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와 주혁이한테도 네가 나를 변명해주길 바래. 그 애들은공부가 끝나도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살기로 결심했단다. 내가 없으면 훨씬 홀가분하게 이 땅을 잊을 수 있겠지. 그 애들을 원망하지는 않아. 그 애들처럼 살 수 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지…………진진아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늦게도 내게 오지 마.
내 마지막 모습이 흉하거든 네가 수정해줘.

내 생애에 이런 편지를 받게 될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모가 이런 편지를 내게 보내리라고 어떻게 짐작이나 했겠는가.
이모 집으로 달려가면서 쉴 새 없이 부르짖었던 마음속 내 기도는 단 한 줄이었다. 하나님, 이 편지가 이모의 장난이게 해주세요!
제발 장난편지로 만들어주세요!
장난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아니, 절대 그렇게 믿어야 했기에나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혼자 이모 집으로 달려갔던 것이었다. 수선을 피우거나 누구에게 이 사실을 말해버리면 진짜가 되어버릴까 겁이 났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일이 진짜가 아•니게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만 가득해서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그러나, 장난이 아니었다. 하나의 열쇠로 대문을 열고,
나머지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 안을 채우고 있는 기이한•정적이 단숨에 그 사실을 깨닫게 했다. 

"물론 미국인이야. 엄마한테는 충격이었겠지. 엄마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었어. 엄마가 그것 때문에 죽음을 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우리 엄마는 그렇게 못난 분이 아니셨어."
나도 시인했다. 
이모는 그렇게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삶 대신죽음을 선택한 것 말고는 내가 알고 있는 이모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조차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모 같은 사람이 뿌리 내리며 살기론 이 세상이 너무 얇았던 것이다.
이모는 그렇게 떠나갔다. 이모가 이 세상과 하직하는 사흘 동안 하늘은 내내 음울했고 겨울 끝의 찬바람은 한없이 모질었다. 
내머릿속은 모래를 가득 채운 것처럼 부석부석했고, 먹먹한 가슴 한켠으로 쉼 없이 이모의 편지 구절들이 흘러내렸다.

진진아, 나,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모든 일을 끝내고 이모 집을 떠나던 날, 나는 거실의 오디오박스위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몇 장의 시디를 발견했다. 이모가 자주 듣던 유행가들이었다. 나는 이모의 유행가들을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았다. 내 사랑하는 이모의 심금을 울린 노래들, 그노래들 속에 ‘헤어진 다음날‘도 있었다.

이모가 죽고도 세월은 흘렀다.
이모를 죽인 겨울이 지나고 봄은 무르익어서 사방에 꽃향기가 난만했다. 겨울이 있어 봄도 있다.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죽기 전에는 아무도 인생의 보잘것 없는 삽화들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액자 안에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을 걸어 놓으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이모부는 건재하다. 이모의 엄청난 배신으로 상처는 입었으나,
정시에 출발하고 정시에 도착하기 위해 애쓰는 기차를 멈추게 하지는 못하였다.
주리는 미국에서 푸른 눈과 밤색 머리칼을 가진 남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내 어머니에게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의 주리는 신부답게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러나 곰곰 살펴보니 주리의 입은 활짝 열려있지만 주리의 눈은 웃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할 차례다.
나는 곧 결혼한다. 어머니와 이모에 이어 나도 4월의 신부가 된다. 물론 4월 1일 만우절은 아니다. 

일 년 전쯤의 어느 날 아침,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해. 꼭 그래야만 해!"라고 부르짖었던 나의 다짐이 마침내 결혼이라는 실천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 다짐에 충실했던 일 년이었다. 
살필 수 있는 만큼은 다 살폈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4월의 결혼식에 내 손을 잡아줄 남자는 그래서 나영규가 되었다. 일이 그렇게 되었으므로 ‘헤어진 다음날‘은 나와 김장우의 노래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헤어진 다음날들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한 이모와는 달랐다. 나는 잘 견디었다. 김장우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시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이모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아야 옳은 것이었다.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나는 ‘이야기‘와 ‘감동‘을 젖혀놓고 행해지는 소설에 관한 모든 논의에 무관심하며 또한 회의적이다. 
마찬가지로 단지 이야기만 주장한다거나, 분석해서 얻어지는 감동만을 주장하는 논의 역시도 믿을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이론들에는 작가의 자리가 없다. 작가의 자리가 없는 소설, 혹은 작가의 정신이 없는 소설 논의는 일시에 소설이란 장르의 탄생을 무화시켜 버리고 만다.
일상의 남루를 벗겨주고 상실감을 달래주는 작가의 자리에 대해, 요즘 나는 다시 생각하고 있다.

