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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
나카무라 진이치 지음, 신유희 옮김 / 위즈덤스타일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올 초,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게 앓았다. 앓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수반되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전신마비가 왔고 여러 차례 검사를 받았지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사는 다만 심리적인 요인이거나 아직 찾아지지 않는 그 어딘가에서 큰 고장을 잃으킨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손가락,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것 외에는 누워서 암것도 할 수 없이 남의 도움을 받아야했기에 나는 그렇게 별다른 치료없이 고통만 줄여주는 진통제를 거듭 맞아가며 의미없는 입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만약 고통이 없이 그냥 마비가 왔다면 어땠을까.
고통스러웠기에 그 고통의 원인을 알고자 했고 그 고통을 넘어서고 싶어서 나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몸을 움직여보려 애썼다. 아무리 병원 침대를 붙잡고 몸을 일으키려해도 꼼짝도 할 수 없었으며 약간의 몸뒤틈조차 홀로 할 수 없어 괴롭고 또 움직일때마다 누군가 내 몸에 손을 댈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와 소리를 질러대곤했다. 갑자기 찾아온 몸의 이상.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땀에 흠뻑 젖어 일어나고 잠들면서도 나는 받아들이기보다는 극복하기 위해 애썼다.
여러 날이 지나고 어느날 진통제를 맞고 누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마비가 온 것은 원인이야 어쨌든 이미 일어난 일이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계속 이대로 원인 모르게 누워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어느날 갑자기 못 일어나게 되었으니 어느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게 되지도 않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이 교차하면서 언제나 긍정적인 쪽을 택해왔던 나는 후자쪽을 강하게 믿으면서 혼자 몸을 가누어 보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퇴원할 때까지 내 병명은 "알 수 없음"이었고, 증상은 시간이 많이 걸려도 혼자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상태가 되어서 통원치료를 선택하고 퇴원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통증과 진통제를 끊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아프다. 하지만 견딜 수 있을만큼이며 이 시기를 겪으면서 신체에는 자가치유력이 있으며 1년 정도의 단위로 몸이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력을 지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여기저기 내 병의 원인과 치료를 위해 책을 찾아 읽으며 뜻밖에 좋은 책들을 구해 읽게 되었는데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도 그 중 하나였다.
매일매일 죽음을 바라보는 노의사. 나카무라 진이치는 고인의 마지막이 의료행위 없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도록 주장하는 의사였다. 흔히 우리는 "병은 의사가 고쳐 주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내원하지만 실제로 수술이 임박한 환자 외에 의사가 할 수 있는 의료행위는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죽고 사는 문제는 스스로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픔에서 회복되면서 내가 살아가는 것인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 둘이 결국 같음을 알게 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동안 다소 아프거나 괴롭고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어졌다.
고통이 싫어서 병원에 가는 것인데, 죽는 순간까지 고통스럽지 않다가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다면 굳이 임종을 병원에서 맞이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진다. 그의 주장처럼 치료가 오히려 자연사를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인의 임종을 바라본 나카무라는 자연사를 "자연스럽게 죽는 것"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 그가 바라본 죽음은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서 조금씩 몸이 말라가고 종국에는 잠을 자듯 숨이 멈추어지는 단계를 의미했다. 그래서 가장 고통스럽게 여겨지는 "암"이라는 병이 그에게는 죽기에 가장 적절한 병으로 분류되어져 있었다. "항암치료"과정의 고통은 치료에서 오는 것이지 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면서.
사람은 살아온 것 처럼 죽는다고 한다. 제 명이 다 했다면 받아들이고 편안한 죽음을 맞는 편이 "치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임을 알면서도 조금 더 살아보겠다고, 아프지 않아보겠다고 사람들은 병원행을 택한다. 누구나 다 그러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움직일 때 마다 몸이 아프다는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라는 신호"(p107)것을 알고 생활습관을 바꾸어나가고 있는 것처럼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도 편견을 버려야 함을 알게 되었다. 굳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자연사를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앞둔 노인은 아니지만 내 명을 다하고 죽게 된다면 나 역시 자연사를 택하고 싶어졌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노화가 병이 아님을 받아들이는 건강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 싶어져서였다. 병원생활을 하다보니 그 곳에 갇혀 함께 고통받는 다른 환자들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고역임을 알게 되었기에 죽음 역시 건강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진 것이다.
암은 내버려둘수록 아프지 않다는 것. 약으로 증상을 억제할수록 치유는 늦어진다는 것, 예방주사는 도박이며 의사에게 노인은 소중한 밥줄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 건강검진이 "건강만들기"가 아니라 "환자만들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궁금증이 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