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그 지적이 지금의 주리처럼 나쁜 결과에 대한 동기로 설명되는 일은 적절치 못한 것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주리에게 한번쯤은 내 아버지를 설명할 수도 있겠다고. 어쨌거나 내가 좋아하는 이모의 착한 딸이었다. 나는 계속 노력해야만 했다.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는 나한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어.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우리들 머릿속을 오고 가는 생각, 그것을 제외하고 나면 무엇으로 살았다는 증거를 삼을 수 있을까. 우리들 삶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는 것이 아버지가 가르쳐준 중요한 진리였어. 아버지가 잘못한 게 있다면 너무 많이 생각했다는 것이지. 자기 용량을 초과해버린 거야. 그러면 곤란하다는 것도 우리 아버지가 내게 남긴 교훈이고.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이 한평생 살고도 못 가르쳐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어. 그것으로 이미 우리 아버지는 자식한테 해줘야 할 의무를 다했다고 봐."
주리는 조용했다. 

술꾼이고 건달이며 성격파탄자인 아버지를 너는 정말 용서했니, 라고 그 침묵이 묻고 있었다. 나는 기꺼이 주리의 침묵에 대답했다.
"아버지는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었어. 난 아버지를 사랑해."
"너희 아버진"

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몽상 속에는 현실을 버리고 달아나고 싶은 아련한 유혹이 담겨있다. 끝까지 달려가고 싶은 무엇, 부딪쳐 깨지더라도 할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무엇, 그렇게 죽어버려도 좋다고 생각하는 장렬한 무엇. 그 무엇으로 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힘이 사랑이라면,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서 나는 처음으로 사랑의 손을 잡았다.

선운사 도솔암 가는 길에서 처음으로 나, 안진진의 사랑을 상면한 이후 내 기분은 급격히 저조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었다. 나는 다만 이것이 사랑인가 하고 사랑을 묻다가 이것이 사랑이다, 라고 스스로에게 답했을 뿐이었다.

오직 그것이 전부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가라앉기만 했다. 걸음은 자꾸 허방을 디뎠고, 눈길은 쓸쓸하게 텅 빈 허공을 헤매었다. 마음자리 어딘가에 커다란 구멍이 하나 생겨서 거기로 가을 찬바람이 쉭쉭 드나들고 있었다.

나는 당황했다. 누구라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었다. 사랑을 만난 다음이 이렇다는 고백을 나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 자매에게서 물려받은 기질로 잡다한 책들을 제법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영화광은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도 많이 보았는데, 그렇다면 모든 책과 영화들이 나를 속인 것이었을까. 사랑을 맞은 후의 느낌이 이토록 황폐한 것임에도

그가 물었다. 편안한 음성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꾼. 아, 지독한 술꾼."
김장우가 나를 끌어당겨 품에 안으며 한탄했다.
"왜 그랬어?"
"뭘요?"
필름이 끊겼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하고 나는 조심스레 되묻는다. 내가 또 무슨 짓을 했는가.
"저 아래 나이트클럽에서 말야. 안진진이 날 때렸어. 기억 나?

내 뺨을 치고 내 등을 마구 두들겨 팼지. 날 가두지 말라고, 무섭다고 그랬어 마구 큰소리로 외쳤어. 가두면 죽이겠다고까지 그랬지. 내가 안진진을 그렇게 괴롭혔나 생각하니 얼마나 가슴이 아프던지 한번 물어보자. 안진진한테 나는 감옥이니?"

감옥 간수? 내가 그랬다고?
아, 나는 전율했다. 그것은 아버지의 대사였다. 
아버지가 처음으로 난동을 부리던 그날 밤, 아버지가 말했었다. 당신은 나를 가두는 간수 같았어, 당신은 몰라, 그 절망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내 속에 아버지가 있었다. 행방불명인 아버지가 내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온몸이 떨리는 것을 감추기 위해 나는 더욱 더 김장우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를 안고 있는 김장우의 팔에도 더욱 힘이 가해졌다.