하나의 소설이 쓰여지고 그것이 책으로 묶였다고 해서 소설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읽는다는 행위가 없으면, 읽기를 통해 독자와 소설이 생생히 교감하는 순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소설은 여전히 미완성인 것이다. 
긴 시간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열렬히 소망하는 오직 하나는독자를 통해 비로소 소설이 완성되는 그 순간의 교감이다. 그 소망 하나에기대어 작가는 세상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침잠하여 소설을 쓰는 것이다.

진지하고 우호적인 형태이든, 혹은 거칠고 과격한 형태이든 간에 미리

유포되는 전문독자들의 독후감은 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한다. 그런 선입견은 자칫 작가에게는 소망을, 독자에게는 감동을, 소설 그 자체에는완성의 기회를 앗아가는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순을 쓰면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이 전부
‘첫 독자이길 꿈꾸었다. 소설에 관해 유포된 어떤 독후감에도 침범당하지 않은 순수한 첫 독자의 첫 독후감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

소설의 제목을 정하면서 많이 망설였다. 『모순』이라는 추상적 개념어를 가장 구체적인 현실을 다루는 소설의 제목으로 삼기에는 좀 무겁다는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였다. 이론상의 진실과 마음속 진실은 언제나 한 방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모순』은 무엇을 따라도 모순의 벽과 맞닥뜨려지는 인간과 삶에 관한 진술이었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 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이상 구체성을 띤 제목은 없을 터였다.

8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레 변해버린 요즘, 불안하고 당황스럽기만 한 시절에 소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용기를 잃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 이 소설을 시작했으나, 모순으로 얽힌 이 삶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1998년 여름 양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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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는 내린 눈이 사람들 발길에 짓밟히는 모습을 진정으로 보기 힘들어했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눈을 확인하는 일이 이모 인생에 닥쳐온 최고의 고통인 것처럼 굴었다. 나는 축축하게 젖어오는 이모의 뜨거운 손을 잡고 어두운 거리를 달렸다. 달리는 우리두 사람의 머리 위로 눈은 점점 푸지게 쏟아지고 있었다.

참 이상한 밤이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내내 그 밤이 이상했고 이모가 이상했다. 그래서 마음자리가 오래 뒤숭숭했다.
그 밤, 첫눈은 기다리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채워줄만큼 많이 내렸다. 폭설은 아니었지만 다음날까지 세상의 모든 지붕 위에 소복이 쌓인 흰 눈을 즐길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모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잡던 그 시각에는 별로 감동적인 적설량은 아니었다.
쌓이는 눈을 볼 수 있는 곳, 누구에게도 짓밟히지 않고 고스란히 추운 땅을 덮고 있는 흰 눈을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호흡이 가빠서 주저앉을 지경이 되어서야 이모와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이번에도 내가 그 사실을 이모에게 일러주었다. 여기는 서울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강남의 번화가이고, 뒷골목까지 촘촘하게 모여있는 술집과 음식점과 노래방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첫눈 때문에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달리는 틈틈이 이모를 설득했다. 좀처럼 내 말을 믿으려

들지 않던 이모가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달리기를 멈추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 이젠 됐어. 그만 돌아가자. 난 택시를 타면 돼. 나부터 갈게"
이모는 그럴 수 없이 침착했다. 여태까지 한 짓은 모두 그냥 해본 장난이었다는 듯이. 실제로 택시를 타고 떠나면서 이모가 남긴 작별의 인사가 그랬다.

"모처럼 신나게 잘 놀았다. 진진아, 주책없는 늙은 이모하고 놀아줘서 고맙다. 안녕!"
첫눈 내리는 거리에 남겨진 나는 얼마나 황당했던지. 이모는 진짜 나와 신나게 놀고 싶어했는데 혼자 여러 가지를 유추하고 분석했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게 여겨지던지. 그래도 여전히 장난이 아니라고 우기는 내 속마음은 또 얼마나 강렬했던지.

이모와 헤어져 집에 돌아오니 김장우에게 두 번, 나영규에게 한번, 그렇게 세 통의 전화 메모가 있었지만 나는 두 사람 모두에게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나영규에게 전화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김장우에게 하기에는 내 감정이 영 복잡했다. 
그에게 전화를 하면 이모에 대해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모와 함께 첫눈 오는 거리를 달리다가 왔는데 아직도 해괴한 기분이라고, 이모한테 내가 홀린 것 같다고, 그런 이야기를 그에게 하고야 말 것 같다는 위기감을 느꼈다.

