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
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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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불의의 사건으로 고등학생이던 딸을 잃은 우진. 여전히 괴롭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아내마저 자신의 눈 앞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황망하게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와중에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입었던 상복 주머니 안에서 누가 넣었는지 모르는 메모를 발견한다.

"진범은 따로 있다." 

딸의 죽음에 관련된 메시지였다. 딸의 죽음과 아내의 자살에 연관이 없을 리 없다. 우진 자신도 괴롭게 살아왔으므로.

하지만, 아내는 그 시간동안 딸의 상실은 물론, 암까지 이겨낸 여자였는데... 

왜 지금, 그렇게 삶을 놓아버렸을까?

이것과, 연관이 있는걸까?

딸을 죽인 '진범'.

3년 전, 딸은 살해당했다. 사건의 당사자들은 딸과 같은 고등학생들. 재판을 받았고, 판결도 났다. 

하지만, '진범'이 따로 있다고?

진범이 있다면, 그 때 처벌받았던 그 학생들은 뭐였을까? 

그렇다면, 우리 딸은, 어떤 진범에게 '왜' 죽은거지? 

그 과정에서 딸을 죽인 고등학생들이 모두 단순한 보호감찰 정도로 쉽게 풀려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경악하는 우진.

우진은 다시 3년 전 사건의 관계자들을 한명씩 대면하고자 한다.

딸이 죽은 이유와, 아내가 죽은 이유. 우진은 이 모두를 알아야겠다.

딸도 잃고, 아내마저 잃은 우진에게 더이상 잃은 것은 없다.

진실을 향해, 생애 마지막 불길을 내뿜는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거침없이 읽어내렸다.

볼륨도 생각보다 아주 얇은 편이었다. 두께에 비해 판형도 작고, 폰트는 크고, 여백도 많았다.

술술 읽힐 좋은 조건들은 모두 가지고 있다. 


 솔직히 이 작품을 읽으며 미야베 미유키나 이사카 코타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이 많이 떠올랐다. 물론 정유정의 '7년의 밤' 같은 작품도 떠올랐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 자주 일어나는 10대의 살인사건,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미스테리, 추악한 공권력의 실체와 피해자의 아버지, 그리고 가해자의 아버지.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소재들이었다.

전체적인 서사를 놓고 보아도, 특별한 반전이나 트릭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드라마들을 떠올려보면, 비슷한 작품들을 몇분안에 두손 가득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류의 작품들은 사실 소재가 한정적이다.

여러번 언급하지만, 장르문학은 경계가 뚜렷한 공간 안에서 트릭의 아이디어와 주요 인물들의 캐릭터성, 그리고 연출만으로 진검승부를 펼치는 대전장이다. 마치 독자들과 묵찌빠를 하는 듯, 아슬아슬한 게임이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물이다. 뻔하디 뻔한 가위, 바위, 보로 상대의 눈치를 살피며, 한순간에 호흡을 뺏는 장르인 것이다.   

이 작품이 갖고 있는 두개의 무기는 '아내가 죽은 이유' 와 '딸이 죽은 이유' 이다.

이것들을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떤 식으로 내보일 것인가. 그리고 그 내용은, 우리의 뒷통수를 어떻게 가격해줄 것인가.



술술 읽히긴 했지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의 미덕인 '서스펜스' 와 '카타르시스' 가 거의 실종됐기 때문이다.

비록 연출상 의도였다지만, 우진이 누군가를 차에 태우는 순간, 모든 내용이 너무 쉽게 예상됐다.

그 시점 자체가 너무나 빨랐다.

우진이 사건의 당사자들을 하나하나 쫓아가 따져 물은 과정들을 모두 생략했다는 것과 맥이 연결되는데, 작가의 선택이라는 의도는 알겠으나, 이해는 잘 안된다.  

추격과 탐문은 미스테리-추리 소설의 핵심이자 꽃이다. 이 부분들을 몽땅 생략해버리니, 재혁과 우진이 쫓고 쫓기는 추격장면에서도 전혀 서스펜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추격과 탐문 자체가 너무너무 쉽게 술렁술렁 이뤄져버린다. '미스테리' 를 풀어나가는 '과정' 이 거의 생략되어 있고, 있어도 마치 흐름의 이해만을 위한 요약본 같은 서술로 그치고 만다. 아내가 자살한 이유는, 충격적이지만, 지나치게 작위적이었다. 밝혀지는 과정의 개연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지나친 우연에 기댄 설정이라 크게 와닿진 않았다. 

