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티재 하늘 1
권정생 지음 / 지식산업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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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죽여 흐느끼다가 서러움에 받쳐 꺽꺽 운다. 한티재 사람들은 그 힘든 시절을 어찌 살아냈을꼬. 먹을 것이 없어 내내 곯고 그래도 살겠다고 주린 배를 안고  우리네 어미 아비들이 후여후여 지나온 길을 오늘 우리는 당연한 듯 걷는다. 책을 읽는 내동 눈물 마를 새가 없다. 그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틀림없이 있었던 일을 권정생 선생은 옛이야기 하듯 들려준다.

 

한티재 하늘은 한티재에서 고단하고 숨가쁜 세월을 살아낸 사람들을 이르는 것이리라. 책 속에 박혀있는 말들에 취해 홈빡 빠져든다. 책에 쓰인 말들을 되뇌어 보고 여러 번 소리내 발음해본다. 책에 나온 풀꽃들과 나무들을 찾아 백과사전을 뒤져 그 모습을 보며 아아, 그 꽃, 그 풀이구나. 한다. 이순이, 분옥이, 귀돌이... 정다운 이름을 가진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적지 이렇게 우리 땅, 우리 하늘 닮아 우리다운 말글을 본 적이 없다. 이런 예쁜 말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구나.

 

책에 쓰인 모든 단어, 문장이 아름다워 빙긋 웃게 된다. '흰구름이 나실나실 떠 있고 햇빛이 자랑자랑했다.' . '나실나실'이라는 말은 '짧고 연한 풀이나 털 따위가 늘어져 자꾸 가볍게 흔들리다' 이다. 구름이 솜털처럼 나부끼는 느낌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고 '넘실넘실'(부드럽고 가볍게 자꾸 움직이는 모양)을 뜻하는 말일 수도 있겠다. 어느 것이든 솜사탕처럼 퐁신퐁신한 구름이 나풀거리는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자랑자랑'은 '자꾸 높고 맑게 울리는 소리 또는 그 모양' 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모양이 떠오른다.

 

가장 잘 쓴 소설은 전지적 작가시점을 취한 것이라고 들었다. 전지적 작가 시점 하면 고대소설이 떠올라 시시하고 빤한 느낌이 들어 그 말에 수긍하지 못했는데 권정생 선생의 인간미가 스며있는 글을 보니 오호, 알갔다. 등장인물들이 겪는 수난을 묘사하면서 그 속에 다그치듯 가르치는 말이 아닌 고통을 넘어서는 깨달음이 아픈 이들, 책을 읽는 이들을 시나브로 감싼다.

 

경상도 사투리라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 투성이지만 우리동네 말과도 닿아 있어 미루어 짐작해 읽는다. 멋대로 알아듣고 잘못 이해한 것도 많을 것이다. 선생에게 무슨 뜻인가 여쭙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먼 곳으로 떠나셨다. 시처럼, 꽃처럼 쓰인 글이 포근하고 달콤하고 아릿하다. 이 땅에 사는 이들이 모두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이처럼 고운 말글을 닮아 우리도 말갛고 아리따워 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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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30 08:46   좋아요 0 |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3-30 08:56   좋아요 1 |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때 '빛깔있는 책들' 책을 모두 가지겠다는 꿈이 있었는데 겨우 3권밖에 구하지 못했다. 헌책방 어딘가에 먼지옷을 잔뜩 입은 채로 꽁꽁 숨어있을지 모르겠다.

 

1학년 겨울방학 때 전국대학 탈패 출신들을 대상으로 '탈꾼대학'이 열렸다. 경주에서 마당극 워크샵 형식으로 3박 4일(?)-얼마 전 학창시절부터 써왔던 일기장들을 몽땅 버려서 그때 기록을 알 수가 없다.-동안 치러졌다. 

