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U 1 사루 SARU 1
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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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역사를 꼼꼼히 들여다 보면 때로는 한번도 마주칠 일이 없었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다른 문화권 사이에서도 놀랄만큼 흡사한 유사성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간단한 예로, 대홍수 같은 이야기. 대홍수에 대한 전설이나 설화, 민담은 전 세계 어떤 문화권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수백년동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기이한 노인의 대한 설화도 그렇고, 난생 설화나 창조 설화들도 꼼꼼히 들어가보면 놀랄만큼 유사한 부분들이 많다. 이러한 유사성은 문화-인류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뿐 아니라 수많은 작가들에게도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소재가 아닐 수 없다. 탁월한 이야깃꾼들은 이러한 역사적 사건들에 논리적이고 설득력있는 상상력을 보태 개연성을 부여하며 제법 '그럴듯한' 이야기들을 뽑아내곤 한다.  대표적으로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같은 작품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과거 사건의 현대적인 재해석인 것이다. 이런 작품들에 활용되는 과거의 사건들은 뛰어난 소재의 역할을 해주지만, 논리적인 고리가 부족하면 바로 '허접한' 짜맞추기가 되어버린다. 특히 과거 사건과 현재 사건을 연결시키려면 그 인과관계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져야 가능하다. 인과관계 등 논리적인 개연성이 석탑처럼 아름답게 어우러지며, 차곡차곡 쌓여질때 비로소 그 이야기는 생명력을 얻는다. 즉, 완벽한 뻥이 되는 것이다. 다빈치 코드는 정말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완벽했기에 몇몇 기독교 단체에서는 이의를 제기하거나 판매금지 소송을 벌일 정도로 환상적인 석탑을 쌓아올렸다.  

SARU는 그런 '그럴듯한' '잘 만들어낸' 이야기의 대표들을 꼽으라면 TOP5에 들어갈 만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1926년 명나라 자금성에서 일어는 의문의 폭파사고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어 1908년, 우리도 잘 알고 있는 퉁구스카의 운석 충돌로 인한 거대한 폭발, 1982년 아르헨티나 앞바다, 포클랜드 제도에서 교전중이던 아르헨티나와 영국군 일부가 실종된 사건이 일종의 프롤로그의 역할을 맡고 있다. 

  본격적인 사건은 현대에서부터 시작된다.  

남미에서 죽은자들이 살아나고, 괴이한 힘을 가진 일행들이 등장하며, 파리에서는 한 소녀를 태운 차가 의문의 사고를 당하게 된다. 같은 시간대에 러시아에서는 빙하 아래 묻혀있던 거대한 원숭이의 시신을 발굴해내고, 파리에서 일어난 자동차 사고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소녀는 귀신들린 듯, 이상한 말과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소녀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찾아온 엑소시스트인 칸디드에게 자신의 정체를 고백하는 소녀. 그녀는 자신이 신과 같은 능력을 지닌 존재로서, 가지고 있는 수많은 이름들을 알려준다. 그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은, 제천대성 손오공.  그리고 또 같은 시간, 다른 곳. 프랑스 앙굴렘에서는 부탄에서 온 승려 나왕 남걀과 일본에서 유학온 나나가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손오공을 품고 있는 소녀 한명을 중심으로 엑소시스트 칸디드와 부탄의 승려 남걀, 그리고 평범한 일본인 여성나나가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그 사건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우리도 너무나 잘 알고있는 '1900, 90의 9년, 7의 달에 온다는 공포의 대왕' 과 관련된 사건으로 세계의 멸망과 관련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 거대한 설정의 키가 되는 것은 바로 '원숭이 형태의 신' 이다.  

작품 속에서는 인도의 신 '하누만' 과 중국어권 전역에 퍼져있는 역시 신과 같은 존재 '제천대성 손오공' . 그리고 초기 이집트 신화에서는 달의 신 '토트' 역시 원숭이의 하나인 비비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인도와 중국, 그리고 이집트는 모두 고대 인류 문명의 초기 발상지이다. 그리고 신화의 탄생 또한 문명의 발상시기와 함께 하므로, 전혀 교류가 있을 수 없었던 세 문화권에서 '신격화된 원숭이' 가 동일하게 등장한 것이다. 작가는 바로 이 점에서 이야기의 가장 중심이 되는 존재 'SARU'를 위치시키고 인류 역사에 크게 기록될만한 불가사의한 사건들을 끼워 맞춰나간 것이다. 그러면서 그 밖의 문화권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특징들까지 버무리고 가장 잘 알려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키워드로 넣으면서 독자들을 자신이 만들어낸 새로운 역사 속으로 유혹한다.  

 사실 글로 풀어보면 완전 생뚱맞은 설정과 내용이다. 설정과 이야기구조를 꼼꼼하게 살펴 들어가보면, 사건간의 개연성이나 연계성을 논리적으로 짜 맞추었다기보다 '신외신' 과 '손오공' 즉 'SARU' 라는 존재를 위해 억지로 끼워놓았다는 느낌이 강하다. 그리고 그러한 많은 설정과 세계관을 풀어내는데 거의 대부분을 등장인물간의 대화를 통한다. 즉. 작품 전체에 에피소드가 별로 없다. 등장인물들은 여기 가서 이런 대화를 나누고, 저기 가서 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이야기 전체가 마무리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이 재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이 문단의 앞부분에 언급했듯 '글로 풀어서' '꼼꼼하게 살펴 들어가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이런 맹점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흡입력으로 이야기에 흠뻑 녹아들게 만든다.  한마디로, 어정쩡한 뻥으로 상대방을 완벽하게 속여 넘긴다는 것이다. 여기서 당연히 뻥치는 사람은 작가고, 속아넘어가는 사람은 독자이다.  거의 책을 드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 설정을 한 호흡으로 쫙 풀어내는 작가의 재능이 놀라울 따름이다. 허무맹랑한 설정으로 시작해서, 중간중간 등장하는 마법들이나 드러나는 숨겨진 설정들 또한 말도 안되기 짝이 없지만, 적어도 작품의 세계관 안에서는 완벽하게 '말이 된다.' 그리고 주로 등장하는 굵직한 캐릭터들 또한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적당히 노출되며 이야기를 균형있고 세련되게 이끌어 간다.   