내가 여태도 고백을 하지 않았기에 김장우에게 내 어머니는 이

한 일은 이모가 추천한, 아니 이모를 사로잡은 노래, ‘헤어진 다음날‘을 반복해서 듣는 것이었다. 얼마나 되풀이 그 노래를 들었던가. 마침내 나는 가사집을 보지 않고도 노래를 따라 부를 수가있게 되었다.

그대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아무렇지도 않았나요.
혹시 후회하고 있진 않나요. 다른 만남을 준비하나요.
사랑이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가봐요.
그대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 수 없이 길어요.
어제 아침엔 이렇지 않았어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오늘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모든 것이 달라져 있어요.
사랑하는 마음도 함께 가져갈 수는 없나요.
그대 떠난 오늘 하루가 견딜 수 없이 길어요.
날 사랑했나요.
그것만이라도 내게 말해줘요.
날 떠나가나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나영규와 헤어진 다음날 내 기분은 어떤 것일까.
나와 헤어진 다음날 나영규의 기분은 어떤 것일까.
방바닥에 턱을 괴고 엎드려 그 슬픈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이 노래는 나의 노래가 아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되고 있었다.

진진아
지난 며칠간 너에게 편지를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또 했는지, 정작 지금 편지를 쓰는 순간에는 너무 지쳐서 준비했던 그 많은 말들을 떠올릴 힘이 나지 않는다.
이 편지를 너한테 보내야 한다는 결심은 아주 쉽게 했었어. 너한테는 미안한 일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밖에 없었어. 너라면 내가 다하지 못하고 가는 내 삶에 대한 변명을 마저 채워줄 수 있을 것 같았지. 너라면 나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어.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봐. 나는 정말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내 인생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것 말야. 
어려서도 평탄했고, 자라서도 평탄했으며,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는 더욱 평탄해서 도무지 결핍이라곤 경험하지 못하게 철저히 가로막힌 이 지리멸렬한 삶.
그래서 그만 끝낼까 해.

나는 늘 지루했어. 너희 엄마는 평생이 바빴지. 새벽부터 저녁까지 돈도 벌어야 하고, 무능한 남편과 싸움도 해야하고, 말 안듣고 내빼는 자식들 찾아다니며 두들겨 패기도 해야 했고, 언제나 바람이 씽씽 일도록 바쁘게 살아야 했지. 그런 언니가 얼마나 부

러웠는지 모른다.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 사는 것처럼 한번 살아보는 상상도 적잖이 해보았지. 하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너무나 튼튼한 성곽에 갇혀 있었고, 성곽을 부수자니 마음을 다칠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

나 하나를 위해서 그렇게까지, 나 때문에 그러는 것, 나는 정말 못견디겠더라.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묵묵히 사는 길도 있는데, 난 그것도 안 돼. 정말 안 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서, 진진아
나, 여기서 그만 이 생을 끝내기로 했다.

죽는 일보다 사는 일이 훨씬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거든. 나는 용기가 없어서, 너무나 바보 같아서, 여러 사람이 크게 다치는 대형사고를 만나면 절대 생존자 명단에는 오르지 못할 위인이라는 것 잘 알아. 그러니 이 죽음도 뜻밖에 만난 하나의 사고라 여기자진진아
사고 뒤처리를 너한테 맡기고 가는 이모를 제발 용서해주길.
네가 이 편지를 읽을 시간이면 나는 아마 떠났을 거야. 그때 나한테 와줘. 와서 나를 수습해줘. 이모부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그 이후일 거야. 숫자에 약한 내가 거듭거듭 시간을 계산하고 우체국에 가서도 물어보고 했으니 설마 틀리지 않겠지. 진실로,
이 마지막 일에는 실수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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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지적이 지금의 주리처럼 나쁜 결과에 대한 동기로 설명되는 일은 적절치 못한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주리에게 한번쯤은 내 아버지를 설명할 수도 있겠다고. 어쨌거나 내가 좋아하는 이모의 착한 딸이었다. 나는 계속 노력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어.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우리들 머릿속을 오고 가는 생각, 그것을 제외하고 나면 무엇으로 살았다는 증거를 삼을 수 있을까. 우리들 삶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이 아버지가 가르쳐준 중요한 진리였어. 아버지가 잘못한 게 있다면 너무 많이 생각했다는 것이지. 자기 용량을 초과해버린 거야. 그러면 곤란하다는 것도 우리 아버지가 내게 남긴 교훈이고.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이 한평생 살고도 못 가르쳐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어. 그것으로 이미 우리 아버지는 자식한테 해줘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봐."
주리는 조용했다. 

