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불행을 선택하세요
데이나 슈워츠 지음, 양지하 옮김 / 오월의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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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 your dice. 가끔 인생은 알 수 없는 선택지를 주며 심술을 부린다. 누군가는 결국 최선의 선택은 최악이 아닌 차악을 택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 지금에서 모든 경우의 수를 가리지 않을 사람은 없으리라. 우리는 모두 행복을 바라지만, 나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시간 안에서 사실 대부분은 불행하고 어쩌다가 작은 행복들을 발견할 뿐일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선택지에서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이 선택에 대한 최악의 결과이니, 결국 우리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불행을 견디며 인생을 살아가고, 개중 누군가는 조금 더 큰 불행을 의연하게 맞아냄으로서 우뚝 서버리는 것일지도.


 그러니, <당신의 불행을 선택하세요>에서는 오직 본능에 기초해 기꺼이 최악을 선택해보자. 스스로의 자전적 소설을 게임 형식으로 풀어내 #밀레니얼세대 의 여성들 앞에 놓인 딜레마를 담은 책. <당신의 불행을 선택하세요> 이다.


  누구나 심리테스트 등에서 좀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조금의 거짓말을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게임처럼 진행되는 소설은 킬링타임용 로맨틱 코미디처럼 즐겁다. A와 B 사이에서 고민하며 조금 더 낙관적인 미래를 위해 적당한 선의의 거짓말을 둘러대어 봤지만 겨우 책의 38 페이지에서 덜미가 잡혔다. 거짓말 !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지만 이렇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데이나. 투덜거리면서 책을 진행하면서 솔직한 선택을 해 나가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작가가 늘어놓는 선택지들이 아주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한 대단한 거짓말도 주인공이 가진 천재적인 능력으로 인해 느껴지는 불평도 없이, 그저 평범한 작가가 자전적으로 적어내린 게임에서 굳이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


저자이자 주인공. 동시에 독자가 되는 여자는 끊임없이 선택한다. 대부분은 사랑과 관련되어 있고 또 대부분은 섭식장애와의 끊임없는 밀고 당기기 이다. 데이나는 끊임없이 외로움과 분투하는 것 처럼 보이다가도 너무나 의연하게 스스로의 삶을 결정해 나가는 것 같다. 그녀는 어느 순간에는 스스로의 능력을 뽐내며 후광을 달지만 사실 나보다 더 완벽해보이는 누군가를 늘 의식하고 있다. 그리고 가끔 행복하고, 대부분은 조금 답답하리만치 남을 의식하는 것 같아 보인다. 선택을 하는 내내 왜 인생은 이딴 선택지를 주는 거야 라고 투덜거렸지만 사실은 조금 알고 있었다. 이보다 더 최악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최악과 차악의 사이에서 순간의 끌림은 본능적인 두려움과 맞선다. 데이나가 좀 더 나은 인생을 살기를 원했다. 여자는 이보다 더 좋은 현실을 마주할 자격이 있으니까. 정답은 없지만 정도는 있으리라 믿으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결국 데이나는 스스로의 삶을 살아낸다. 모든 스토리의 결말엔 스스로 선 데이나가 있고.. 당신이 있다. 


<당신의 불행을 선택하세요> 의 선택지에는 최고의 보기는 없다. 보통은 너 정신차려 ! 소리지르며 뜯어말리고 싶고 어쩌다 한번쯤은 그래.. 뭔일이 있겠어 싶은 마음으로 될대로 되어 보거라 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이상적이지 않은 선택을 하는 와중에 데이나에게 숱한 공감을 던진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이 불행의 선택. 결국 우리 모두는 불공평한 전투 에서 끊임없이 도전한다. 정답은 없어도 더 나은 결말은 있을 것이라고 위로했다면 책의 끝에가서 느낄 것이다. 결국 이 게임에서는 정답도, 더 나은 결말도 없다는 걸. 우리는 그저 우리의 선택을 만들어내며 하루의 끝을 위해 달려갈 뿐이고, 나는 커서 내가 된다. 