오히려 이야기를 비교적 단순하게 풀어나간 덕택에 복잡하기 짝이없는 설정들이 보다 쉽게 독자들에게 와닿기도 한다. 큰 기교 없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풀려가는 이야기의 실마리들은  이가라시 다이스케가 가지고 있는 자유로운 터치와 그로테스크한 디자인의 크리쳐들과 어우러져 엄청난 시너지를 불러 일으킨다.
 

 '팩션Faction' 이라고 부를만한 작품 [SARU]는 대단히 수준높은 작품이다. 하지만, 이러한 장르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니악하고, '만화' 라는 매체에 거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국내에서는 결코 만나보기 쉬운 작품이 아니다. 분명 많은 독자들에게 '만화' 에 대한 개념과 만화를 보는 '눈' 을 몇단계는 업그레이드 시켜 줄만한 작품임은 틀림없다.    
전지구적인 완벽한 뻥. 뇌를 릴렉스시키고 그의 완벽한 뻥에 빠져들어보자. 정말, 새로운 세상이 열릴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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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서유요원전 대당편 3 만화 서유요원전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 애니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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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삼국지연의], [금병매], 그리고 [서유기] 를 통틀어 중국 4대 기서라고 한다.

중국의 수많은 고전들 중 우리에게도 아주 친숙한 이 작품들은 수많은 영화로, 만화로, 드라마로 만들어졌고, [금병매]의 경우는 성적인 묘사들도 꽤나 노골적이기 때문에, 비디오 대여점에서 볼 수 있는 빨간 표지 에로 영화의 소재와 제목으로도 많이 쓰이기도 했다.  

 [서유기]는 특히 너무나 유명한 만화들의 모티브로 작용하여 우리에게 참으로 익숙하다. 손오공과 삼장법사의 천축으로의 여정은 여섯살배기 꼬맹이를 붙들고 물어봐도 알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대 최고의 만화라고도 할 수 있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 볼] 도 서유기의 주인공인 '손오공' 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고, 허영만 작가의 [날아라 슈퍼보드] 역시 손오공이 주인공이다. 카즈야 미네쿠라의 [최유기] 역시 서유기의 새로운 해석이고, 현장삼장 대신 '오로라 공주' 가 나오는 '별나라 손오공' 이라는 일본 TV 애니메이션도 있었으니, 천축으로의 여정은 지구를 넘어 우주로까지 리메이크 된 셈이다.

 중국의 고전 중의 고전이던 서유기는 동양 만화의 뿌리로서, 그리고 상상력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토리야마 아키라의 [드래곤 볼] 은 시기가 모호하지만,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손오공이 지구로 날려온 외계 종족 '사이어인' 이라는 이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사이어인이 보름달을 보면 거대한 원숭이 괴물로 변신한다는 점이 흥미롭고, 지구를 노리는 외계인의 끊임없는 습격을 받고, 그들과의 전투를 통해 손오공은 점점 더 강해진다. 초반에는 확실히 서유기의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손오공이 성장한 뒤부터는 손오공의 이름 외에는 서유기의 색깔을 찾을 수 없어진다.  허영만 작가의 [날아라 슈퍼보드] 또한 시기가 모호하지만, 서유기의  그것을 비교적 철저하게 따라가고 있다. 근두운 대신 하늘을 날아다니는 스케이드 보드를 타는게 특이하고, 바주카포를 쓰는 덩치 큰 돼지 저팔계와 입에서 나방을 뿜으며, 소리를 잘 못 듣는 사오정 또한 큰 인기를 얻었다.
 카즈야 미네쿠라의 [최유기] 는 보다 서유기에 충실하다. 원 제목은〈가장 즐기는 서유기(最も遊ぶ西遊記)〉로써 (※출처: 위키디피아) 술, 담배, 마작을 즐기는 방탕한 현장삼장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동인지 출신의 작가답게 야오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미소년 캐릭터들이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홍해아 또한 대단한 미남자이다.
 언급하지 못할 만큼 더 많은 만화들이 [서유기] 에서 모티프를 얻어내고 있고, 국내에도 [날아라 슈퍼보드] 외에 크게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이 더 있다.
 

 이처럼, [서유기] 는 동양 문화 전반에 있어 상상력의 원천이자, 모험물의 뿌리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오늘 언급할 [서유요원전] 의 작가 '모로호시 다이치로' 는 1970년에 데뷔한 노장 중의 노장이다. 게다가 30여년간 끊임없이 활동을 해오고 있는 작가인 동시에, 일본 만화계에 굵직한 획을 긋는 작품들을 만들어낸 거장이기도 하다.  

