가끔 올리브유, 발사믹 정도는 뿌리고 있어요. 리틀포니 생일에는 소고기 미역국과 채소 등등을 준비했었는데요, 이럴 때에도 채소부터 먹고 맨 마지막에 밥을 먹는 거예요. 김밥을 먹을 때에도 마찬가지고요.


이렇게 먹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다이어트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으로는 혈당을 서서히 올리기 위함이에요. <먹는 순서만 바꿔도 살이 빠진다>의 박민수 박사님도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혈당 스파이크가 일어나면 급격히 인슐린이 분비되고 그러면 허기가 몰려온다고요. 그럼 배고프니까 또 먹게 되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채소부터 먹고 탄수화물을 후 순위로 미루는 습관을 들이니까 밥이나 빵을 먹을 때쯤 되면 너무나 배가 불러요. 아침 식단은 보통 300~350 칼로리 정도로 맞추고 있어요. 그런데도 다섯 시간 정도는 거뜬해요. 그래서 매 끼니를 이런 분위기로 먹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그렇게 못하고 있어요.


대신 채소를 먼저 먹는다는 원칙만은 지키고 있어요. 하지만 이렇게 하는데도 생각보다 체중 감량이 더디더군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문제가 뭔가 분석해 보았어요. 26페이지에 있는 '내 몸을 망치는 악성 다이어트'를 보고 판단해 보니 운동량이 부족함을 알게 되었어요.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어차피 식후에 혈당도 소모해야 하니까 하루 세 번 간단하게라도 걷기를 실천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7천보 가량을 한 번에 걸었다면 지금은 3천 - 2천- 3천으로 나누어 걷고 있어요. 그리고 집에서 늘 점잖게 있었지만 요즘은 음악을 틀고 둠칫둠칫 하면서 일상 칼로리를 소비하고 있어요.


34페이지에 있는 나쁜 식사 체크리스트로 확인해 보니 저는 4가지가 해당되었어요. 식습관이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라고 판단하였지만 그래도 되도록 리스크를 없애도록 노력하기로 했어요. 박민수 박사가 하는 말들은 모두 혈당 조절에도 도움이 되는 방법이니까 새겨둬서 나쁠 게 없죠.


채소의 양은 하루에 500g이 권장되고 있었어요. 식이 조절 시에는 700g까지 늘리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니 이점도 참고하기로 했어요. 처음에는 채소 500g을 어떻게 먹나!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못 먹을 것도 아니더군요. 다만 부피에 관한 문제니까 무리하지 않는 범위에서 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채소의 7가지 장점이 있는데, 이건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고 새겨두는 게 좋겠다 싶어요.


1. 식후 혈당을 낮춘다.


2. 천연 항산화제다


3. 항암 효과가 있다.


4. 장이 편해진다.


5. 독소 배출을 돕는다.


6. 혈액 순환을 돕는다.


7. 비만 치료제다.


거꾸로 식사법의 요점은 식사를 할 때

채소- 반찬 - 밥

순서로 먹는 거예요. 처음에는 진짜 어색하거든요. 그렇지만 생활화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간이 약해졌어요. 젓갈류나 밑반찬은 찾지 않게 되었고요.


​저는 오랫동안 살과 함께 살아서 그런지 저항성이 커서 잘 안 내놓으려고 하나 봐요. 그런데 책을 읽다가 문득 느끼게 된 게 있는데요,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도 안 부어요. 예전에는 부석부석했었거든요. 채소부터 먹는 습관을 들여서 그런지 거의 붓는 일이 없어요. 물론 전날에 무리했다거나 할 때에는 손이 붓긴 해요. 그렇지만 평소에는 그렇지 않답니다.​


그래서 저는 다이어트뿐만 아니라 건강한 식습관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에게도 이 책을 권하고 싶어요. 젓가락을 이용해서 천천히 먹는 습관을 들이면 더욱 좋아요. 사진 속의 아침 식사를 완료하는데 20분에서 30분가량 소요되거든요. 꼭꼭 씹어먹으며 채소 각자의 맛을 느끼는 시간이 좋아요.

이 책은 건강한 식단 짜는 데에도 도움이 되어요. 숙면과 스트레스 관리법까지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으니 마음 챙김에도 도움이 되고요. 갑자기 살을 확 빼려는 사람에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요요 없이 장기적으로 건강까지 관리하면서 진행할 사람에게는 딱 좋은 책이에요.


