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우리의 정체성과 소속감을 확인해주고, 항상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하는 일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국가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흠집을 내는 불손한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가폭력은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개념입니다. 폭력은 그것이 발생하고 피해가 생겼느냐가 중요하지 누가 가했느냐에 따라, 또는 상황에따라 타협해서 적용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숱한 국가 폭력을 알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역사적 사실을 통해 그것을 확인했습니다. 

독일의 나치 정권이 저지른 홀로코스트는 널리 알려진 국가 폭력입니다. 
흑인들의 시민권 운동에 대한 미국경찰의 무력 진압, 
미얀마 군대의 로힝야족 학살도 국가 폭력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있었던 4.3 제주 학살, 
5·18 광주 학살, 
경찰의 박종철고문과 살해도 명백한 국가 폭력의 사례입니다.

국가 폭력이 가능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국가에 물리적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 즉 군대와 경찰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국가에 그런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합법성과 정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법치국가에서는 누구도 물리적 힘을 써서 타인에게 해를 입힐 수 없습니다. 물리적 힘으로 해를 가하면 법에 따라 처벌받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국익을 위하고 국민을 보호하며 질서를 유지하는데 군대와 경찰을 동원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바로 그 점이 국가

폭력을 가능하게 합니다. 

‘국가와 국민 보호‘, ‘사회질서 유지‘라는 국가의 책임을 지도자와 정권의 이익을 위해 악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핑계로 국민을 호도하면서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기 때문이지요. 

홀로코스트, 흑인 시위 무력 진압, 로힝야족 학살, 5.18 학살 등이 그런 왜곡된 정당화를 통해 벌어진 국가 폭력입니다.

설사 국가가 저질렀다 해도 대다수는 생명을 빼앗고 신체에 해를 입히는 폭력에는 단호하게 반응합니다. ‘국가 폭력‘으로 인정하는 데에도 별로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폭력은 물리적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명백하게 드러나는 물리적 힘보다 비물리적인 힘을 이용하는국가 폭력이 더 위험합니다. 물리적 힘을 이용한 국가 폭력은 쉽게 드러나는 데다 거부감이 워낙 크기 때문에 웬만해선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수단, 그러니까 국가의 구조를 이용하는 폭력은 피해가 금방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도 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종종 일어날니다. 합법적이므로 국가는 정당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국민도 그렇게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블랙리스트 사건은 구조를 이용한 국가 폭력입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정치적 이념이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고 차별할 목적으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다른 생각을 드러낸 사람들의 이름

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게 했습니다. 문화예술계를 협박해서 정부의 말을 잘 듣게 하려는 속셈도 있었습니다.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문화체육관광부 같은 정부기관이 이 모든 일을 했습니다. 법에 따라 국가의 정책과 결정을 실행하는 준정부기관과 공공기관도 합세했습니다. 

이들은 법과 제도, 정책, 행정 프로그램 등을 이용했습니다. 

그 결과 9천 명에 달하는 문화예술인과 340여 개 단체가 지원 중단과 사업 배제 등 구체적인 피해를 봤습니다. 
끊임없이 감시에 시달렸고 생계가 막막해진 문화예술인이 많았습니다. 

법과 제도를 이용하고 공공기관이 한 일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국가가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감사‘
하는 것은 불법입니다. 

법치를 넘어 평화의 시각으로 볼 때 이것은 구조를 이용한 국가 폭력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대부분은 정부가 보호해야 할 국민에게 이처럼 무서운 폭력을 휘두르는 걸 몰랐습니다.

국가는 문화적 수단을 이용해 폭력을 가하기도 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가장 정교한 방식으로 가해지는 폭력이고, 구조를 이용한 폭력보다 더 알아채기가 힘듭니다. 

국가의 구조와 법을 악용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정부와 그에 속한 사람들은 문화적 수단을 이용하는 데 공을 많이 들입니다. 그래야 구조를 악용하고 물리적 힘을 사용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 있으니까요. 쉬운 예로 나치정권이 유대인을 추방하고 학살하기 위해 만든 문화적 폭력의 도구를

쓰레기 수출은 그러므로 정의와 평화의 문제로 봐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강자인 선진국이 약자인 개발도상국의 약점과 허점을 악용해 골치 아픈 문제를 떠넘기고 쓰레기 처리장 취급을 하니까요. 
전 세계 환경단체들은 자국의 쓰레기를 책임지지 않는 선진국의 비겁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을 비난합니다. 쓰레기를 수입하는 나라 사람들도 "우리는쓰레기통이 아니다."라며 분노합니다. 감당하지 못할 쓰레기를 만들고 그 책임을 약한 나라에 떠넘기는 일은 무엇보다 정의롭지 못합니다. 

경제적으로 힘이 있는 선진국이 힘이 없는 개발도상국을 착취하는 일이니까요. 약간의 이익 때문에 쓰레기를 수입하는 나라들과 거기 사는 사람들에게는 정의와 평화가 없는 세상입니다.

