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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Space Fantasia (2001 야화) 세트 1~3(완결) 2001 Space Fantasia
호시노 유키노부 글.그림, 박상준 감수 / 애니북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아주 어렸을때 남산 어린이 우주과학센터(?) 였던가 에서 단체로 관람했던 거대한 실내 별자리를 기억한다.
아마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것이다. 커다란 강당안에 약간 위쪽으로 고정되어있는 좌석이 있고, 천장은 거대한 돔의 형상으로 되 있어서, 영사기를 통해 돔 형 천장에 밤하늘을 쏘아서 별자리를 보여주는 공간 말이다. '플라네타리움' 이라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은 십수년 뒤에 알게 되었던. 실내 별자리 관람관(?) 말이다. 영상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엄청난 자연의 경이 앞에 입을 쩍 벌릴 수 밖에 없었다. 새까만 밤하들에 박혀있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보석들. 그 뒤로 별자리 책을 사다가 밤하늘에서 북두칠성을 찾아보고 카시오페아를 찾아보던 기억이 난다.
 
십수년 뒤 군대 시절, 해발 1407m 고지의 가장 꼭대기에 있는 대공초소에서 경계근무를 서다가 밤하늘에 박힌 무수한 별들 중 하나가 뚝 떨어지는 광경을 목격한 적도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주 선명하게 본 별똥별이었는데, 소원을 빌 겨를도 없이 뚝 떨어지고 말았고, 일단 그 이질감에 할 말을 잃었더랬다. 별이 떨어지는 광경은 엄청난 위화감이 들었다. 마치 컴퓨터 그래픽 같은 느낌이었다. 진짜인데, 가짜 같았다. 이래서 많은 옛 사람들은 별이 떨어지면 나라에 위기가 찾아들거나 위대한 성인이 목숨을 다했을거라고 생각했을터다. 그정도로, 현대인인 나에게도 위화감이 있었으니까.
 
밤 하늘도 그럴진데, 우주라면 어떨까.
그 엄청난 무한의 공간. 죽음과 어둠, 영원한 무無의 공간. 아이러니하게도 죽음과 무의 공간속에서 생명과 유가 태어난다.
 
우주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들의 원조는 단연 '아서 클라크' 일 것이다. 
당대 최고의 SF작가들이었던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과 함께 3대 SF의 '레전드' 인 그는 다른 두 작가에 비해 훨씬 체계적이고 방대한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뛰어난 학자이자 발명가이기도 했던 아서 클라크는 보다 이론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우주를 다룬 작품들이 특히 더 많다. SF 문학계에 '아서 클라크' 가 있다면, 일본 만화계에는 바로 이 작가, '호시노 유키노부' 를 꼽을 수 있다.
 
정말 엄청나게 저변이 넓은 일본 만화속에서 SF장르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테츠카 오사무의 '아톰' 도 그 장르에 넣을 수 있을 것이고, 이시노모리 쇼타로의 '사이보그 009' 같은 전설적인 작품들도 포함시킬 수 있다. 오토모 가츠히로는 '아키라' 라는 전설적인 작품으로 '사이버 펑크' 라는 SF의 한 갈래를 개척하기도 했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 와 '우주전함 야마토' . 토미노 요시유키의 '건담' 시리즈 같은 애니메이션도 SF일 것이고, 최근으로 넘어오면 오타가키 야스오의 '문라이트 마일' 같은 작품들도 손에 꼽을 수 있을것이다. 여기 언급된 작품들은 국내에도 소개된 아주아주 일부의 작품들일 뿐이고, 일본의 SF의 다양성은 바다 건너 우리에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임은 분명하다. 이렇게 엄청나게 넓은 일본 SF만화의 바운더리 안에서도 언제나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가가 있으니.
바로 '일본 SF의 아서 클라크' 라 불리우는 '호시노 유키노부' 이다.
 
그리고, 이 작품 2001 夜物語.   '物語' 는 일본에서 '~이야기' 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니, '밤의 이야기' 정도로 보면 좋다.
번역판에서는 결국 '천일야화' 에서 따온 듯 한 '야화夜話' 라는 제목을 붙였다. '물어物語' 라는 단어는 한국에는 없는 단어이니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원작의 구성 또한 '천일야화' 처럼 '첫번째 밤의 이야기' '두번째 밤의 이야기' ~ 등등으로 구분되어 있으니, 잘 어울린다.
 
작품의 도입부는 SF팬들에게 아주 익숙한 장면이 나온다.
원시인이 어떤 동물의 뼈의 뾰족한 부분으로 사냥을 하고, 기쁨에 겨운 듯 그 뼈를 하늘로 던져 올린다. 그리고 공중에 뜬 그 뼈의 모양은 점차 길쭉한 로켓으로 변화한다. 바로 '아서 클라크' 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의 오프닝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에서도 원작 그대로 사용되었던 이 장면은 호시노 유키노부의 작품에서도 그대로 쓰여진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아서 클라크에 대한 오마쥬인 것이다.
 
작품은 여러 단편들이 차곡차곡 쌓여있고, 언듯 별개인 듯 한 각 작품들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으며, 사건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작품들 안에는 아서 클라크의 작품이 연상되는 소재나 주제, 사건이 등장하기도 하고, 반물질 이론이나 상대성이론등이 아주 완벽한 모습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정확한 과학적 근거들로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활용되고 있다.
 