재강이라는 인물의 활용도 아쉬웠다. 

싸이코 패스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이 인물은, 비록 전형적이지만, 매력적인 카리스마와 광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굳이 이렇게 소모해야 했을까?? 더 결정적인 순간에, 더 강렬한 서스펜스를 주며, 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줄 수 있었을텐데.


시간을 뒤섞은 연출도 그렇게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짧은 서사에서 시간까지 뒤섞여 버리니 오히려 우진의 감정에 이입되기 어려웠다.

오히려 서사대로 흘러갔으면 우진의 감정변화가 더욱 절실하게 와닿지 않았을까?

우진이 재강 일행을 만나며 겪었을 일들과, 그를 통해 생겨났을 심리변화, 특히 재강 일행(사건의 1차적 범인들)이 내부에서 분열되는 과정들이 좀 더 집중적으로 조망되었다면, 이야기가 좀 더 밀도있게 다가왔을 것 같다.

짧은 분량 안에서 너무 많은 인물들의 심리 변화 양상을 보여주려다보니 너무 간단하게 처리된 것 같아 참 아쉬웠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작가의 의도가 명확히 다가온다.

이 작품은 애초에 미스테리와 서스펜스, 카타르시스에 집중한 것이 아니다.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의 특징을 모두 갖춘 스테레오 타입의 인물들이 전형적인 위치에 놓여있지만, 전하고자 하는 감정 하나만을 위해 가차없이 버려버린다. 정말, 당혹스러울 정도로 가차없이.

이렇게 중요해 보이는 인물들을 가차없이 버린 이유는 공권력을 가진 재혁이라는 인물과, 우진이 태운 인물의 관계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그 관계와 이유를 알게되는 순간, 재혁의 모든 행동들이 확실히 이해된다.

 이 아버지들이 이래야만 했던 이유.


 "내 딸이 왜 죽었을까?"

 '왜??'

 아이를 잃은 아버지에게 '누가' '어떻게' 따위가 궁금할 리 없다.

우리는 이런 아버지들의 절규를 너무 오랫동안 많이 들어왔잖은가?

세월호가 이토록 오랫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되풀이될 이유는 오직 한가지이다.

"왜?"

아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떼같은 자식을 수장시킨 '이유'. 구조를 외면했던 '이유' 들에 엄청나게 많은 권력들이 가림막을 치고 있다.

세월호에 적하 제한 이상으로 실려있던 철근 구조물들, 규정을 어긴 것을 강행하게 한 권력들, 세월호 인근에 대기하던 해군과 미군 군함들과 민항 의료 헬기들이 뜨지 못했던 이유, 해경들이 선장만 구출했던 이유, 노후되어 파기되었어야 할 배가 안전검사를 매번 통과하며 운행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세월호가 국정원의 관리 하에 있었던 이유, 유병우가 변사체로 발견된 이유, 박근혜의 일곱시간을 기를 쓰고 막았던 이유.

아직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았다.

"왜?" 의 힘은 강력하다.

수십만의 사람들 손에 촛불을 들게 했고, 최고 권력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힘이 "왜?" 의 힘이다.


우진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인 "왜?" 의 힘. 

하지만, 작가는 우진을 오로지 슬프고, 슬픈 아버지로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작품 안에서는 상당히 과감하게 행동하는 남성임에도, 행동 자체를 간략히 처리했다. 그저 딸을 추억하기만 하는 슬픈 아버지로 만들고 말았다. 좀 더 야박하게 표현하자면, 액션이 등장하는 장면들은 모두 영화의 트리트먼트 같다. 분노도, 폭력도, 서스펜스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단순히 묘사할 따름이다.

우진이 아내의 자살을 목격하고, 딸의 시신을 목격하고, 딸과의 기억을 추억하는 장면들과 비교하면 더더욱 헐겁다. 물론, 그런 장면들이 아주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장면들은 눈시울이 금새 붉어질 정도로 좋은 묘사가 돋보였다.  

작가는 이렇듯, 슬퍼하고 애도하는 아버지를 그리기 위해 다른 부분들을 과감하게 쳐낸 것으로 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비소에서 기름밥 먹으면서 살던 아버지의 고통과 고뇌가 남성성으로 표출되지 않은 것은 안타깝다. 굳이 아버지였던 이유가 있었을텐데. 딸바보 아버지의 활동력보다, 딸바보적인 면만 너무 부각되서 장르의 팬으로써 많이 아쉬웠다.


