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욕망하는 냉장고
KBS <과학카페> 냉장 / 애플북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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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시절, 친구의 집에 갔다가 처음 양문형 냉장고를 보고 부러웠던 기억이 있다. 우리집 냉장고도 작은 것은 아니었는데 양문형 냉장고에 앞쪽에는 얼음이 툭툭 나오는 걸보면서 "우와~ 좋겠다"싶었더랬다. 중학생의 눈에도 이럴진데 주부들에게 가전제품들은 본능적으로 욕망하게 되는 제품군이 아닐까 싶어진다.

 

"~ 알려주지 않는 시리즈"는 그 어떤 것을 주제로 하든 간에 심장이 툭 떨어지고 기분이 뚝 떨어질만큼 놀라운 것들이었다. 화장품의 비밀도, 반려동물 사료의 비밀도, 마트 고기의 비밀이나 의사들이 알려주지 않는 병원의 비밀, 은행원이 고백하는 은행의 비밀들이 그러했다. 이번에는 냉장고였다.

 

점점 사이즈가 작은 가전제품을 선호하고 있는 시점에서 여전히 그 덩치가 클수록 환대받는 가전제품이 유일하게 "냉장고"라는 것은 책이 집어주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실이다. 듣고보니 그렇다. 가족수는 점점 더 줄어가는데 우리는 왜 갈수록 더 큰 냉장고를 선호하고 있는 것일까. 예전에 비해 먹거리가 더 풍족해져서? 웰빙시대라 천연조미료를 더 구비하게 되어서? 하우스 과일 재배로 사시사철 구비할 수 있는 과일수가 다양해져서? 물론 이 모든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소비 심리에 있었다.

 

이승기가 선전하고 김태희가 선전하니까. 그리고 우이 이웃들이 더 큰 리터의 양문형 냉장고에 김치 냉장고 와인냉장고들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도 당연히 가지고 있어한다는 소비심리. 1862년 영국사람인 제임스 해리슨이 냉장고를 처음 만들었을 당시에는 오늘날 이런 현상이 일어날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꿈에도-.

 

냉장고가 커질 수록 버려야 할 것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그 넘쳐나는 쓰레기들이 지구온난화를 가속화 시키고 함께 사는 환경을 파괴해나간다. 나이지리아 의 한 마을 소녀들이 냉장고 없이 냉장고의 원리를 이용해 시간을 버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필요이상의 소유로 그들과 함께 살아갈 터전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오늘 열어본 내 냉장고는 텅텅 비어있다. 이처럼 너무 넣어둔 것이 없는 것도 문제겠지만 반대로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를만큼 꾸역꾸역 넣어진 냉장고 역시 문제이긴 마찬가지라고 책은 꼬집고 있다. 침대가 과학이듯 냉장고는 디자인 장식장인가? 아름다운 것도 좋지만 그 본연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딱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고 더이상은 욕심내지 않고 나누며 살 것. 그것을 건강한 삶으로 정의 내리며 산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그럼으로써 나는 행복해졌다. 내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좀 더 적게 먹고 좀 더 많이 내뱉으며 살아가고 있기에 나는 내 낡은 냉장고가 앞으로 몇년은 더 건강하게 버텨주리라 믿는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냉장고도 건강해야한다는 것을 나느 [욕망하는 냉장고] 속에서 발견해냈다. KBS과학카페 팀이 알려준 냉장고의 두 얼굴은 그래서 야누스의 그것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그것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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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
나카무라 진이치 지음, 신유희 옮김 / 위즈덤스타일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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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올 초, 태어나서 처음으로 크게 앓았다. 앓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고통이 수반되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전신마비가 왔고 여러 차례 검사를 받았지만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사는 다만 심리적인 요인이거나 아직 찾아지지 않는 그 어딘가에서 큰 고장을 잃으킨 것이 아닌가 하고 짐작할 뿐이었다. 손가락,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것 외에는 누워서 암것도 할 수 없이 남의 도움을 받아야했기에 나는 그렇게 별다른 치료없이 고통만 줄여주는 진통제를 거듭 맞아가며 의미없는 입원생활을 하고 있었다. 만약 고통이 없이 그냥 마비가 왔다면 어땠을까.

