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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박스판 - 전7권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에게는 애니메이션 회사인 '스튜디오 지브리' 의 창설자이자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뛰어난 작화가이고, 만화가이며,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도 수년 전에 정식 발매되어 꾸준히 증쇄되며 알음알음 퍼져나간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가로써의 능력을 잘 보여주고 있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는 애니메이션으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풍성하게 담겨있어 애니메이션 팬들에게도 필수 도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지금이야, 만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혹은 반대로 애니메이션에서 만화로 제작되는 '원소스 멀티유즈' 가 넘쳐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를 발표했을때만 해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만화산업과 그에 수반한 애니메이션 산업의 초창기였기에 미야자키 하야오는 작품을 완성하고 훨씬 뒤에 스스로 애니메이터 공동체를 만들고, 제작 회사까지 만들고 난 뒤에야 자신의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에는 언제나 전체를 관통하는 두개의 큰 줄기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자연이다.
[미래소년 코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 초기작은 물론, [모노노케 히메], [벼랑위의 포뇨], [마루 밑 아리에티] 등 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언제나 자연 친화적이고, 때로는 자연 그 자체가 작품의 주제가 되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강한 여성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 대부분에서는 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여성들이 끌고 나간다.
초기작인 [미래소년 코난] 에서 등장하는 여주인공 '라나' 는 얼핏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수동적인 여주인공 - '민폐형 히로인' 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바로 다음작품인 [빨강머리 앤] 에서부터는 능동적이고 강한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시작한다. 아마도 미야자키 하야오는 몽고메리 여사의 원작인 [빨강머리 앤] 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는 각색 작업 속에서 능동적이고 강인한 여주인공의 이미지를 구체화 시킨 듯 하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바로 그 직후부터 잡지에 연재되기 시작하는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두 중심인물, '나우시카'와 '크샤나' 는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여성 히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들은 수동적으로 남자들을 보조해주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남자들을 이끌어 세상을 변화시킨다. 강력한 적과 용기있게 대치하고, 따스히 보듬어 안기도 한다. 부드러움으로 강함을 이기는 방법. 여성성으로 남성들을 제압하고 이끄는 진정한 여성 리더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후로도, [천공의 성 라퓨타]의 '파즈', [모노노케 히메] 의 '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의 '치히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의 '소피' [코쿠리코 언덕에서] 의 '우미' 와 '포뇨' 와 '아리에티' 까지,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여성들이 이끌어 나가게 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는 무려 12년이라는 연재기간동안 미야자키 하야오가 자신의 세계관을 투영하고, 스스로 보완하며 구체화 시켜나가는 좋은 무대가 된 셈이다.
과학 문명이 엄청나게 발달했지만, 결국 그 때문에 파괴된 지구.
대지의 대부분은 엄청난 독기를 뿜어내는 숲 '부해' 가 차지하게 되었고, 인류를 멸망 직전까지 몰고갔던 '불의 7일' 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인간들은 대륙의 가장자리까지 떠밀렸다. 부해가 닿지 않은 일부의 땅 곳곳에 자리를 잡고 다시 새로운 문명을 시작한 인류는 중앙 집권형 군사국가인 '토르메키아' 와 도시 연합국가인 '페지테'로 양분되어 있었다. 그 밖에 수많은 부족들이 부해를 사이에 두고 띄엄띄엄 흩어져서 트로메키아나 페지테의 동맹국가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우시카의 고향은 바닷가에 인접한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바닷바람과 계곡이라는 지형적인 이점으로 부해를 피해 비교적 쾌적한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부족장의 딸이자 차기 족장인 나우시카는 토르메키아가 페지테의 수도를 급습, 멸망시키면서 선포한 전쟁 동원령에 의해 토르메키아의 동맹국으로써 부족의 몇몇 원로들과 함께 치열한 후계자 다툼중인 토르메키아의 4황녀, 크샤나의 군에 합류하게 된다. 일종의 부족국가 연합체인 페지테의 상징적인 수도는 제압했지만, 토르메키아에게 가장 큰 적은 '도르크' 였다. 크샤나는 페지테의 수도를 공격하면서, 지난 '불의 7일' 의 핵심 병기였던 '거신병' 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를 이용해 권력 다툼중인 오빠들을 제압하고 토르메키아의 황제가 될 야심을 불태운다.
1982년부터 연재가 시작된 이 작품은 12년간, 7권의 책으로 완결되었다.