위에 언급한 작품들이 [서유기] 가 가지고 있는 시대배경을 완전히 배제한 것과 달리 , 모로호시 다이치로는 원전이 가지고 있는 시대배경을 충실히 하는데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야기꾼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서유요원전은 수나라 말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먼저 이야기꾼이 언급하는 [대당삼장취경시화] 는 당나라 시대 현장 삼장이 황제의 명을 받들어 북인도에 가서 불전을 얻어온 사실에 입각한 일종의 설화집이다. 현장 삼장의 북인도 방문기는 전설처럼 떠돌고 있었고, 여기에 문무를 겸비한 종자와 설화적 상상력을 집대성해서 꾸며낸 책이 바로 '대당삼장취경시화' 인 것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당시에  현장 삼장의 북인도 여행기를 토대로 한 [대당서역기], [대자은사 삼장법사전] 등을 비롯한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특히 [대당삼장취경시화] 에 간략하지만 비교적 구체적으로 현장 삼장을 도와 신통력을 발휘하던 원숭이 수행자의 이야기가 실려있고, 이 즈음에 이미 서유기의 기본적인 얼개는 완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명나라 시대 오승은은 이 이야기들을 취합하고 집대성해서 서유기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출처: 위키디피아 + 네이버 백과사전) 
 

즉, 모로호시 다이지로는 오승은이 완성한 [서유기] 를 재해석 했다기 보다, [서유기] 의 원전이  된 현장 삼장의 인도 방문기 자체에서부터 재해석에 들어간 것이다. 완벽하게 새로운 서유기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다시 서유요원전의 줄거리로 들어가서,

수나라 양제는 고구려 정벌에 대한 야욕으로 우리에게도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북방 민족을 정벌하고, 만리장성을 수축하였으며, 대운하까지 건설하는 등 백성들은 몸 누일 틈조차 없을 정도로 혹사시켰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양제는 결국 3차례의 고구려 원정을 모두 실패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바로 그 시기부터, 손오공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남 지방의 작은 마을 '복지촌'. 산속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동네로, 화과산이 굽어보이는 깊은 산골마을이었다.

이런 작은 마을도 피해가지 않는 군역으로 징집되어가는 남편 손해를 배웅하고 돌아오던 길에, 손해의 부인은 원숭이들에게 납치되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손해의 부인을 구하러 산속으로 들어가지만, '주염' 이라는 거대한 원숭이 요괴를 만나서 결국 마을사람들은 손해의 부인을 구출하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뒤, 원숭이에게 납치되었던 손해의 부인은 마을 사람들 앞에 갓난 아기를 놓고 사라지는데, 그 아이가 바로 손오공이다.

 손해의 부인이 원숭이에게 납치될 때 함께 있었던 부인의 손 아래에서 손오공이 소년으로 성장하는 동안 수나라는 멸망하고, 각지에서 수많은 나라들이 생겨나고 멸망하고를 반복하게 된다. 그 중, '당' 이라는 나라가 가장 큰 위세를 떨치며 주변을 평정해 나가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으나, 아직 각지엔 수많은 왕들이 황제를 자처하며 전국 재패의 꿈을 꾸고 있었다. 백성들은 수나라 시대에 이어 여전히 침탈과 굶주림 속에서 연명해 나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소년 손오공이 식량을 구하러 화과산 깊숙히 들어가 이런 저런 변을 당하고 있던 사이에, 당나라 군대가 손오공이 살던 마을 복지촌을 습격해 초토화를 시킨다. 가까스로 화과산을 빠져나와 복지촌에 도착한 오공. 자신을 길러준 동네 주민들은 물론, 이웃의 모든 사람들까지 처참하게 죽어있는 광경을 보며 망연자실한다. 그 순간, 화과산에서부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소리를 듣게 되고, 손오공은 마치 뭐에 홀린 듯 발걸음을 다시 그 쪽으로 향하게 된다. 화과산의 가장 깊은 곳, 수렴동이라는 곳엔 물을 다스리는 거대한 외눈박이 원숭이 요괴 '무지기' 가 민심을 미혹시키고 세상을 어지럽힌 죄로 쇠사슬에 꽁꽁 묶여있었다. 손오공은 자신도 모르는 새 그 곳까지 가서 무지기와 마주하게 되고, '제천대성' 이라고 칭하는 무지기는 손오공에게 "넌 나의 핏줄이다" 고 말한다. 자신이 요괴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손오공. 

 하지만, 손오공은 무지기의 계략과 술수로 인해 '제천대성' 의 칭호를 잇는 머리테를 쓰게 된다.
제천대성의 칭호를 잇는다는 것은 무지기를 위해 세상에 전란을 불러 일으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 무지기는 힘을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원념이 필요했고, 세상에 전란이 멈추지 않아야만 그것이 가능한 터였다. 무지기는 예로부터 인간들을 미혹하고 자신의 힘을 빌려주어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키거나, 나라를 세워 할거하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머리테를 쓰자 손오공 또한 끊임없이 무지기의 목소리와 세상에 떠도는 수많은 원혼들의 원망소리를 듣게 된다. 그것은 손오공에게 정신적인 고난을 주고, 실제로 머리테로 인한 신체적인 고통까지 함께 주어 크게 괴롭힌다.
 그러던 중, 우연히 '현장' 이라는 승려가 불경을 외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 순간 손오공을 괴롭히던 머리테의 죄는 듯한 고통은 물론, 원혼들과 무지기의 원념까지 일시에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현장과 손오공의 인연은 그리 쉽게 닿질 않고, 반당군인 유흑달의 휘하 '홍해아' 를 만나게 되며, '제천현녀 용아녀' 와 산적 두목인 '금각. 은각' 형제 등을 만나 대당 반란의 중심으로 휩쓸리게 된다.  
 



 

 이야기는 실제 역사에 충실하게 전개되어 나간다. 손오공이 원숭이라는 설정 자체를 좀 더 리얼하게 접근하는데, 마치 신화를 해석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우리가 단군신화를 해석할때, 곰과 호랑이를 곰을 섬기던 족속, 호랑이를 섬기던 족속 등으로 해석하는 것과 비슷하게 손오공이라는 '원숭이' 를 재해석 한다. 이 작품 안에서는 거대한 원숭이를 '제천대성' 이라고 섬기던 일종의 민중 신앙을 기반한다. 당연히 서유기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 역시 등장한다. 금각과 은각, 홍해아 등도 리얼하게 재해석되어 등장하며, 손오공의 머리테나 여의봉의 재해석 또한 흥미롭다.