 

고통스러웠기에 그 고통의 원인을 알고자 했고 그 고통을 넘어서고 싶어서 나는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몸을 움직여보려 애썼다.  아무리 병원 침대를 붙잡고 몸을 일으키려해도 꼼짝도 할 수 없었으며 약간의 몸뒤틈조차 홀로 할 수 없어 괴롭고 또 움직일때마다 누군가 내 몸에 손을 댈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밀려와 소리를 질러대곤했다. 갑자기 찾아온 몸의 이상.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땀에 흠뻑 젖어 일어나고 잠들면서도 나는 받아들이기보다는 극복하기 위해 애썼다.

 

여러 날이 지나고 어느날 진통제를 맞고 누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게 마비가 온 것은 원인이야 어쨌든 이미 일어난 일이고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계속 이대로 원인 모르게 누워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어느날 갑자기 못 일어나게 되었으니 어느날 갑자기 벌떡 일어나게 되지도 않을까. 라는 엉뚱한 생각이 교차하면서 언제나 긍정적인 쪽을 택해왔던 나는 후자쪽을 강하게 믿으면서 혼자 몸을 가누어 보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퇴원할 때까지 내 병명은 "알 수 없음"이었고, 증상은 시간이 많이 걸려도 혼자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상태가 되어서 통원치료를 선택하고 퇴원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무시무시한 통증과 진통제를 끊는데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아프다. 하지만 견딜 수 있을만큼이며 이 시기를 겪으면서 신체에는 자가치유력이 있으며 1년 정도의 단위로 몸이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력을 지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여기저기 내 병의 원인과 치료를 위해 책을 찾아 읽으며 뜻밖에 좋은 책들을 구해 읽게 되었는데 [편안한 죽음을 맞으려면 의사를 멀리하라]도 그 중 하나였다.

 

매일매일 죽음을 바라보는 노의사. 나카무라 진이치는 고인의 마지막이 의료행위 없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도록 주장하는 의사였다. 흔히 우리는 "병은 의사가 고쳐 주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고 내원하지만 실제로 수술이 임박한 환자 외에 의사가 할 수 있는 의료행위는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죽고 사는 문제는 스스로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픔에서 회복되면서 내가 살아가는 것인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인지 알지 못했는데 이 둘이 결국 같음을 알게 되면서 죽음을 준비하는 동안 다소 아프거나 괴롭고 힘든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어졌다.

 

고통이 싫어서 병원에 가는 것인데, 죽는 순간까지 고통스럽지 않다가 자연스럽게 죽을 수 있다면 굳이 임종을 병원에서 맞이할  필요는 없겠다 싶어진다. 그의 주장처럼 치료가 오히려 자연사를 방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노인의 임종을 바라본 나카무라는 자연사를 "자연스럽게 죽는 것"으로 정의 내리고 있다. 그가 바라본 죽음은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서 조금씩 몸이 말라가고 종국에는 잠을 자듯 숨이 멈추어지는 단계를 의미했다. 그래서 가장 고통스럽게 여겨지는 "암"이라는 병이 그에게는 죽기에 가장 적절한 병으로 분류되어져 있었다. "항암치료"과정의 고통은 치료에서 오는 것이지 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면서.

 

사람은 살아온 것 처럼 죽는다고 한다. 제 명이 다 했다면 받아들이고 편안한 죽음을 맞는 편이 "치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임을 알면서도 조금 더 살아보겠다고, 아프지 않아보겠다고 사람들은 병원행을 택한다. 누구나 다 그러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움직일 때 마다 몸이 아프다는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몸을 움직이라는 신호"(p107)것을 알고 생활습관을 바꾸어나가고 있는 것처럼 죽음을 받아들이는 자세에서도 편견을 버려야 함을 알게 되었다. 굳이 고통스럽지 않다면 자연사를 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죽음을 목전에 앞둔 노인은 아니지만 내 명을 다하고 죽게 된다면 나 역시 자연사를 택하고 싶어졌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며 노화가 병이 아님을 받아들이는 건강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 싶어져서였다. 병원생활을 하다보니 그 곳에 갇혀 함께 고통받는 다른 환자들을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고역임을 알게 되었기에 죽음 역시 건강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진 것이다.