 

고성오광대를 추는 학교가 대부분이었고, 봉산탈춤을 추는 학교가 드물어 각 지역 탈춤을 추어보는 시간에 긴 머리를 풀어헤친 채 미친년(?)처럼 탈춤을 추는 바람에 동아리에서 춤 못 추기로 소문난 내가 탈춤으로 처음 박수를 받아보기도 했다. 탈꾼대학에서 뭘 했었는지 거의 생각나지 않고 즐거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그때 알게 된 경상대 탈패 동기 녀석과는 동아리 공연이나 전수 때 서로 참여하고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낸다.

 

 

 

탈꾼대학에서 처음 만난 채희완 선생과 탈꾼들 몇이 밤새 토굴(경주 어느 폐교였던 것 같은데 도자기 굽는 가마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에서 술을 마셨던 기억이 있다. 그 채희완 선생을 저번 주에 다시 만났다. 채희완 선생 대동굿 강의 일정을 보고 어찌나 반갑던지. 강의 마치고 탈춤 책을 들고 작가 싸인을 부탁드렸는데 뒤풀이 자리에서 책에 싸인해 주는 거 처음이라고 하셔서 다들 웃어댔다. 그랬겠다, 누가 탈춤 책을 갖고 싸인해달라 했을까 싶기는 하다. 탈패 출신들이 그렇게 했을 리도 만무하고.

 

'축제' 라는 일본식 한자조어 대신 '대동굿', '마당굿' 이라는 말을 쓰자는 용어의 쓰임에 대한 설명으로 수업을 열었다. 교정할 때나 사람들에게 늘 열올리며 강조하는 얘기라 동지를 만난 것 같았다. 제일 기막힌건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이다. 안동도, 탈춤도 다 우리식인데 거기에 페스티벌이 뭐냐고. 안동국제탈춤 큰잔치 라는 말로 바꾸었으면 좋겠다. 세계인과 함께한다는 뜻을 담으려면 괄호 열고 페스티벌 하면 될 텐데. 

 

1988년 지리산에서 처음 장승굿을 연 이후로 벌써 9차례 치러졌다가 10년 넘게 장승을 세우지 못했다며 봄이 오면 무등산에서 장승굿을 열자는 제안을 하신다. 수령(樹齡)이 80~100년이며 키가 큰 나무여야 한다는 장승의 조건이 퍽 까다로워 나무 구하는 일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탄핵도 됐고 정권도 교체될 5월(어쩌면 6월) 광주, 무등산에 장승을 세워 통일의 염원을 담아 신명나게 놀아볼 대동굿판이 뜻깊게 다가온다. 봄에 무등산으로 장승굿보러 오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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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24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디님의 탈춤이라니 새롭네요..역시 사람은 오래 지켜보면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나 봐요.

samadhi(眞我) 2017-03-24 11:00   좋아요 1 | URL
ㅎㅎ 그래도 탈패니까 대학 내내 탈춤만 추긴 했지요. 웬수같은 선배의 강요로 식초 한 사발을 마셨을 만큼 춤을 못 춥니다. 봉산탈춤은 북녘 산간지방에서 생겨난 것이라 펄쩍펄쩍 뛰면서 춥니다. 엄청난 노동이지요. 체력이 매우 나빠 더욱 못 췄답니다.

양철나무꾼 2017-03-27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낙양동천이화정 하던 불림만 기억나요~^^

samadhi(眞我) 2017-03-27 22:34   좋아요 0 | URL
으하하. 나무꾼님도 탈춤 춰보셨군요. 그것도 봉산탈춤을. 봉산탈춤 맛을 내려면 출렁출렁하는 느낌을 알아야 해서 죽도록 오금을 뛰었는데. 덩딱기 덩딱 얼쑤, 하던 타령 장단은 기억나시는지요?
동지 만난 듯 무지 반갑네요.
 