술꾼이고 건달이며 성격파탄자인 아버지를 너는 정말 용서했니, 라고 그 침묵이 묻고 있었다. 나는 기꺼이 주리의 침묵에 대답했다.
"아버지는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었어. 난 아버지를 사랑해."
"너희 아버진"

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있다.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무엇, 부딪쳐 깨지더라도 할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장렬한 무엇. 그 무엇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힘이 사랑이라면,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의 손을 잡았다.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서 처음으로 나, 안진진의 사랑을 상면한 이후 내 기분은 급격히 저조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나는 다만 이것이 사랑인가 하고 사랑을 묻다가 이것이 사랑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답했을 뿐이었다.

오직 그것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가라앉기만 했다. 걸음은 자꾸 허방을 디뎠고, 눈길은 쓸쓸하게 텅 빈 허공을 헤매었다. 마음자리 어딘가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겨서 거기로 가을 찬바람이 쉭쉭 드나들고 있었다.

나는 당황했다. 누구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사랑을 만난 다음이 이렇다는 고백을 나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 자매에게서 물려받은 기질로 잡다한 책들을 제법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영화광은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도 많이 보았는데, 그렇다면 모든 책과 영화들이 나를 속인 것이었을까. 사랑을 맞은 후의 느낌이 이토록 황폐한 것임에도

그가 물었다. 편안한 음성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꾼. 아, 지독한 술꾼."
김장우가 나를 끌어당겨 품에 안으며 한탄했다.
"왜 그랬어?"
"뭘요?"
필름이 끊겼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나는 조심스레 되묻는다. 내가 또 무슨 짓을 했는가.
"저 아래 나이트클럽에서 말야. 안진진이 날 때렸어. 기억 나?

내 뺨을 치고 내 등을 마구 두들겨 팼지. 날 가두지 말라고, 무섭다고 그랬어 마구 큰소리로 외쳤어. 가두면 죽이겠다고까지 그랬지. 내가 안진진을 그렇게 괴롭혔나 생각하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한번 물어보자. 안진진한테 나는 감옥이니?"

감옥 간수? 내가 그랬다고?
아, 나는 전율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대사였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난동을 부리던 그날 밤, 아버지가 말했었다. 당신은 나를 가두는 간수 같았어, 당신은 몰라, 그 절망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내 속에 아버지가 있었다. 행방불명인 아버지가 내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온몸이 떨리는 것을 감추기 위해 나는 더욱 더 김장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를 안고 있는 김장우의 팔에도 더욱 힘이 가해졌다.

"대답해봐. 나, 너한테 감옥이 될 것 같아?"
"아니요. 절대로 아니에요. 내 말은, 그 말의 뜻은, 장우씨를 너

무 사랑하게 될까봐 무섭다는 뜻이었어요. 정말이에요. 진심이에요."
"정말?"
"그래요. 어제 처음으로 확실히 알았거든요. 내가 지금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그래서 감당하기가 어려웠어요. 사랑은 힘이 들어요."
그에게 거듭거듭 다짐했던 대로 내가 그에게 한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술이 깬 다음날 아침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하는 말들이 모두 다 진실이었듯이.

나는 그날 아침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어머니를 사랑했으므로 나와 진모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또한 절대적이었을 것임을.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이란,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거리에서나, 비어있는 모든 전화기 앞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전화의 구속은 점령군의 그것보다 훨씬 집요하다.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란 단 두 가지 종류로 간단히 나눌 수 있다. 전화벨이 울리면 그 혹은 그녀일것 같고, 오래도록 전화벨이 울리지 않으면 고장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란,
버스에서나 거리에서 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유행가의 가사에 시도 때도 없이 매료당하는 것이다. 특히 슬픈 유행가는 어김없이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의 무늬를 만든다. 사랑하는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혹은 무의식적으로든 이별을, 그것도 아주 슬픈 이별을 동경한다. 슬픈 사랑의 노래들 중에 명작이 많은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유행가는 차마 이별하지는 못하지만 이별을 꿈꾸는 모든 연인들을 위해 수도 없는 이별을 대신해 준다.
유행가는 한때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시작한사람들에게 대물림되는 우리의 유산이다.