직접 실천하고 있는 와중에 <먹는 순서만 바꿔도 살이 빠진다>를 읽었더니 공감할 내용이 참 많았어요. 그러므로 꾸준한 다이어트를 하고자 하는 분이나 혈당 관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만나보는 게 좋겠어요. 가볍게 읽고 실천할 수 있도록 쉽게 쓰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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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깨부수기 - 성차별의 역사와 여성의 투쟁 Philos Feminism 10
마르타 브렌.옌뉘 요르달 지음, 손화수 옮김, 권김현영 해제 / arte(아르테)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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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만 보았을 때에는 마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오해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10페이지에서 슬슬 빡치기 시작하는 겁니다. 남녀를 떠나서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하더라도 누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당장 뉴스의 댓글칸만 보더라도, 가끔은 네이버 뿜만 보아도 이런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옴을 알 수 있습니다. 남자보다 더 나은 권리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 아닌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게 이렇게까지 어려울 일인가 싶습니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이 두려워서 여자를 하등하게 취급했던 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가부장제 깨부수기>는 성차별적 망언을 내뱉은 유명인들을 하나씩 집어내어 소개합니다. 시대상으로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이해해 주기에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그런 남자들로부터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들 - 페미니스트의 역사를 다룹니다. 아리스토텔레스, 루소, 칸트, 니체, 헤겔, 프로이트, 다윈, 우디 앨런 등 가부장제를 주장하며 남자의 시선으로 사회를 보고 또한 보도록 했던 그들을 고발합니다.




"모르는 게 약이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성차별과 싸웠던 여성들의 역사를 반드시 기억하자!"


저는 과격하고 파괴적이거나 미러링이라는 이름으로 그릇된 일을 자행하는 페미니스트는 싫어합니다. 그렇기에 그냥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은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자연스럽게 이런 구도가 되기 위해서는 남자들의 개념이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세상을 보면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맙니다.



<가부장제 깨부수기>에서는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권리를 주장한 여자들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페미니스트들은 전 세계에서 조롱이나 괴롭힘, 때로는 사냥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살해당하기도 했습니다.



참정권을 갖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던 사회는 그리 먼 과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남자의 시선으로 본 사회가 얼마나 불합리했었는지 재조명하는데, 이를 보면서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100여 년 후에 보면 얼마나 어처구니없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즐겁게 읽으며 힘을 내었는데 마지막엔 괜히 찡하고 마음이 슬퍼졌습니다. 성차별주의자가 지배하는 세상에 나는 여전히 존재하며 내 딸은 거기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속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그렇게 두껍지 않은 데다가 그래픽 노블로 되어 있어서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상당히 묵직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고 있는 여성에 관한 비하, 잘못된 관념, 혐오 등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차별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성인은 물론 중고교생까지 두루 읽을 수 있는 성 평등 학습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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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넘는 과학자들 - 인류 최초 블랙홀 촬영을 위한 글로벌 프로젝트
애나 크롤리 레딩 지음, 권가비 옮김 / 다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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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인류 최초로 빛까지 삼키는 블랙홀을 촬영해낸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블랙홀이 무엇인지부터 알려주며 시작하고 있으므로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블랙홀이라는 개념은 아주 어릴 때 SF 영화였나 아니면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접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주 공간에 존재하며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이다 못해서 빛까지 모두 흡수해버리는 무시무시한 공간이었죠.



블랙홀은 저에게 있어서는 두려우면서도 신비한 미지의 공간이었습니다. 마치 버뮤다 삼각지역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빛마저 빨아들이는 그곳은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하는 신화의 영역이었으나 지구의 역사에서 인간들이 꾸준히 그래왔듯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계속 있어왔습니다.



빛과 어둠을 이용하여 평면에 그려내는 것을 사진이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감히 블랙홀을 촬영하겠다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놀라웠습니다. <선을 넘는 과학자들>은 그런 시도를 하고 마침내 성공해낸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블랙홀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셰퍼드 돌먼이라는 과학자는 이런 프로젝트를 제안하였습니다. 대부분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했지만 끈기와 기술의 발전, 팀워크 등으로 드디어 해내고야 말았습니다.



