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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 바람!!
전해들은 바로는 영화와는 결말도, 해석도 다르다고 하니 영화 보실 분들은 관계 없을지도...
굉장히 짧고, 마치 영화의 씬들이 연결된 것 처럼 수많은 단락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게 정말 김영하 작가님의 장편인가? 싶었다.
어쩌다보니, 김영하 작가님 작품도 엄청 많이 읽었다.
장편은 [빛의 제국], [퀴즈쇼],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에 [살인자의 기억법] 까지.
단편집은 너댓권 읽었으니, 어지간히 다 읽었다는 의미다.
김영하 작가는 장편과 단편의 색채가 상당히 다른 작가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나 '오빠가 돌아왔다'(단편) 와 '빛의 제국'(장편) 이 같은 사람이 쓴 소설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더랬다.
단편은 물론, 단편답게 수많은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갖가지 심상들을 녹여내지만, 장편은 "정색하고" 글을 쓰는 느낌이랄까.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유머와 위트를 던지고, 가끔은 끝모를 낙관주의를 풀어놓는 경우도 있지만, 장편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새까맣고, 진득하고, 들러붙는 끈끈이처럼 비관과 고통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그러다 결국 주인공과 독자를 나락 저 밑까지 끌어 내린다. '비상구' 라는 단편이 보여줬던 유머와 위트는 간데 없는, 그야말로 비상구가 없는 잔인한 운명의 나락으로 휙 던져버린다.
김영하 작가의 장편은 독자의 오해가 없을, 적확하고 세련된 문장과 독자가 끼어들 틈 없는 적절하게 치고 빠지는 플롯으로 꼼꼼하게 설계된 '출구 없는 미로'와도 같다. 일전에 '너의 목소리가 들려' 라는 작품의 리뷰에서 '꼼꼼하게 쌓아올린 레고' 로 비유했었는데, 내가 받은 김영하 작가의 장편들이 공히 가지고 있는 특징이었다.
그래서, [살인자의 기억법] 은 상당히 놀라웠다.
주인공이 '치매' 라는 병에 걸리긴 했지만, 플롯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심지어 결말은, 그야말로 미로에 미로를 끼얹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런 결말을 '아 시발 꿈!' 류의 결말이라고 부르는데, 가장 싫어하는 방식의 결말이다.
책이 워낙 얇기 때문에, 정색하고 다시 읽어봤다.
이 작품은 결말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장르적으로 접근해보자, 김영하 작가는 장르적 장치의 사용에도 능한 작가니까.
숭숭 뚫린 구멍들은 독자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부분들일 터다.
기억에 관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놀란 형제의 놀라운 등장이었던 "메멘토" 였을 것이다.
단기 기억 상실에 걸린 주인공이 살해당한 아내의 복수를 하는 과정을 담은 메멘토는 관객들을 이 미스테리에 참여시키기 위한 장치를 하나 사용한다.
그것을 "문신". 중요한 키워드들을 몸에 새겨놓는다.
이 문장들은 적확하지만, 앞뒤 맥락이 생략되어 있기에 수많은 오해를 낳는다.
관객들은 주인공의 해석을 따르면서도, 나름대로 각자의 해석을 할 수도 있다.
'무엇이 진실인가?'
기억과, 메모, 그리고 해석.
[살인자의 기억법]에도 그러한 장치가 등장한다.
주인공 병수는 70대의 중증 치매환자로서 중요한 것들을 공책에 메모한다. 그리고 녹음기를 목에 걸고 다니며 중요한 것들을 녹음한다.
공책에 적힌 메모와, 녹음.
병수의 기억은 믿으면 안된다. 마치 실제 치매환자의 기록처럼 단편적으로 펼쳐지는 씬들은 모두 진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
진실은 오로지 메모와 녹음 뿐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사실은 병수의 입을 통해 되풀이된다.
망상과 팩트를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두번째 읽을 때는 진실과 망상을 구분하기 위해 이런저런 장르적 장치들을 통해 여러가지 재미있는 가설들을 세우고 혼자 검증하며 놀았다.
이 작품은 두 연쇄 살인마, 병수와 주태의 대결구도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병수의 딸인 은희가 있다. 병수는 은희를 주태로부터 지켜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마지막 남은 정신을 그러모아 최후의 일전을 준비한다. 병수의 기억은 끊임없이 깜빡이고, 정신을 잃고 어딘가를 헤매이다가 동네 청년들이나 경찰에 손에 이끌려 정신을 되찾기를 반복한다. 그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억은 딸, 은희.
김영하 작가는 곳곳에 허방다리를 놓았다.
밟으면 빠져드는 늪이다.
장르적인 접근으로는 수많은 가설을 세울 수 있는 장치들을 요소요소에 박아 넣었다.
가장 먼저 든 의문은 "박주태는 진실인가, 허상인가? " 였다.