사랑이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고 무심히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다. 자신의 얼굴에 대해 생애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의 눈과 코와 입을 그윽하게 들여다보는 나. 
한없이 들여다보는 나.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며칠 동안 사랑에 집착했다. 그리고 확인했다. 전화에 자유롭지 못한 나, 유행에 민감한 나, 거울 속의 내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는 나…………….
모든 것이 다 사랑이었다. 위험과 안전을 동시에 예고하는 붉은신호등의 사랑이 맞았다. 나는 김장우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약간의 무리를 감수한다면 사랑에 관한 앞서의 세 가지 메모는 나영규에게도 유효한 것이었다.
약간의 무리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시간의 필요일 뿐 운명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김장우와의 사랑을 확인했던 시간만큼나영규와의 사랑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찰했다.

우선 전화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는 나영규의 경우에 있어서도 거의 의심할 바가 없었다. 유리 천장에서 장대비가 쏟아지던 그날 밤 이후에도 우리의 관계는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물론 사랑 혹은 결혼을 향한 발전이었고 그 모든 것이 다 전화의 공로였다.
정식으로 청혼을 했고 빠른 시간 내에 나의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솔직히 나는 나영규와의 만남을 의식적으로 피해 왔었다. 만날 때마다 나영규는 어김없이 숙제에 관해 질

문했다.
"이제 대답해줄 수 있지요? 어서요. 진진씨, 어서 대답해봐요.
나는 들을 준비가 다 되었어요."
그러나 나는 답변이 준비되지 않았다. 내가 나영규와 아주 많이 다른 점은 매사에 준비가 느리다는 점일 것이었다. 나는 처음 말했던 대로 계속해서 ‘3개월론‘을 밀고 나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석 달만 기다려줘요. 나는 많이 느려요. 영규씨보다 생각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채근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영규는 더 이상 나를 재촉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는 미래에 대해서 비관적인 상상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일반적으로 모든 여자들이 결혼을 결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3개월은 걸리는 모양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이 평균적이든 아니든 나또한 그 이상 끌 생각은 없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명료해지리라.
이미 아주 많은 부분이 명료해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벌써 두달이 지난 지금, 나는 내가 나영규에게 해야 할 대답이 무엇인지 윤곽은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깊은 밤, 나영규와 전화를 하고 있으면 문득 이 남자와도 사랑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나를 사로잡곤 했다. 나영규와는 만나서보다 전화로 대화를 나눌 때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를 하면 나도 아주 많은 이야기를 스스럼 없

이 할 수가 있었다. 전화선 저쪽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음성은 다정했고 섬세했다. 나는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 하염없이 그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럴 때면 이 남자와 결혼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그는 늦은 저녁에 자주 전화를 했고, 나는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화장실에 갈 때도 전화기를 들고 갔다. 만나자는 그의 요구는 적극 피했지만 전화가 올까봐 퇴근 후에는 집 앞 가게로의 짧은 외출을 삼가는 일도 있었다. 이것도 혹시 사랑일까......

유행에 민감해진다는 두 번째 메모도 나영규에게 아주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유행가의 경우에는 오히려 나영규에게 유리한 것인지도 몰랐다. 슬픈 사랑의 노래를 들을 때, 나는 늘 나영규를 떠올리곤 했다. 내가 그를 버린 다음, 그가 저 노래를 들으면 어떤 심정일까.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나영규의 마음을 찌를 저 노래. 나는 나영규의 마음이 되어 슬픈 노래를 듣는 일이 많았다. 이것도 사랑일지 몰랐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는 사랑에 관한 세번째 메모는 확실히 김장우보다 나영규를 생각할 때 훨씬 더 경이로웠다. 이것은 숨길 수 없는 진심이었다. 언젠가 말한 대로 나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오직 결혼적령기에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미덕인 인간이었다. 거리에서 만인의시선을 받을 만한 미모도, 뭇 남성들의 표적이 될 만한 자랑스러운 배경도 전혀 없다. 그것이 부끄럽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

그것 때문에 사실 나는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내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겠다는 지난봄의 그 부르짖음이,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온 힘을 다해 탐구하는 것이라던그 봄날 아침의 다짐이 무위로 그치고야 말리라는 공포도 느꼈다.
나는 정녕 그날의 다짐을 성취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스물다섯 이전의 졸렬했던 내 인생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부터라도 주어진 내 삶에 전력투구하고 싶다는 그 가상한 각오가 이렇게 무너지는가. 나에게 있어서 결혼은 전력투구할 내 삶의 중대한 출발점이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여러가지 결단 중에서 나는 결혼을 선택한 것이었다.