 

암은 내버려둘수록 아프지 않다는 것. 약으로 증상을 억제할수록 치유는 늦어진다는 것, 예방주사는 도박이며 의사에게 노인은 소중한 밥줄이 되어 버린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 건강검진이 "건강만들기"가 아니라 "환자만들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궁금증이 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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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것을 고르는 여자 가장 맞는 것을 고르는 여자 - 성공한 여자보다 성숙한 여자가 행복한 이유
리링야오 지음, 최인애 옮김 / 조선앤북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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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래도 욕심이 마음 속에 들어차 있는 것은 나도 어쩔 수가 없다. 사람이므로.

대단한 사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맘에 드는 사람, 나랑 인생을 살아갈 사람을 고르는 일이므로 누군가의 조언이나 충고 보다는 내 마음의 결정을 따르고 싶어지는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책이 바로 [가장 좋은 것을 고르는 여자, 가장 맞는 것을 고르는 여자]였다.

 

나는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왔을까? 가장 맞는 것을 골라왔을까?

 

비교적 쉬운 선택들은 가장 맞는 것을 골라왔던 것 같다. 하지만 어려운 선택들은 가장 맞으면서도 내게 주어진 것들 중 가장 좋은 것들을 고르려고 꽤나 애쓰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남자를 대하는 일은 연날리기와 같다 라고 책이 충고하고 있는데 이보다는 "제때에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p.30)는 충고가 더 가슴에 와 닿았다.

 

내게 제때라는 것은 지나간 것인가 앞으로 다가올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은 채, 나는 조급해하는 친구들과 태평스런 친구들 사이에서 중간자의 입장으로 서 있다. 결혼을 안할 것도 아니면서 미혼이자 비혼으로 살아가고 있는 나와 친구들은 가장 좋은 것을 위해 시간을 멈추고 서 있는 것인지, 가장 맞는 것을 위해 멈추어 서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책을 다 읽고나면 약간의 현명함이라도 생기려나? 싶었는데 딱히 그래지지 않았다. 성숙한 여인이 아니어서 그런 것일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족감이 아닐까 싶어진다. 중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저자 리링야오의 강의는 특별히 색달랐던 것은 아니었다. 이미 서양의 혹은 일본의 누군가를 통해서 들어왔던 이야기였고 그렇다보니 이런 이야기를 또 읽게 되는구나 라는 복습의 의미로 읽혀졌다. 오히려 책의 내용보다 그 제목이 시사하는 그 의미가 더 커서 초록색 표지를 닫아두고 제목을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기곤 했다. 책을 읽는 짬짬이.

 

다만 앞으로 나는 많은 것을 갖기를 원하기보다는 내게 잘 맞으면서도 가장 좋은 것들을 취하며 살아가고 싶어졌다. 남자든, 인생이든, 여행이든, 맛나는 것들이든 간에.  이런 태도와 결정이 인생의 높이를 높여줄 것인지는 좀 더 살아봐야 알 수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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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사람은 스토리로 말한다 -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피터 구버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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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도박의 도시 LA가 그 오명을 벗고 "스포츠"와 영화의 도시로 거듭난 것은 굿맨 시장의 노력 덕분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의 매력을 아는 사람들이 기회를 잡으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숫자에 능한 사람들이 삶을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처럼.

 

숫자에 능하지 못하지만 이야기에는 일각연이 있던 내게 이 책이 알려주는 비법들은 귀가 솔깃한 것들이었다. 내게도 기회가 있는 셈이니까. 성공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그 성공의 목표가 비단 돈뿐만 아니라 자기 만족감에 그 적을 두고 있다 하더라도 성공은 분명 성공일테니.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패"들이 여러 페이지에 걸쳐 조언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P.134  성공의 기본은 준비다

 

라고 했던가.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왔을때 기회는 성공의 발판이 될 수 있지만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 오는 기회는 아쉽게 놓쳐버린 막차처럼 가슴을 치며 후회하게 만들곤 했다. 내가 기억하는 기회 역시 그렇게 물거품이 된 일이 있기에 나는 언제나 무언가를 목표로 두면 공부하고 준비하고 길게 두고 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치열하게만 살던 20대엔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이 30대엔 경험을 바탕으로 자연스레 그렇게 되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40대엔 내가 원하는 세상 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희망하고 있다.