병수는 박주태라는 인물의 명함을 잘 챙기고, 공책에도 적어 놓았다. 장치에 따르면 박주태라는 인물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가 병수와 같은 연쇄살인마임은 확신할 수 없다. 병수는 박주태가 연쇄살인마라는 내용을 적어놓지도 않고, 녹음해 놓지도 않았다. 끊임없이, 혼잣말로 되뇌이기만 한다. 작품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이 녹음기에 녹음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분명한 함정이다. 하지만, 그 밖에 힌트는 없다.
결론, 박주태는 존재하지만, 그가 연쇄살인마라는 증거는 없다.
여기서 도출되는 또다른 가설은, 박주태가 병수의 또다른 인격일 가능성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가설이 가장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병수는 자신이 연쇄살인을 끝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끝낼 수 없었기에 다른 인격이 만들어져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의 초반부에 언급되는 세명의 희생자는 병수 안의 박주태가 죽였을 것이고, 그들 중 한명은 은희의 전 개인 요양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작품속에 "개" 가 등장하는데, 이 개 역시 장르적 장치로 읽으면, "병수의 개라고 인지하는 상황" 과 "병수 이웃집 개라고 인지하는 상황" 이 존재한다. 이것은 주인공 병수의 착각이라기보다, 실제로 다른 의식임을 드러내는 것일수도 있다.
즉, "우리 개" 라고 대답하는 은희와, "우리개가 아니" 라고 대답하는 은희는 서로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 요양사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에.) 병수는 두명, 혹은 세명의 은희가 번갈아가며 등장해도 서로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중증 치매 환자이다.
두번째 의문은 '안형사 는 누구인가?' 이다.
안형사는 작품 안에서 끈질기게 병수의 뒤를 캐는 인물인데, 이 인물도 상당히 미스테리하다.
병수가 박주태와 안형사를 혼동하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야기 안에서 안형사의 존재는 활용도가 무척 높다. 맥거핀처럼 이용될 수도 있고, 사실은 그가 형사의 탈을 쓴 살인마일수도 있다. 수많은 장르소설 안에서 경찰은 범죄를 덮는 가장 큰 위장복이 아니던가?
안형사가 이중생활을 하는 연쇄살인마라면 이 역시 재미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나 이미 병수가 연쇄살인마라는 심증을 굳히고 있고, 그의 개인 요양사와 친하게 지내면서 병변을 확실히 파악한 뒤, 자신의 죄를 덮어씌울 계획을 꾸몄을 수도 있다.
이런 가설로 이야기를 읽어도, 맞아 떨어지는 대목들이 있어서 클라이맥스의 많은 장면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 작품은 김영하작가의 장편이지만, 단편처럼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들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마치 페이스 북이나 인스타에 올릴 법한 짤막한 단락들, 단락 사이에 중간 점을 찍어 명확하게 전달한 '분절' 의 의미, 수많은 생략과, 없는 듯 하지만, 정확하게 작동하는 플롯 등 도전적인 실험들이 이채롭다.
주인공 병수가 앓고 있는 중증 치매 증상에 대한 병변들도 명확하다.
작가는 발로 쓴다는 말이 있다. 만화가도 마찬가지지만, 현실을 그리는 작가에게 '디테일'은 필수다.
인터뷰 하지 않는 작가에게, 취재하지 않는 작가에게 미래는 없다. 관찰과 상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어도 이 작품을 읽고 치매나 요양사에 대한 태클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완벽한 취재와 연구가 돋보이는 디테일이 여기저기서 듬뿍 느껴진다.
장르적 재미를 차치하고, 작품이 주는 '치매' 에 대한 공포는 대단하다.
나는 '자아' 란 '타자' 가 있음으로 의미가 생긴다고 믿는다. 그것이 같은 인간이건, 동물이건, '나' 는 '너' 로 인해 존재한다.
헌데, 내 주변의 수많은 타자들이 나의 기억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이 사실은 내 기억과 다르고, 내가 겪었던 사건들이 내 기억과 다르며, 나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도 하나도 없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성은 "내가 나" 임을 인지하면서, 그리고 "내가 왜 나?"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짐으로써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아에 대한 증거는 대부분 '기억'에 의존한다. 타인에게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함께 했던 기억뿐이다. 치매가 무서운 이유는 그 기억들을 지워버리는 병이기 때문이고, '노화' 라는 피할 수 없는 '살아있음의 증거' 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방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당신이나 내가 높을 확률로 피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 때문이다.
인간의 지성은,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어느날 갑자기 모든 기억을 잃고, 심지어 말하고, 읽고, 쓰는 법가지 잃고, 무엇을 배워야 할 지 알려줄 부모나 선배도 없다고 상상해보라.
지성이라고 부르는 것.
어쩌면, 영혼과 가장 비슷한 것이 사라진다.
소시오패스건, 쾌락 살인마이건, 누구에게다 동등하게 찾아오는 노년.
이 책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살인마가 아니라, 노년 그 자체였다.
현대 영미문학의 찬란한 대가인 '필립 로스' 는 '에브리맨' 이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년은 학살이다.'
그리고, 이 책은 노년을 맞은 학살자의 이야기.
[살인자의 기억법] 은 그래서, 무척 특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