결국, 이 작품을 한마디로 갈음하자면,  미스테리 스릴러의 서사를 갖고는 있지만, 미스테리 스릴러가 추구하는 장르적 가치는 모두 무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미스테리와 스릴러, 서스펜스와 카타르시스의 지점을 일부러 살짝 살짝 피한 느낌까지 든다. 작가의 전작들을 읽어보진 않았으나, 이 작품 하나에서 쓰인 장르적 장치와 기법들만 봐도, 활용에 상당히 능란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과연 그렇다면, 이 선택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참 궁금하다.

굳이 조어를 만들자면, 이 작품은 미스테리 스릴러가 아니라, 감성 미스테리 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것 같다.

개인적인 취향에 기대 정리하자면, 병과의 구성은 너무나 좋고 강력하지만, 효과적으로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배치에는 실패한 진영이랄까.

작가의 의도는 읽히지만, 내 취향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이 작품의 호흡과 템포는 소설보다는 드라마에 어울리는 것 같다. 

각각의 인물들도 전통적인 장치와 세련미를 동시에 갖고 있기에, 재혁과 재강, 우진의 삼각 구도를 뚜렷하게 하면 스릴과 서스펜스를 극대화 하는 심장 쫄깃한 미니시리즈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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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심령학자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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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 우리나라에서는 "공상과학소설" 이라고 번역된다.

내 머릿속에서 SF는 빛의 속도로 광활한 우주를 누비는 이름모를 첨단과학 엔진을 장착한 우주선으로 이런 저런 행성에 조성된 최첨단 콜로니 도시들을 들락날락하며 각양각색의 외계인들과 갈등을 빚으며 사건을 일으켜야만 하는 장르였다. 아니면, 인간이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깊고 깊은 심해나 지구의 멘틀 아래에 펼쳐진 또 다른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거나, 타임머신 등이 등장해야만 했다. 최소한 인류의 자리를 노리는 로봇이나 인공지능 정도는 등장해야지!! 

 나의 이러한 고정관념을 깨뜨려준 작품이 바로 '어슐러 르 귄' 여사님의 작품들이었다.  

사실 'SF'는 '미래' 와 어떠한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어슐러 르 귄은 미래가 아니라, 과거; 과학과 마술의 경계가 애매해서 과학과 종교가 치열한 갈등을 빚던 시기, 종교재판에 회부되는 천문학자의 이야기를 그리기도 했다.

 이야기를 통해 "과학" 그 자체를 그린 것이다. 그 작품을 맞닥뜨렸을 때의 짜릿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고고심령학자] 에도 미래는 등장하지 않는다.

 광활한 우주도, 이름모를 첨단과학 엔진도 등장하지 않는다. 깊은 심해나 타임머신이 등장하지도 않고, 외계인과 우주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배명훈 작가도 이런 영역을 무척 잘 다루긴 하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의 뿌리는 언제나 그 곳에 닿아있지 않았다. (살짝 거친 적은 있을지언정.)

배명훈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고고심령학" 이라는 기찬 아이디어로 "심령" 을 "학문" 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빙의"를 일종의 과학(사회)현상으로 치환하여 전통과 문화를 관통하는 신박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이런 장르의 팬으로써 처음부터 끝까지 '우와' '우와아아!!!!!!!!' 할 수 밖에 없었다.


"심령학적인 관찰을 통해 고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학문. 

고고심령학은 대강그렇게 정의되는 학문 분야였다. (...)

 천년 전 사람들이 쓰던 언어를 어떻게 재구성해낼 것인가? 다른 해석의 여지 없이 소리 하나하나에 정확히 대응되는 문자 체계가 만들어지기 전에 살던 사람들이 하던 말을?

 이 질문에 대한 고고심령학의 대답은 간명하고 매혹적이었다. 천년 전에 죽은 혼령이 하는 말을 직접 들어보면 된다는 것이었다." 

p.15


작품 안에서 고고심령학은 정식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그들만의 뚜렷한 영역이 있고, 학계가 존재한다.

은수는 고고심령학계의 기린아로 문인지 박사의 제자였다. 문박사는 고고심령학의 학문적 성취가 뛰어난 학자 중의 학자였지만,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학구적인 자세때문에 대학 중심의 학계에서는 변방으로 밀려나 있었다. 제자를 백수로 만드는 교수를 고고심령학과를 개설한 그 어떠한 대학에서도 환영할 리 없었고, 고고심령학 역시 다른 학계와 마찬가지로 대학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은수는 얼마전 타계한 문인지 박사의 마지막 수제자나  다름 없었고, 문박사보다는 유연한 편이라 현실적으로 앞길을 모색하는 중에 고고심령학에 기반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확장중인 이한철 대표의 제안으로 문박사의 개인 서재를 정리하는 프로젝트를 맡게 된다. 