 

 

 

 

 

 

 

 

 

 

 

 

오래 전에 이 영화에 대한 소개를 보고 봐야지 해놓고 미뤄두다가 지금에야 보게 됐다. 미뤄둔 것이 잘한 일 인 듯하다. 그것도 황지우 시인 강의 듣기 전에 영화 한번 보고 오라는 공지 문자에 부랴부랴 숙제하듯 보았는데 영화를 보면서 왜 보고 오라고 한 건지 알겠다. 영화 속 음악이 느리게, 느리게 안으로 들어와 잘 알지도 못 하는 음악을 흥얼거리게 된다. 눈을 감으면 등장인물이 춤추는 장면이 빙글빙글 돈다.

 

그리고 바다.

명사를 남녀로 구분해 읽는 라틴어권 나라(어느 나라인지 오래 돼 기억이 나질 않는다)가 바다를 'La mar' 라고도 하고 'El mar' 라고도 한다던 소설 구절이 기억난다. 밀려왔다가 밀려가는 파도를 보고 떠올린 것인지. 이 영화에서 바다가 중요한 매개(?)가 된다. 바닷가에서 시인과 우편배달부가 시를 이야기 한다. 황지우 시인 강의 중에 빠블로 네루다가 읊은 짧막한 시를 연결해 놓으니 아, 영화 전체를 뚫는 사랑을 말하는 것임을 그제야 알게 된다. 시를 쓰려는 이여, 이 영화를 보기를.

 

 

 

 

 

 

 

 

 

 

 

 

 

 

 

이 영화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이 시집에도 이 영화 제목을 딴 시가 나온다. 영화제목을 원제 그대로가 아닌 우리말로 '우편배달부'라고 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하지만. 영화가 끝나고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던 시인의 말에 김기덕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이 떠올랐다. 상영관도 거의 없어서 대학로까지 가서 본 남편과 나는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 까만 화면만 남아있는 그 자리에 남아 가만히 있었다.

 

 

 

 

작년부터 늘 그네(시인은 '그녀'라고 했지만 일본식 한자조어이기도 하고 '그네'가 내게 더 편해서) 생각한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말이면 광화문에 나가고 티비 앞에 너무 오래 앉아있게 된다며 오늘도 광주로 오기 전까지 그네가 조사받으러 가는 걸 지켜보았다고 한다. 다른 이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해 '공감'할 줄 모르는 그네의 뇌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시는 '공감'할 줄 아는 마음이라며.

 

모국어로 된 음성(내적)질서를 가지고 시는 먼저 소리로 다가온다고 한다. 시가 시이게 하기 위해서는 '은유'의 부력에 기대야 한다고. 「일 포스티노」영화에서도 시를 쓰려면 '은유'를 알아야 한다던 빠블로 네루다와 그 맛을 알게 된 마리오의 일취월장은 시에서 '은유'가 제일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한다. '은유'가 무엇인지, 은유 없이 시가 될 수 없다 말하면서도 마지막으로 '세계에 대한 태도가 진정 시를 되게 한다'는 황지우 시인의 태도가 시인이 살아온 모습과 겹쳐져 마음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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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22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시인의 친필 싸인은 가보로 등극!!입니다..
네 물론입니다..시에서 은유가 빠지면..
메타포가 없다면~~~이미 시가 아니었을테니까요..^^..

저는 책에서 작가나 저자의 싸인이 들어간 책은
별도로 분리해서 보관하거든요~~~..
아무나 받는 사인이 아니었기에, 책의 저자와의 일종의 인연처럼
받들어지더라구요~~멋집니다~

samadhi(眞我) 2017-03-22 17:59   좋아요 0 | URL
에헤헤(^-^)v
아 그렇게까지 관리하시는 군요. 그런 방법도 있다는 거 배우네요.

