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밀의 도시
패트리스 채플린 지음, 이재경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무슨 마야나 잉카제국의 인신공양도 아니고 나는 이 문장이 주는 섬뜩함에 놀라 한동안 책을 사 두고도 읽지 못했다. 제목만 보면 동화같고 판타지 같았는데, [비밀의 도시]를 소개하는 한 문장은 이토록 강렬한 것이었으니 도리어 읽기 겁이났던 것이다.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충격적인 이야기라는 소갯말은 얼마나 공포스러운 것이기에 이렇게 덧달아 놓았나 싶어져 첫장을 넘기다가도 도리어 닫게 만든었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소설을 읽기 시작했다. 찰리 채플린의 며느리인 극작가 패트리스 채플린이 쓴 [비밀의 도시]는 열 다섯의 소녀 패트리스가 베프인 베릴과 함께 조세를 만나면서부터 시작된다. 1955년 5월의 일이었다. 발길 닿는대로 여행을 다니는 열 다섯살 두 소녀는 지로나라는 로마시대 이전에 세워진 도시에서 신비한 남자 조세와 마주쳤다.
사실 지로나는 로마점령이전 이베로인의 무역 거점으로 많은 전쟁 영웅들이 거쳐간 곳이다보니 전쟁으로 인해 많은 흔적들이 남겨진 곳이어서 그 자체가 유적인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만난 신비한 남자 조세는 비밀 단체에 속한 성배의 보관자로 친구 베릴이 그에게 흠뻑 빠져들었으나 결국 패트리스의 연인이 되면서 그녀는 그에 대해 많은 것들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2천년간 숨겨온 비밀에 접근하게 된 그녀는 연인의 비밀과 고대의 비밀을 한꺼번에 벗기려고 하고, 그녀의 연인은 끝까지 비밀을 고수하기 위해 사랑하는 여인조차 가질 수 없게 되어버리는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지로나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들은 비밀투성이라 읽는내내 처음 가졌던 공포를 잊게 만들었으며 저주받은 집, 숨겨진 프랑스 여인의 정체, 카발라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신부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미스터리한 구석이 계속 나열되면서 그 어떤 판타지보다 책을 파고들게 만든다.
깜짝 놀랄 일은 잠시 등장하는 움베르토가 그 움베르토 에코라는 사실이며 실존 인물과 실존 장소가 나열되면서 자꾸만 진실을 함께 찾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열 다섯에겐 흥미롭고 신기한 일이겠으나 읽게 되는 20대 30대 40대에게도 열 다섯의 소녀의 마음으로 읽게 만드는 일은 사실 그리 흔한 일은 아니기에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인 회고담 같은 여행담이 이토록 흥미로울 수 있는지 누가 알 수 있었겠는가.
조세가 하는 일보다 조세가 조세인 것이 위험해. 라고 말하는 여인의 의문투성이의 말에 대한 진실이 풀려지는 순간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이며, 이들의 사랑이 헤어진 순간에도 이어지고 있었음을 나는 시작과 끝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조세와 함께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렴,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을 거야.
그냥 받아들이고 그를 사랑하려므나...
라던 마리아의 충고는 조세같은 남자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연인들에게 해당되는 충고이기에 별로 개념치 않고 읽었는데, 그들을 둘러싼 비밀이 밝혀지면서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구나를 알 수 있었다. 1972년의 지로나에서 1955년의 지로나로 되돌아가 시작하는 이 소설은 그래서 흥미로웠다. 공포스럽거나 무섭거나 섬뜩하기보다는 인디아나 존스와 함께 여행을 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고대의 유물이나 비밀을 찾아내는 듯한 느낌을 나는 이 책 한 권에서 다 경험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