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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 (나에게) 상처 주고도 아닌 척했던 날들에 대해
김소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평점 :
에세이 추천
가끔 사는게 창피하다
김소민
열심히 삶의 의미를 찾는게 아직은 중요하다고 믿는 20대. 듣기만 해도 심장이 덜컹 내려 앉는 제목을 만났다. 사는게 창피하다뇨. 그럴수가요. 내려 앉은 심장을 부여잡고 펼친 책의 저자는 걱정할 필요 없이 대단한 사람처럼 보인다. 한겨레 기자로서 10여년을 일하고, 최근 무직이 된 40대의 백수이자 , 싱글인 여성의 삶에 대한 시선을 가식 없이 그려냈다. 김소민 작가의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를 통해 진정 나로서 버텨내는 인생을 바라보았다.
세상엔 마음대로 안되는 게 너무 많다. 기껏 플레이리스트에 열심히 저장한 이 노래들은 왜 자꾸 끊기는건지. 왜 나는 첫 직장에서 그다지도 힘들었던지까지 생각해보면 인생에서는 쪽팔릴 만치 내 뜻대로 된 건 뭐고 내 뜻을 세운 건 뭐였는지 싶다. 20대의 싱글이자 반 백수인 여성이 생각하는게 이럴진데, 40대 나름대로의 산전 수전을 겪어낸 저자가 그려내는 삶의 지질한 단면은 어떻겠는가. 그렇지만 백수가 된 이후, 인생을 둘러싼 세상을 관찰하고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은 생활에서 만나는 진짜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글은 일기장을 훔쳐보는 것 처럼 유쾌하다.
난 아직도 왕년엔 말이야, 에 묶여 있나 보다.
선생님, 부모님, 회사에 인정받으려고 버둥거렸던 그 왕년에 정작 행복하지도 않았으면서 말이다.
아무도 내 왕년에는 관심이 없는데 나 혼자만 그때를 틀어쥐고 있다.
자존심은 자신을 배신하는 감정인 것 같다.
그걸 지키려면 내가 아닌 타인의 룰에 따라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 중 - 내 감정은 진짜 내 걸까?
생각해보면 늘상 보는 책, 영상등에서 나 자신을 찾으라느니, 명상을 하라느니 라는 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지만 단 한번도 진짜 나는 누구인지 세상에서 동떨어진 채 관찰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늘 나 라는 존재는 어딘가에 속해 있었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이 "사회적 동물"로서의 당연한 면모라고 느꼈던 것이다. 어디어디를 졸업한 몇살의 어느어느 지역에 사는 어떤어떤 아무개, 라는 앞의 수식어를 다 떼어 놓고 관조하며 살아왔던 인생에서 자신을 가장 외롭게 한 것은 자기 스스로였던 것 같다는 작가의 말이 마냥 낯설게 들리지는 않는다.
무엇무엇이 되지 않으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공포를 조장하고
매일 시현하는 사회에서 꿈나무로 자라라니.
무슨 미션 임파서블인가
그 아이는 이미 이 땅에서 쉽게 벌레 취급 당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p.231 - 사람에게는 무조건적인 환대가 필요하다.
평생을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키면서 살아온 듯한 김소민 작가는 한순간 회사를 때려치고 나오게 되면서 스스로의 삶을 진정으로 돌아볼 기회를 가진다. 낡은 아파트에 살면서 문득 깨닫는 사회의 계급화. 반려동물을 입양하기 위한 "개 이력서"를 탈락하고 난 뒤 개 따위 라는 말을 중얼거리다 반성하는 대목, 내가 언제 개같이 사랑해본 적이 있던가? 같은 부분은 기자였던 그녀의 필력이 그대로 마음이 꽂히는 듯 따끔하다. 분명 현실이고 , 현실이기 때문에 지질한 부분들은 그녀가 풀어내는 다양한 책들과 영화등을 통해 어느 여름날의 술자리 이야기 처럼 유쾌하게 풀린다. 좋아하는 에세이들의 대표적인 공통점이다. 자신의 인생에 꼭 맞는 책과 영화를 콕콕 집어내 대입하는 그 능력들.
제목을 읽으며 심장이 덜컹했던 그 감정은 금방 사라지고, 어느샌가 그녀의 말에 깊은 동감을 보내게 된다. 사실은 가끔, 나도 사는게 좀 창피한 때가 있었다. 친구와 , 선배와 후배와 심지어는 진짜 만난 적도 없는 SNS의 누군가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갭을 느꼈던가. 과거의 트라우마랍시고 현재의 기회와 남들의 관심에서 초연한 척 했던가. 그녀의 말마따나, 나 스스로가 낯선 욕망의 숙주가 된 때들이 늘 있었다.
경고음이 울리면 날선 행동으로 옮기는 데 1초도 안걸린다.
이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정신 차려 보면 관계의 파편이 날리거나 내가 줄행랑쳐 숨어있다.
방어적 태도를 취할 수록 고립은 심해지고 그러면 더 매달리게 되고
이는 다시 모멸감으로 돌아왔다.
내 방어가 결국 나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 상태로는 타인도 나 자신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지키느라 홀로 두게 했던 김소민 작가는 퇴사를 계기로 딱딱해져있던 다시 한 번 감정을 물렁물렁하게 주무르는 듯 하다. 스스로를 물렁하게 두면서, 자꾸 돌아보고 주변을 바라보고 그 안에서의 스스로를 보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퇴사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이 그랬다. 어느 회사의 어느 사원으로 근무하던 5개월 남짓하던 시간. 회사원으로서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채찍질은 자꾸 나의 감정을 죽여버린다. 힘들다는 말은 자꾸 라떼로 잊혀지고 뒷말이 무서워서 뭐 하나라도 눈에 띄지 않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사회의 퍼즐 중 한 피스로 만들었다. 사회에서 내 역할을 하는 것 같고 이정도면 괜찮네 라는 말이 삶의 소명처럼 다가올 때, 느낀 감정은 단 하나. 그런데 나는 왜 울고 있는가.
외로 고개를 튼 자리바다 죄책감의 생채기가 나고 그만큼 나도 허물어진다.
결국 자기는 속일 수 없으니까, 타인을 사람으로 보지 않은 기억들은 나도 사람이 아님을 자신에게 증명하니까,
우리는 사실 사람으로 살다 죽고 싶으니까,
이 질문을 놓지 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오늘도 실패한다.
바쁘고, 지치는 삶에서 발전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노력은 가치있다. 나 자신을 위한단 것에는 변함이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를 초록 채소로 채워넣고 저녁운동을 얼마나 더 하는 것도, 회사 생활이나 경제 생활을 위해서 끊임없는 학습을 반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나를 위하기 위해 하는 노력을 안으로 돌릴 시간이 분명 필요하다. 사실은 나를 가장 사랑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스스로에게 가혹했을 나를 위해 옆집 언니, 누나와의 조촐한 술자리 수다 같은 <가끔 사는 게 창피하다>를 통해 일상의 부분에서 발견하는 나를 보듬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걸로도 따뜻한 봄날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