주택이나 정착촌이 들어서면 이스라엘군은 안전을 이유로 주변의 팔레스타인 주택을 강제로 철거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이 이스라엘군이나 정착민과 다투기라도 하면 집단 징벌로 그 사람이 속한 마을의 주택을 모조리 파괴하기도 합니다. 허가받지 않은 불법 주택이라면서 철거하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주택 건설허가를 내주지 않아 생기는 일입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 집을 지었다가 터무니없는 벌금 때문에 스스로 부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을 지원하는 국제단체들이 세운 학교나 병원도 허가 없이 지었다는 이유로 부숴버립니다. 애초 허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인데 말이지요.

분리장벽, 검문소, 정착촌, 주택 철거 등은 두말할 나위 없는 인권침해이고 국제법을 어기는 행위이지만 이스라엘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유대인이 로비를 하는 데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지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힘을 이용해 힘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억압하고 차별하고 핍박합니다.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국제법 위반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말로는 이스라엘을 비난하지만 이스라엘이 수립되면서 생긴 근본적인 문제들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공격하는 행위를 외면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약자인 팔레스타인 사람들만 고통받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는 그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입니다. 유엔의 잘

못된 결정으로 억압과 고통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무시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묵인과 무관심, 다른 한편으로 승인이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이스라엘의 말만 듣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테러리스트로 취급하고 이스라엘의 악행에는 눈을 감는 세계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세계인의 충분한 관심과 지지를얻지 못한 채 오늘도 고통받으며 살아갑니다.

우리나라는 팔레스타인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에 가면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만드는 포클레인이 팔레스타인 주택을 강제 철거하는 데 사용됩니다.
세계 시민단체들은 포클레인을 수출하지 말라고 요구하지만 한국 기업은 귓등으로 흘립니다. 이스라엘에 성지순례를 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이 방문하는 동예루살렘, 베들레헴, 여리고, 헤브론 등은 모두 팔레스타인 땅인데 이스라엘 땅으로 알고 갑니다. 

이스라엘 쪽의 말만 듣고 팔레스타인이 걸핏하면 테러를 저지르고 공격한다고 믿습니다.

팔레스타인의 공격은 억압과 핍박을 견디지 못해 어쩌다 생기는 개인적인 일이고, 이스라엘은 국가와 군이 나서서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압박하는데도 말이지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성지순례를 독점해 막대한 수입을 올립니다. 관광산업은 이스라엘에 거대한 수입을 안겨주는 핵심 산업 중 하나입니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무조건 이스라엘 편만 들면서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들 덕분입니다. 성지순

례를 하는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곳에 존재하지만 없는사람처럼 여겨집니다.

세계시민으로 살기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노동자들의 낮은 임금 수준과 열악한 노동환경, 로힝야족 학살과 살아남은 사람들의 불안한 삶,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억압과 인권탄압은 문제가 아주 복잡합니다. 이 문제들을다 이해하기도 힘듭니다. 그러니까 그냥 외면하고 포기하면 될까요?
내용을 이해하는 사람들만 관심을 가지면 될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오로지 힘이 없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많은 사람의 삶과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또 각각의 문제는 전 세계와 연결돼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의류공장 노동자들이 직면한 문제는 그들이 만든 옷을 소비하는 전 세계인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로힝야족 학살과 계속되는 핍박은 학살을 부인하는 미얀마 정부의 문제를 못 본 체하는 다른 나라 정부들과 기업들, 그로써 이익을 얻는 세계인과 관련돼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고통도 이스라엘의 억압과 인권탄압을 외면하거나 아예 관심을 두지 않고 이스라엘 편만 드는 세계인으로 인해 오늘도 계속됩니다. 

모든 문제는 세계시민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

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도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며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누구도 약자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계시민은 관심과 지지로 더 나쁜 상황을 사전에 막아냅니다. 동시에 세계 곳곳에서 힘이 없어서 피해를 입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다른 나라 일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극소수의 시민과 시민단체만이 관심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의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그곳의 일이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세계의 모든 일은 우리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습니다. 
특히 영토가 작고 자원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습니다. 다른 나라가 없으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이익만을 생각하며 정의롭지 않은 일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우리의 도덕성과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일이고 언젠가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는 우리도 세계시민입니다. 많은 세계시민, 단체, 기관이 다른 나라의 일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똑같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평화로운 삶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세계의 평화가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서로의 안전과 평화를 지켜주는 것이 세계시민이 해야 할 일이

정주진

평화학을 전공하여 국내 1호 평화학 박사가 됐다. 평화학 전공자로서 한국 사회에 평화학의 토대를 만들겠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고민하다 책 쓰는 일을 시작했다. 
현재는 1인 연구소인 평화갈등연구소를 통해 독립적인 연구와 실천을 하고 있다.