계속 


진행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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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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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질문을 위한 수만가지 생각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박문재 옮기고 현대 지성 출판



오래된 것을 멀리하기 위한 핑계는 수만가지이다.  특히나 고전이라는 책에 대해서는 그 핑계는 조금 더 발전한다.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오랜 정보의 바다, 어디선가 들어본 친숙한 저자가 주는 섣부른 판단의 함정. 하지만 답답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말이 유난히 와닿는 시기가 있고 막연하게, 혹은 당연하게 알고 있을 줄 알았던 그 모든 혼란스러움에서 필자는 늘 고전을 떠올린다. 누구든 피상적인 위로를 건네고 지나가는 21세기의 지금. 오히려 더 외로워진 현대인에게 필요한 대화의 기술을 #아리스토텔레스 에게 물어보고 싶다. 현대 지성에서 그리스어 원전을 완역해 출판한 < #아리스토텔레스수사학  > 이다. 


문체가 무미건조해지는 이유는 네 가지다.


첫 번째는 합성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중 제 3권 , 제 3장 무미건조함


독서 취향이 그렇게 고급스러운 편은 아니기에 소설이 아닌 고전을 잘 읽지 못했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정말이지 "고전"서적 특유의 불편한 번역체. <오딧세이> 를 읽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온갖 인물들의 나열에서 <오딧세이>를 먼저 읽어야겠군 이라는 마음을 먹는 것 보다는 어우 나중에 읽어야 겠다. 라는 핑계가 편했기 때문이리라. 현대지성에서 책을 보내준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 책을 잡지 못했는데, 지난 화요일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대화가 끝난 뒤 비로소 이 책을 잡을 수 있었다. 거의 8년을 함께한 우리건만 대화의 방식이나 포인트, 서로를 향하는 말의 모양새가 참 다양했다. 코로나 19로 밖을 나가기 더욱 어려워진 요즘,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읽으며 숱한 SNS에 파묻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좋은 글과 말에 대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따라서 진실이 확실하게 우리 쪽에 유리한 경우가 아니라면,


결론을 제시한 다음에 질문을 해서도 안 되고, 


질문의 형태로 결론을 제시해서도 안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중 제3권 중 제18장 질문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은 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모든 챕터 하나 하나가 잘 만든 시계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그 역할을 온전히 해주는 것을 보게 되는 과정이 아주 흥미롭다. 제 1권에서는 수사학에 대한 개론과 연설등을 위한 상황을 보여준다. 제 2권은 이런 상황에 우리, 혹은 청중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나 여러 수사학적 방법론이 거론된다. 예를 들어 제 2권의 초반은 감정의 정의와 상황에 대한 것인데 각 분노와 평정심, 수치심이나 연민, 의분등이 청년기와 노년기에는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부를 가진 이와 권력을 가진 이에게는 어떤 식으로 발현되는지에 대한 것이다. 제 3장에서는 이 모든 감정과 수사학적 논거등을 위해 화자가 취해야 할 여러 테크닉 등을 담아낸다. 간결하지만 완결된 아름다운 문장에 대해, 도입부에 적절한 예시등을 통해 제 1권과 2권에서 배워온 모든 것들을 쏟아낼 준비를 하도록 돕는다.


대화와 설득, 글이라는 익숙하고 간절한 주제로 전개되는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은 그 주제 자체로도 매력적이지만 그리스 원전을 그대로 번역했지만 어색하지 않은 문장의 흐름과 꼼꼼한 각주도 그 몫을 톡톡히 해주었다. 낯선 인물들의 설명과 또다른 고전이 등장할 때마다 친절한 과외 선생님처럼 반가운 각주를 통해 부족한 배경 지식을 채워넣을 수 있었고 고전 번역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드러운 번역으로 책을 읽어내리는 내내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괴로울 때 분노한다.


괴로워하는 자는 무엇인가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설가는 청중을 분노하는 심리 상태가 되게 하고, 


청중이 그렇게 된 것은 상대방의 탓이므로 그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리고


책임지게 해야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중 제 2권 , 제 2장 분노 


아리스토텔레스는 당시 정의와 윤리를 다 배제한 채 오직 감정을 움직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 소피스트들에 대항해 변증학에 기반을 둔 수사학을 내세웠다고 한다. 가판대에 온갖 위로를 건네는 책들이 난무한 요즘. 위로받기 위해 집어든 책을 다 읽고도 알 수 없는 공허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을 통해 진정 스스로가 듣고 싶은 말의 목적이 무엇인지, 나아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며 그 전달을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해야 할런지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기꺼이 그 곁을 내어줄 것이다.