"대답해봐. 나, 너한테 감옥이 될 것 같아?"
"아니요. 절대로 아니에요. 내 말은, 그 말의 뜻은, 장우씨를 너

무 사랑하게 될까봐 무섭다는 뜻이었어요. 정말이에요. 진심이에요."
"정말?"
"그래요. 어제 처음으로 확실히 알았거든요. 내가 지금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그래서 감당하기가 어려웠어요. 사랑은 힘이 들어요."
그에게 거듭거듭 다짐했던 대로 내가 그에게 한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술이 깬 다음날 아침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하는 말들이 모두 다 진실이었듯이.

나는 그날 아침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어머니를 사랑했으므로 나와 진모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 또한 절대적이었을 것임을.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사랑이란,
집에서나 회사에서나 거리에서나, 비어있는 모든 전화기 앞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전화의 구속은 점령군의 그것보다 훨씬 집요하다. 사랑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란 단 두 가지 종류로 간단히 나눌 수 있다. 전화벨이 울리면 그 혹은 그녀일것 같고, 오래도록 전화벨이 울리지 않으면 고장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사랑이란,
버스에서나 거리에서 또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유행가의 가사에 시도 때도 없이 매료당하는 것이다. 특히 슬픈 유행가는 어김없이 사랑하는 마음에 감동의 무늬를 만든다. 사랑하는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혹은 무의식적으로든 이별을, 그것도 아주 슬픈 이별을 동경한다. 슬픈 사랑의 노래들 중에 명작이 많은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유행가는 차마 이별하지는 못하지만 이별을 꿈꾸는 모든 연인들을 위해 수도 없는 이별을 대신해 준다.
유행가는 한때 유행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시작한사람들에게 대물림되는 우리의 유산이다.

사랑이란,
발견할 수 있는 모든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지 않고 무심히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이다. 자신의 얼굴에 대해 생애 처음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나. 자신의 눈과 코와 입을 그윽하게 들여다보는 나. 
한없이 들여다보는 나. 그리고 결론을 내린다.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해준 그가 고맙다고 사랑하지 않고 스쳐 갈 수도 있었는데,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걸음을 멈춰준그 사람이 정녕 고맙다고.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며칠 동안 사랑에 집착했다. 그리고 확인했다. 전화에 자유롭지 못한 나, 유행에 민감한 나, 거울 속의 내얼굴을 오래 들여다보는 나…………….
모든 것이 다 사랑이었다. 위험과 안전을 동시에 예고하는 붉은신호등의 사랑이 맞았다. 나는 김장우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약간의 무리를 감수한다면 사랑에 관한 앞서의 세 가지 메모는 나영규에게도 유효한 것이었다.
약간의 무리라는 것도 생각해보면 시간의 필요일 뿐 운명은 아닐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김장우와의 사랑을 확인했던 시간만큼나영규와의 사랑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찰했다.

우선 전화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는 나영규의 경우에 있어서도 거의 의심할 바가 없었다. 유리 천장에서 장대비가 쏟아지던 그날 밤 이후에도 우리의 관계는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물론 사랑 혹은 결혼을 향한 발전이었고 그 모든 것이 다 전화의 공로였다.
정식으로 청혼을 했고 빠른 시간 내에 나의 답변을 요구하고 있다는 부담감 때문에 솔직히 나는 나영규와의 만남을 의식적으로 피해 왔었다. 만날 때마다 나영규는 어김없이 숙제에 관해 질