레삭매냐 2017-03-22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에 누군가 이 영화를 선물해 주었었는데, 비디오 테이프가 고장나서 미처 보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정작 영화는 봤는지 어쨌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원작 소설은 아주 시간이 지나고나서야 비로소 만났던 것 같습니다.

samadhi(眞我) 2017-03-22 18:00   좋아요 0 | URL
저는 영화보고 나서 원작소설 있는 걸 알았어요. 소설과 영화가 내용이 조금 다른 듯하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3-22 18: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황지우, 독보적 한국 시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포스티노 좋죠. 소설도 영화도.... 다 좋습니다.. ㅋㅋ

samadhi(眞我) 2017-03-22 22:50   좋아요 0 | URL
이런 시인이 있다는게 고맙고 자랑스럽죠.
소설 빨리 읽고 싶어요.

jeje 2017-03-22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찜해 놓은 영화인데, 페이퍼 보고나니 빨리 가서 봐야겠어요. 그리고 황지우 시인의 시도 봐야겠습니다.ㅎㅎ

samadhi(眞我) 2017-03-22 22:52   좋아요 0 | URL
제 뽐뿌질이 성공한 건가요?^^
방금 마친 독서모임에도 이 영화 다음달에 얘기하자 제안했습니다.

설해목 2017-03-23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 번이나 본 영화인데 이번 3월에 극장에서 재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리더라구요.
이런 영화는 몇 번을 재개봉해도 좋겠어요. ^^

samadhi(眞我) 2017-03-23 10:2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이 영화 보고난 뒤 검색하다 재개봉 소식 보고 반갑더라구요. 아직 영화 안 본 남편 끌고(?) 갈까 해요. 독서모임 회원들에게도 공지했어요.
 
불온한 상상 - 데모당 당수 이은탁의 좌파보고서
이은탁 지음 / 디스커버리미디어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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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不穩)의 온(穩)이 지닌 뜻이 편안하다, 평온하다, 그대로 두다, 움직이지 않다, 확실하다 등등이다. 불온이라 하니 이와 반대임을 잘 알겠다. 편안함에 물들지 않고 고여있지 않으며 잘못된 것을 그대로 두지 않고 움직이고, 굳어져서 확실하게 보이는 것을 깨뜨려 일어서서 옳지 않다! 외치자고.

 

사람들은 무언가 일을 벌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른 목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분쟁을 만드는게, 싸우는게 번거롭고 귀찮은 모양이다.

 

재작년 가을, (판)소리 공부를 해보겠다고 문예회관에 강좌신청을 했다. 접수기간이 지났는데도 받아주어 그 달 말부터 시작했는데 예상대로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았다. 그건 아무 문제가 아니지만 한 가운데 붙박이로 앉으시는 분이 성악 목소리로 아주 우렁차게-커다란 성량, 그것도 괜찮다.- 소리 선생님이 한번 불러주실 때 같이 부르는 게 아닌가. 안 그래도 처음 듣는 노래여서 잘 모르겠구만 맞게 부르는 것도 아니면서. 우리소리라는 것이 으레 선생님이 한 대목씩 들려주면 그것을 따라 부르는 방식인데 선생님이랑 동시에 불러 선생님 소리(그 분보다 작은 목소리로 부르시는)를 막아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나이도 꽤 자신(드신) 분이고 여기가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분위기이니 또 그때까지만 해도 한 두번 들어봄 직한 소리들이어서 넘어갔다.

 

그런데 시일이 지나고 모르는 노래들을 새롭게 배우게 되니 앞서 가는 그분 목소리가 방해되기 시작했다. 소리 선생에게 바라는 강습 방향이 나와 맞지 않기도 해-호흡을 배우고자 왔는데- 결국은 그 분기를 끝으로 그만두었다. 다음 분기 강습비를 내놓고 나중으로 미뤄두고서.

 

동네 마실을 다니노라면 광역시답지 않은 시골분위기가 물씬 나서 논과 밭이 널려있는 이 곳이 운치있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다보니 찬찬히 걸으며 한 곡조 불러재끼는 것이다. 단가라 해도 '사철가' 는 꽤 길어 한 곡을 다 부르려면 5분이 넘게 걸려 다 부르고 나면 숨이 차서 헉헉댄다. 산책이 끝날 때까지 계속 듣고 따라 부르고 혼자 부르기를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소리 생각이 간절해 다시 배워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다.