모든 나쁜 일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자신이 불의해지거나 우둔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중 제 2권, 제 2장 두려움과 자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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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 댄서
조조 모예스 지음, 이정민 옮김 / 살림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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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살아간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너무 벅찬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 성장을 해야 하고, 이제는 끝난 줄 알았던 성장에서도 무엇인가를 배워야 한다. 어느 순간부터 성장과 함께 자라나는 사랑이라는 감정 또한 지겹도록 나를 설레게 하기도, 무서우리만치 까마득한 절벽으로 내몰리게 하기도 한다. 우리의 끊임없는 성장과 사랑에서 피어나는 여러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해내는 #조조모예스 가 #미비포유 이후의 신작을 선보였다. 영국의 런던에서 펼쳐지는 기마 소녀의 이야기를 담은 < 호스 댄서 > 이다. 


멋진 기마를 선보이는 프랑스의 어느 선수와 사랑스러움을 한껏 뽐내며 눈을 반짝이는 영국인 여자의 러브스로티로 시작하는 소설은 조용하지만 자신만의 세계를 가진 사라로 이어진다.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을 마무리 하고자 하는 커리어우먼 너태샤와 좀처럼 정착하지 못할 것 같았던 사진사 맷. 그리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 사라의 이야기는 만남과 이별의 연속,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담아냈다. 


말을 온당하게 이끌 수만 있다면 말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동작을 수행할 수 있어요.


닫혀 있는 문을 열어서 무한한 능력을 드러내도록 하는 거에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원해서 하게 해야 하죠.



바로 그때 그 말은 최고가 되는 거에요.


p.289 <호스 댄서>


그렇게 기다란 풀숲을 헤치고


복잡하지 않은 미래로 나아가면 어떨까.


p. 201 <호스 댄서> 


두께감이 있는 책에서 드는 첫인상과는 달리, 소설의 전개는 섬세하고도 부드러워 막힘없이 읽혀 요즘과 같이 예민한 때의 여유에는 더없이 알맞은 책이 아닌가 싶다. 더해, 영국 런던이라는 배경에 기마라니. 하는 의외의 기마에 대한 흥미도 큰 역할을 해주었다. 책의 중간 중간 등장하는 도심 한복판에서의 불법 경마 대회에 대해서도, 프랑스의 #카드르누아르 라는 기마술 학교에 대해서도. 말에 대해 아는 것 이라고는 하나도 없기에  이 모든 글로 적혀진 풍경들의 향연은 그야말로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 상상을 더하기에 충분했다. 유투브 덕분에 카드르 누아르 의 기마 공연을 보면서 그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 


소중한 말, 부셰와 함께 성장하는 사라의 이야기에 더한 너태샤와 맷의 사랑 이야기. 사라의 할아버지 캡틴의 지독했던 성장통과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민자로서의 삶. 모든 것들이 말 이라는 큰 눈망울의 동물과 이어지는 교감 속에서 너무나도 아름답고 가치있게 느껴진다. 


아이들은 위기를 견디고 살아납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좀 더 빨리 자랄 것이고 


결국엔 좀 더 현명하게 성장할 것 입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어떤 것도 신뢰하지 않을 것이고, 아마 조금 더 냉소적인 사람이 되겠죠.



모든게 또 다시 


무너지는 것을 기다리면서 인생을 살아가게 되겠죠.


p.471 <호스댄서>


소설을 읽는 내내, 사라에게 속삭이고 부를 다독이고 싶었다. 온갖 성장통을 이겨내고 모든 것을 바로 잡아가는 소녀와 말의 이야기 속에서 작가는 탄탄한 스토리 텔링과 열고 맺음을 통해 그 모든 불안을 해소해주고 오히려 읽는 독자를 다독이는 듯 했다. "모든 게 또다시 무너지는 것을 기다리는 인생" 이라니. 우리는 또 어떤 고통을 기꺼이 감내해가고 있는가? 또 어떠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살고 있는가. 