문했다.
"이제 대답해줄 수 있지요? 어서요. 진진씨, 어서 대답해봐요.
나는 들을 준비가 다 되었어요."
그러나 나는 답변이 준비되지 않았다. 내가 나영규와 아주 많이 다른 점은 매사에 준비가 느리다는 점일 것이었다. 나는 처음 말했던 대로 계속해서 ‘3개월론‘을 밀고 나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석 달만 기다려줘요. 나는 많이 느려요. 영규씨보다 생각할 시간이 많이 필요하거든요."
채근해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영규는 더 이상 나를 재촉하지는 않았다. 또한 그는 미래에 대해서 비관적인 상상 같은 것은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일반적으로 모든 여자들이 결혼을 결심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3개월은 걸리는 모양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이 평균적이든 아니든 나또한 그 이상 끌 생각은 없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명료해지리라.
이미 아주 많은 부분이 명료해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벌써 두달이 지난 지금, 나는 내가 나영규에게 해야 할 대답이 무엇인지 윤곽은 잡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깊은 밤, 나영규와 전화를 하고 있으면 문득 이 남자와도 사랑을 하고 있다는 의혹이 나를 사로잡곤 했다. 나영규와는 만나서보다 전화로 대화를 나눌 때 훨씬 마음이 편했다.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를 하면 나도 아주 많은 이야기를 스스럼 없

이 할 수가 있었다. 전화선 저쪽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음성은 다정했고 섬세했다. 나는 책상에 턱을 괴고 앉아 하염없이 그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럴 때면 이 남자와 결혼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잠깐 들기도 했다.
그는 늦은 저녁에 자주 전화를 했고, 나는 전화벨 소리를 듣지 못할까봐 화장실에 갈 때도 전화기를 들고 갔다. 만나자는 그의 요구는 적극 피했지만 전화가 올까봐 퇴근 후에는 집 앞 가게로의 짧은 외출을 삼가는 일도 있었다. 이것도 혹시 사랑일까......

유행에 민감해진다는 두 번째 메모도 나영규에게 아주 어긋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유행가의 경우에는 오히려 나영규에게 유리한 것인지도 몰랐다. 슬픈 사랑의 노래를 들을 때, 나는 늘 나영규를 떠올리곤 했다. 내가 그를 버린 다음, 그가 저 노래를 들으면 어떤 심정일까.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나영규의 마음을 찌를 저 노래. 나는 나영규의 마음이 되어 슬픈 노래를 듣는 일이 많았다. 이것도 사랑일지 몰랐다.

거울 속의 내 얼굴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다는 사랑에 관한 세번째 메모는 확실히 김장우보다 나영규를 생각할 때 훨씬 더 경이로웠다. 이것은 숨길 수 없는 진심이었다. 언젠가 말한 대로 나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오직 결혼적령기에 있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미덕인 인간이었다. 거리에서 만인의시선을 받을 만한 미모도, 뭇 남성들의 표적이 될 만한 자랑스러운 배경도 전혀 없다. 그것이 부끄럽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말

그것 때문에 사실 나는 상당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내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겠다는 지난봄의 그 부르짖음이, 인생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온 힘을 다해 탐구하는 것이라던그 봄날 아침의 다짐이 무위로 그치고야 말리라는 공포도 느꼈다.
나는 정녕 그날의 다짐을 성취하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스물다섯 이전의 졸렬했던 내 인생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부터라도 주어진 내 삶에 전력투구하고 싶다는 그 가상한 각오가 이렇게 무너지는가. 나에게 있어서 결혼은 전력투구할 내 삶의 중대한 출발점이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가질 수 있는 여러가지 결단 중에서 나는 결혼을 선택한 것이었다.

내가 결혼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제발 부탁이니, 누구도 비난하지 말기를 바란다. 여자 나이 스물다섯에 할 수 있는 결단이 꼭 결혼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나처럼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결혼 대신 공부를 택하는 사람도 있고, 결혼 대신 자기만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도 있으며, 결혼을 비웃으며 결혼할 나이에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는 여자도 분명 있다. 
나라고 해서 그 모든 길들에 대해 충분히 사색하지 않았겠는가. 이미 섭렵은 끝났다. 사색이 깊은 나머지 인생 자체가 졸렬해지고 말았다면, 이젠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나인 것이다. 모든 인간이 똑같이 살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똑같이 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발버둥 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나를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특별하고