 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를 살아가던 평범한 민중들에 대한 묘사도 대단히 디테일하고 리얼하다. 도적에게 침탈당하고, 지역의 군인들에게도 수탈을 당한다.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살육을 당하기도 하고, 생존 자체가 고난이었을 당시에 민중들. [서유요원전] 의 이야기의 핵심은 손오공과 현장이기도 하지만, 당시의 시대를 힘겹게 살아나간 평범한 민중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완벽하게 리얼한 역사적 접근이라는 것은 아니다. 손오공과 각종 인물들이 '사람' 이었다는 가정 하에,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시켰을 뿐, 만화적 상상력이 배재되어 있지는 않다. 위 장면에서도 보여지는 '주염' 이나 이야기의 시작점이 되기도 하는  '무지기 ' 등의 요물이나 요괴들도 등장하고, 신기한 주술이나 요술들도 등장한다. 이것들은 손오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좋은 양념이 된다. 실제 역사와, 서유기의 등장인물들의 현실적인 재해석, 그리고 만화적 상상력까지 절묘하게 뒤섞여 있는 것이다. 
 

 [서유기] 가 수많은 중국의 고전들 중에서도 '기서' 들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유는 단순히 모험과 드라마 뿐이 아니다. 서유기는 '천축으로 향하는 여정' 그 자체가 자아를 찾기 위한 여정인 동시에, 종교적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특히 현장삼장과 손오공일행이 겪는 사건들은 81난은 유,불, 선이 결합된 일종의 종교적 '레벨업' 의 과정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가지 사건을 통해, 한가지를 얻어내고, 두번째 사건을 통해 부족함을 절감하며, 또 무언가를 얻어내며 사건을 극복해낸다. 끊임없는 유혹과 끊임없는 사건들속에서 서로에게 기대고 고뇌하고, 고민하면서 하나하나 깨달음을 얻어낸다.  


 [서유요원전] 의 뛰어난점은 바로 이런 원전 [서유기]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냈다는 부분에 있다.
이 작품은 끊임없이 등장하는 화려한 액션과 치열한 전투 장면들이 관심을 사로잡지만, 무엇보다 심각할 정도로 끝없이 고민하는 두 인물, 손오공과 현장이 핵심이다. 손오공은 자기 안에 또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제천대성이라 칭하던 괴물 '무지기' 가 불어넣은 자아. 그리고 원래 자기가 가지고 있던 손해의 아들 손오공이라는 자아. 손오공은 끊임없이 이 두 자아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현장은 승려로써 자신이 공부하고 있는 불교라는 종교의 깨달음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하고 고뇌하고 있다. 아무리 공부하고 고찰을 해도 깨달아지지 않는 불교의 오의.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어느정도 경지에 오르면 자신이 깨달은 종교적인 세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럽고 추한 현실적인 세상 사이에서 극심한 갈등을 일으킨다. 그 단계를 넘어서기 위해 천축행을 결심하는 현장.
 

 지금까지 애니북스를 통해 3권까지 정식 번역되어 출간되었는데, 갈수록 이야기는 흥미진진해진다. 게다가 400페이지를 넘나드는 엄청난 볼륨도 대단히 맘에든다.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엄청난 이야기와 두께!!

 



 
1970년에 데뷔한 노작가 답게, 그림은 엄청 세밀하거나, 세련되지는 않다. 말 그대로, 옛스러운 그림과 투박한 펜선. 
 

 하지만,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출력 만큼은 정말 대단하다. 이 당시의 망가는 보다 '망가식 스토리텔링' 에 입각한 작품들이 많았다. 지금도 일본 망가들은 '시선의 흐름' 과 그것을 통한 전달력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만화나 일본망가가 동일하게 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미국에서는 '그래픽 스토리텔링' 또는 '비주얼 내러티브' 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컷과 컷의 흐름을 통해 독자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특히 잡지만화에서는 이것에 대해 거의 공식화 되어있는 일종의 연출의 기법과 같은 것이 있다. 미국 만화에서 역시 독자들에게 통할 수 있는, 통하게 되는 공식과도 같은 흐름이 존재한다. 네모난 컷 박스는 어떻게 변화를 주고, 이 컷 안에는 어떤 효과를 주는 그림을 넣고, 이 페이지 안에서 가장 시선을 사로잡아야 하는 컷은 어떤 컷의 어떤 그림이고 등, 효과적인 스토리 텔링을 위한 나름의 노하우들이 축적되어 있고, 이것들의 토대는 바로 테츠카 오사무나 오토모 가츠히로, 모로호시 다이지로 같은 1960~70년대의 작품들이다.

 그 때문인지 이 작품은 확실히 요즘과는 다른 전통적인 연출법이 눈에 띈다. 최근의 만화들처럼 영화적인 연출법이 사용되어서 역동적이거나 세련된 맛은 없지만, 독자에게 보다 정확하고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 하다.
노 거장의 손끝에서 재탄생한 손오공과 현장삼장의 모험.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더욱 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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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게모노 1
야마다 요시히로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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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탐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까?

누구나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가늠하는 기준이 있는데, 때로 그것은 학습 없이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준에 맞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결국엔 간절히 소유하고 싶어한다. 때론 그것을 소유하는데 모든 인생을 걸기도 한다. 아름다움의 소유. 그것은 결국엔 늙고 추해져가는 육체를 지닌 것에 대한 반동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빼어난 외형만을 지닌다고, 그것으로 아름다움의 조건이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운 외형에 걸맞는 깊이있는 '히스토리'. 그리고 희소가치. 그것들이 모여서 궁극의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그리고, 여기 이 남자.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내 나이 서른 넷,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난세에 태어나 오다 노부나가라는 희대의 리더를 군주로 삼고있는 자. 사무라이!!  