 마치 뇌의 구조처럼 문박사가 수집한 연구 업적과 자료들을 3차원 디스플레이로 재현하는 내용이었고, 개인 소장 서적의 서지정보는 물론, 중요한 메모와 낙서등을 분리하는 작업도 필요했기에 은수야말로 적임자였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에 고고심령학이 대중적으로 알려질만한 큰 사건이 일어난다.

무려, 성벽, 그러니까 고대의 요새 하나가 통째로 서울에 빙의한 것이다. 고고심령학과 관계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은 물론, 서울의 노른자위에 자리잡고 있는 미군들까지 영향을 받게 되자 결국 서울시 당국이 나서 전문가들을 수배하면서 고고심령학 자체가 폭넓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고고심령학계에서는 이 현상을 "요새빙의" 라고 칭하며, 흔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기록이 존재하는 도시규모의 심령현상이었다.

은수는 이 거대 심령현상에 문인지 박사의 '종말론' 연구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대학 친구인 은경, 문인지 박사의 동료뻘인 한나 파키노티 박사와 함께 현상의 실체에 다가서게 된다. 


유령, 고고학, 장기, 고무줄 놀이 노래, 서울, 용산, 인도, 그리고 일제 강점기 경성.

접점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소재들을 씨줄과 날줄삼아 엄청난 작품을 짜냈다.

배명훈 작가의 작품은 [안녕, 인공존재] 부터 흠뻑 빠졌더랬다. 놀라운 상상력과 그것을 현실에 풀어내는 능력이 비범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실과 인간, 그리고 사회를 관통하는 통찰력이 돋보였다. 

단편과 중편연작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 모든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약간 아쉬운 부분이 바로 드라마였다.

그의 장편은 한마디로, 매력적이긴 하지만, 유혹적이지는 않다는 느낌이랄까.  

이것은 배명훈 작가의 감정이 절제된 세련된 문체와 간결하고 명징한 스토리 텔링 방식 때문이기도 한데, 독자들의 호흡을 가지고 놀지언정, 감정에 호소하는 부분이 약하다고 느꼈다. 인간의 심리나 감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 텔링의 방식에 있어서 드라마의 우선순위를 약간 뒤에 두었다는 인상이 강했다. 이것이 장점인지, 단점인지 가늠할 수는 없지만, 배명훈 작가의 작품세계 자체가 전체적으로 드라이한 느낌이기에 통일성 면에서는 조화로운 선택이긴 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야말로 '배명훈 식' 드라마가 비로소 온전하게 드러났다는 느낌이다.

은수와 은경, 한나 파키노티, 그리고 문인지 박사와 유령 아이와 아미타브까지.

인간들의 심리가 얽히는 드라마들이 감정의 과잉 없이, 배명훈 작가만의 특유의 문체로 너무나 잘 표현되고 있다.  

드라이해도 촉촉할 수 있다고 해야 할까. 


그 뿐 아니라, 스토리 텔링에 있어서도 크게 한 발을 내딛은 느낌이다.

마지막까지 전혀 관계 없을 것 같이 파편처럼 흩어진 에피소드들이 마치 퍼즐처럼 차근차근 맞아들어가는 과정은 짜릿할 정도의 즐거움을 준다. 사실 여러 상징들을 복선으로 던져주는데, 이야기의 중심 개념이 익숙하면서도 생소해서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후반부에는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다 읽은 뒤에는 이 세계관의 다른 이야기들을 읽고 싶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플래시백으로 등장하는 은수와 은경의 에피소드들도 더 읽고 싶을 정도로, 모두 다 흥미롭다. 

두번 읽을때 더 재미있는 소설도 정말 오랜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요새라니...

도시가 도시에 빙의한다니!!! 

상주하는 유령, 심장을 지닌 도시, 그리고 역사. 전통. 전래.

비과학인 소재들을 인문,공학, 그러니까 과학적으로 채워넣은 절묘한 이야기이다.

 

서두에 어슐러 르 귄을 언급한 이유는,  그녀가 인문학적인 통찰로 과학을 그려내는 작가이며, 내가 배명훈 작가에게 받았던 첫인상과, 앞으로 기대하는 바 역시 그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안녕 인공존재] 도 그랬지만, [타워] 같은 연작과 [신의 궤도] 같은 장편에서도 인문학적 통찰과 과학적 사유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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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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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 바람!! 