한적한 오솔길을 찾는 대신 많은 인생선배들이 걸어간 길을 택하기로 했다. 삶의 비밀은 그 보편적인 길에 더 많이 묻혀있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으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이라는 명제 앞에서, 사랑이라는 난해한 감정 앞에서 거듭 혼돈을 되풀이하고 있었으니 괴로웠던 것은사실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마침내 중요한 단서 하나를 찾아내었다. 김장우와 나영규에게로 향하는 화살표의 모양이 어떻게 다른지 변별해낼 수 있는 하나의 단서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유사사랑인지 알 수 있는 하나의 단서 미리 말하지만 이것은 나에게만 해당하는 특별사유일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다 통용되는 앞서의 세 가지 사랑 메모와는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으로 사랑을 가려냈다.

사랑은 그 혹은 그녀에게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망의 발현으로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나‘보다 ‘이랬으면 좋았을 나‘로 스스로를 향상시키는 노력과 함께 사랑은 시작된다. 

솔직함보다 더 사랑에 위험한 극약은 없다. 죽는 날까지 사랑이 지속된다면 죽는 날까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절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며 살게 될 것이다. 

사랑은 나를 미화시키고 나를 왜곡시킨다. 사랑은 거짓말의 유혹을 극대화시키는 감정이다.
나는 나영규 앞에서 솔직했다. 동시에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말만 하지 않았을 뿐, 그 외 모든 정황은 있는 그대로 털어

놓았다. 나영규는 내가 처해 있는 현실을 가감 없이 알고 있다. 나는 그에게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여주는 데 별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김장우한테는 그한테는 달랐다. 이모를 어머니라고 속인 것은 우연의 장난이었다 하더라도 김장우에게 내 아버지를, 내 어머니를, 내 남동생을 말하는 일은 고통이었다. 

현실 속에서 늘 우울한 김장우에게 나는 진정 보다 밝은 나, 보다 활기찬 나, 보다 어여쁜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이모를 어머니라고 믿으며 행복해 하는 그에게 양말을 팔았고 지금은 김치를 팔고 있는 어머니를 고백할 수 없었다. 지금 그가 품고 있는 나에 대한 사랑의 부피가 감소될 어떤 말도 절대 하고 싶지 않다. 그에게 감추었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났을 때 사랑이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은 결코 아니다. 김장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사랑의 유지와 아무 상관이 없다 하더라도, 보다 나은 나를 보여주고 싶다는 이 욕망을 멈출 수가 없다. 이것이 사랑이다. 

김장우와 함께 떠났던 서해바다에서 나는 그것을 깨달았다. 그장렬한 비애,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누추한 나는 너무나 부끄러운 존재였다. 부끄러움을 누더기처럼 걸치고 그토록이나 오래 기다려온 사랑 앞으로 걸어 나가고 싶지 않다. 저 바다가 푸른 눈 뜨고 지켜보는 앞에서는 더욱.
사랑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자에게는 스스럼없이 누추한 현실

을 보일 수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사랑 앞에서는 그일이 쉽지 않다. 그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다.

내가 두 사람 앞에서 판이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던 이유가 이것으로 설명되었다. 나는 김장우를 사랑하고 있다. 나영규에게는 사랑과 유사한 감정의 의사 사랑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므로 이제 남은 일은 나영규에게 이 사실을 통고하는 일뿐이다. 내가 그에게 약속한  3개월의 유예기간도 서서히 다하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무슨 말로 그를 위로해야 되는 것인지 아직 나는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도, 이런 나를 사랑해준 나영규가 진실로 고맙다………….

"니네 엄마한테는 내가 첫눈 보자고 너 불러냈다는 말일랑 아예 말아라."
문득 이모가 내게 다짐을 했다. 이모도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곳에서 추운 겨울을 지내야 할 진모를 생각해봐. 첫눈 오면 겨울인데, 내가 나빠. 난 정말 나쁜 이모야. 이러면 안 되는데......."
이모의 얼굴은 미안함으로 발갛게 달아올랐다. 이모는 그런 사람이었다. 미안하면 금방 얼굴이 붉어지고, 슬프면 금방 눈물이 고이는 사람. 이모에게는 모든 감정이 다 진실이었다.
"괜찮아, 이모, 진모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한은 엄마가 모두 손을 써놓았어요. 우리 엄마, 세상일에 대해선 나보다 훨씬 유능하다고. 그런 점에서 나는 아주 바보거든."