그 이름 '후루타 사스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지만, 이런 와중에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

그것도 노부나가의 가신들이 모인 큰 회의. 일종의 어전회의에서 말이다.

그가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오다 노부나가의 작전계획이 아니라, 그가 걸치고 있는 옷이다.

그리고 오다 노부나가가 천왕에게 하사받은 '명품' . 갖고싶어하고 있다!!!

그러면서, 회의에 참석한 다른 무사들이 입고있는 갑옷을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 이 엄숙하고 중차대한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심미안을 통해 자신의 주군과 그 부하들의 패션을 체크하고 있는 것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활약하던 일본의 전국시대. 이 후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거쳐 막부시대, 메이지 유신등 일본 근대시대로 접어들게 되는 격변기의 첫 장이기도 하기에, 이야깃거리가 정말 풍성한 시기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의 전란기에서 가장 큰 활약을 한 다이묘로써 일본 통일의 기치를 내걸은 희대의 무장이기도 하지만, 대단한 심미안을 바탕으로 수많은 명품들을 수집한 풍류를 아는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무장이라고 하면, 삶의 대부분을 검에 바치는 부류이다. 수많은 음모가 난무하고 하극상이 손바닥 뒤집기보다 쉽던 시대, 수많은 가신과 영지를 거느리고 있는 다이묘가 풍류에까지 정력을 쏟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일 터, 작은 벼슬인 '다이칸'에 지나지 않는 후루타 사스케로서는 그런 오다 노부나가의 그릇에 감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남자로서, 무인으로서 전란의 시기에 주군으로 섬기고 있는 오다 노부나가의 눈에 들만한 공을 세워 출세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의 눈은 언제나 아름다운 명품을 향하고 있다. 특히 작품 안에서는 주로 '다기茶器' 가 많이 다뤄지고 있는데, 일본의 '다도茶道' 문화와 관련되어 있다.

 동양에는 어느 국가든지 차에 대한 예법이 있다. 찻잎을 오랜시간 우려내는 과정을 일종의 마음 수련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중국은 물론이고, 신라 화랑들에게도 다도법이 있었으며, 일본의 다도는 종교와 만나 조금은 독특한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는 다도회를 금하고, 일부 충실한 가신들에게만 다도회를 여는 것을 허락함으로서 다도회는 일종의 포상과 같은 개념이 되었다. 필연적으로 다도회 자체가 횟수가 줄어서 그 자체에 대한 희소성이 생겨났고, 양민들은 제대로 먹고 살기도 힘든 전란의 시대에 소비조차 많지 않은 다기를 양산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 특히 고려나 조선에 비해 도예陶藝 의 수준 자체가 떨어졌던 일본에서 고려나 명나라 자기에 맞먹는 다기는 구경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다.

 

 주인공 후루타 사스케는 바로 그런 명품 자기에 집착하는, 일종의 명품 매니아였던 것이다.

 



 

군주의 명을 받들어 적장과 협상을 하러 간 자리에서도 명품에 눈이 뙇~!!!!

하지만 그렇다고 사스케가 명품으로 호사를 부리고 위세를 부리려는 된장남은 아니었다. 

사스케는 명품을 알아보는 '눈' 즉 심미안도 타고난 자였다!! 진정 명품을 '즐길 줄 아는' 자였다. 이것을 '풍류' 라고 한다.

사스케는 뛰어난 안목을 가진 진정한 풍류객이었던 것이다.

 

 돼지목에 진주라고, 제아무리 아름다운 보물이라도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자의 손에 들어가야 보물인 것이다.

나같은 사람에게 샤넬 백을 쥐어줘 봤자, 돌체 엔 가바나 셔츠따위를 줘봤자, 난 모른다~! ㅋㅋㅋㅋ

난 아마도 그 백을 들고있을 여성이나(므흣~), 셔츠 밑에 있을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근육에서 더 아름다움을 느낄터다. 당연히 단단한 근육이 없으면 쳐다도 안 볼 테고. 난 샤넬 백이 왜 그렇게 비싼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 백이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의 이름,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희소성과 가치, 그 백을 만드는데 들어간 각종 재료의 가치, 그리고 그 백이 상징하는 사회적인 위상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로고만 안다고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바느질 자리가 어떻고, 손잡이 고리가 어떤 식으로 매듭져있고, 그런것 따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명품을 보는 눈' 이 있는, 풍류를 아는 사스케의 이야기와 함께, '시대의 큰 흐름을 보는 눈' 이 있는 희대의 무장 오다 노부나가와 훗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되는 하시바 히데요시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즉, 명품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사스케의 욕구와 나라와 권력을 소유하고 싶어하는  하시바 히데요시를 대칭점에 두고 '전국시대' 라는 굵은 이야기의 흐름을 좇아간다.

 

 이야기는 사스케의 시점에서 전개되어진다. 주변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스케의 눈과 입을 통해 나오지만, 1권의 마지막부분, 하시바 히데요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이 둘로 나뉠 것임을 보여준다.

"사루(원숭이)"라는 조롱을 받으면서도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그 밑에서 온 몸을 납작 업드려 자신의 때를 기다렸던 인물, 하시바 히데요시는 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되는데, 히데요시는 특히 야심과 탐욕이 남달랐던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에겐 임진왜란을 일으켜서 우리 민족에게 큰 고통을 준 인물로 유명하다. 이런 히데요시와 사스케를 대칭점에 놓음으로서 달라보이면서도 닮아있는 두 소유욕에 대해 풀어낼 듯 하다. 그리고 1권 중반에 나오는 아케치 미츠히데 또한 이야기의 큰 흐름이 될 듯 하다. 특히 사스케와 아케치 미츠히데가 함께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 복선을 드러내는데, 일본에서 아케치 미츠히데는 오다 노부나가를 배신한 하극상의 아이콘과도 같은 인물이다. 하시바 히데요시와 아케치 미츠히데의 묘한 기류, 그리고 그에 비해 너무나 소박한 욕심을 갖고 있는 후루타 사스케.