전해들은 바로는 영화와는 결말도, 해석도 다르다고 하니 영화 보실 분들은 관계 없을지도...



굉장히 짧고, 마치 영화의 씬들이 연결된 것 처럼 수많은 단락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게 정말 김영하 작가님의 장편인가? 싶었다.

어쩌다보니, 김영하 작가님 작품도 엄청 많이 읽었다.

장편은 [빛의 제국], [퀴즈쇼], [너의 목소리가 들려] 에 [살인자의 기억법] 까지.

단편집은 너댓권 읽었으니, 어지간히 다 읽었다는 의미다. 

김영하 작가는 장편과 단편의 색채가 상당히 다른 작가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나 '오빠가 돌아왔다'(단편) 와 '빛의 제국'(장편) 이 같은 사람이 쓴 소설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더랬다.

단편은 물론, 단편답게 수많은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갖가지 심상들을 녹여내지만, 장편은 "정색하고" 글을 쓰는 느낌이랄까.

비관적인 상황 속에서도 끊임없이 유머와 위트를 던지고, 가끔은 끝모를 낙관주의를 풀어놓는 경우도 있지만, 장편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새까맣고, 진득하고, 들러붙는 끈끈이처럼 비관과 고통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그러다 결국 주인공과 독자를 나락 저 밑까지 끌어 내린다. '비상구' 라는 단편이 보여줬던 유머와 위트는 간데 없는, 그야말로 비상구가 없는 잔인한 운명의 나락으로 휙 던져버린다.

김영하 작가의 장편은 독자의 오해가 없을, 적확하고 세련된 문장과 독자가 끼어들 틈 없는 적절하게 치고 빠지는 플롯으로 꼼꼼하게 설계된 '출구 없는 미로'와도 같다. 일전에 '너의 목소리가 들려' 라는 작품의 리뷰에서 '꼼꼼하게 쌓아올린 레고' 로 비유했었는데, 내가 받은 김영하 작가의 장편들이 공히 가지고 있는 특징이었다.   


그래서, [살인자의 기억법] 은 상당히 놀라웠다.

주인공이 '치매' 라는 병에 걸리긴 했지만, 플롯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심지어 결말은, 그야말로 미로에 미로를 끼얹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런 결말을 '아 시발 꿈!' 류의 결말이라고 부르는데, 가장 싫어하는 방식의 결말이다.

책이 워낙 얇기 때문에, 정색하고 다시 읽어봤다.


이 작품은 결말이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장르적으로 접근해보자, 김영하 작가는 장르적 장치의 사용에도 능한 작가니까.

숭숭 뚫린 구멍들은 독자들의 참여를 요구하는 부분들일 터다. 


기억에 관한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놀란 형제의 놀라운 등장이었던 "메멘토" 였을 것이다.

단기 기억 상실에 걸린 주인공이 살해당한 아내의 복수를 하는 과정을 담은 메멘토는 관객들을 이 미스테리에 참여시키기 위한 장치를 하나 사용한다.

그것을 "문신". 중요한 키워드들을 몸에 새겨놓는다. 

이 문장들은 적확하지만, 앞뒤 맥락이 생략되어 있기에 수많은 오해를 낳는다. 

관객들은 주인공의 해석을 따르면서도, 나름대로 각자의 해석을 할 수도 있다.

'무엇이 진실인가?'

기억과, 메모, 그리고 해석.


[살인자의 기억법]에도 그러한 장치가 등장한다.

주인공 병수는 70대의 중증 치매환자로서 중요한 것들을 공책에 메모한다. 그리고 녹음기를 목에 걸고 다니며 중요한 것들을 녹음한다.

공책에 적힌 메모와, 녹음.

병수의 기억은 믿으면 안된다. 마치 실제 치매환자의 기록처럼 단편적으로 펼쳐지는 씬들은 모두 진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

진실은 오로지 메모와 녹음 뿐이다.

하지만, 그조차도 사실은 병수의 입을 통해 되풀이된다.

망상과 팩트를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두번째 읽을 때는 진실과 망상을 구분하기 위해 이런저런 장르적 장치들을 통해 여러가지 재미있는 가설들을 세우고 혼자 검증하며 놀았다.

