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영장류들과 우리의 근접성을 부인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그들과 우리의 유사성, 그들과 우리를 가르는 경계를 넘어설 가능성에 매혹당하는 것이 사실이다." - P169

우리에 갇혀 있던 햄이 멜라니의 슬픔에 공감하는 반응을 보였던 것처럼, 우리 인간들도 선의로 빛이 난다. 그런 한편, 인간은 와츠가 촬영한 야생 침팬지들처럼 폭력성을 분출해 다른 이들에게 커다란 고통과 슬픔을 안기기도 한다. - P170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세계 곳곳의 인간 군상을 탐구해온 인류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우리 인간의 본성을 단 한 가지로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우리의 진화적 유산은 유전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동시에 우리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에 따라 유연하게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 P171

집단적 폭력 행위에 참여한 수컷 침팬지가 애도도 할 수 있다는 사례가 발견된대도 놀랄 일은 아니다. 침팬지의 폭력성이 현실이듯, 침팬지의 슬픔 또한 현실이므로. - P171

허니 걸 이야기가 거북에게 슬픔이라는 감정이 있음을 증명해준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그렇지만 피그페이스가 노는 모습을 보고 버가트의 생각이 변화했듯이,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주기에는 충분하다. 거북의 슬픔을 기대하지도 않으면서 거북의 슬픔을 발견하리라 희망해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이다. - P210

우리가 사별한 동물 중에는 까다롭고, 고집이 세며, 신경질적이었던 동물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 모두를 위해 슬퍼한다, 그들은 우리의 친구였으니까. - P226

바람이 바다에 파도를 일으키듯, 사랑이 슬픔을 일으킨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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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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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하게 먼 길과 긴긴밤을 함께하며 ‘우리‘가 되었던 존재들의 이야기가 너무 아름다웠다. 이야기의 끝에 이어지던 삽화들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걸어온 방향이 보이는 발자국과, 마지막에 우리를 돌아보는 펭귄의 눈까지.

사랑과 희망을 남기는 이야기가 참 좋다.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나도 예전 일들을 수없이 돌이켜 보고는 해. 그러면 후회스러운 일들이 떠오르지. 하지만 말이야, 내가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것들도 있어. 그때 바깥 세상으로 나온 것도 후회하지 않는 몇 안 되는 일들 중 하나야." - P18

"그럼 나 그냥 코뿔소로 살게요. 노든이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흰바위코뿔소니까 내가 같이 흰바위코뿔소가 되어 주면 되잖아요." - P115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 P115

어쩌면 언젠가, 다시 노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 노든은 나를 알아보고 내게 다가와 줄 것이다. 코뿔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른 펭귄들은 무서워서 도망가겠지만, 나는 노든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코와 부리를 맞대고 다시 인사할 것이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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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물질의 사랑 - 천선란 소설집
천선란 지음 / 아작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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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sf 소설의 새로운 매력을 알게되었다. 무의식적으로 sf는 무척 차가운 장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좋아하는 sf 영화에는 항상 감정과 관계, 사랑이 있었다. 엄마의 사랑을 원했던 어린 안드로이드의 이야기가 담긴 A.I나, 아내의 죽음 이후로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해 꿈속으로 뛰어든 인셉션이나...가장 최근에 본 영화 컨텍트도 그랬다.

sf는 언젠가 미래에 정말 있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멀고 먼 우주로 떠나거나, 발전한 안드로이드가 있는 미래에도 사람들은 살고 있고, 살아가기 때문에 많은 감정과 함께한다. 나는 그게 무척 좋다. 그 미래에도 사람들은 살아가고, 어쩌면 어떤 가능성이 실현될지도 모른다. 물론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미래가 찾아올 수도 있지만, 그 미래에서도 더 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처럼.

<어떤 물질의 사랑>에서 본 세계도 그랬다. 따뜻하고, 간질간질하고, 혹은 차갑고 씁쓸하기도 하고. 현실에서 느꼈지만 이름을 붙이지 못했던 감정들이 이 세계에서 더 선명해지는 느낌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어떤 물질의 사랑‘이었다. 따뜻하고 다정하고 달콤하기도 했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외계인이고, 어떤 비밀이 있다고 해도 그럴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는 지구. 내가 원하는 사랑이었다.

