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리와 주혁이한테도 네가 나를 변명해주길 바래. 그 애들은공부가 끝나도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살기로 결심했단다. 내가 없으면 훨씬 홀가분하게 이 땅을 잊을 수 있겠지. 그 애들을 원망하지는 않아. 그 애들처럼 살 수 없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지…………진진아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늦게도 내게 오지 마.
내 마지막 모습이 흉하거든 네가 수정해줘.

내 생애에 이런 편지를 받게 될 줄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이모가 이런 편지를 내게 보내리라고 어떻게 짐작이나 했겠는가.
이모 집으로 달려가면서 쉴 새 없이 부르짖었던 마음속 내 기도는 단 한 줄이었다. 하나님, 이 편지가 이모의 장난이게 해주세요!
제발 장난편지로 만들어주세요!
장난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아니, 절대 그렇게 믿어야 했기에나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혼자 이모 집으로 달려갔던 것이었다. 수선을 피우거나 누구에게 이 사실을 말해버리면 진짜가 되어버릴까 겁이 났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 일이 진짜가 아•니게 만들어야 한다는 마음만 가득해서 다른 것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그러나, 장난이 아니었다. 하나의 열쇠로 대문을 열고,
나머지 열쇠로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 안을 채우고 있는 기이한•정적이 단숨에 그 사실을 깨닫게 했다. 

"물론 미국인이야. 엄마한테는 충격이었겠지. 엄마는 우리가 돌아오기를 바랐지만, 우리에게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있었어. 엄마가 그것 때문에 죽음을 택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우리 엄마는 그렇게 못난 분이 아니셨어."
나도 시인했다. 
이모는 그렇게 못난 사람이 아니었다. 삶 대신죽음을 선택한 것 말고는 내가 알고 있는 이모는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그것조차도 나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모 같은 사람이 뿌리 내리며 살기론 이 세상이 너무 얇았던 것이다.
이모는 그렇게 떠나갔다. 이모가 이 세상과 하직하는 사흘 동안 하늘은 내내 음울했고 겨울 끝의 찬바람은 한없이 모질었다. 
내머릿속은 모래를 가득 채운 것처럼 부석부석했고, 먹먹한 가슴 한켠으로 쉼 없이 이모의 편지 구절들이 흘러내렸다.

진진아, 나,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모든 일을 끝내고 이모 집을 떠나던 날, 나는 거실의 오디오박스위에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는 몇 장의 시디를 발견했다. 이모가 자주 듣던 유행가들이었다. 나는 이모의 유행가들을 하나씩 찬찬히 살펴보았다. 내 사랑하는 이모의 심금을 울린 노래들, 그노래들 속에 ‘헤어진 다음날‘도 있었다.

이모가 죽고도 세월은 흘렀다.
이모를 죽인 겨울이 지나고 봄은 무르익어서 사방에 꽃향기가 난만했다. 겨울이 있어 봄도 있다.
나도 세월을 따라 살아갔다. 

살아봐야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나는 그 모순을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일 수는 있다. 삶과 죽음은 결국 한통속이다. 속지 말아야 한다.
살아있는 사람들의 사소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죽기 전에는 아무도 인생의 보잘것 없는 삽화들을 멈추게 하지 못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액자 안에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을 걸어 놓으며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이모부는 건재하다. 이모의 엄청난 배신으로 상처는 입었으나,
정시에 출발하고 정시에 도착하기 위해 애쓰는 기차를 멈추게 하지는 못하였다.
주리는 미국에서 푸른 눈과 밤색 머리칼을 가진 남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내 어머니에게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의 주리는 신부답게 활짝 웃고 있었다. 그러나 곰곰 살펴보니 주리의 입은 활짝 열려있지만 주리의 눈은 웃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할 차례다.
나는 곧 결혼한다. 어머니와 이모에 이어 나도 4월의 신부가 된다. 물론 4월 1일 만우절은 아니다. 

일 년 전쯤의 어느 날 아침,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해. 꼭 그래야만 해!"라고 부르짖었던 나의 다짐이 마침내 결혼이라는 실천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 다짐에 충실했던 일 년이었다. 
살필 수 있는 만큼은 다 살폈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4월의 결혼식에 내 손을 잡아줄 남자는 그래서 나영규가 되었다. 일이 그렇게 되었으므로 ‘헤어진 다음날‘은 나와 김장우의 노래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헤어진 다음날들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한 이모와는 달랐다. 나는 잘 견디었다. 김장우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시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이모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아야 옳은 것이었다.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일 년쯤 전, 내가 한 말을 수정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나는 ‘이야기‘와 ‘감동‘을 젖혀놓고 행해지는 소설에 관한 모든 논의에 무관심하며 또한 회의적이다. 
마찬가지로 단지 이야기만 주장한다거나, 분석해서 얻어지는 감동만을 주장하는 논의 역시도 믿을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이론들에는 작가의 자리가 없다. 작가의 자리가 없는 소설, 혹은 작가의 정신이 없는 소설 논의는 일시에 소설이란 장르의 탄생을 무화시켜 버리고 만다.
일상의 남루를 벗겨주고 상실감을 달래주는 작가의 자리에 대해, 요즘 나는 다시 생각하고 있다.

하나의 소설이 쓰여지고 그것이 책으로 묶였다고 해서 소설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읽는다는 행위가 없으면, 읽기를 통해 독자와 소설이 생생히 교감하는 순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소설은 여전히 미완성인 것이다. 
긴 시간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열렬히 소망하는 오직 하나는독자를 통해 비로소 소설이 완성되는 그 순간의 교감이다. 그 소망 하나에기대어 작가는 세상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침잠하여 소설을 쓰는 것이다.

진지하고 우호적인 형태이든, 혹은 거칠고 과격한 형태이든 간에 미리

유포되는 전문독자들의 독후감은 소설에 대한 선입견을 조장한다. 그런 선입견은 자칫 작가에게는 소망을, 독자에게는 감동을, 소설 그 자체에는완성의 기회를 앗아가는 적이 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모순을 쓰면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사람이 전부
‘첫 독자이길 꿈꾸었다. 소설에 관해 유포된 어떤 독후감에도 침범당하지 않은 순수한 첫 독자의 첫 독후감들을 많이 만나고 싶었다.

소설의 제목을 정하면서 많이 망설였다. 『모순』이라는 추상적 개념어를 가장 구체적인 현실을 다루는 소설의 제목으로 삼기에는 좀 무겁다는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였다. 이론상의 진실과 마음속 진실은 언제나 한 방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모순』은 무엇을 따라도 모순의 벽과 맞닥뜨려지는 인간과 삶에 관한 진술이었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 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이상 구체성을 띤 제목은 없을 터였다.

8
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레 변해버린 요즘, 불안하고 당황스럽기만 한 시절에 소설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용기를 잃고 주저앉은 사람들에게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어 이 소설을 시작했으나, 모순으로 얽힌 이 삶은 여전히 어렵기만 하다.

1998년 여름 양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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