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 안에서도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꼭 있어야 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것이 우리 집의 풍경이다.
잡다한 것들로 채워지는 순간 선택할 것이 많아져 우왕좌왕 시간과 열정을 허투루 쓸 확률도 높아진다.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것에 소유당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착각한다. ‘내가 무엇을 소유한다‘라고.
하지만 그 소유물에 쏟는 에너지를 생각하면우리는 도리어 뭔가를 자꾸 잃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내 생각은 내가 우리 아이들과 나누어온 교감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제삼자로부터 가끔 오해를 사기도 한다. 옛날부터 그런 일이 자주 있었다. 그때마다 구차하게 일일이 다 설명하기도 어렵고 참 난감했다. 그러나 흥윤이와 흥민이는 내 행동이 기분 내키는 대로 감정에 치우쳐서가 아니라 뚜렷한 의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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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린은 말문이 막혔다.
"오래전 언젠가 네 눈빛이 나에게 알려줬지. 증오가 아니라 환상이 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그래서 나는 다른 꿈을 꾸게됐어. 네가 지상을 말할 때 반짝이는 눈빛이 좋아서, 너를 먼 곳까지 데려다주고 싶었어. 네게 세계를 돌려주고 싶었어. 어쩌면이 행성 전체가, 네가 마땅히 거닐었어야 할 곳이니까."
"전 이런 걸 바란 적이 없어요!"
"아니, 너는 원했어. 태린. 넌 나와 지상에 가고 싶어했잖아?
그리고 지금도....."
이제프가 태린을 빤히 보며 말했다.
"지금도 그렇지."

그게 아니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지만 태린은 입을 열 수없었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랬으니까. 태린은 이제프와 지상을 걷고 싶었다.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지금은, 마음이 무너지는 아픔을 견디며 말해야 했다.
"이런 방식으로는 아니에요. 나와 무관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을 도구 삼아 가겠다는 게 아니에요. 

나는 그냥・・・・・・ 그곳으로 갈 거예요. 변이를 감수하고, 고통을 감수하고. 
이전과 같이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갈 거예요. 
이제프, 당신의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날 보내주세요."

이제프가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태린도 입을 다물었다. 

이제프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손에 총을 들지도, 다른 무기를 꺼내지도 않은 채. 그저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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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검이 모두 끝났다. 보조인 한 명이 자동 수레에 짐을 모두 실었고, 나머지 한 명은 계단 앞으로 이동했다. 이제프가 말했다.
"서약 의식을 하겠습니다."
마일라와 네샤트가 손을 들어올리는 것을 보고서야 태린도 뒤늦게 손을 들어올렸다. 

시험을 위해 암기할 때에는, 이렇게 쫓겨나듯 임무를 떠나며 파견자 선언문을 외우게 되리라곤 생각지못했다. 

우리는 인류를 위해 일한다. 
우리는 진실과 지식의 수호자로서 지상을 되찾기 위해 떠난다. 
우리는 정직하고 명예롭게행동하며 신중하게 판단할 것을 맹세한다.………… 

한때 동경했던이 선언이 유언처럼 느껴지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럼에도 이 선언을 외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것보다는 나았지만, 태린은 무거운 마음으로 선언을 마쳤다.
이제프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전송 신호가 끊어지는 지점까지 디바이스를 통해 지시를 전달하겠습니다. 부디 행운이 따르기를."

•출발 전 형식적인 절차인 듯, 이제프가 파견자들에게 악수를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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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가 지역에 의미 있는 사업을 하나 했다?
6개월의 실허이 끝나고
젊은이들이 떠난 뒤에도 산복빨래방이
이어지고 있다는
에필로그가 더 반갑고 고맙고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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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루프

소설 앤솔러지를 만들 때, 그러니까 여러 작가가 같은 주제로작업해 한권의 책을 묶을 때 내가 제일 신경 쓰는 요소는 ‘어떻게 해야 제일 눈에 띄는 걸 쓸 수 있을까‘다. 유치하지만 이게 솔직한 본심이라 작가의 말에서나마 고백해 본다.
「고백-루프」가 수록된 소설집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돌베개)의 테마는 ‘청소년 퀴어 로맨스‘였다. 사랑에 빠진 퀴어 청소년이 나오는 이야기. 같은 조건을 공유하는 여러 편의소설 중에서 가장 독특한 것을 쓰려면 어떤 요소를 더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루프 장르의 법칙을 떠올렸다.
콤플렉스가 뚜렷해서 심사가 조금 꼬여 버린 사람과 그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누군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동을 나는 무척 좋아한다. 개인적으로는 이것을 『금오신화』 같다.‘고 표현한다. 자기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는, 알다 못해 확대 해석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갑작스레 다가오는 사랑이 이롭고도 두려울 수밖에 없다. 상대방은 자기와 대조적으로 완벽하게만 느껴지고, 그런 상대방이 자기를 좋아하는 게 진심일리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결핍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사랑은 꼭 필요하다. 사랑은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처음으로 자신을 긍정할 근거가 되기도 하니까.

결국은 그 어떤 사랑도 기적의 예외가 아니다. 
사랑이 지닌 놀라운 속성을 생각해 볼 때, 루프라는 장치도 따지고 보면 대단히 놀라울 것은 없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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