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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거 블루스 - 설탕,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독, 개정판 ㅣ 마이너스 건강 3
윌리엄 더프티 지음, 이지연.최광민 옮김 / 북라인 / 2006년 8월
평점 :
어딜가나 살빼는 얘기가 화두다. 오랜만에 만난 동아리 사람들도, 친구들도, 친인척도. 그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확실히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이 안 쪄서 엄마 애를 태웠던 애들끼리 모여 지금은 피둥피둥 살이 쪄서 도대체 살은 어떻게 빠지는 거냐고 하소연한다. 운동도 해야 하지만 운동만으로는 안 되고 적게 먹는 수밖에 없다. 여태 억울하게 지방이 누명을 써왔지만 순수한 척 새하얗게 치장한 설탕이 우리를 살찌게 하는 주범이라는 것을 이제야 사람들이 인식한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사탕수수와 사탕무를 정제해 영양소는 다 빠지고 오직 칼로리만 남아 탄수화물이라 부를 수 없는 흰 가루를 탄수화물로 분류해 표기해 온 일, 가성비 높은 에너지원이라 광고하며 설탕 소비를 부추기던 돈과 이권에 얽혀있는 사람들- 과학자, 영양학자, 의사... - 영양소에 대한 오해, 비만, 특정식품 소비 등등 이런 것은 언제나 거대 기업들 손에서 이뤄져왔다. 그러니까 내가 뚱뚱한 건 순전히 내 탓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도 분별없이 먹고 안 움직인 니 탓도 커. 눈이 돌아가게 화려한 광고를 보고 광고에 나온 기름진 음식을 먹고 다이어트 소다를 마셨으니 그 보상으로 설탕이 잔뜩 든 음식을 먹어대고 살은 더 찌고 그러면서 왜 살은 안 빠지냐고...
이 책이 출간된 지 거의 50년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구닥다리 얘기가 아니라 새롭게 알게 되는 설탕 역사가 흥미진진하다. 저자가 인권에 대한 기사를 써 온 기자 출신이어서 그런가. 제국주의 시절부터 시작된 사탕수수 전쟁(?)과 설탕을 둘러싼 기업, 정부와 그 기업들 후원을 받아온 가짜(?)과학자들, 설탕이 독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폭로해온 진짜(?) 과학자들 얘기를 생생하게 전한다. 이권을 둘러싼 싸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보이는 양심없는 행태와 그 틈바구니에서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 이야기가 지금 벌어지는 일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게 씁쓸하다.
내가 좋아하는 빌리 할러데이에 대한 언급부터 마음에 들었다. 작가 자신을 깨운, 시대를 앞서간 배우 글로리아 스완슨에 대해 검색해봤다. 무성영화 시대 배우라면 찰리 채플린 밖에 몰랐으니.
현대사회에서 설탕을 완전히 끊는게 가능할까. 우유에도 설탕이 들어가 있고. 플레인 요거트에도 설탕이 들어간다. 술과 담배에까지 설탕이 들어간다고 하니 뭐. 생협을 표방하는 오아시스에서 산 파김치에도 단 맛이 많이 느껴져서 김치에도 설탕을 많이 넣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더 놀란 건 김을 사려고 후기를 봤더니 김 맛이 너무 달더라는 후기에 그 김에 대해 찾아보니 정말 설탕을 많이 넣었던 거다. 달게 해야 사람들이 맛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모든 가공식품에는 설탕이 꼭 들어간다.
속세를 버리고 자연인으로 살지 않는 이상 완전한 자연식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저자가 살던 시대와 달리 가공식품, 밀키트, 외식에 노출돼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도 설탕을 피할 수가 없다는 말이다. 단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나도 설탕을 끊지는 못하겠다. 원하지 않아도, 의도하지 않아도 알게 모르게 먹게 되는 게 설탕이 들어간 음식일테니. 그러고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몸 속에 쌓여서 야금야금 몸을 망가뜨리겠지. 완전히 끊는 대신 설탕 함량을 확인하고 설탕이 적거나 전혀 들어있지 않은 식품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겠다. 전에 담뱃값을 인상한 정부에 대한 저항으로 담배를 끊었다가 스트레스 때문에 죽을 것 같다고 한 사람처럼 설탕을 완전히 끊으려다 신경을 과도하게 사용해서 폭발할 지도 모르니 그냥 안 끊을란다.
이 글을 쓸 당시 저자는 일본 말고는 우리나라를 경험하지 못해 그런가 아시아를 거의 일본으로 이해하고 있다. 마지막 장에 자연식품 조리법도 거의 일본식 식재료 위주이다. 지금처럼 한류가 대세라면 아마도 우리식 나물 무침에 대해 적어놓았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