 

  이 작품은 단순히 아름다움에 대한 소유욕을 가지고 있는 전국시대 한 무장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의 전국시대는 현대로 따지면 거대 기업안의 파벌싸움과 비슷하다. 일본의 수많은 경영법과 관리법, 게다가 처세술까지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 그리고 그 뒤에 등장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저서나 인물 평전들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현대 일본 사회의 뿌리라고도 할 수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른 시각에서 풀어내고 있는 뛰어난 역사 만화인 것이다.

 그 시대의 남자라면, 그리고 무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었을 출세욕. 하지만, 주인공인 후루타 사스케는 그 흐름과 다른 소박한 수집욕을 갖고 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출세하지 못하면 자신의 소집욕을 충족시킬 수 없다.

 

결국 다시 첫 페이지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나 후루타 사스케.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무공武功에 집중할 것인가, 풍류객으로 머물다 갈 것인가??

전란의 시대, 이름을 떨치고는 싶고, 아름다운 물건들을 더 보고, 더 보고 싶다!!

작중 등장인물 중 하나인 '아라키 무라시게' 가 이렇게 말했다.

"설령 가족을 희생시킨다 해도 더 보고 싶다, 더 가지고 싶다는 욕심에 살고자 하고 강해지지."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사스케는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초반에 만나게 되는 '마츠나가 히사히데' 는 이런 말을 한다.

"언젠가 너도 선택할 날이 올 테니.

압도적인 힘을 가진 자가 나타났을때 내 길을 선택할 것인지, 포기하는 길을 선택할 것인지를 말이다."

아마도 후루타에게 이 압도적인 힘을 지닌 자는 아케치 미츠히데와 하시바 히데요시가 될 확률이 많다.

하지만 후루타는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말이 이렇게 들렸을 터다. 

'충의'냐 '힘'이냐.... 가 아닌,

'출세'냐, '풍류'냐!!!!! 를 말이다.  

 

 결국 후루타 사스케는 풍류를 즐기는 필부로써 앞으로 오다 노부나가를 둘러싸고 벌어질 거대한 흐름, 즉, 하시바 히데요시와 아케치 미츠히데가 일으키는 풍랑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이런 급박하고 어두운 정세를 심미안과 물욕을 가지고 있는 후루타 사스케의 가벼움으로 유쾌하게 풀어내는, '의도적인 감량' 이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무기일 터다. 정말 세련된 스토리 텔링이 아닐 수 없다.

 고증에 철저한 의복이나 스타일의 재현도 놀랍다. 실제로 오다 노부나가는 아방가르드 한 면이 있는 대단한 패셔니스타였다고 전해진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에서 들여온 갑옷을 입고 투구와 가면을 쓰고 최전방에 나섰던 아방가르드 그 자체, 전위예술가였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 착안한 작가의 발상과 그것을 유연하게 풀어내는 역량이 놀랍고 부러울 따름이다.

 

이런 철저한 고증의 재현과 맞물려, 주인공 후루타 사스케의 우스꽝스러운 표정 연출, 명품을 봤을때 '꿍덩' 하는 느낌을 받는다거나, '하냐앙~'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언어유희가 절묘하게 뒤섞여 대단히 수준높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대단히 리얼하지만, 만화스러움을 결코 잃지 않는 엄청난 센스.

일본 역사만화라는 장르에 있어서 하나의 교과서가 될 듯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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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길의 아폴론 1
코다마 유키 글.그림, 이정원 옮김 / 애니북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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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도 소싯적엔 순정만화 꽤 봤다. '만화' 라는 매체를 처음 접했던 건, '국민학교' 시절 까치가 형을 위해 권투를 하는,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이현세 작가의 처절한 복싱만화였지만, 생일 선물로 받은 돈으로 난생 처음 손에 쥐었던 책은 이케다 리요코의 걸작 '베르사이유의 장미' 였다. 그 뒤로, '불새의 늪' , '굿바이 미스터 블랙', '레드문' 등 대하 서사물에 강했던 황미나 작가의 작품을 탐독했고,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 , '리니지' , '파라오의 연인' 등을 접했다. 물론 순정만화의 대명사인 '캔디, 캔디' 나 '유리 가면' 도 빼놓을 수 없다. 당연히 나의 취미는 4살 터울의 여동생이 물려받았고, 우리는 서로 만화책을 권하며 자랐고, 덕택에 나 역시 꾸준히 오랫동안 여중생들이 즐겨보는 순정만화를 함께 즐기게 되었더랬다.(내 동생이 여고생일때 난 대학과 군대에 있었더랬다.) 그 시절부터 어렴풋이 '순정만화 그려보고 싶다!' 는 생각을 갖고 있긴 했지만, 순정만화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섬세한 심리묘사를 내가 능란하게 해 낼 자신은 별로 없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만화의 천국인 일본에서는 '순정만화' 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순정만화 라는 용어는 한국에만 있다. 일본은 만화의 천국답게 구분이 훨씬 세분화 되어있다. 우리가 말하는 순정만화의 원류는 일본의 '소녀만화' 이다. 내가 접했던 많은 순정만화들 중, 소녀만화에 가까웠던 작품은 이미라 작가나 천계영 작가의 작품들이었을 터다. 내가 접했던 황미나 작가나 신일숙 작가의 작품들은 대하 서사물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에 엄밀히 따지면 소녀만화와는 거리가 먼 감성의 작품들이었던 것이다. 굳이 '순정만화' 라는 타이틀을 대체하자면 '대하만화' 가 맞을 것이다. 그런 작품들을 보며 '순정만화를 그려보고 싶다!' 라는 어렴풋한 꿈을 꾸었으니, 애초에 난 방향을 잘못 잡았을 터다. 

