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에 이르는 병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시공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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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에 보니 19세 미만 구독불가라는 유혹이 한켠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러니 더욱 흥미가 가지 않을 수 없는게 사람마음인 거 같다. 게다가 마지막 반전을 위해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달라는 노란띠 그리고 비닐로 밀봉한 자태까지.......뜯고 나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시작이 끝과 맞물려 있는 듯하다. 책장은 선선히 넘기는데 막힘이 없었다. 저자의 이야기 이끄는 힘이 탄탄하고 또 마지막은?이라는 호기심이 보태어졌다. 다만, 힘들었던 것은 두페이지 정도에 해당하는 사체의 훼손과정을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아, 힘들었다. 케이블에서 신나게 보던 C.S.I나 N.C.I.S등으로 단련이 되어 있지만, 오히려 활자의 묘사가 더 잔인했다. 하지만, 이 묘사가 이 이야기를 선정적으로 만들기 위한 장치는 아니라 생각이 든다. 사실적 표현이라는 게 맞다고 본다. 기대하던 반전은 글쎄.....그동안 반전에 열광하며 반전을 추리하고 반전에 물들어서인지 아하!정도의 감탄에 그치고 말았다. 그래도 이야기의 마력에 빠지고 싶은 독자에게 기쁨을 주기에 충분한 책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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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차원도로시 2007-05-14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전이..촘 그랬죠?요즘 하도 강한 것들이 많아서..게다가 저는 오마주 격인 만화책을 먼저 보는 바람에;;;;...^^

앨런 2007-05-14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어느 정도 예측도 되구요. 또 히치콕의 사이코를 연상시키는 반전이라 더 맥이 빠졌어요.
 
어린이 박물관 - 즐거운 역사 체험 어린이 박물관 6
국립중앙박물관 엮음, 허현경 그림 / 웅진주니어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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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어린이 박물관 전시도록의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어린이 박물관 도록이라지만 어른에게도 충분한 도록이다. 특히, 도판이 좋아서 눈에 쏘옥 들어오고, 설명도 이야기식이라 부드럽게 익힌다. 그리고 다양한 우리의 유물들이 선명한 사진으로 펼쳐져서 편하게 볼 수 있다. 아다시피 박물관에 가면 계속 걸어가면서 봐야하고 게다가 서서 보는 부담을 가져야 하지 않은가! 내가 배웠던 역사책에선 담지 못한 기둥이나 기와 그리고 온돌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벽화로 보는 사회생활 등이 즐거움을 더해 준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까지의 유물이 많이 담겨있는데, 그래서 더 만족스럽다.

어린이를 위해 나온 책이라고 제목까지 선명하지만, 어른들도 한번씩 보고 곁에 두면 좋은 책이다. 옛날 옛적이라는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의 역사이기에 그렇다. 책을 들고 들여다보노라면 감탄이 절로 나는 유물들이 한둘이 아니다. 이제 어디를 가더라도 유물들과 인연이 닿은 곳이면 떠오를 것이다. 아 그곳이군. 박물관 도록에 실린 유물들은 박제가 아니다. 우리 조상의 땀과 노력의 댓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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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늘한 미인 - MBC 김지은 아나운서가 만난 스물한 명의 젊은 화가들
김지은 지음 / 아트북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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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듯 모르겠고, 느낌이 다가오는 듯 도망가버리는 것이 현대미술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얼굴 마주보기가 늘 쉽지 않은 나에게 김지은님의 서늘한 미인은 반가운 친구입니다. 내 손을 다독이며 스물 한명의 매력적인 미인들을 마주보게 해주었습니다. 무엇보다 행위예술가로만 알고 있던 그녀, 낸시 랭에 대한 껍질이 깨져서 좋았습니다. 그녀의 터부 요기니 시리즈는 참으로 유쾌합니다. 껍질이 깨져 부서지니 그녀의 속깊은 생각도 알 수 있었습니다. 김지은님은 자신의 글재주를 스스로 탓했지만, 왜 자꾸 웃기고 울리는지......이래도 재주 없다 튕기실건지요! 김지은님의 서늘한 미인 만나는법도 좋았고, 미셸 투르니에와의 이야기는 부러웠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만남은 화가 이유정님과 이태경님을 만났다는 겁니다. 이유정님의 그림을 본 순간-참 책을 읽기 전에 그림들을 먼저 보세요. 꼭-정말 근사하다는 생각에 웃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전에 달리의 그림을 보고 느꼈던 그 충격과 겹치더군요. 특히 꿈꾸는 사람과 여명과 사라진 나머지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이태경님 그림은 러시아 문학 같다고 할까! 강렬하면서도 생각하게 만들고 그리고 자꾸 쳐다보게 만들더군요. 마치 두꺼운 양장본 고전같은 맛. 그게 이태경님의 그림이었습니다.