2019년 4월 인류 최초로 블랙홀 핵심부를 영상으로 확인했다는 기사를 읽을 때에도 허황된 가짜 뉴스가 아닌가 했습니다. 그야말로 제가 가지고 있던 개념을 단번에 부수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EHT로부터 공개된 사진은 마치 밝게 빛나는 던킨 글레이즈드 도넛 같았습니다.



이 블랙홀은 블랙홀 후면에서 온 빛이나 주변에서 발생한 빛이 강한 중력에 의해서 둥글게 휘감긴 형태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름 1000억 Km의 약간 기울어진 고리 모양의 구조 내부에 존재하는 사진을 한참이나 바라보았습니다.



보고서도 믿기 어려운 사진이었습니다. 센터의 어두운 공간은 내부의 빛이 빠져나오지 못해서 형성된 곳으로 '블랙홀의 그림자'라고 불립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발표할 때는 과연 미래에 촬영까지 가능하리라 예상했을까 생각하니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EHT는 거대질량블랙홀을 관측하였는데 지금까지는 성능이 훌륭한 전자 망원경으로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성능 개선을 통해서 해내게 되었습니다. 파장을 작게 만들면서 스페인, 미국, 남극, 칠레 등지에 흩어져있는 8대의 전파망원경과 망원경들을 동시에 사용하여 엄청난 크기의 망원경처럼 이용했습니다.



만화에서 느끼던 바로 그런 느낌입니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들을 모아서 하나로 사용한다는 건 - 손오공이 원기옥을 쏘는 것처럼 여겨도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지구 크기의 전파망원경을 사용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말하기는 쉽지만 그 사이에 그들이 기울여야 했던 노력이라거나 갈등, 좌절과 행동력은 어벤저스 히어로 영화를 보는 것 못지않은 여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을 넘는 과학자들>은 이렇게 블랙홀을 촬영했다!는 것보다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블랙홀 촬영 이야기가 쏙 빠져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어떻게 이런 일을 해냈는지 그 단계를 차곡차곡 밟으면서 설명해나갑니다. 그래서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을 넘는 과학자들>은 블랙홀 촬영에 성공했음을 함께 기뻐하는 성인이나 천체물리학 혹은 우주과학에 흥미 있는 청소년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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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 한 시절 곁에 있어준 나의 사람들에게
김달님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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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달님은 따뜻한 눈을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그런 시선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에는 좋은 것만 보고 자랐기에 그런 게 아닐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아서 크나큰 오해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름 삶의 우여곡절이 많다고 생각해왔던 나만큼이나 복잡한 사연을 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삶 속에 들어온 이들을 밀어내거나 내치는 대신 그들이 선사한 소중함을 꼬옥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데 익숙하지 않은 저는 막냇동생과 비슷한 또래의 작가를 보며 배움을 얻습니다.

조금만 방심해도 미워할 대상을 찾고, 소중함을 잊어버린 채 꿈속에서라도 싸우고 마는 저와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졌습니다.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운 모습은 이름 그대로 달님을 닮았습니다. 역시 이름은 정성껏 지어야 하는 거로구나 했습니다.

첫아이라 신중하게 생각하며 지어주신 이름을 싫어하게 된 건 불릴 때마다 쌓여온 불편함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요즘은 중요하게 그리고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기에 점점 이름에 대한 의미가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환되는 데에는 적잖은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삶의 뒤안길쯤에 서게 되니 변화를 느끼며 따스함과 견고함을 느끼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나이가 되어서야 알게 된 것들을 김달님은 벌부터 깨닫고 있었습니다.

부모님 대신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와 할아버지에 대한 애틋함도 담겨있었고, 얼굴도 모르는 엄마에 대한 아련함을 안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애착형성이 잘 안되면 많은 곤란함을 겪게 된다던데 저자에게는 그런 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그들과의 관계 역시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건 할머니의 사랑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넓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몸 주변에 실드를 치면서 단단히 방어하는 나와는 상당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이 아름답습니다. 책은 폰트마저 사랑스럽습니다. 딱딱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너무 격식을 파괴한 것도 아닌 중심의 멋을 알고 있었습니다. 자제를 하면서 담담하게 풀어내는 작가의 문장과 닮았습니다.

이 책을 만든 편집자는 이런 것까지 고려했던 걸까요? 소중하게 한 자 한 자 적어내려간 것처럼 예쁘게 또박또박 놓여있어서 더욱 마음에 파고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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