이 작품은 두 연쇄 살인마, 병수와 주태의 대결구도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중간에 병수의 딸인 은희가 있다. 병수는 은희를 주태로부터 지켜야한다는 강박관념에 마지막 남은 정신을 그러모아 최후의 일전을 준비한다. 병수의 기억은 끊임없이 깜빡이고, 정신을 잃고 어딘가를 헤매이다가 동네 청년들이나 경찰에 손에 이끌려 정신을 되찾기를 반복한다. 그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억은 딸, 은희. 

김영하 작가는 곳곳에 허방다리를 놓았다.

밟으면 빠져드는 늪이다.

장르적인 접근으로는 수많은 가설을 세울 수 있는 장치들을 요소요소에 박아 넣었다.


 가장 먼저 든 의문은 "박주태는 진실인가, 허상인가? " 였다. 

병수는 박주태라는 인물의 명함을 잘 챙기고, 공책에도 적어 놓았다. 장치에 따르면 박주태라는 인물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가 병수와 같은 연쇄살인마임은 확신할 수 없다. 병수는 박주태가 연쇄살인마라는 내용을 적어놓지도 않고, 녹음해 놓지도 않았다. 끊임없이, 혼잣말로 되뇌이기만 한다. 작품에 직접 등장하지 않는 많은 이야기들이 녹음기에 녹음되어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것은 분명한 함정이다. 하지만, 그 밖에 힌트는 없다.

결론, 박주태는 존재하지만, 그가 연쇄살인마라는 증거는 없다.


여기서 도출되는 또다른 가설은, 박주태가 병수의 또다른 인격일 가능성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가설이 가장 이야기가 재미있어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병수는 자신이 연쇄살인을 끝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끝낼 수 없었기에 다른 인격이 만들어져 살인을 저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의 초반부에 언급되는 세명의 희생자는 병수 안의 박주태가 죽였을 것이고, 그들 중 한명은 은희의 전 개인 요양사였을 가능성이 높다. 


작품속에 "개" 가 등장하는데, 이 개 역시 장르적 장치로 읽으면, "병수의 개라고 인지하는 상황" 과 "병수 이웃집 개라고 인지하는 상황" 이 존재한다. 이것은 주인공 병수의 착각이라기보다, 실제로 다른 의식임을 드러내는 것일수도 있다. 

즉, "우리 개" 라고 대답하는 은희와, "우리개가 아니" 라고 대답하는 은희는 서로 다른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 요양사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에.) 병수는 두명, 혹은 세명의 은희가 번갈아가며 등장해도 서로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의 중증 치매 환자이다. 


 두번째 의문은 '안형사 는 누구인가?'  이다. 

안형사는 작품 안에서 끈질기게 병수의 뒤를 캐는 인물인데, 이 인물도 상당히 미스테리하다.

병수가 박주태와 안형사를 혼동하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야기 안에서 안형사의 존재는 활용도가 무척 높다. 맥거핀처럼 이용될 수도 있고, 사실은 그가 형사의 탈을 쓴 살인마일수도 있다. 수많은 장르소설 안에서 경찰은 범죄를 덮는 가장 큰 위장복이 아니던가? 

 안형사가 이중생활을 하는 연쇄살인마라면 이 역시 재미있는 이야기가 된다. 그나 이미 병수가 연쇄살인마라는 심증을 굳히고 있고, 그의 개인 요양사와 친하게 지내면서 병변을 확실히 파악한 뒤, 자신의 죄를 덮어씌울 계획을 꾸몄을 수도 있다. 

이런 가설로 이야기를 읽어도, 맞아 떨어지는 대목들이 있어서 클라이맥스의 많은 장면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 작품은 김영하작가의 장편이지만, 단편처럼 신선하고 새로운 시도들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마치 페이스 북이나 인스타에 올릴 법한 짤막한 단락들, 단락 사이에 중간 점을 찍어 명확하게 전달한 '분절' 의 의미, 수많은 생략과, 없는 듯 하지만, 정확하게 작동하는 플롯 등 도전적인 실험들이 이채롭다.

주인공 병수가 앓고 있는 중증 치매 증상에 대한 병변들도 명확하다.

작가는 발로 쓴다는 말이 있다. 만화가도 마찬가지지만, 현실을 그리는 작가에게 '디테일'은 필수다.

인터뷰 하지 않는 작가에게, 취재하지 않는 작가에게 미래는 없다. 관찰과 상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적어도 이 작품을 읽고 치매나 요양사에 대한 태클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완벽한 취재와 연구가 돋보이는 디테일이 여기저기서 듬뿍 느껴진다.


