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정 - 흔들리지 않고 고요히 나를 지키다
정민 지음 / 김영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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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 묶음의 제목을 습정(習靜)’으로 정했다. 침묵과 고요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침묵이 주는 힘, 고요함이 빚어내는 무늬를 우리는 완전히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p4)

 

바쁜 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침묵과 고요는 허상처럼 들린다. 내 바람과 달리 복작복작 거리는 일과 속에서 마음의 평정을 찾는 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습정의 저자 정민 작가는 이 역시도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아무에게도, 그 무엇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온전한 내 자신을 마주할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에 펼친 책에서 나는 보물을 찾았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는 인생지침서 같은 책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해내지 못해 이렇게밖에 살지 못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다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고 어영부영 하루를 보내는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 자신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반발심이 들기 보단 잔잔한 호수를 마주한 것처럼 평온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읽었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인간의 고민은 참 한결같다는 생각에 옛 선인들과 묘한 동질감도 느껴졌다. 모두가 처음 사는 인생이다 보니 넘어지기도 하고 부서지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부끄럼 없이 살 수 있을까, 내 마음의 출렁임을 진정시킬 수 있을까. 잘 살아보고 싶은 인간의 열망이 고스란히 담긴 100편의 지혜를 만나며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마음을 다스리는 1, 공부의 자세를 담은 2, 세간의 시비에 대처하는 3부 그리고 성쇠와 흥망을 바라보는 4. 어찌 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그 뻔한 초심을 잃고 방황해왔다.

 

 

 

금년에는 작년이 그립고, 내년이면 금년이 그리울 것이다. 아련한 풍경은 언제나 지난해 오늘 속에만 있다. 눈앞의 오늘을 아름답게 살아야 지난해 오늘을 그립게 호명할 수 있다. 세월의 풍경 속에 자꾸 지난해 오늘만 돌아보다 정작 금년의 오늘을 놓치게 될까 봐 마음 쓰인다. (p39)

 

라떼는 말이야, 기성세대를 풍자하는 신조어지만 지금보다 더 찬란했던 과거의 나를 그리워하는 건 특정 세대만의 현상이 아니다. 아직 살아온 날이 많지 않기에 기성세대만큼 과거에 집착하지 않을 뿐 지금 이 순간의 나보다 더 자유로웠던 어린 날의 패기와 추억을 그리워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지 않을까.

 

거년차일 (去年此日) - 눈앞의 오늘에 충실하자

이 단어를 보며 심장이 쿵 하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모두가 가슴에 새기며 살지만 하루를 돌아보면 왜 이리도 성실하게 살지 않았나 매일 후회한다. 지난해 봄도, 올해의 봄도 무심히 흘러간 것을 아쉬워하며 내년 봄을 기약하는 이학규의 춘진일언회. 통신사의 임무를 맡아 작년과 달리 이역만리 먼 땅에서 오늘을 맞이한 자신을 부평초라 표현한 정희득의 청명일전파유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잃어 눈물 짓는 서거정까지. 거년차일을 가슴에 새겼던 선인들을 생각하며 내년의 내가 올해의 나를 떠올릴 때 뿌듯할 수 있게 오늘을 살아야겠다. 지난 간 시간은 추억 속에만 있을 뿐 다시 되돌아오지 않으니 말이다.

 

내가 예전 절에서 책을 읽었을 때였지. 3월부터 9월까지 일곱 달 동안 허리띠를 풀지 않고, 갓도 벗지 않았네. 이부자리를 펴고 누워 잔 적도 없었지. 책을 읽다가 밤이 깊어 졸음이 오면, 두 주먹을 포개 이마를 그 위에 받쳤다네. 잠이 깊이 들려 하면 이마가 기울어져 떨어졌겠지. 그러면 잠을 깨어 일어나 다시 책을 읽었네. 날마다 늘 이렇게 했었지. 처음 산에 들어갈 때 막 파종하는 것을 보았는데, 산에서 나올 때 보니 이미 추수가 끝났더군.” (p84)

 

일승지공 (一勝之工) - 공부는 무릎과 엉덩이로 한다

라떼는 말이야 이렇게 공부했어 끝판왕이 아닐까! 조선시대 후기 문신이었던 후재 김간 선생이 제자에게 들려 준 자신의 공부법을 읽으며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공부하는 것이 과연 인간인가! 책에는 수많은 공부법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결국 인내와 끈기가 인간 승리의 비결이다. 알고도 도저히 실천할 수 없는 괴물 같은 인간들에게 경의를 표할 뿐이다. 한 가지 확실한건 몇몇 소수를 제외하고는 예나 지금이나 공부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행위라는 것이다.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징징거리는 조상들의 이야기를 몰래 엿본 거 같아 나도 모르게 슬그머니 웃음 짓게된다.

 

나는 이 책의 매력을 과거와 현재의 동질감이라 말하고 싶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은 다 비슷한 고민과 후회를 하며 현재를 살아간다. 자신 앞에 직면한 문제를 잘 해결하고 싶을 때, 조상들의 지혜를 빌려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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