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순간들 - 박금산 소설집
박금산 지음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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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줄여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소설이다. 한 마디로 줄여 말했는데 그게 재미있어야 영원한 소설이다. (p61)

 

참 특이한 책이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로 이뤄진 소설의 구성 순간을 따로 떼어내 각 순간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설명하다니, 박금산 작가의 소설의 순간들25편의 단편을 엮어 소설의 짜임새를 소개한다. 소설을 어떻게 써야할지,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막막한 사람들에게 이것이 발단이고, 전개고, 절정이며, 결말이다를 명확히 알려준다. 흥미로운 점은 위기가 빠졌다는 거다. 위기가 절정 이후, 결말 이전이라는 한 순간의 단계로 작용하는 게 아니라 소설 구성의 매 단계에 배경처럼 깔리는 요소여야 한다는 것이 기술되지 않고도 기술되어 있는 셈이라는(p177) 김나영 평론가의 해설 덕분에 작가님의 본심을 설핏 알 수 있었다.

 

소설의 구성 순간을 야구로 비유해 야구 덕후에게는 매우 이해하기가 쉬웠다.

 

발단 :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 마지막 타자를 세워두고 던지는 첫 투구

전개 :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 공을 때린 다음에 취하는 것

절정 : 9회 말 투 아웃 만루에서 홈런 or 삼진

결말 : 9회 말 투 아웃 만루가 끝난 상황

 

야구에서 9회 말 투 아웃 만루 상황에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정말 무궁무진하다. 특히 점수 차에 따라 나올 수 있는 수많은 작전은 고작 아마추어인 나조차도 여러 개를 꼽을 수 있다. 야구장에서 투수와 타자의 수싸움을 글로 옮겨온다면 작가와 독자의 매력 쟁탈전이 되는 건가. 작가가 이야기를 어떻게 끌어가는가에 따라 독자가 느끼는 긴장감은 다르다. 투수는 첫 투구에 타자의 반응이 예상되어 있는 어떤 공을 던져야한다(p17). 작가는 발단 과정에서 독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염두에 두며 소설을 시작해야 한다. 이 책에서는 발단 과정에서 5개의 단편을 소개하는데 내가 느끼기에 확실히 다음 이야기가 있다는 인상을 깊게 받았다. 특히 <에이스는 신촌에 갈 것이다>편에서는 대체 테니스장 노인의 정체는 누구인지, 왜 신촌에 오라 한 건지, 그래서 결국 회비는 냈는가? 풀리지 않는 떡밥이 가득했다.

 

 

 

좋은 전개는 그것을 따로 떼어놓았을 때 독자가 앞뒤를 상상하면서 흥미를 느끼게 한다. 앞도 있고, 뒤도 있으니, ‘전개는 외롭지 않아 참 좋겠다. (p41)

 

발단에 수록된 단편들이 뒷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든다면, 전개에 소개된 이야기들은 앞과 뒤가 빠졌다는 느낌이 든다. 이야기의 시작이라 보기에는 뭔가 부족하고 끝이라고 보기엔 더 엉성한. 이 책을 읽다보면 신기한 게 수록된 짧은 단편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한 편의 완성된 소설로 느껴지기도 한다. <네가 미칠까 봐 겁나>를 읽으며 혼자라는 것이 두려운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과 부부간의 신뢰에 대해 생각해보며 대체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으며 앞으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진다. <소설을 잘 쓰려면>편에서는 글을 쓰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은 게 아닐까싶다. 작가는 책의 머리말로 헤밍웨이의 여섯 단어 소설을 소개했는데, 잘 쓴 소설은 간결하다는 걸 다시금 각인시킨다.

 

절정이 소설의 전부임은 더 말할 필요 없다. (……) 절정은 끝이지만 절벽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p94)

 

절정에 이르러선 어떤 사건이 빵 하고 터진다. 이렇게 아슬아슬,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될까가 아닌, 이미 터진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수습될지 그 추이를 지켜보게 한다. 다만 절정 부분을 읽다보면 이게 위기인지, 절정인지 잘 구분이 가지 않는다. 사실 소설을 무 자르듯이 딱 딱 나누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대략적인 느낌이 이러하다는 걸 알아차린다면 이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스마트폰을 잃어버려 전전긍긍하다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남자, 조언을 엉뚱하게 악용하는 자전거 도둑, 이웃에게 퍽큐!를 날리며 스트레스를 푸는 남자 등, 모든 이야기마다 각자의 클라이막스에 다다른다.

 

결말은 말 그대로 지금까지의 일들을 수습한다. 승부가 절정이라면 환호가 결말이다(p134)는 작가의 비유처럼 이야기의 교훈과 의미를 전하며 끝을 맺는다. 결말이 소설의 끝이지만 이야기의 끝은 아니다. 사람의 인생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작가가 풀지 않는 그 뒷이야기는 독자의 상상에 달렸다. 소설의 순간들소설의 구성은 이러하다! 고 말해주는 교과서 같은 책이다. 지금까지 접했던 책과는 조금 달랐지만 색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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