장르적 재미를 차치하고, 작품이 주는 '치매' 에 대한 공포는 대단하다.

나는 '자아' 란 '타자' 가 있음으로 의미가 생긴다고 믿는다. 그것이 같은 인간이건, 동물이건, '나' 는 '너' 로 인해 존재한다. 

헌데, 내 주변의 수많은 타자들이 나의 기억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내가 알고 있던 사람들이 사실은 내 기억과 다르고, 내가 겪었던 사건들이 내 기억과 다르며, 나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도 하나도 없다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지성은 "내가 나" 임을 인지하면서, 그리고 "내가 왜 나?"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짐으로써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아에 대한 증거는 대부분 '기억'에 의존한다. 타인에게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가 함께 했던 기억뿐이다. 치매가 무서운 이유는 그 기억들을 지워버리는 병이기 때문이고, '노화' 라는 피할 수 없는 '살아있음의 증거' 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예방을 위한 노력이 없다면, 당신이나 내가 높을 확률로 피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 때문이다.

인간의 지성은, 기억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만약 우리가 어느날 갑자기 모든 기억을 잃고, 심지어 말하고, 읽고, 쓰는 법가지 잃고, 무엇을 배워야 할 지 알려줄 부모나 선배도 없다고 상상해보라. 

지성이라고 부르는 것.

어쩌면, 영혼과 가장 비슷한 것이 사라진다. 

소시오패스건, 쾌락 살인마이건, 누구에게다 동등하게 찾아오는 노년. 

이 책에서 가장 끔찍했던 것은 살인마가 아니라, 노년 그 자체였다.

현대 영미문학의 찬란한 대가인 '필립 로스' 는 '에브리맨' 이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년은 학살이다.'

 그리고, 이 책은 노년을 맞은 학살자의 이야기.

[살인자의 기억법] 은 그래서, 무척 특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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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
차무진 지음 / 엘릭시르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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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릭시르의 한국 작가 장르문학 라인은 정말 최고인 것 같다.

[궁극의 아이], [불로의 인형], 그리고 [해인]에 이르기까지. 

아주 신선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익숙한 개념들과 중심 스토리의 조화가 무척 뛰어나다.

세련된 문체와 유려한 필력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실제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관과 설정을 억지로 현실 세계에 가지고 들어오면 자기 파괴적인 오류가 일어나곤 한다. 팬들은 흔히 "설정 오류" 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현상들은 장르적 완성도를 무너뜨리는 것은 물론,  이야기의 흥미마저 떨어뜨린다.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을 키워 나가는 '팩션' 이라는 하위 장르의 경우는 더 위험하다.

상상력을 덧대 실제 역사적 사건의 인과를 재조합하는 작업은 '역사소설'은 물론 '역사서'에도 필요한 일이다.

'팩션' 은 그러한 인과에 완전히 세계관이 다른, 생경한 개념을 집어넣는 일이다.

주술이나, 마법, 특별한 능력을 지닌 초인이나 불사인 등 말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을 직접 다룰 땐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오류를 가늠한 '눈' 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다.  


[해인]은 '아기장수 설화' 를 모티프로 아기장수를 잉태할 '성모' 와 성모를 수호하는 '박마' 라는 존재를 만들어 역사의 이면에 녹아들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 자칫 세계관을 설명하다가 끝날 수도 있는 복잡하고도 장대한 설정이 세밀하게 정립되어 있다. 

시점상 현재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조선시대로 훌쩍 거슬러올라가며 성모와 박마, 아기장수의 관계를 풀어나간다. 

아기장수는 현실을 뒤엎을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사람이다. 아기장수가 무사히 태어나, 자라나면 세상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다. 

제대로 정기를 물려받지 못한 아기장수의 혁명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혁명에 실패한 사람들은 거의가 '쭉정이' 아기장수였다.

성모는 아기장수를 수태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여성이고, 남자의 씨와 관계없이 아기장수를 가질 수 있다. 박마는 성모가 아기장수를 잉태하면 아기장수가 무사히 태어날 때 까지 성모를 지키는 역할을 맡는 특수 요원이다. 성모가 아기장수를 무사히 낳지 못하면 박마는 죽거나 승려가 되야 한다. 새로운 성모가 태어나면, 새로운 박마가 그 역할을 물려받는다. 지역마다 비밀리에 양성되는 박마들이 있다. 소수지만, 천문, 지리, 무술에 능통한 박마들은 성모가 태어나면 자신의 임무를 시작한다. 