 초기의 '소녀만화' 는 '캔디캔디' 처럼 여자 주인공이 환상적인 남자 주인공들과 로맨틱한 경험들을 나누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주인공은 언제나 독자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였고, 독자들을 쉽게 이입시켰다. 언제나 배경은 중세인지 근대인지 애매모호한 서양풍에 주인공의 이름은 외국이름이었다. 당연히 소녀가 만나는 남성들은 모든 여성들의 영원한 로망인 멋진 귀족이나, 왕자등이 주를 이뤘다. (이런 취향은 한국 순정만화에서도 거의 동일하게 흘러갔다.) 그러다가 점점 배경이 현대가 되면서, 여자 주인공이 상대하는 남성들은 멋진 재벌이나 재벌 2세, 연예인 등으로 변하였고, 역시 꾸준하게 '여성들의 로망' 의 왕좌를 쥐고 있는 외국의 귀족들이나 왕족들 또한 간헐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약간 다른 흐름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소녀 만화의 주인공은  언제나 '소녀' 여야 했다. 소녀만화가 아닌, 여성을 타깃으로 한 만화라면 응당 그래야 했다. 성인 여성 타겟의 작품들도 대부분 '여성' 들이 주인공이어야 했고, 그들은 독자들의 아바타가 되어 그녀들이 꿈꾸는 환상적인 로맨스를 나눠야 했는데, '남성' 이 주인공인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야기의 주 화자가 '남성' 이 되어버린 '소녀만화' . 독자들은 작품의 주인공이 되어 로맨스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속에 등장하는 남성들의 이야기를 감상하는 위치로 옮겨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독자들의 감정이입을 완전히 배재할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소녀만화' 의 주인공 '남성' 들은 굉장히 소녀틱한 감성을 갖게 된다. 그러한 캐릭터를 부각시키고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이런 작품의 배경은 대부분 고등학교가 된다. 주인공 '남성' 은 아직 '소년'. 정체성과 자아가 확립되기 이전이므로 여성스러운 소년들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설득력을 얻게 된다. 이런 류의 작품들은 주인공 소년보다 그 주위의 인물들이 더욱 매력적인 경우가 많다. 주인공 소년은 말 그대로 이야기의 '화자話者'가 되고, 진짜 이야기의 '주인공' 은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나 선배, 후배가 된다. 작가가 여자인 경우,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는 성별을 불문하고 당연히 작가의 성별인 '여성'의 시각으로 친구를 바라보게 된다. 이 때문에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작품 전반에 '야오이' 풍, 혹은 'BL' 의 색채가 짙게 묻어나는 경우가 많다.  

 코다마 유키의 두번째 장편 연재작인 [언덕길의 아폴론] 은 니시미 카오루와 '카와부치 센타로' 라는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학원물로서, 1960년대 일본의 지방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외딴 시골 학교에 전학온 '차도남' 의 적응기라는 전형적인 오프닝으로 시작되지만, '재즈' 라는 음악과 '1960년대' 라는  시기를 만나 복고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게 해준다. 물론 코다마 유키의 조금은 투박한 터치도 굉장히 잘 어우러진다. 위 단락에 언급한 부분 때문에 이 작품은 이야기의 화자인 카오루와 이야기 자체의 주인공인 센타로 사이에 미묘한 야오이의 아우라가 깔린다. 게다가 화자인 카오루는 여성스러운 외모와 예민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여성스러운 남자아이이고, 여성적인 악기인 피아노를 연주하기까지 하는 등, 여러가지 부분들이 센타로와 대비되며 동성 친구라기 보다는 이성친구에 가까운 포지션에 자리잡는다. 이러한 동성애 코드를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알 방법이 없는 건 사실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런 미묘한 시각을 처음부터 꾸준하게 유지하지만, 그렇다고 이야기 전반에 노골적으로 동성애 코드를 깔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이러한 미묘한 코드가 지나치리만치 평범하고 담담한 에피소드와 전형적인 성격의 주인공들 사이에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으며 이야기 자체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카오루는 엄마 없이 외항 선원인 아빠 손에서 자란 결손 가정의 소년이다. 엄마가 남편과 아이를 버리고 간 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니겠지만, 외항 선원이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더 많은 아빠의 직업이 한 몫 했을터이고, 그 때문에 카오루는 거의 고아처럼 혼자 지냈을터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 그 자체. 세상을 상실하는 경험을 가져본 카오루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랐을리는 없다. 게다가 아빠의 직업 탓에 전학도 자주 다녀야 했을테고, 결국 삼촌 손에 맡겨지고 만다. 외로움이 몸에 벤 아이. 하지만, 음악을 통해 감수성 만큼은 날카롭게 벼려온 아이. 결국 카오루의 외로움과 감수성은 예민한 신경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을 터다.
 그리고, 성장기의 정점에서 만난 센타로와 센타로의 소꿉친구인 무카에 리츠코. 불량기가 있지만, 비뚫어지지 않은 센타로와, 그런 센타로에게 나침반이 되어주었을 것 같은 쾌활하고 발랄한 소녀 리츠코. 이들과의 만남은 분명 카오루의 인생에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 분명하다.    
 

