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일 박사 (그는 숭실대학교 사학과에서 동북항일군 연구로 역사학 박사를 취득한 정통 사학자이다)의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한국 사학계의 소극적인 과거사 접근, 나아가서 노골적인 식민지사관 계승을 보면서 앓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진정으로 내가 한국인으로서의 피를 자각한다면 이런 연구는 꾸준히 서포트 되어야 하고, 나아가서, 미국의 한국사 강단에서도 친한국적인, 그리고 대륙시각적인 한국의 고대사 연구가를 키워내어야 한다. A급 친일파이면서 조선사편수회의 개 노릇을 한 이병도가 해방 후 한국 사학계의 대부가 됨에 따라 식민지사관의 세력이 강단의 주요세력을 이루고 있는 만큼, 현재 한국에서 한국사를 공부하여 박사가 되는 외국인들 또한 그 사관이 자연스럽게 식민사관을 계승하게 되는 점이 심히 우려가 된다.
이 책들의 시작은 1999년이다. 이때에 제기된 이슈들은 다시 이덕일씨의 다른 책들에서 조금 더 깊이 연구되어 논증된다. 이 당시의 시각에서 바라본 한국 고대-고려-조선-근대사의 재미있는 의문들을 최대한 사료적인 접근을 통해 해석해보는데, 소모적인 환빠-환까의 키보드 베틀과는 달리 정통교육을 받는 사학자의 입장에서 논리적인 분석과 해석을 하는 것이 특히 빼어난 점이다. 이전까지 소위 강단사학에서 그들의 식민사관-실증주의사관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아마추어로 몰아 논쟁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었지만, 이덕일 박사와 같은 정통사학자의 등장으로 인해, 최소한 이런 것은 핑계가 되지는 못할 것이나, 모 대학 모 교수로 이어지는 connection에서 벗어났다는 것이 새로운 핑계가 되는 것 같다. 이 책들에서 다룬 내용들중 특히 흥미를 끈 것은 (1) 환단고기의 진위에 대한 논리적인 방어, (2) 처용의 아랍인설, (3) 삼국시대에 신라에 전파된 경교 (네스토리우스 파의 초기 기독교로 보면 되겠다), (4) 한사군의 위치, 실재, (5) 한국 땅에 존재했던 '왜'라는 수수께기의 국가 (일본 열도로 몰리기 전의 한국사/한국민족의 세력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등등인데, 앞서 말했듯이 여기서 다뤄진 많은 역사적인 이슈들은 십 수년후 다시 보다 더 심혈을 기울인 사서의 대조판독과 비교를 통해 훨씬 더 강력한 사료적인 논리를 갖게 된다.
여기서는 보다 더 심도있게 한중일의 고대사서를 비교해서 우리 민족의 대륙기원설을 논리적으로 증명한다.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고조선과 고구려의 활동무대가 만주였음은 상식이다 (물론 역사교육이 일주일 한 시간으로 줄어든 지금의 세대는 큰 걱정거리이다). 하지만, 대륙백제설을 유추할 수 있는 중국의 고대사서의 내용은 비록 그 내용이 와전되고 뒤틀린 상태로 항간에 퍼져 우스갯소리가 되고는 있지만, 그 에센스를 보면 훌륭한 논증이 가능하다.
또한 한국의 독립운동사가 80년대까지는 연구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처음로 이 책과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식민지의 주구가 되었던 자들이 해방 후, 그리고 5-16 군사반란을 거쳐 한국의 주류기득권이 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는 너무도 당연한 처사가 된다.
분명하게 말하거니와, 이덕일 박사의 접근은 고도의 전문성에 기반한 학술적인 주장이지, 혹자가 비난하는 것처럼 '믿쑵니다~' 수준으로 치부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덕일 박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 자신은 기실 역사학을 전문으로 공부하지 않았고, 지엽말단적인 부분을 침소붕대하는데, 자신의 주장이 '실증주의'에 기반했음을 주장하는 것에 비해, 전혀 실증적이지 못한 인신공격에 다름아니다. 환단고기를 비롯한 고대사서의 진위성은 학술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지 이렇게 난장을 처버려야 할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류사학계나 강단사학에서는 한국의 고대사를 중국과 일본의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심히 노력하는 것 같아 한국민족의 일원으로서 한탄스럽기 짝이 없다.
주류사학에서 극도로 축소되고 왜곡된 한국의 근대 독립운동역사를 심도있게 다룬 책이다.
해방 이후 독부 이승만의 세력확대를 위한 맹목적의 반공정책과 친일세력 재등용, 5-16군사반란을 통해 사회의 주요기득권으로 급부상한 일군/만군 출신 군바리들, 12-12정변을 통해 이어진 이들의 기득권, 그리고 지난 부정선거를 통한 노추의 귀환을 보면서, 우리 손으로 이루지 못한 독립의 슬픔이 뼈져리게 느껴진다.
다카키 마사오가 반신으로 추앙받고, 백선엽 같은 이가 훈장을 받으며 그의 이름을 딴 상이 생기고, 백두산과도 호랑이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던 친일파 칼잡이 군인 김종원 같은 이들이 쌓이고 쌓인 한국 사회에서 아마도 좌/우가 모두 어우러져 치뤄낸 독립운동의 역사는 부정되어야 할, 아니 감춰야 할 치부인 것이다.
지금은 그 어느때보다는 한국의 국가/민족적인 정체성이 훼손되고 흔들리는 시대이다. 미국에서 한 발 멀찌기 떨어져 살면서 이렇게 한국의 문제에 대해 지사연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이런 책이 널리 읽히고, 사람들이 역사에 더 관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 길게 적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