 하지만, 백한은 벌써 몇번이나 눈 앞에서 성모와 아기장수를 잃었음에도 이 땅 위에 살아있다. 죽기는 커녕, 불사의 몸이다. 그가 지켜야 할 성모 '숙지' 가 영원히 성모로 다시 태어나는 저주와도 같은 윤회에 갇혔기 때문이다. 아기장수를 잉태할 숙지가 영원한 윤회를 되풀이하게 된 계기는 한때는 친구이자 연인, 형과도 같았던 '만인' 이라는 박마였다. 만인은 백한과 함께 영원의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숙지를 살해한다. 백한은 만인을 막고 숙지를 지켜내야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항상 한 발씩 늦고 만다. 

만인은 고려시절, 여진족이었던 백한을 박마 스승인 '백지' 에게 소개해준 인물이기도 했다. 백한은 백지로 인해 불사의 몸을 얻었고, 박마의 칭호까지 얻었다. 그 사이에 '숙지' 라는 성모가 나타났다. 

백한은 숙지를 사랑하지만, 숙지는 백지를 사랑했고, 만인은 숙지에게서 태어날 아기장수를 보필해 혁명의 한 축을 담당할 계획을 세운다.

영원한 술래잡기의 시작이었다. 


작품의 서사는 널을 뛰듯 시간축을 평행으로 옮겨다니지만, 읽기는 쉬운 편이다.

저자가 친절하게 연도를 알려주고, 이자춘(태조 이성계의 아버지), 이순신(충무공), 전봉준(동학농민운동), 윤심덕(사의 찬미)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을 내세우기에 시대가 헷갈릴 이유는 없다. 설사, 헷갈린다 하더라도 이야기의 중심 흐름에서 벗어날 일은 없다. 

작가가 애초에 시간의 흐름을 뒤섞은 이유가 명백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조금 헷갈리길'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메인 혼란' 에 지장을 줘선 안된다. 시간축은 양념이자 미장센일 뿐, 진정한 혼란은 클라이맥스 부분에 느닷없이 달려든다. 

시간축을 흐트러뜨린 것은 오롯하게 엔딩을 위한 것으로, 세심히 읽어보면 반전의 단초들이 섬세하게 자리잡고 있다.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주인공인 백한과,  안타고니스트랄 수 있는 인물, 만인이다. 

백한은 만인으로 인해 박마가 되었지만, 끊임없이 그를 옭아매는 그림자다. 언제나 '한 발 빠른' 그림자. 이것이 반전의 힌트.

이 두 인물의 독특한 설정이 이야기에 강력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해인]의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는 고려시대 에피소드는 역시 작품 전체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인데, 특히 만인과 백한의 관계에 대한 묘사가 흥미롭다. 만인과 백한은 수직적인 관계다. 군인인 이들은 실제 지위상으로도 그렇고, 실력면에서도 그렇다. 거침없는 폭력과 동성애적 행위들이 공존하는 이 둘의 관계는 정립된 직후부터 최후의 그 순간까지 변하지 않는다. 예로부터 폭력과 섹스는 특정 인물들의 관계를 묘사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장치였지만, 이 작품이 활용한 방식은 꽤나 흥미로웠다. 어쩌면, 내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 - 특히 섹스라는 장치를 사용함에 있어 품고 있던 낭만주의나 나이브함이 확 깨지는 느낌이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눅진하고 질퍽한 불쾌감이 녹아있다.

임신, 낙태, 태아살해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필연적으로 사람을 가르고, 베고, 피를 쏟아내는 장면들 또한 끊임없이 등장하는데다가, 끊임없이 실패하는 백한에 대한 정서적인 피로감이 중첩되고, 사실은 결말조차도 개운하기는 커녕 더 진창속으로 잡아 끄는 내용이어서 템포조절에는 다소 실패한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정서적으로 안도감을 줬으면 좋았을텐데, 안타깝게도 그럴만한 대목에서는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비밀이 드러나는 바람에 카타르시스나 위안보다는 혼란과 충격이 강했다.

그 뒤에라도 다소 정신적인 여유를 줬으면 좋았을텐데.

이렇게 주구장창 괴롭기만 한 이야기는, 다음이 기대되지 않으니까...

투비 컨티뉴?? 영원히 고통받는 백한!!! 읽기싫어!!!! ㅜㅜㅋㅋㅋ 


그래도 소재 발굴부터, 여러 장치들까지. 장르 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기술들을 골고루 맛본 느낌이었다.

여러모로 공부할 가치가 있었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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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난 만화매니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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