말을 돌리려면


기수는 가고자 하는 방향을 먼저 살펴야 한다.


크세노폰, <기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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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소비는 없다
김현호 지음 / 부크럼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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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유튜버는 지금이 단군이래 돈벌기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할 만큼, 수십만가지의 물건이 세상에 쏟아져나오고 소비자는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의 자본을 풀기 위한 나름의 기준을 세운다. 초록창에 검색 한 번 했을 뿐인데 어느 홈페이지의 어느 사이트를 가도 그와 관련된 물건들의 광고가 걸려있는 빅데이터는 마치 나만을 위한 지니처럼 보인다. #현명한소비 와 #윤리적소비, 나름의 명확한 잣대를 들이미는 소비 기준 부터 #Flex 라고 불리는 그저 과시를 위한 소비도 만만치 않다. 어엿한 #호모콘수무스 로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우리. 구매를 위한 기준 마련에 조금은 지쳐있다면 현직 MD 가 인터넷 창 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적어내린 이 책을 통해 왜 내 장바구니는 좀처럼 비워지지 않는지를 근본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다. 우리의 장바구니를 박터지게 채워넣게 만든 김현호 MD의 [우연한 소비는 없다]이다.



각자의 시기마다, 꽂히는 분야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십대 초반의 나에게는 화장품이 그랬다. 자칭 타칭 #코덕 으로 살며 온갖 로드샵의 화장품을 끌어 모으고, 여행 가는 친구의 인터넷 면세를 빌려 백화점 화장품을 모으며 1인칭으로서의 #스트레스풀기 라는 기준을 만족시켰고 3인칭으로서의 #뷰티잘알 이라는 타이틀에도 만족을 얻었다. 대게 그렇듯, 소비란 채워지는 부분이 있으면 비워지는 반대쪽이 있기 마련이라 비싼 돈 주고 사놔봐야 화장대 장식품으로밖에는 역할을 하지 않는 것들을 보며 후회도 했더랬다. 하지만 인터넷 창을 켜면 무섭게 달려드는 #신상컬러 의 습격. #세상아래같은립스틱은없다 는 신의 전언같은 문구에 또다시 터져가는 장바구니를 보며 생각했다.


나 신들린거 아냐?



이 과정에서 매장 앞에서 최초의 '어머 저건 사야돼' 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것.


바로 썸네일의 역할이다.


MD의 썸네일 -엄지손톱 만한 게 뭐라고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의 질문을 던져 준 장본인이 물건의 뒤에서 요로코롬 새침하게 써내린 [우연한 소비는 없다]는다양한 인용으로 지루하지 않게 전개된다. MD(Merchandiser a.k.a 뭐든지 다한다.) 를 업으로 삼게 된 이야기에는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가, 소비를 부추기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본인의 통장도 구멍이 나버렸다는 이야기에서는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 인용되었다. CJ 쇼핑에서 유난히 심장이 빠르게 뛰던 일은 대기업의 횡포여서가 아니었나 보다. 취향이 똑 떨어지는 이렇게 배운 사람이 물건을 팔아대니, 카드 긁는 일이 자꾸 즐거워져버렸잖아.



플로베르의 생각을 좀 더 훔쳐봤다.


같은 물건을 취급하지만 조금은 다른 특별한 물건이 되게끔 하는 일,


바로 MD의 일이라고.


같은 물건의 다른 삶을 만드는 일이 바로 우리네 MD의 일이다.


MD의 꽃점 - 같은 물건의 다른 삶


취향이야 각설하고, 업으로서의 MD의 삶의 진행과 함께 흘러가는 글의 방향은 시원하고 깔끔하다. 직업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구구절절 피곤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애환을 털어놓는 듯 하지만 지루하지 않다. 직업의 전반에 대해, 소비 행태를 부추기는 행위에 대해 듣는 모든 책의 이야기가 패션쇼의 백스테이지를 보는 듯 하고, 한편으로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꾸며내는 자기 소개서의 제품 버전과 같아 재미있다.