사실 작품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면, 언젠가 한번 씌였던 발상들이 등장하곤 한다.
그것은 SF라는 장르의 특성상, 정해진 과학적 이론 안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발상은 서로 비슷할 수 밖에 없는데, 로저 젤라즈니나 스타니스와프 렘 등의 작품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작품에서 '플롯' 이라는 부분이 작가들 사이에서 공공재로 인식되듯, SF 장르에서도 한번 발표된 발상은 여러 작가들이 되사용하기도 한다. 역시 실례로, 웜홀을 이용한 우주선 도약 항해기능이라던가, 광속으로 날아가는 우주선 안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 때문에 지구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시간적인 틈이 생긴다던가 하는 발상들 말이다. 이런 발상들은 역시 작가들 사이에서는 공공재처럼 인식되고, 그것을 이용한 다양한 이야기들과는 별개로 평가된다.)
 
지식을 작품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적어도 그 분야의 준 전문가 수준이 되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만화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어떤 작품을 위해 전문가를 고용해서 감수를 부탁하기도 한다. (간단한 일례로 '고스트 바둑왕' 같은 작품은 실제 프로 바둑기사가 작품에 등장하는 바둑에 대한 부분을 디테일하게 감수하기도 했고, 복싱만화나 격투기 만화 또한 실제 선수들이 감수를 맡기도 한다.)
호시노 유키노부가 일본의 아서 클라크라고 불리우는 이유들 중 하나도 이 방대한 지식과, 그것을 작품에 녹여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이성적인 해석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부분은 역시, 작가로서의 호시노 유키노부. 바로 단편 작품들이 서로 가지고 있는 유기성이다.
이 단편에서 쓰였던 어떤 작은 소재가, 훨씬 뒤의 다른 단편에 영향을 준다던가, 이 단편에서 일어났던 작은 사건이, 다른 단편의 사건의 시발점이 된다던가 하는 점들이다. 뿐 만 아니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같다보니 작품집 자체로서의 완성도가 대단히 뛰어나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큰 틀 안에서 변화되는 주제의식도 대단히 흥미롭다.
 
이 작품이 쓰여진 건 1980년대 중~후반이다.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인 한국에서는 신경을 돌릴 틈이 없었지만, 당시 세계적으로 우주개발 열풍이 불었더랬다.
우주정거장과 달기지 계획이나, 우주레이져빔 계획인 스타워즈 프로젝트, 화성 탐사계획 등이 등장했고, 일본의 로봇기술이 유명세를 탔으며, 우주에 대한 낭만적인 꿈들이 가득했더랬다. 풍족한 90년대를 바라보며 희망들이 가득했고, 전 세계젹으로 SF문학 열풍 또한 강렬했더랬다. 우주전함 야마토나 건담시리즈의 본격적인 붐이 일어난 것도 이 시기였고, 호시노 유키노부의 '2001 야화' 도 이 시기에 씌여졌다.
 
그래, 그 당시엔 2000년이라는 해가 멀게만 느껴졌었다.
그 당시의 SF작품들을 보면 2011년엔 세상에 로봇들이 가사를 대신해주고, 전자동 자동차가 거리를 활보하며, 달기지와 화성기지를 오가는 셔틀우주선이 등장할 것만 같았다. 분명 그 당시보다 많은 것들이 발전하긴 했지만, 우주에 대한 부분은 아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달은 여전히 황무지이고, 화성엔 아직 사람이 도달하지 못했으며, 우주를 관광하는 셔틀로켓이 개발되지는 않았다.
1980년대의 SF소설이 2000년대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SF소설일 수 있는 이유이다.
이 작품이 여전히 꿈같은 작품일 수 있는 이유이다.
 
새삼, 그때의 꿈과 희망들이 가슴 한켠에서 울컥 솟아오른다.
 
이 거대한 지구 속에서도 '나' 라는 인간은 티끌인데. 무한한 우주 속에서는 무엇일까.
 
이 무한한 공간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생겨났을까.
그리고, 그 속에 나라는 생명은 어떻게 생겨났으며, 왜 생겨났을까.
 
그래, 그건 아마도 '너' 를 위해서 일 것이다.
 
이런 무한한 공간이 '나' 를 위해서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
 
그래.
그건 아마도.
 
'너' 를 위해서인 게 확실하다.
 
 
 
"수많은 인간들의 드라마도 , 아득한 곳에서 반짝이는 덧없는 빛줄기일 뿐..." 3권 p. 253
 
 
 
 
 
 
잠깐 작품을 감상해 보시길.
 
 


 


 

 
 
1권의 표지와 도입부. 사실체의 그림이 돋보인다.
직사각형의 구멍이 뚫린 두터운 커버 디자인이 재미있다.
최근 일본만화들도 컬러링에는 디지털을 많이 이용하는데, 당시의 수작업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컬러 페이지들도 정겹다.
 
 
 
 



2권의 앞표지와 오프닝.
디테일하고 리얼한 우주선 묘사가 돋보인다.
반물질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반물질은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에 구체화 시키기는 아직 어려운 부분이다.
 
 
 
 


 
 
장대한 서사가 마무리에 도달하는 3권의 표지와 오프닝.
3권의 첫 단편인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 라는 단편은 아주 서정적이면서도 경이로운 작품이다.
작가의 메시지는 바로 이 작품에 들어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기원한다.
언젠가 또 다시 새의 노래, 사람의 목소리, 생명의 속삭임이 머나먼 우주로부터 돌아오기를..." 3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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