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는 다양한 논의들이 있지만, 어떤 결론에 이르든 간에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떤 사람은 왕처럼 살고 어떤 사람은 돈 3만원이 없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어렵게 사는 것은 정의라고 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자유를 어떻게 배분해야 정의로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직장에서나 일상에서 조그마한 이익도 막상 분배하려면 각자 입장에 따라 다른 기준을 제시하기 때문에 쉽지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다만,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을 생각해보는 것은 좀더 쉬울 것 같습니다. 
저는 횡단보도가 참고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보행자 신호등에 초록불이 들어오면 큰 버스나 10톤 트럭을 비롯한 모든 차들이 일제히 멈추어 섭니다. 쌩쌩 달리던 그 모든 자동차들을 힘으로 다 멈추어 세우려면 얼마나 큰 물리력이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법은 그 일을 적어도 물리적으로는 힘 하나 들이지 않고 해냅니다. 신호등만 바뀌면 강자인 차들 앞을 약자인 보행자들이 유유히 평화롭게 이야기도 나누고 손도 잡으면서 건너갈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횡단보도가 보행자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보행자들이 초록불일 때 횡단보도로 다닐 수있도록 함으로써 나머지 더 긴 시간과 더 넓은 공간에서는 자동차들이 마음껏 달릴 수 있습니다. 운전자와 보행자가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구나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운전자

가 되고, 누구나 차를 놓고 걸어 다닐 때는 보행자가 됩니다. 그러니 대체로 횡단보도 시스템에 대해서는 별 불만이 없습니다.

저는 이런 횡단보도에서 강자와 약자, 다수와 소수가 공존할수 있는, 그래서 정의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봅니다. 강자나 다수의 전반적인 우위를 인정하되 약자나 소수도 숨을 쉬고 다닐 수 있는 길을 터주고 

강자와 약자가 언제든 입장이 바뀔 수 있는 순환구조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굳이 논리적으로 해부하자면 
하나는 가장 약한 사람들에게 최소한으로 다닐 수있도록 횡단보도를 깔아주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운전자와 보행자가 순환할 수 있도록 순환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주 잘사는 사회를 만들자는 공허한 이상론보다 강자의 리그를 인정해 주면서 약자의 최소한을 높여가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 횡단보도를 늘려가야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호화롭게 살지는 못해도 누구나 
적어도 사는 듯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책을 구상한 것은 2021년 「알쓸범잡」 방송에 출연한 직후부터였고, 그때부터 2024년 초까지 법무부에서 3년 남짓 일하면서 틈틈이 이 책에 관한 생각을 가다듬고 또 글로 정리했습니다. 

그러다 2024년 2월에 저는 공직을 떠났습니다. 세어보니 만 23년간 공직에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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