내가 결혼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제발 부탁이니, 누구도 비난하지 말기를 바란다. 여자 나이 스물다섯에 할 수 있는 결단이 꼭 결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처럼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결혼 대신 공부를 택하는 사람도 있고, 결혼 대신 자기만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으며, 결혼을 비웃으며 결혼할 나이에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는 여자도 분명 있다. 
나라고 해서 그 모든 길들에 대해 충분히 사색하지 않았겠는가. 이미 섭렵은 끝났다. 사색이 깊은 나머지 인생 자체가 졸렬해지고 말았다면, 이젠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명제 앞에서, 사랑이라는 난해한 감정 앞에서 거듭 혼돈을 되풀이하고 있었으니 괴로웠던 것은사실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마침내 중요한 단서 하나를 찾아내었다. 김장우와 나영규에게로 향하는 화살표의 모양이 어떻게 다른지 변별해낼 수 있는 하나의 단서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유사사랑인지 알 수 있는 하나의 단서 미리 말하지만 이것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특별사유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다 통용되는 앞서의 세 가지 사랑 메모와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으로 사랑을 가려냈다.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나는 나영규 앞에서 솔직했다. 동시에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말만 하지 않았을 뿐, 그 외 모든 정황은 있는 그대로 털어

놓았다. 나영규는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을 가감 없이 알고 있다. 나는 그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 별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김장우한테는 그한테는 달랐다. 이모를 어머니라고 속인 것은 우연의 장난이었다 하더라도 김장우에게 내 아버지를, 내 어머니를, 내 남동생을 말하는 일은 고통이었다. 

현실 속에서 늘 우울한 김장우에게 나는 진정 보다 밝은 나, 보다 활기찬 나, 보다 어여쁜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이모를 어머니라고 믿으며 행복해 하는 그에게 양말을 팔았고 지금은 김치를 팔고 있는 어머니를 고백할 수 없었다. 지금 그가 품고 있는 나에 대한 사랑의 부피가 감소될 어떤 말도 절대 하고 싶지 않다. 그에게 감추었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사랑이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은 결코 아니다. 김장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사랑의 유지와 아무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이 욕망을 멈출 수가 없다. 이것이 사랑이다. 

김장우와 함께 떠났던 서해바다에서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장렬한 비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누추한 나는 너무나 부끄러운 존재였다. 부끄러움을 누더기처럼 걸치고 그토록이나 오래 기다려온 사랑 앞으로 걸어 나가고 싶지 않다. 저 바다가 푸른 눈 뜨고 지켜보는 앞에서는 더욱.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누추한 현실

을 보일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일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다.

내가 두 사람 앞에서 판이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던 이유가 이것으로 설명되었다. 나는 김장우를 사랑하고 있다. 나영규에게는 사랑과 유사한 감정의 의사 사랑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일은 나영규에게 이 사실을 통고하는 일뿐이다. 내가 그에게 약속한  3개월의 유예기간도 서서히 다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무슨 말로 그를 위로해야 되는 것인지 아직 나는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도, 이런 나를 사랑해준 나영규가 진실로 고맙다………….

"니네 엄마한테는 내가 첫눈 보자고 너 불러냈다는 말일랑 아예 말아라."
문득 이모가 내게 다짐을 했다. 이모도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곳에서 추운 겨울을 지내야 할 진모를 생각해봐. 첫눈 오면 겨울인데, 내가 나빠. 난 정말 나쁜 이모야. 이러면 안 되는데......."
이모의 얼굴은 미안함으로 발갛게 달아올랐다. 이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미안하면 금방 얼굴이 붉어지고, 슬프면 금방 눈물이 고이는 사람. 이모에게는 모든 감정이 다 진실이었다.
"괜찮아, 이모, 진모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한은 엄마가 모두 손을 써놓았어요. 우리 엄마, 세상일에 대해선 나보다 훨씬 유능하다고. 그런 점에서 나는 아주 바보거든."

"그래, 넌 좀 바보야. 날 닮았어......."
이모는 자신의 코트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내 손을 꽉 쥐었다.

나는 이모를 많이 닮았지만 그러나 이모의 딸은 아니었다. 내가 이모의 딸로 태어났다면 나도 주리처럼 답답하고 재미없는 인간으로 성장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세상의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