가장 슬펐던 건 ‘그림자 놀이‘와 ‘마지막 드라이브‘.
그림자 놀이의 주인공 이라가 받은 수술의 목적이 너무 이해가 됐다. 타인의 고통은 tv에서도, sns에서도, 그리고 주변에서도 쏟아져들어오고 그 아픔을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일부러 그 모든 것에 거리를 두었던 적이 나도 있어서 그림자 놀이의 이야기가 무척 슬펐다.
안드로이드의 사랑 이야기는 이상하게 마음이 더 아프다. 인간이 만들어낸 존재여서, 그리고 안드로이드가 겪는 비극도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라서, 안드로이드는 정작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소설을 읽다가 blue room도 들었다. 인간의 욕심이자 자기만족일지라도 안드로이드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미래의 이야기지만 결국 지금의 이야기고, 내가 겪은 과거의 이야기는 더욱 아니지만, 이상하게 아련한 향수를 느꼈다. 앞으로도 어떤 가능성이 실현된 또 다른 세계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를 만나고 싶다면 당신도 주저하지 마시길. 당신이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든 나는 이렇게 대답해줄 테니까.
그렇군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그럼 혹시 배꼽도없으신가요?
- P153

"라현아, 끊임없이 사랑을 해. 꼭 불타오르는 사랑이 아니어도 돼.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존재를 만나. 그 사람이 우주를 가로질러서라도 너를 찾아올 사랑이니까."
"응, 그럴게."
"너는 지구인이니까. 네가 이곳에서 태어났으니까. 지구인일 수도 있고 외계인일 수도 있지만 그건 걱정 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서로에게 외계인이니까."
"응, 알겠어."
"결국 너는 너야. 끝까지 무엇이라고 굳이 규정하지 않아도 돼."
이 사랑은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사랑일까. 나를 꽉 끌어안은, 차갑지도 뜨겁지고 않은 이 미적지근한 온도의 사랑은. 엄마가 내게 마지막으로 알려준 것은 온도였다. 이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가, 이런 온도의 존재를 만나야 한다고. - P153

상처받지 않는다는 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보호막이었어. 사람이 사람을 잔인하게 죽일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가 지쳐있었으니까.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면, 그래서 나를 비롯해 곁의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을 수만 있다면 감정을 잃더라도 모두가 감내할 수 있다고 믿었어. 세상은 더 평화로워질 거야. 분쟁과 전쟁이, 다툼과 사냥이 전부 사라질 거야. 간결하고 깔끔하게 지구가 변하겠지. 우리는 그게 간절했어. 네가 있었다면 너 역시도 수술을 받았을 거라 생각했어. 그러니까 도아야, 나는 내가 너를 잃더라도 너를 이 세상에서 지킬 수만 있다면 수술을 받게 했을 거야.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 이해할 수도 없을 거고.
내가 지금 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 P196

"좀 더 행복할 것 같나요?"
"잘하면?"
"행복하면 인간은 어떻게 되나요?"
한나는 오래도록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미래를 걱정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래."
더미가 반짝이는 창밖의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게 뭔지 조금은 알 것 같네요."
더미가 노래를 불렀다. 쳇 베이커의 ‘블루룸‘이었다. 자동차는 속도를 유지하며 연구실로 향해 갔다. 마지막 드라이브를 향해,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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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먼저 보고 읽게 된 소설. 드라마와 다른 부분을 찾는 것이 재밌었고, 드라마처럼 무겁고 아픈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끝내는 다정함과 희망의 힘을 믿는다는 것이 좋았다.

피곤해하면서도 그냥 지나치지는 못하는 그 다정함이 안은영을 안은영으로, 칙칙하지않은 히어로로 만든다. 나는 그 다정함이야말로 가장 강한 것이라고 믿고 싶다.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인표가 은영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크게 말하지 않았으므로 잘못 들은 걸 수도 있었다. 어쩌면 인표가 아니라 은영 스스로가 말한 것 같기도 했다. 거짓말이어서, 거짓말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 P265