 

같이 소리 공부할 때 알게 된 언니와 그 언니 소개로 몇 번 만난 언니에게 다시 소리 배우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다시 하고 싶은데 그 성악 아저씨가 방해되어 직접 말해보겠다고 했다. 그래도 안 되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얘기해야겠다고 까지 말했더니, 별 문제 아닌데 뭘 그렇게까지 하느냐. 굴러들어 온 돌이 왜 일을 만드느냐.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즐겁게 배운다. 니가 뭔데 찬물을 끼얹느냐. 여긴 취미로 하려는 사람만 하는 곳이다. 진지하게 배우겠다는 너같은 애가 올 곳이 못 된다. 얼마 되지도 않는 비용을 지불하고 뭘 바라느냐. 나이 드신 분인데 존중해줘야지. 등등. 다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 꼰대가 싫어 죽어도(?) 꼰대가 되지 않겠다고 마음 먹은 나에겐 나이 먹었다고 다 어른으로 여기지 않는다. 불합리한 상황을 그저 참는게 미덕인가. 카톡창이 터지도록

얘기들을 쏟아냈다가 싸우는 것도 지쳐 다시 소리 배우는 거 그만두기로 했다. 이럴 때 이 책의 저자 이은탁 같은 싸움꾼(?)이랑 같이 가 한바탕 뒤집어 놓고 오기라도 하면 성에 찰 듯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꼭 우리 선배들 얘기같아 낯설지 않다. 우리 선배들도 이 사람 만큼 철처히, 끝까지 실천하지는 못했는데 정말 징하네, 이 사람. 신념을 위해 온 몸을 던진다는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몸부터 먼저 들이미는 것. 나처럼 말만 앞서고 좀체 움직이지 않는 사람에겐 제일 어려운 일이다. 이 사람이 걸어온 길이 '진짜?', '계속?' 하고 되물어 볼 만큼 믿기지 않는다. 보통 사람처럼 장가가서 아이 낳고 살아왔다는 것도 이상해 보이고 그동안 생계는 어떻게 꾸려왔을까 궁금해 미치겠다. 저자와 비슷하게(?) 살고 있는 우리 선배는 마누라-내 친구다. 지금도 친구 주위 사람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다. 내가 소개해 둘이 만난 것도 아니건만. 학교도 다른 내 친구가 휴학해 만날 우리 동아리방에 놀러왔다가 둘이 눈 맞은 게 내 탓이냐고.-가 빡세게 선배랑 아이들을 먹여살리고 있는데 이 사람은 자기가 밥 빌어먹고 또한 집회도, 시위도 빠짐없이 해내고 있는갑다. 그게 가능한가?

 

또 하나 신기했던 것이 30년을 싸워 온 기억이 책 한 권을 만들어 낼 만큼 선명하다는 거다. 그 급박한 상황마다 기록을 남긴 것인지, 남들보다 뛰어난 기억력을 가진 것인지. 그렇다 해도 수십 년 전 날짜와 시간까지 기억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우리 동아리 사람들도 모여서 똑같은 옛날 일을 떠올려도 제 각각 기억이 다른데. 그만큼 주체적으로 살아왔다는 증거일테지만.

 

목숨 바친 이들과 살아남은 이들이 함께 싸워왔기에 우리 현대사 속에서 지금까지 이뤄낸 민주화-아직 갈 길이 멀지만-가 가능했음을 안다. 그래, 연대만이 살 길이지. 나 혼자 잘 사는게 미덕이라 믿게 만드는 자본주의에 넋을 빼앗겨 잊고 있었는데 기억해 내자고. 그 어려운 박근혜 탄핵도 이뤄낸 우리잖아. 블루클럽으로 귀두머리(?) 하러 가자던 동무의 말처럼 "우리,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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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3-20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는 아니지만, 마음만은 진지하게 배우고 싶을 때 samadhi님과 같은 상황이면 정말 기운빠지겠어요..