회사의 부장 한사람이 중증의 당뇨병 진단을 받고 나서 사흘을 울었다고 고백했다. 체구도 크고 평소 성격도 괄괄한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당장 위중한 병도 아니고, 병원에서 정해주는 식단표대로 먹으며 평소처럼 살면 되는 일인데왜 그러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자네들은 몰라. 이젠 맛있다고 배부르게 밥 먹는 재미가 없어졌어. 밥 한 공기 이상 먹으면 죽을 줄 알래. 그뿐인 줄 알아? 퇴근후 술 한잔 하는 맛으로 사는 나 같은 사람보고 술 담배 안 끊으려면 병원에 오지도 말래는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젓갈이나 장아찌 같은 것인데 그것도 절대 안 된대요. 그것 말고도 이래라저래라 하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이제 세상 사는 재미 다 끝났구나 싶으니 어찌나 절망적이던지. 이러구러 살다보면 또 익숙해지겠지만, 온갖 음식 다 먹다가 이제 와서 그렇게 살라면 어떡하냐구. 처음부터 아예 그런 음식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혹 견디기 쉬울는지 몰라도…………."
거구의 중년사내를 사흘 울린 식이요법,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주리에게는 처음부터 절망 따윈 없었을 수도 있었다. 젓갈이나 장아찌로 비유할 수 있는, 삶의 다른 방법들을 주리는 애시당초 알지 못한 채 성장했다. 세상이 그 애를 단련시킬 수도 있었겠으나 이모와 이모부의 성실한 방어로 그런 기회들은 철저히 원천봉쇄되었다.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이모와 내가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첫눈이 올지도 모를 저녁의 식사 메뉴는 해물 스파게티였다. 발제자는 이모였고 나는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선택의 문제가 닥쳤을 때는 누구 한 사람의 강렬한 주장만큼 고마운 일도 없는 법이었다.
"난 말야, 로마에서 먹었던 새콤하고 달콤했던 스파게티 맛을잊을 수가 없단다. 서울에서는 어디서도 그런 맛을 만날 수 없어서 내가 직접 만들어보기도 여러 번 했는데 늘 실패였지. 오늘 다시 로마의 추억에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래서 나 안진진까지 덩달아 언제 갈지 모를 로마를 꿈꾸며 멋진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로마의 이모부는 어땠어요? 이모는 보나마나 오드리 헵번처럼 굴었을 것이고."
"이모부?"
갑자기 이모부는 왜냐고 눈을 크게 뜨는 이모.
"아니, 이모부랑 같이 간 것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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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다양한 논의들이 있지만, 어떤 결론에 이르든 간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은 왕처럼 살고 어떤 사람은 돈 3만원이 없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어렵게 사는 것은 정의라고 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자유를 어떻게 배분해야 정의로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직장에서나 일상에서 조그마한 이익도 막상 분배하려면 각자 입장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에 쉽지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다만,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생각해보는 것은 좀더 쉬울 것 같습니다. 
저는 횡단보도가 참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행자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면 큰 버스나 10톤 트럭을 비롯한 모든 차들이 일제히 멈추어 섭니다. 쌩쌩 달리던 그 모든 자동차들을 힘으로 다 멈추어 세우려면 얼마나 큰 물리력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법은 그 일을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해냅니다. 신호등만 바뀌면 강자인 차들 앞을 약자인 보행자들이 유유히 평화롭게 이야기도 나누고 손도 잡으면서 건너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횡단보도가 보행자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보행자들이 초록불일 때 횡단보도로 다닐 수있도록 함으로써 나머지 더 긴 시간과 더 넓은 공간에서는 자동차들이 마음껏 달릴 수 있습니다. 운전자와 보행자가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운전자

가 되고, 누구나 차를 놓고 걸어 다닐 때는 보행자가 됩니다. 그러니 대체로 횡단보도 시스템에 대해서는 별 불만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횡단보도에서 강자와 약자, 다수와 소수가 공존할수 있는, 그래서 정의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봅니다. 강자나 다수의 전반적인 우위를 인정하되 약자나 소수도 숨을 쉬고 다닐 수 있는 길을 터주고 