"그래, 넌 좀 바보야. 날 닮았어......."
이모는 자신의 코트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내 손을 꽉 쥐었다.

나는 이모를 많이 닮았지만 그러나 이모의 딸은 아니었다. 내가 이모의 딸로 태어났다면 나도 주리처럼 답답하고 재미없는 인간으로 성장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세상의 숨겨진 진실들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것은 마치 평생 똑같은 식단으로 밥을 먹어야 하는 식이요법 환자의 불

회사의 부장 한사람이 중증의 당뇨병 진단을 받고 나서 사흘을 울었다고 고백했다. 체구도 크고 평소 성격도 괄괄한 사람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당장 위중한 병도 아니고, 병원에서 정해주는 식단표대로 먹으며 평소처럼 살면 되는 일인데왜 그러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자네들은 몰라. 이젠 맛있다고 배부르게 밥 먹는 재미가 없어졌어. 밥 한 공기 이상 먹으면 죽을 줄 알래. 그뿐인 줄 알아? 퇴근후 술 한잔 하는 맛으로 사는 나 같은 사람보고 술 담배 안 끊으려면 병원에 오지도 말래는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젓갈이나 장아찌 같은 것인데 그것도 절대 안 된대요. 그것 말고도 이래라저래라 하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이제 세상 사는 재미 다 끝났구나 싶으니 어찌나 절망적이던지. 이러구러 살다보면 또 익숙해지겠지만, 온갖 음식 다 먹다가 이제 와서 그렇게 살라면 어떡하냐구. 처음부터 아예 그런 음식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면 혹 견디기 쉬울는지 몰라도…………."
거구의 중년사내를 사흘 울린 식이요법, 그럴싸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주리에게는 처음부터 절망 따윈 없었을 수도 있었다. 젓갈이나 장아찌로 비유할 수 있는, 삶의 다른 방법들을 주리는 애시당초 알지 못한 채 성장했다. 세상이 그 애를 단련시킬 수도 있었겠으나 이모와 이모부의 성실한 방어로 그런 기회들은 철저히 원천봉쇄되었다.

단조로운 삶은 역시 단조로운 행복만을 약속한다. 지난 늦여름 내가 만난 주리가 바로 이 진리의 표본이었다.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는 것은 행복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 애쓰는 불행이라는 중요한 교훈을 내게 가르쳐준 주리였다. 인간을 보고 배운다는 것은 언제라도 흥미가 있는 일이었다. 인간만큼 다양한 변주를 허락하는 주제가 또 어디 있으랴.

이모와 내가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첫눈이 올지도 모를 저녁의 식사 메뉴는 해물 스파게티였다. 발제자는 이모였고 나는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선택의 문제가 닥쳤을 때는 누구 한 사람의 강렬한 주장만큼 고마운 일도 없는 법이었다.
"난 말야, 로마에서 먹었던 새콤하고 달콤했던 스파게티 맛을잊을 수가 없단다. 서울에서는 어디서도 그런 맛을 만날 수 없어서 내가 직접 만들어보기도 여러 번 했는데 늘 실패였지. 오늘 다시 로마의 추억에 도전해보는 것이 어떨까?"
그래서 나 안진진까지 덩달아 언제 갈지 모를 로마를 꿈꾸며 멋진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로마의 이모부는 어땠어요? 이모는 보나마나 오드리 헵번처럼 굴었을 것이고."
"이모부?"
갑자기 이모부는 왜냐고 눈을 크게 뜨는 이모.
"아니, 이모부랑 같이 간 것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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