애니메이션이 제작된 것은 1984년. 당연히 스토리는 약 1권 정도의 분량이다. 애니메이션과 달리, 만화는 2권을 지나 3권으로 접어들면서 훨씬 방대하고 깊이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시작한다.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신비. 그리고, 신비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종교'. 작품의 종반부는 그 모든걸 아우르는 깊이있는 철학적 사유에서 파생된 희생의 연속으로 치달아간다.
다시 주인공 '나우시카' 와 '크샤나' 에게도 돌아가보자.
이 두명의 여성은 작품 안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들이다.
이 둘은 처음에는 남성들의 세계에서 홍일점들이 가질 수 있는 희소성을 무기로 주목받기 시작하지만, 주무기는 판이하게 다르다.
나우시카는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인 모성애를 주무기로 성장해간다. 가벼움, 부드러움, 관용, 포용. '자애' 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만한 것들을 무기로 사용한다. 나우시카가 타고다니는 '메베' 라는 글라이더 형태의 탈것이 바로 그 상징처럼 사용된다. 바람을 얼르고 달래며, 예민하게 파악하고 부드럽게 활용하는 모습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힘을 정확하게 투영한다.
크샤나는 남자에 못지 않은 냉정함과 잔인함, 그리고 권력을 주무기로 성장해 왔다. 겉으로는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단단한 갑옷을 항상 입고 있으며, 군대 지휘관으로써의 자질도 뛰어나다. 자신을 목숨처럼 받드는 군단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 야심도 대단하다. 그녀는 여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남성성을 무기로 삼고 있는 여성이다.
크샤나는 나우시카를 강력한 적이나 찍어 눌러야 하는 상대로 바라보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않고,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종류의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지위를 위협하지도 않을 것이고, 권위를 무너뜨리지도 않을 것이다, 겹쳐질 일이 전혀 없는 서로 다른 평행선 위에 있는 존재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때문에, 크샤나는 같은 전쟁터에서 함께 서있지만, 나우시카를 방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고, 결국 자신의 역할과 사명을 깨달아간다.
나우시카는 신적인 존재, 혹은 선구자적인 존재로 그려지지만, 크샤나는 욕망에 의해 좌우되는 인간 그 자체를 잘 그려내고 있다. 이 작품의 내러티브가 더욱 풍성해 질 수 있었던 건, 나우시카와 크샤나를 서로 반대편에 놓아 긴장관계를 형성시킨 것이 아니라, 옆에 나란히 놓음으로써 각자가 상대방을 의식하며 자신의 길을 나아가게 한 데에 있다. 나우시카는 나우시카의 사명을, 크샤나는 크샤나의 사명을 찾아가는 과정을 풍성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류 역사상 손에 꼽을만큼 위대한 재능을 지닌 이야기꾼임은 틀림없다.
언제나 온가족이 함께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작품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의 깊은 속내를 발견하기 힘들었지만, 12년간이나 혼을 쏟았던 이 거대한 서사시 안에서 그의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었다.
자연과 인간. 인간과 신. 신과 신앙. 신앙과 허무주의. 굵직한 철학적 담론을 장대한 서사시 속에 설득력 있게 잘 녹여냈다.
이 거대한 지구 안에서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아주 미미하지만, 자연은 물론 이 행성을 황폐화 시킬 수도 있는 존재이다. 반면, 자연은 물론, 이 행성과도 아주 평화롭고 풍족하게 공존할 수도 있는 존재이다. 인간을 개조하고, 종족을 말살할 정도로 강력한 병기에 집착하는 작품속의 인류를 보며,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과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떠오른 건 비단 나 뿐이 아닐 것이다.
작품의 종반부까지 나우시카는 끊임없이 허무주의와 싸우게 된다.
나는 왜 이런 고통을 겪는가?
왜 나에게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가?
꼭 내가 해야만 하는가?
내가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심각한 고민의 끝에는 언제나 쉽고 편한 허무주의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해서 뭐할까?
나 말고 다른이도 있지 않을까?
그냥 모르는 척,
방관하는 것이 더 편한데.
왜 나는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하고 있는가?
그렇게 힘겹게 도달한 거대한 진실 앞에서 나우시카는 자신의 소신을 믿고 명확한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 것이다!
생명은 생명 자체의 힘으로 살아간다!
그 아침이 온다면 우리는 그 아침을 향하여 살 것이다.
우리는 피를 토하며 다시, 또 다시 그 아침을 향해 날아가는 새다!"
7권 p. 198
"자, 다들.
출발해요.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살아야 하니까..."
마지막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