기도 확보하는 법, 구강 대 구강 인공호흡, 흉골 압박 심마사지를 가르쳤는데 설령 태반이 까먹고 일부만이 기억한다 하더라도 그중 한 사람이 언젠가 누군가를 구하게 될지도 몰랐다. 그런 멀고 희미한 가능성을 헤아리는 일을 좋아했다. 멀미를 할 때 먼 곳을 바라보면 나아지는 것과 비슷한 셈이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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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이 도라에몽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소설을 읽는 내내 도라에몽을 영업당했다. 어릴 때 가끔 tv에 나오면 보는 정도였던 나에게는 목차의 제목이 생소할 정도였다.(도라에몽에 나오는 도구의 이름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가 진심으로 도라에몽과 후지코 F. 후지코의 작품을 사랑한다는 걸 알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사랑이 무척 넘쳤다. 한 작품의 주제와 에피소드들을 모든 사건과 연결 지을 수 있다니. 나라면 어떤 작품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는 것도 재밌었다.

2. 그래도 이 소설의 제목은 얼음 고래가 어울린다. 얼음 아래에 갇힌 고래를 구하고 싶어했던 마음, 너무나 차가운 그곳이 괴롭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사실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 하고 싶었던 리호코의 마음이 차가운 얼음을 비춰주었기 때문이다.
책 표지에서 얼음 아래를 비추는 저 빛이, 바로 그 빛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빛은 얼음 고래를 내내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3. (스포일러 포함)
이 소설의 반전을 이번에는 일찍 눈치채는데 성공했다.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의 작품을 열심히 읽은 보람이 있다. 이전 후기에, 이름을 이용한 트릭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써두었었는데 그게 정말이었다.(ㅋㅋㅋㅋ) 하지만 그럼에도, 그 반전이 나쁘지않았다. 마치 나도 그 자리에서 적응등을 맞은 기분이었다.

4. (스포일러 포함)
제일 싫었던 캐릭터는 와카오 다이키. 그래서 이 캐릭터는 처벌을 받았는지 궁금해진다. 하나도 불쌍하지 않다...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 조금도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 제일 끔찍했다. (근데 진짜로 좀...치료를 제대로 받든가 해야 할듯. 염색약 때 얼마나 놀랐다고. 그리고 처벌도 받자.)

츠지무라 미즈키 작가의 <열쇠없는 꿈을 꾸다>의 단편 하나가 떠오르는 인물이었다. 정말 비슷했다. 그 인물은...의사도 되고 싶고 축구선수도 되고싶은 사람이었다. 그 인물의 결말은...^^

순서로 따지면 이 작품이 나오고 <열쇠없는 꿈을 꾸다>가 나온 모양이다. 같은 작가의 소설에서 비슷한 유형의 캐릭터가 나오니 신기하다. 발전시킨 형태일지도 모르겠다.

5. 처음에 책 뒷표지의 줄거리를 보고 도대체 이게 무슨 스토리인가 했는데, 실제로도 아주 여러가지 이야기가 들어있는 소설이었다. 처음에는 좀 정신없기도 했으나(이전에 읽었던 소설에 비해!) 그래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6.(스포일러 포함)
리호코의 SF 놀이를 주석으로 이해할 때마다 은근 재밌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리호코가 붙인 SF는 뭐였을까?

내가 생각한 답은 조금•가족(Sukoshi Family)이었다. 하지만 이 답이야말로 ‘조금‘이 아니어도 될 것 같다. ‘아주(Sugoku)‘ 가족이니까.

p.s 도라에몽 극장판 한번도 안 봤는데 보고싶어졌다. 뛰어난 영업이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너무나 좋아했어요.

(타임캡슐, 412p)

그것은 캄캄한 바다 밑바닥과 머나먼 하늘 저편의 우주를 비출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비추어 숨을 쉴 수 있게 하려고. 그것을 본 사람들에게, 살아가기 위한 장소를 마련해 주려고.

(에필로그, 481-482p)

"22세기에서도 최신 발명품이지. 해저든 우주든, 어느 곳에서든 이 빛을 받으면 거기서 살아갈 수 있게 돼. 숨이 막히지도 않고, 그곳을 자신이 있을 곳으로 받아들이고 호흡할 수 있게 되지. 얼음 밑에서도 살아갈 수 있어. 너는 더 이상 조금 • 부재가 아니게 되는 거야."

(사차원 주머니, 46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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