강자와 약자가 언제든 입장이 바뀔 수 있는 순환구조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굳이 논리적으로 해부하자면 
하나는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으로 다닐 수있도록 횡단보도를 깔아주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운전자와 보행자가 순환할 수 있도록 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주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공허한 이상론보다 강자의 리그를 인정해 주면서 약자의 최소한을 높여가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횡단보도를 늘려가야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호화롭게 살지는 못해도 누구나 
적어도 사는 듯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책을 구상한 것은 2021년 「알쓸범잡」 방송에 출연한 직후부터였고, 그때부터 2024년 초까지 법무부에서 3년 남짓 일하면서 틈틈이 이 책에 관한 생각을 가다듬고 또 글로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2024년 2월에 저는 공직을 떠났습니다. 세어보니 만 23년간 공직에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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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못하는 아버지에게 음식을 주지 않고 방치해 존속살해죄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사건입니다. 그의 아버지가뇌출혈로 쓰러져 온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코에 끼워진 호스로 음식을 계속 주입해주고, 대소변도 치워주고, 욕창이 생기지 않게 2시간마다 체위도 바꿔주는 간병인이 필요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시급 7천원 받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뿐 다른 재산이 없었고, 어머니는 집을 나갔고 고모들은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김씨의 호주머니는 금세 비어갔고 월세 30만원을 여러번 연체했으며 휴대전화와 도시가스도 끊겼습니다. 
김씨에 따르면 어느 날 아버지가 자신에게 속삭이듯 말했습니다. "미안하다. 너 하고 싶은거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라. 필요한 거 있으면 아버지가 부를테니까, 그전에는 아버지 방에 들어오지 마라." 며칠 후 김씨가아버지 방문을 열었더니 부패한 냄새와 함께 아버지의 시신이발견되었고 김씨는 존속살해죄로 체포되어 수사와 재판을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간병비를 다른 가족이나 국가가 마련해줄 수 있었다면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마 아닐 겁니다. 
이사건에는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아버지는 고령화를, 김씨는 청년실업 문제를, 김씨의 가족은 가족해체로 인한 돌봄의 개인화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겪고 있습니다.

제노사이드를 저질렀다는 것은 한 사람으로 치면 사이코패스의 엽기적 살인을 저지른 것 이상으로 패륜적인 행위를 했다는말입니다. 
나치는 유대인 600만명을 비롯하여 슬라브인, 집시,
장애인 등 1천만명 넘게 죽였습니다. 
독일군은 총알을 아끼기 위해서 ‘치클론B‘"라는 살충제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2차대전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 오랫동안 독일의 기성세때는 자국이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패전했기 때문에 그런 책임추궁을 당하는 것일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1960년대 후반 젊은 층을 중심으로 과거 부모 세대들이 일으킨 전쟁이 용인 가능한 수준을 넘어선 범죄였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이후 알려진 바와같이 독일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적극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의 실무 책임자는 아돌프 아이히만(AdolfEichmann)이었습니다. 그는 독일이 패전한 후에 아르헨티나로 도망가서 15년 동안 건설회사 직원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살았으나, 그의 아들이 하필 유대인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딸과 사귀

면서 아버지의 정체를 말하게 되자 그 여자친구가 이스라엘 정부에 신고하는 바람에 결국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 요원들에게 납치되었습니다. 
그는 1962년 사형이 집행되기 전 개월간 재판을 받았는데, 이 재판을 시종일관 관찰한 해나 아렌트(Hannah Arendt)라는 유대인 정치철학자는 아이히만이 악마가 아니라 오히려 성실한 관료였다면서, 사람이 거대한 기계속 톱니바퀴로서 관료제의 타성에 젖을 경우 선악에 대한 판단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제를 제시했습니다. 
거대한 사회구조 안에서 인간은 개인적 도덕성의 수준과 무관하게 악마나 사이코패스가 하는 짓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국내사례 중에서 정치적·사회적 분위기가 범죄를 야기한 경우로는 형제복지원 사건이 떠오릅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에 있었던 부랑자 강제수용소입니다. 

1987년에 이곳의 실상이 세상에 드러나면서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되었을 때 이곳에서 폭력 등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사람의 수가 512명이었습니다. 
이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확인되는 사망자 숫자는 657명까지 늘어납니다. 
그래서 이 사건을 한국판 홀로코스트라고 하고, 형제복지원을 한국의 아우슈비츠라고도합니다. 제가 「알쓸범잡」 첫 방송에서 소개한 사건이기도 한데,
당시 촬영을 위해 그곳에 가보았을 때 1980년대 인권유린의 상

다. 감시와 감독을 해야 할 공무원이나 경찰이 그런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가정폭력도, 학교폭력도, 직장 갑질도, 국가권력의 횡포도 그러한 닫힌 공간에서 창궐하게 됩니다. 
이른바 ‘도가니‘ 사건(인화학교 성폭력사건)도 폐쇄된 특수학교에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군대에서 수많은 가혹행위가 발생하는 것도군이 폐쇄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외부와 단절되어 폐쇄된 공간에서는, 마치 자욱한 연기로 가득 찼지만 환기가 안 되는 고깃집처럼, 고유한 질서와 규율과 문화가 사람들을 통제하게 됩니다. 
폐쇄공간에는 구성원의 최소한의 인권을 보호하는 법의 기능이 침투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모든 닫힌 공간에는 비상구를 내놓아야 합니다. 안에서 밖을 볼 수 있고 밖에서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환기를 시킬 수 있는 창문도 나 있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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