samadhi(眞我) 2017-03-20 21:05   좋아요 1 | URL
댓글이 자꾸 지워지네요. 북플 가끔 말썽이더라구요.
그러니까요. 취미라 해도 제대로 배워 익혀야 할 것 아닙니까. 취미라고 그냥 대충 배우면 돼. 라는 인식도 그렇지만. 다들 뒤에선 그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소리라서 사라지는 특성 때문에 다들 녹음하거든요. 근데 그 사람 목소리만 들려요ㅠㅜ

그 사람에게 몇 번 얘기를 했는데도 여전히 고치지 않는 것을 보니 고집이 보통 아닌 듯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자는 것인데 일 크게 만들지 말고 그럴거면 들어오지 말라는 얘기에 울컥 했지요.

yureka01 2017-03-20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도 배운다는 것에서 가볍게 취미라는 것도 배움이 쉬울리는 없겟지요....^^.

samadhi(眞我) 2017-03-20 21:19   좋아요 1 | URL
다 처음 하는 거니까 익숙지 않아 더 어렵더라구요. 뭐든 대충 배우는 게 성미에 안 맞아서. 단순히 성질이 급해서 탈인 것일 수도 있구요.

꿀꿀이 2017-03-20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저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제가 빠지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불의에 바른 소리를 내 주는 사람이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이한 사람이 아니고 당당히 자신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존중하고 존경하는 사회가 되길 빌어봅니다.

samadhi(眞我) 2017-03-20 23:03   좋아요 1 | URL
저는 어딜가나 쌈닭이라 욕 처먹(?)고 삽니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너 아직도 그러고 사냐 소리 들어가면서 ㅋㅋ
 
게 눈 속의 연꽃 문학과지성 시인선 97
황지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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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급하고 좁아 터진 성미라 느릿느릿 흐르는 노래인 시를 이해할 품을 지니지 못해 시를 읽지 않는다. 그래도 좋은 줄은 알아 책꽂이 한 켠에 시집들을 조금 모아두었는데 눈으로 쓸어보면서도 손길은 가지 않는다.

며칠 뒤 황지우 시인을 볼 수 있게 되어 사두기만 하고 열어보지도 않은 시집을 처음 펼쳐본다. 시집 속 시를 하나씩 훑어 보며 그림으로 그리려든다. 그렇게밖에 할 줄 모르니. 끝까지 그려지지 않는 시구는 몇 번을 되뇌어 읽다가 아리송해 하며 내 얕은 감성(?)을 탓한다. 워낙 시를 멀리하며 살아왔으니...

「너를 기다리는 동안」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에서 목이 메여오고

「들녘에서」

- 야 이년아, 그런다고
소식 한 장 없냐-

죽어버린 이를 향한 애타는 마음일테지만
‘돈 벌러간 우리 순이 편지 한 통 없구요. 바람 불고 꽃은 피는데 어디서 무얼할까‘ 하는「순이소식」노랫말도 생각났다.

「12월」이라는 시에 멈칫, 숨을 참는다.

-쇼윈도 앞 12월의 나무는
빚더미같이, 비듬같이
바겐 세일품 위에 나뭇잎을 털고
청소부는 가로수 밑의 생을 하염없이 쓸고 있다-

이 싯구에 왈칵 울음 울다가

-힘센 차가 고장난 차의 멱살을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간다-

이 끝 구절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랬지, 시가 이런 거였지. 이 시를 부른 이 볼 날까지 콩닥댈 이 가슴 어쩔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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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3-19 0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과 언어의 미학....울어도 좋은 문장이 시에서 발견 될 때^^.

samadhi(眞我) 2017-03-19 13:39   좋아요 1 | URL
유레카님이 늘 함께 하시는 사진, 에세이, 시. 저도 시랑 친하게 지내야겠어요. 아직 낯설어 어색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