 남자로서, 여 작가가 그려내는 남고생에 대한 로망이 살짝 거슬리기도 하지만, 잔잔하고 담백한 우정과 로맨스 등 충분히 공감할만한 요소가 가득한 수작임은 틀림없다.  카오루와 센타로가 앞으로 겪게 될 일들이 기대된다.
청춘은, 그래. 언제나 즐거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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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2권
굽시니스트 지음 / 애니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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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전쟁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 하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한정되어있는 자원과 그것을 차지하기 위한 인간들의 끝없는 싸움은 원시시대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기술과 문명이 발달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그것이기도 하다. 한정되어있는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타인의 것을 빼앗아야만 했다. 나는 다른 인간보다 앞선 기술력을 갖고 있어야만 했다. 다른 인간보다 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했고, 강한 집단을 이루고 있어야 했다.

 

 그렇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기도 하다.

결국 인류는 20세기 초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전쟁을 경험하게 된다. 독일과 영국이 주축이 된 '협상국' 과 '동맹국' 으로 갈라져 이탈리아를 제외한 유럼럽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전화에 휩싸였던 전쟁이다. 러시아의 붕괴와 미국의 참전으로 전쟁은 '협상국' 즉,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지만, 대규모 전쟁의 참상을 경험한 세계 각국은 '베르사이유 조약' 을 통해 평화의 시대를 희망하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은 제 1차 세계대전의 연장선으로 봐야하는 전쟁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을 통해 제국주의는 보다 팽배해졌으며, 베르사이유 조약을 통한 전 후 처리는 결국 영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제국주의 열강들의 세력 재편성에 불과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인류 최초의 국제기구인 '국제연맹' 의 설립 또한 미국, 독일, 소련 또한 가맹하지 않음으로서 제국주의 열강들의 또다른 대립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뒤인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작품이다. 사실 위에도 언급했듯, 제 2차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은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찾아야 하고,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은 19세기 말엽,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다툼에서부터 찾아야 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정확히 히틀러의 등장부터 시작하고 있다.

 

 굽시니스트는 디씨 인사이드에서 카갤(카툰연재물갤러리)에서 바로 이 작품을 통해 단숨에 '본좌' 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특히 흔히 '오덕문화' 라고 부르는 각종 일본 애니메이션들의 절묘한 패러디가 큰 주목을 받았다. 나 역시 고교시절부터 만화가를 꿈꾸며 각종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섭렵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미연시' 라고 부르는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도 충분히 접해봤다. 때문에 굽시니스트의 만화에 여러부분 크게 공감할 수 있었고, 그 절묘한 패러디에 무릎을 탁탁 치며 '본좌!!' 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수 없이 키득키득 거리긴 했지만, 사실 일본의 애니메이션에도 별 관심이 없고, 역사에도 관심이 없다면 이 책에서 아무런 감흥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역사 '- 특히 '전쟁사' 라는 매니악한 장르와 소위 '서브 컬쳐' 라고 부르는 매니악 오브 매니악, 오타쿠 문화의 퓨전이 가지고 있는 강점이자 약점이다. 거기다 패러디라니. 애초에 패러디라는 행위 자체가 매니아들을 위한, 매니아들에 의한, 매니아들만의 소유물이 아니었던가.  패러디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성격이 완전히 다른 장르간의 교합을 시도한다는 것은 패러디 할 대상과, 패러디 되는 대상 모두를 깊이 알고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제 2차세계대전의 복잡했던 국제 정세, 수많은 국지전과 전면전들, 개발된 무기들과 각국의 지도자들, 수많은 사태들과 그것들을 야기시킨 원인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굽시니스트 본인의 간략한 평가까지 모두 상당한 수준이라 깜짝 놀랄 정도이다. 결국 굽시니시트는 이런 절묘한 패러디를 통해 - 비록 커다란 흐름만 파악하는 것이라고 해도 - 제 2차 세계대전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게 해주었다.

 게다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매 챕터마다 굽시니스트 본인의 해설이 있다는 것이다. 매 페이지 자신이 패러디 한 작품과 패러디 된 사건에 대한 설명이 붙어있어서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서브컬쳐 장르에 아주 통달하지 않은 독자들이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사실 워낙 방대한 사건이고, 패러디 한 서브 컬쳐물들 또한 에반게리온, 아기공룡 둘리에서부터 소녀시대까지 그 스펙트럼이 엄청나게 다양하므로, 소싯적에 일본애니 한두편, 미드 한두편 본 사람들이라면 한번쯤은 "오 나 이거 알어!" 라고 할 만하다.  책 전체로 봐서는 디씨 인사이드 카갤에 연재되지 못했던 챕터들도 실리면서, 제 2차 세계 대전사 전체의 흐름을 더 깔끔하게 연결시키며 완성도를 높였다.

 

 그렇다. 사실, 제 1차 세계대전이 왜 일어났고, 제 2차 세계대전은 또 왜 일어났는지 무에 중요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리고 그것을 알던 모르던, 삶에 변하는 것 하나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전체에게 있어 커다란 전환기였다. 즉, 우리의 사회와 현재의 삶 모두가 제 2차 세계대전과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는 일제 침략기와 남북분단의 원인이 모두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 모두와 그 맥을 함께 하고 있다. 역사를 공부한 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발전에 있어 커다란 인과관계를 확인함으로서, 인류역사의 전반적인 통찰을 키울 수 있다. 특히 세계전쟁사는 더욱 그렇다. 인간의 가장 말초적인 욕구의 흐름이 발현되는 장이기 때문에 조금 깊이 공부하면, 더욱 깊은 통찰을 얻어낼 수 있다.

 

 이 책은 위에 언급했듯 2차 세계대전의 모든것을 상세하게 보여주지는 못한다. 말 그대로 큰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줄 뿐이다. 역사를 공부해 본 사람은 그렇게 흐름을 짚어주는 일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알아챘을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나 역시 제 2차 세계대전과 제 1차 세계대전에 대한 학구열이 타올랐다. 제 2차 세계대전에 있어 최고의 입문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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