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리커버 및 새 번역판) - 유동하는 현대 세계에서 보내는 44통의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셀렉션 시리즈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오윤성 옮김 / 동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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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제 더는, 두 번 다시는 혼자일 필요가 없다. 하루 스물네 시간, 일주일 중 어느 때라도 버튼 하나만 누르면 외톨이 집단 중 한 사람의 곁으로 소환될 수 있다. (p19)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이전에는 가치 있던 것들이 더 이상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많은 노력을 들이기보단 쉽고 빠른 걸 추구한다. 이제 우리는 더 행복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지그문트 바우만이 유동하는 현대 세계에서 보내는 44통의 편지를 엮은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속마음을 꿰뚫어본다. 지금의 우리는 이전처럼 타인과 관계를 쌓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된다. 핸드폰만 켜면 카톡과 인스타로 쉽고 빠르게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 약속을 잡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할 필요도 없고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굳이 대면할 필요도 없다. 현실에서 관계를 맺지 않아도 sns를 통해 관심사가 같은 사람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차단 버튼 클릭 한번으로 영원히 내 세상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 사람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모든 사람을 이용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언제든 이용 가능한 상황(p20),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직면한 세상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는 유동하는 이 세상이, 과연 우리가 꿈꾸던 유토피아인가? 바우만은 외로움으로부터 도망치는 사람은 고독의 기회를 놓친다(p21) 강조한다. 그는 오직 고독만이 줄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을 잃은 이들이 자신이 무엇을 박탈당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한다. 일득일실은 필연적이다. 고독을 잃음으로써 얻은 것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을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배제당하는 것, 쫓겨나는 것, 혼자 남는 것, 삭제당하거나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차단당하는 것, 뒤처지거나 떨어져 나오는 것, 승인이 거부되고 무시당하고 계속 기다려야 하고 불청객 취급을 받는 것 …… 이런 것들이 우리 시대에 가장 흔한 악몽이다. 이 세계는 악몽마저도 이렇게 쓸데없이, 남아돌 만큼 많이 생산한다(p187).

 

나도 그렇지만 요즘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질 못한다. 과거 세대는 정보 부족에 시달렸다면 지금은 이 작은 기기로 인해 정보 과잉에 시달린다. 이 책에 나온 글을 쓴 시기가 2008-09년이다 보니 스마트폰에 대한 언급은 없는데 만약 10년 후에 이 글을 썼다면 스마트폰 문제를 심각하게 지적했으리. 우리는 왜 핸드폰에 집착하는 걸까? 바우만은 이를 공포증의 일환으로 본다. 빠르게 움직이고, 흐릿하고, 혼란스럽고, 예측 불가능한 시대, 이런저런 덫과 함정으로 빼곡한 유동하는 현대에 우리를 끈질기게 따라붙는 것은 바로 두려움에 대한 두려움(p185)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손에 쥠으로써 원하는 정보를 바로바로 찾아보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안도감을 가질 수 있다. 특히 사람들은 공동체에서 낙오되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이는 불행을 자기 혼자서, 속수무책으로 겪게 되리라는 예상(p186)에서 비롯된다. 누군가와 끝임 없이 연락을 유지하면서 소속감을 느낄 수 있고 이는 사람들이 연락에 많은 열정을 쏟는 결과를 낳는다. 무엇을 위해, 누구에게 나를 증명하고 있는 것인가? 고독을 통해 그 답을 찾아봤으면 좋겠다.

 

이럴 줄 몰랐다.”는 변명을 멈추기에 딱 좋은 때다. 이 종이 누구를 위해, 하루하루 더 크게 울리고 있는지 묻기에 더없이 좋을 때다. (p145)

 

바우먼은 전반적으로 고독을 회피하는 현대인의 습성을 꼬집는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인간이 파괴하는 자연에 대해서도 경종을 울린다. 당시 아이슬란드에서 대규모의 화산폭발이 일어났었는데 그는 이를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우발적인 사건이라 변명하지 말라 단언한다. 우리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변명을 멈추기에 딱 좋을 때라는 리처드 로티의 호소처럼 사회 전반적인 분야의 변화를 촉구한다. 창의적 인재를 바라면서 교수법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는 교육, 사람의 목숨마저도 불평등한 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어린 나이부터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읽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온전히 나만의 의지인지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고독을 바라면서도 단 한순간도 고독하지 못한 가련한 현대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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