김지은님의 다른 미인들은 언제 만날 수 있을까 기대가 되는 책이었습니다. 책장을 덮으며 예술이란 자신이 느끼는 만큼의 크기로 나에게 다가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은 작품 많이 볼 수 있어 더 없이 행복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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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06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늘한, 이란 단어를 보는 순간 서늘한남자를 좋아하는 춤추는인생님이 생각나요.
서늘한 미인이시기도 하구요^^
 
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
백승종 지음 / 푸른역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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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교과서에 있는 것이 다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학교 문을 나서니 오히려 역사는 종이에 인쇄된 것이 아니라 계속 살아 숨쉰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양한 시점에서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을 펴기 전에 이 책이 그냥 뻣뻣한 역사서술인 줄 알았다가 확 깼다. 저자는 책에서 주장하듯이 팩션의 틀에 세 역모사건을 넣어 보여준다. 사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마치 우리 눈앞에 살아숨쉬는 현실을 안겨주는 맛이 대단하다. 또 조선시대 위대한 임금으로 외워온 영정조시대의 또다른 면을 각인할 수 있었다.

저자는 책에서 역사는 다양한 시점에서 볼 필요가 있고, 역사의 진실은 결국 하나일지라도 우리는 그 '하나'를 대뜸 찾지 못한다고 하면서 하나의 진실에 포함된 여러 빛깔을 제대로 읽어내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한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다. 

색다른 역사읽기에 많은 이들이 도전하였으면 좋겠다. 다양한 시각과 이해를 갖기에 좋은 수련방법이기때문이다. 다양한 시각과 이해 그리고 생각을 서로 나누는 것이 진실된 역사게임의 열쇠를 찾는 법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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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의 세계사 지혜가 드는 창 5
안효상 지음 / 새길아카데미 / 199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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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는 중요하다고 알려진 역사적 사실들의 알려지지 않은 측면이나 잘못 알려진 것들을 드러내주거나, 또 중요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교과서나 역사서에서 잘 다루지 않는 것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 책의 방향을 잡았다고 한다. 또 쉬운 접근을 위해 67개의 장면으로 나누었고 책말미에는 읽는 이들을 위해서 30권의 읽을거리를 덧붙여주는 인심도 베풀었다. 책을 읽으며 또 다른 책을 만나는 것은, 읽는 이의 입장에선 늘 버거운 즐거움이다. 67개의 각기 다른 역사 속의 궁금증들. 물론 헤아릴 수 없는 왜?로 둘러싸인 게 역사지만, 그 중에서 언급된 67개 속에서 몇 장면을 들추어보면,

67-2. 태양신이 하사한 함무라비법전

세계사 시험에도 가끔 등장하던 그 법전이다. 그런데 태양신이 주었다고? 문명의 발상지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개방된 평야지대로 권력의 교체가 잇따랐다. 기원전 2350년경 셈족인 아카드인이 처음으로 통일왕국을 세웠으나, 얼마 못 가 아무르인이 이 지역을 통일했다. 기원전 18세기 함무라비 시대에 전성기를 맞이하는데, 그는 중앙집권적 체제를 정비하고 법전을 만들었다. 1901년 프랑스의 드 모르간이 이끄는 페르시아탐험대가 수사에서 발견했다. 이 돌기둥에는 함무라비왕이 태양신으로부터 법전을 받는 광경이 조각되어 있고, 282조로된 법률조문이 이란의 고대문자인 설형문자로 새겨져있다. 이 함무라비법전은 최초의 성문법전인데, 현재는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 모셔져있다.  

생각 하나---함무라비법전은 이란의 유물인데 왜 보관은 프랑스가 하면서 돈까지 벌까! 이란에 박물관이 없어서는 아닐것이고 역사의 위대한 유물들을 훔쳐 한 곳에 전시하면서 명성을 쌓고 싶은 문화대국(?)의 긍지때문이 아닌가 한다.

67-14. 당고조, 당태종은 중국사람이 아니었다.

