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부교 사건과 영국개 소동>에 이어서 코끼리의 경우입니다.
태종 11년(1411) 2월 일본 국왕이 우리 나라에 없는 코끼리를 바치니 사복시(궁중의 말과 가마를 관리하던 곳)에서 기르게 했다.
태종 12년(1412) 12월 공조전서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가보고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였다.
태종 13년(1413) 11월 병조판서 유정현이 진언하였다. “일본에서 바친 길들인 코끼리는 이미 성상의 완호하는 물건도 아니요. 또한 나라에 이익도 없습니다. 만약 법으로 논한다면 죽이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 일 년에 먹이는 꼴은 콩이 거의 수백석에 이르니 청컨대, 주공이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낸 고사를 본받아 전라도의 해도에 두소서.” 임금이 웃으면서 그대로 따랐다.
태종 14년(1414) 5월 전라도 관찰사가 보고하기를 “길들인 코끼리를 순천부 장도에 방목하는데, 수초를 먹지 않아 날로 수척하여지고 사람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하니 임금이 불쌍하게 여겨 육지에 보내어 처음과 같이 기르게 하였다.
세종 2년(1420) 12월 전라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코끼리란 것이 쓸 데에 유익되는 점이 없거늘, 도내 네 곳의 변방 지방관에게 명하여 돌려 가면서 먹여 기르라 하였으니, 폐해가 적지 않고, 도내 백성들만 괴로움을 받게 되니, 청컨대, 충청, 경상도까지 아울러 명하여 돌아가면서 기르도록 하게 하소서.” 하니 상왕이 그대로 따랐다.
세종 3년(1421) 3월 충청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공주에 코끼리를 기르는 종이 코끼리에 채여서 죽었습니다. 그것이 나라에 유익한 것이 없고, 먹이는 꼴과 콩이 다른 짐승보다 열 갑절이나 됩니다. 화를 내면 사람을 해치고, 이익을 없을 뿐 도리어 해가 되니 바다 섬 가운데 있는 목장에 내놓으소서.” 하였다. 임금이 선지하기를 “물과 풀이 좋은 곳으로 가려서 이를 내어놓고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이야기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본에서 물설고 낯선 조선땅으로 실려와서 멸시와 조롱을 당하자 사람을 밟아 죽이고 절해고도로 귀양을 갔다가, 귀양이 풀려서는 충청, 전라, 경상도를 떠돌다가 또 사육하는 종을 채여 죽이고 다시 섬 가운데에 있는 목장으로 가서 살게되니 짐승이지만 그 팔자가 실로 기구하다.
태종은 그 손에 골육을 포함하여 수많은 인사들의 피를 묻히고 보위에 올랐으나 짐승에게는 관대했던 모양이다. 사람 죽인 짐승을 살려주는 것은 요즘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말 못하는 짐승을 불쌍히 여긴 어진 임금이 ‘물과 풀이 좋은 곳으로 보내 병들어 죽지 말게 하라’고 하였으나, 실록에더 이상의 기록이 없어 그 짐승의 끝을 알 수 없고 다만 조선 땅 어디에 코끼리가 살기에 좋은 곳이 있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생이 코끼리 이야기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도 못생겼다고 비웃고 무시하면 큰일 난다는 것이다. 하물며 만물의 수괴인 인간은 말해 무었하겠는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할진저
골육도 가차없이 죽인 인정사정없는 비정한 태종이 사람 죽인 짐승을 불쌍하게 여겼다는 것이 조금 가소롭기도 하지만 비정한 놈들의 마음 속에도 측은지심이란 것이 있는 법이다. 측은지심이라고 하니 맹자에 나오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하도 오래전에 배워서 기억이 가물하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제후가 물었다. (당시는 춘추전국시대로 전쟁과 살육으로 날이 새고 지던 시대였으니 사람 목숨도 뭐 그리 귀한 시절은 아니었다.) “어디에 쓰려고 소를 잡는가?”“흔종에 쓰기위해서 입니다. ” “불쌍해서 차마 못보겠다. 놓아주라.”“그러면, 흔종은 폐할까요?”“아니다. 소를 양으로 바꾸라.”했다는 이야기다.
흔종(釁鍾)이란 새로 종을 만들 때 희생을 잡아 그 피로 종에 바르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라고 네이버 사전에는 나와있는데, 소생이 예전에 배울 때는 주조한 종이 오래되어 갈라지고 틈이 생길 때 소의 피를 발라 고쳐 쓰는 것을 흔종이라고 배운 것 같다. 어쨌든 소를 양으로 바꾸나마나 어차피 죽는 것은 한가진데 무슨 의미가 있냐고 당시에도 아마 누군가 물었다. 소는 보았고 양은 보지 못했으니 차마 보지 못하는 그 마음이 바로 인(仁)의 시초라는 것이다. 이 마음을 잘 키우면 어진 사람(仁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자무적(仁者無敵)!!!
이런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다. 어느 겨울날 한 늙은이가 개울을 앞에 두고 건너가지 못해 달달 떨고 있는 것을 그 고을 수령이 보고 직접 업어서 건네줬다고 하여 그 수령이 어질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맹자가 듣고 이는 소인의 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개울 앞에서 달달 떨고 있는 영감이 백 명이면 그 수령이 혼자서 영감 백 명을 모두 업어 나를 것인가? 라고 물으면서, 수령이면 사람을 부려 그 개울에 다리를 놓는 것이 군자의 인이라고 했다는 뭐 그런 이야기도 생각난다.
맹자의 말씀대로라면, 소생도 뭐 어진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불쌍해서 차마 보지 못하고, 불쌍해서 차마 하지 못하는 그런 경우는 간혹 가다가 있다. 그런 마음을 잘 키운다면 소생도 소인의 인이든 군자의 인이든 하여튼 인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무적이 된다. 이거 너무 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