책의 초반에는 기대와 다른 소박한 이야기들에 의외의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구체적인 회사 생활을 읽으며 몇달 전 회사를 박차고 나온 이유는 잊은 채 이런 회사 라면 괜찮을지도.. 라는 모옷된 생각도 들었더랬다. 치열하지만 공감가는 이야기, 낯설지만 결국 내 장바구니 뒤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비 세포들의 움직임같은 스토리가 더욱 좋았던 책이다. 저자 김현수님의 유쾌한 통찰과 일상에 녹아드는 소비 이야기를 마치다 보면,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의 친구 신용카드를 애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게 될지도. 너 그렇게 나쁜 애는 아니잖아.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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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창비시선 439
이영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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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휴대폰의 카메라는 1 2천만의 화소를 가졌다고 한다. 이로서 눈이 있는 세상의 입자는 작아진 셈이 되겠고, 우리는 더욱 하루를 시작할 있겠다. 세상에 발전하고 업데이트 되지 않는 것은 뿐인 같은 요즘, 잠시 행간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시집을 들었다. 이영재 시인의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이다


스스로의 고독한 시기를 거치며 세상을 바라보는 재기발랄한 시선을 담은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에서는 인간 존재에 대한 섬세한 묘사와 사회의 흐름에 대한 씁쓸한 서사로 특유의 느낌을 완성 시킨다. 단어와 단어를 잇는 묘한 전개에서 느껴지는 시적 긴장감은 조금 낯선 느낌으로 다가오지만 사이의 여운을 음미하는 시간을 거치다 보면 너무 빠른 세상에 맞추느라 놓쳐왔던 것들에 대한 시인의 관찰을 엿볼 있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한계였으면 해서

선을 긋는다 촘촘히, 다시 계단이잖아 어쩔 없으니까 

얼마나  

까마득해지려나


-어쩌면 조금은 굉장한 슬픔


국어라는 과목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부터 국어를 사랑했지만, 시의 단어 하나를 해석하고 행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식의 공부는 불편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모두에게 다른 정의로 해석 되듯, 시를 읽어내릴 때에는 그저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기 보다는 읽어내리는 독자의 마음을 적용시키는 것이 조금 건강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영재 시인의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에서는 독자의 마음이 조금 확대되어, 우리가 속한 사회에 비춰보이는 하다. 시인은 스스로의 고뇌를 담아 내기도, 그가 바라보는 인간에 대한 어떤 떫음을 쏟아내기도 한다. 필자 또한, 시인의 연필 끝에서 느껴지는 소용돌이에서 자주 길을 잃는 했다. 그리고 이영재 시인의 마지막 말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어쩌면 모르는 채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라는 문장이었다


배워온 대로, 두려움을 인내할 안다



젊어서

젊음이 소모되지 않아서 오랜 교육으로 축조된 희망과 기대가 아직 소모되지 않아서


-청사진 중에서


이해하기 힘든 것들을 바라보며, 어떻게든 이유를 찾아내어 열어보고 닫길 반복하는 지금.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은 모든 것을 그저 그러 안아 버려야 한다는 용기와 사랑이 아닐까. 손끝에서 수만가지의 정보가 피어 나는 2020년의 2, 이유를 찾는 또한 또다른 회피의 방법 이었다 것을 깨달았다.


착각하면서, 솔직해진다 솔직하다는 말이 얼마나 솔직하지 않은 말인지 생각하면서


생각하지 않아도 생각은 되고 만다

되는 것들에 굳이 관여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짓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암묵 중에서


여느 시집이 그렇듯, 시집의 제목은 어느 시의 제목일 알았다. 마지막 시인의 말을 모두 읽었는데 <나는 되어가는 기분이다> 라는 시를 읽은 기억이 나지 않아 목차를 되돌아 보았더니 시인은 그런 시를 쓰지 않았다. 모든 시는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고, 시가 되어온 과정이고, 세상이 되어온 과정 속에 부유하는 속삭임일지도. 그러니, 눈이 길어지는 겨울 . 조금 씁쓸한 느낌을 그저 과정으로 받아들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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