중국의 역사는 한족과 이민족이 반반씩 이뤄놓은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예로, 5호 16국 시대에는 이민족과 한족은 문화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호한체제라는 정치문화형식을 발전시켰다. 화북을 통일한 선비족의 북위정권이 지나치게 한화정책을 취하자 6진의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6진의 하나인 무천진 군벌에 속하는 인물들이 수를 건국한 수문제 양견과 당고조 이연의 할아버지 이호 등이었다. 이씨 집안은 원래 대야씨 성을 가진 호족이었다. 수와 당은 고구려를 침략할 때도 수양제, 당태종, 당고종은 직접 전장에 나서 전투를 지휘했으며 당태종은 유목민의 군주를 가르키는 칸을 덧붙인 칭호 천가한이라 불리길 좋아했다. 이는 모두 유목민의 영향이다. 또 당고종이 당태종의 후궁이던 무조(측천무후)를 자신의 황후로 삼은 것이나 현종이 태자비인 양옥환(양귀비)를 귀비로 맞은 것 등은 북방유목민들 사이의 관습이었으며, 또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황제 측천무후의 등장도 여권을 존중하던 유목민의 영향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당제국의 국제성이야말로 유목민의 개방성에 연유한 것이다.

생각 둘---수와 당의 건국세력이 유목민(선비족)인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다양한 문화의 꽃을 피운 당의 바탕이 유목민의 호방함과 개방성에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최근 중국에서 흘러나온 허무맹랑한 주장, 칭키츠칸이 중국인이라는 것을 믿어줘야 하는지? 아니라면 북방유목민이 지배세력이었던 그 시대를 흠모해서 칭키츠칸을 한족의 조상으로 긴급 영입하고자 하는 뜻인건지? 그들의 광대한 땅만큼 광대한 상상력의 탓인것인지................

 67-25. 다빈치가 한밤 중에 공동묘지에 간 이유

다빈치는 14세때 조각가로 유명한 화공인 베로키오 밑으로 들어가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당시 화공길드는 토목, 건축, 회화 등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다했다. 1482년 밀라노로 간 다빈치는 군사기술자, 측량과 지도제작, 기중기의 고안, 운하건설, 궁정오락연출, 비행기와 헬리콥터의 설계도를 작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해부도도 남겼는데, 매우 정확할 뿐만 아니라 인체에 대한 그의 철학적 성찰이 담겨있었다. 당시엔 해부가 엄청난 죄악으로 교회의 금지령 아래에 있었지만 그는 약 30구의 시체를 해부했다고 했는데,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기위해 한밤 중에 묘지에서 시체를 파내어 촛불로 비추어가며 해부했다고 한다.

생각 셋---다빈치는 자신의 천재성의 크기에 비례하는 성실과 열정을 가진 흠모하기에 마땅한 사람이다. 몇해전 예술의 전당에서 다빈치 전시회가 있었다. 이 전시회에서는 다빈치의 노트가 자세히 공개되었었는데, 그의 수많은 해부도는 대단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여러 해부도는 다양한 인체를 대상으로 한 것도 놀라웠지만, 그 묘사는 사진으로 찍은 듯 했다.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시 태어날 대상에 대한 열정으로 그 시신들 앞에서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교차했을지. 서슬퍼런 교회법 아래에서도 예술에 대한 그의 사랑은 자신을 다독이는 힘이었을 것이다.

67-67. 오키나와는 독립왕국이었다.

극동 최대의 미공군기지를 보유하고 있는 오키나와는 사실 불과 100여년 전인 명치유신 무렵까지는 류큐라는 독립왕국이었다. 류큐왕국이 역사서에 등장하는 것은 1372년으로 명나라 홍무제의 요청에 응해 명나라에 조공했다는 기록이 있다. 류큐왕국은 3개의 정권으로 분열되어 존재하다가 1429년에는 통일정권이 수립되었고 16세기에는 동지나해 일대에 무역영역을 갖는 전성기가 시작된다. 번성하던 류큐왕국은 1609년 쓰시마 번의 침략을 받는다. 이에 류큐왕국은 이중조공외교로 유지되고 있다가, 1872년 명치 신정부가 류큐를일개 번으로 만들어버렸다. 1879년에는 오키나와 현에 편입되는데, 2차 대전때 미국의 본토침공작전으로 17만명의 목숨을 잃게 된다. 1945년 4월 니미츠(C.W.Nimitz)포고에 의해 미군정이 시작되고 거대한 미공군기지가 되었다가 오키나와는 1972년 5월에 일본에 귀속된다. 당시 미 닉슨대통령은 동맹국들의 책임분담정책을 펴는데 이때 교섭에 의해 귀속된 것이다. 오키나와 내에서는 독립론이 일어나 정당이 결성되기도 했지만 묵살되었다.

생각 넷---약소국의 비애다. 두 강국의 거래에서 약소국의 독립의지는 존재조차 없다. 우리나라도 일제시대 이후 주권을 회복하기까지 수많은 회담에서 강대국들의 거래탁자에서 좌지우지 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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