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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도 계약이다 -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랑을 위하여
박수빈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평점 :
사랑, 하기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온갖 매체에는 매일같이 연인간의 사건사고가 가십거리처럼 쏟아지고 남녀 불문, 사랑을 빙자한 데이트 폭력. 정보의 시대 속 퍼지는 리벤지 포르노까지요. 사랑하기 정말 좋은 봄날의 햇살 속에서 누가 옳은 사람인지, 어떤 인간상이 사랑하기에 적절한 사람인지를 계산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곤 하는 때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나이에, 지금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시작하게 된다면 꼬박 25년을 다른 세상에서 살아온 이와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게 됩니다. 나는 그 사람의 얼굴이나 몸에 한눈에 반했을 수도 있고 대화 중에 툭 던져 나오는 지성에 창호지 물 젖듯이 빠져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 진행됨에 따라 경제력은 장점도, 단점도 될 수 있을 것이고 술자리를 좋아하는 나와 다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불가능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때도 있습니다만 사랑한다면 맞춰줬으면 하는 부분들이 생기기 마련이니까요. 그렇게 우리는 많은 부분들을 밤낮으로 , 정성을 들여 ‘맞추어’ 갑니다. 과정 중에는 이따금 약속이 생길 것 입니다. 눈치껏 싫어하는 행동들은 하지 않아주는 센스도 발휘할지도요. 그러다가 애써 막아 놓은 불만의 댐이 터져 이별까지 치닫을 수도, 불만은 없지만 감정이 사라진 채로 흐지부지한 사이가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위의 문단에 무수하게 등장한 가정의 수보다도 더 많은 변수가 연애에는 존재합니다.연애를 시작하고 끝내는 시점의 문제부터, 다툼에 올라간 연인의 손을 사랑으로 감싸야 하는 것인지까지.. 사랑하는 사이에 말하기 어려운 것들을 감히 ‘법’으로 풀어냈습니다.
연애는 헤어지더라도 결코 연애를 하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갈 수가 없다. 함께 쌓은 추억, 데이트로 지출한 비용과 시간. 그 어떤 것도 주워담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연애는 ‘해지’할 수는 있어도 ‘해제’할 수는 없는 특별한 계약이다.
숱한 드라마의 소재로 쓰인 계약 연애 에서 주인공들이 문제에 빠지는 순간은 늘 ‘감정’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갑과 을의 권리의 조항들이 차갑게 나열된 계약의 요소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끓는 피를 가진 우리는 사랑을 이어가야 합니다. 다만 이 책은 그저, 나는 노예 계약 아래서 갑질을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멀쩡히 명시된 조항의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제대로’ 사랑 하는지, ‘올바르게’ 사랑 받고 있는지에 대해 살펴볼 시간을 선물합니다.
연애는 한쪽이 다른 한쪽을 소유하는 관계가 아니다. 소유권이란 소유물을 법률이나 사회 공동체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사용하거나, 이를 이용해 이익을 얻거나, 처분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소유할 수 없다. 연애 상대방을 사용할 수도, 이용해서 이익을 얻을 수도, 처분할 수도 없다.
계약을 통해 서로가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어디까지 양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정하고 허용가능한 범위 안에서 조율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오는 법전의 용어로 풀어내는 연애의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환승이별은 양다리 인가 백업 플랜인가요. 전 애인에게서 받은 상처를 나에게 떠넘기는 나쁜놈, 손해배상은 가능할까요? 현실적이고 솔직한 친구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너무 당연한 변호사님의 이야기에 이 쉬운게 감정 하나 들어가면 어쩜 이렇게 어려운건지 탄식하다보면, 어느 정도의 선 안에서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랑을 조금씩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모두 어떻게든 사랑을 하며 살아가기에. 사랑만 하기에도 바쁜 당신에게 진정 안전하고, 자유로운 사랑의 만족을 위해. 덜 아프고 더 행복할 자격을 가진 우리 모두는 연애의 계약 사항에 대해 늘 고심해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나의 계약 사항들이 어느정도 정해진다면, 막연히 좋은 사람을 기다리는 순간들 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망설임 없는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겠습니다. 연 애,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이 자체의 가치는 무엇으로 담을 수 없을만치 소중하지만 그 방향이 나를 향해 있는지를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