쓴 책으로 10대와 통하는 평화통일 이야기」, 「평화: 평화를 빼앗긴 사람들』, 『갈등은 기회다』, 『갈등해결과 한국사회』, 『평화를 보는 눈」, 「평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 등이 있으며, 함께 쓴책으로 『인간은 왜 폭력을 행사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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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문화적 폭력의 도구로 이용된 잘못된 사상과 가르침, 조작된 정보, 비뚤어진 관습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지지합니다. 더 끔찍한 것은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그것들을 적극실현하기 위해 가해자가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나중에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후회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해 저지른 일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문화적 폭력에 대응하는 현명한 방법은 모든 것을 자기 눈과 생각으로 확인하고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요즘은 특히 사이버공간에 넘쳐나는 다양한 담론과 콘텐츠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들이 문화적 폭력의 도구가 되는지 주시해야 합니다. 
너무 익숙해져서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둔감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들이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고 지배하는 문화적 폭력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그런 폭력에 가담하게될 수도 있으니까요.

수용 가능한 만큼 난민을 데려왔고 난민들에게 그들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캐나다인 대부분은 그런 조치를 지지했습니다. 
캐나다인으로서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캐나다 정부의 결정은 캐나다사회가 약자를 적극적으로 포용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이는 난민뿐만 아니라 캐나다 사람들에게도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캐나다에서는 약자라도 무시당하거나 혐오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게 해주니까요.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니까요.

이와 비교하면 우리 정부의 대응은 아주 실망스러웠습니다. 
난민협약에 가입한 국가임에도 국민에게 단호히 원칙을 얘기하지도, 난민 추방을 외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설득하지도 않았습니다. 
겨우 500명 남짓한 난민에 대응하면서 마치 세상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그리고 예멘 난민이 정말 위험한 것처럼 수세적이고 소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오히려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난민에 대한 혐오 발언과 가짜뉴스는 증가했고 많은 사람이 약자에 대한 지나친 공격을 보며 자괴감을 느꼈습니다. 
동시에 약자에 대한 증오와 혐오가 쉽게 표출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는 현실에 슬퍼했습니다.

난민을 향한 혐오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약자는 누구든 언제든 
혐오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약자가 될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힘이 강조되고 힘에 의존해 관계의 형태와 질이 결정되는 사회에서는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 가지 혐오와 폭력이 승인되거나 묵인되는 곳에서는 
다른 종류의 혐오와 폭력도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난민에 대한 혐오 또한 우리 사회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혐오가 새롭게 등장한 약한 집단을 겨냥해 표출된 것입니다. 
이 혐오는 또다시 약한 집단이 등장하면 그곳을 향해 표출될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극소수를 제외하면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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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성‘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아이들입니다. 모든 아이가100%의 잠재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아이의 엄마가 비혼모라고 칩시다. 그 아이가 복지제도가 발달한 북유럽 국가에서 성장하느냐, 아니면 여전히 복지제도가 허술한 한국에서 성장하느냐에 따라 잠재성 발휘는 크게 차이가 날 겁니다. 
한국에서는 비혼모가 편견과 비난에 시달리고, 안정적인 직장을 구할 수도 없으며, 아이를 맡길 만한 곳도 마땅치 않으니까요. 아이 또한 사회적 편견과 또래들의 따돌림에 시달리겠지요. 그러면 아이는 잠재성을 한껏 발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50~60%의 잠재성만 발휘하게 된다면 나머지 40~50%의 공백은 바로 폭력적인 사회구조에서 비롯된다는 말입니다. 
물론 북유럽 국가에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잠재성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겁니다. 그렇지만 폭력적인 사회구조 때문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완전한 평화는 아니지만 어느 수준의 평화냐, 얼마나 폭력이 존재하느냐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폭력이 없는 사회, 평화로운 사회는 비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최종 목표가 아니라 그것을 향해 가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아주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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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중앙 주차장 쪽 오래된 벤치와 그 옆의 대형 전나무 네 그루를 제거하고자 
입주민 투표를 실시하기로 의결하였습니다.

 주민들은 동의하시면 
경비실 앞에 있는 연명부에 서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 태풍시 지반이 약하여 쓰러질 수 있어 위험함
2. 주차 공간을 확보할 수 있음
3. 벤치에서 소란을 피운다는 민원이 많음

과반수 동의시 집행 예정이며 작업 일정은 
별도 안내하겠습니다.

경진은 공고문을 한참 바라보았다. 
내용의 순서가 묘했다. 
2번의 주차공간 확보를 위해 
1번과 3번을 가져와 만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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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이라는 평범한 여고생과 절친 서지아

아이돌 정도의 리더십과 인기를 가진
정후, 은고요
그리고 나름의 아픔을 가진 예고 낙방생 이우연

같은 교실에 있어도
편안하게 자기를 드러내어 사귈 수 없는 요즘의 풍경과
SNS에 업로드되는 내용으로
풍경을 병풍처럼 훑어보고 추측하거나
속 얘기를 털어놓는 대나무숲을 찾게 되거나
하는 어떤 열일곱의 나날을 보게 된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정말 소중한 것이고
어려운 것이고
변화무쌍한 풍파 속에
불변의 말씀을 다시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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