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동네
손보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떠나던 날, 동네 사람들은 아무도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오지 않았다.
-26쪽

뒷표지에 인용된 이 한 줄을 보았을 때 왜 동네 사람들이 인사를 하러 오지 않았을지 궁금해졌었다. 이는 첫 장 마지막에 묘사된 세세한 풍경을 그려보아도 이상하다.
엄마와 열한 살의 어린 소녀 둘이서 힘겹게 이사 준비를 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 그 시절 작은 동네라면 모두들 이웃 사촌일텐데 도와주기는 커녕 얼굴조차 비치지 않는다.
모녀는 마을에서 어떤 존재였던 걸까?
-----
이 소설의 첫문장을 살펴보자.

˝내 남편은 서른일곱 살이지만, 신문이나 잡지를 찢어서 정리를 해둔다.˝
-7쪽

시간강사이자 번역가인 주인공은 유능한 남편과 함께 남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이야기는 남편의 스크랩북으로부터 시작된다.

˝남편의 스크랩은 중구난방이고 어떤 원칙이나 규칙을 찾기는 힘들다. 그저 자신의 흥미를 끌거나, 혹은 반대로 전혀 흥미를 끌지 않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오려서 붙여놓은 것이리라.˝
-9쪽

남편의 스크랩북이 정말 중구난방이었을까? 스크랩은 개인적인 행위이다. 그것이 어떤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본인의 눈에만 보인다. 이 책의 구성 또한 스크랩북과 비슷하다. 소설 속의 ‘나‘도 과거의 기억을, 현재의 기억을, 흘러간 이야기 조각들을 필사적으로 이리저리 모은다. 이리 저리 뒤섞인 ‘나‘의 스크랩은 제삼자가 보았을 때 불가해한 것이다.
마지막 스크랩 조각을 모은 다음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인공인 ‘나‘가 해야 할 일은 알 수 없지만 이 이야기를 읽은 독자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다시 소설의 맨 앞장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저주토끼
정보라 지음 / 아작 / 2017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저주토끼(정보라, 아작, 2017)

🐰여름에 읽기 좋은 호러 판타지 단편 소설집

🐰sf소설은 수록 작품 중 <안녕, 내 사랑>이 해당된다. 안드로이드와 함께 사는 안드로이드개발자 이야기이다. 그 밖의 다른 작품들은 기묘한 동화나 도시괴담들을 전해 듣는 것 같은 느낌이다.

🐰표지 사진이 무서웠는데 표제작 <저주 토끼>를 읽고나니 더 무서워졌다. 약한 초식동물인 토끼가 저주의 매개체가 된다는 발상이 무섭다. 저주의 내용 또한 토끼의 특성을 잘 살려서 흥미로웠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20-08-17 21: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읽으셨군요! 저도 여름 납량 특집 기분으로 읽었어요.
전 ‘머리‘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왜 소설집 제목이 '화이트 호스(White horse)'라는 영어 제목인지 의아했는데, 읽다 보니 납득이 갔다. 그래도 영어 알레르기가 있는 내게 아직은 소설 표지에 적힌 영문이 낯설다.

 

-----

"여성들이 모든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시작되는 지독하고 아름다운 고딕 스릴러"

 

뒤표지의 홍보 문구이다. '고딕 스릴러'라는 장르가 정확히 뭔진 잘 와닿진 않았지만, 소설들이 모두 으스스했다.... 한국 여성의 일상에서 이만큼의 무서움을 끄집어 내다니 신기했다. 소설 한 편 한 편마다 여운이 길어서 하루에 하나씩 아껴가며 읽었다. 단편이지만 결말을 확인하고 다시 되짚어 읽는 과정도 즐거웠다.

 

_____

+

*<음복>에서 좋았던 점이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를 그려낸 점이었는데, 다른 소설들도 이런 기대를 만족시켜 주었다. 그래도 굳이 <음복>과 가장 비슷한 소설을 꼽으라면 <가원>이다.

 

* <카밀라>라는 소설에서, 어렸을 때 읽었던 『흡혈귀 카르밀라』 가 떠올랐다. 여성 뱀파이어에 여성 피해자라는 구도가 특이해서 좋았던 소설인데, 갑자기 다시 보고 싶어졌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옛날 초등학교 학급문고에 동성애 소설이 꽂혀 있었다는 게 놀랍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보다 : 여름 2020 소설 보다
강화길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소설 보다: 여름 2020 (강화길, 서이제, 임솔아, 문학과지성사, 2020)

 

소설 보다 시리즈를 처음 접해보았다. 부담스럽지 않은 두께와 각 소설 뒤에 실린 인터뷰가 좋았다. 가을에 다음 권이 나오면 또 사볼 것 같다.

 

이번 책에는 강화길 작가의 <가원>, 서이제 작가의 <0%를 향하여>, 임솔아 작가의 <희고 둥근 부분> 세 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가원>-강화길

올해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에서 <음복>을 읽고 정말 좋다고 생각했는데, <가원>은 소름돋게 좋았다. 나처럼 <음복>을 좋아했던 독자라면 <가원>도 분명 마음에 들 것이다. 의사가 된 '나'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가질 수 밖에 없는 모순된 감정에 공감이 갔다.

 

<0%를 향하여>-서이제

영화, 특히 한국영화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도 재미있게 읽었다. 제목의 0%는 점점 떨어져가는 한국독립예술영화 관객 점유율을 뜻한다.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년의 모습이 씁쓸했다. 주인공과 주인공의 영화과 친구들의 이야기, 지난 한국독립영화의 역사들이 교차되는 서술 방식이 독특했다.

 

'누군가 영화를 그만둘 거라고 말해도, 보통 그런 말을 하는 애들은 그런 말을 하고도 영화를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래 너 어디 한번 그만둬보라고 했는데, 그러다가 정말로 그 애가 영화를 그만두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54쪽)

 

<희고 둥근 부분>-임솔아

제목에서 갸우뚱했다. '희고 둥근 부분'이 무엇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읽어나갔다. 주인공인 진영은 아프다. 병원에서는 미주신경성 실신이라고 하는 병명을 알려주었지만, 치료법은 없다고 한다. 진영의 친구 로희의 말에서 '희고 둥근 부분'(134쪽)의 의미가 처음 등장한다. 소설 뒤의 작가님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진영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아픈 사람치고는 멀쩡해 보였고, 멀쩡한 사람치고는 힘들어 보였다.'(12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르타의 일(박서련, 한겨레출판, 2019)

오랜만에 엄청 몰입해서 읽었다.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주인공의 현실적인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연년생 자매가 중심인물인데, 언니로서 동생에게 가지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들에 대한 부분들이 좋았다.

현대사회의 이슈들이 소설 곳곳에 있지만, 다른 무엇보다 경아에 대한 수아의 마음이 제일 인상깊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유행열반인 2020-07-23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같은 작가의 채공녀 강주룡 좋게 읽어서 이 책도 궁금합니다. 궁금궁금궁금

파이버 2020-07-23 16:36   좋아요 1 | URL
서점 리뷰들을 보니 강주룡이 더 좋다는 평이 많더라고요ㅎㅎ 반유행열반인님께서 좋게 읽으셨다니, 강주룡도 읽어봐야겠습니다

유부만두 2020-08-17 21:55   좋아요 2 | URL
채공녀 강주룡 재미있었어요. 뒷심이 약해서 좀 아쉬웠지만 초반부 신혼부부 모습이 너무 귀여웠죠.

반유행열반인 2020-07-23 17: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주룡은 정말 귀여운데다 가슴 끓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