 

글을 쓰든, 말을 하든 간에 이야기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사람 속에서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왔다. 스토리텔링이 문화콘텐츠가 되는 세상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기에 "잘 들어주는 일"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건 자신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 역시 뛰어난 전략이자 기회를 포착할 수 있는 중요 포인트가 된다. 기업이 이용하면 상술이지만 개인이 이용하면 기술인 스토리텔링. 짧은 대사 한마디에도 시청자를 사로잡을 수 있고 문장 하나가 가슴에 오래 남아 제품을 구매하게 되는 구매력이 되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그랬다.

 

[시크릿] 이전 베스트셀러였던 [영혼을 위한 치킨 수프]는 144번이나 출판을 거절당하고 거의 자비출판 형식으로 출판되었지만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큰 히트를 친 이야기다. 그 누구도 성공을 점치지 못했지만 공동저자들은 그들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줄 알았다고 한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므로.

 

P.75 사람들에게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그들의 생각을 바꾸고자 한다면 반드시 이야기를 사용해야만 합니다

 

라는 말이 진실임을 증명해낸 순간이었다. 우리네 속담 가운데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도 입을 떼어 상대에게 전달해야만 그 이야기를 시작할 수가 있다. [성공하는 사람은 스토리로 말한다]가 말하고자 하는 것도 그것이다. 입을 떼되 좀 더 성공확률이 높은 방법들을 알려주면서 몇몇가지 중요 쟁점만 잘 습관화 된다면 누구든 스토리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고 해보지 않아도 알 수 없다. 이미 해봄으로써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했던 자신의 실패담을 통해 읽는 이들은 성공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진심 역시 담겨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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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제 르 브룅 - 베르사유의 화가
피에르 드 놀라크 지음, 정진국 옮김 / 미술문화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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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트 비제는 운이 좋았다. 우리 나ㅏ의 유명 화가들의 일상만 보아도 그들은 당대 유명해졌어도 가난하게 살았거나 외롭고 쓸쓸했다. 술과 여자와 인생을 불사르며 그림에 바쳤으나 그들의 생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비제르 브룅으로 불릴 엘리자베트 비제는 운이 좋았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명성을 얻었으며 귀족과 왕족들의 러브콜을 받고 작업에 임할 수 있었고 게다가 매우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자신의 자화상과 딸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던 그녀의 작품 속 모녀의 모습은 여름날의 복숭아처럼 물오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하늘이 한 여인에게 준 달란트는 이렇듯 풍족했다. 다만 남편이 변변치 못해 약간의 마음 고생을 했을 망정 그녀는 여성의 지위가 높지 못했던 그 시기에 자신의 전문 직업을 가진 행운의 여성이었다.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서는 어수선한 그 시기가 오기 직전 호사스러운 프랑스 왕가의 화가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모습으 화폭에 담아냈으며 여러 공작, 자작, 후작 부인들의 아름답고 풍만한 모습들을 여성의 시각에서 그려냈다. 물론 너무 미화된 모습이라는 질탄을 받는 구석도 있겠지만 요즘 우리가 포샵처리된 사진들을 선호하듯 그 시대 여성들도 조금이라도 더 아름답게 그려주는 화가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비제 르 브룅은 포샵전문 화가였을 것이다.

 

남자가 그린 그림이 아니라 여성이 그린 규방 여성들의 아름다운 모습. 더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여성들의 욕망과 희망이 담긴 그림. 그래서 엘리자베트는 왕녀와 귀부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화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주로 인물화만 그렸던 그녀의 솜씨는 아버지로부터 물려진 것이었다. 비록 일찍 작고하긴 했지만 화가였던 아버지의 솜씨를 물려받아 결혼 전 이미 유명한 화가였으며 결혼 후에는 베르사유와 빈, 모스크바, 로마, 런던 등등을 경유하며 당대 유명 여성들의 모습을 담아내었다. 스물 아홉에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의 회원이 된 엘리자베트는 화가로서 충만한 삶을 살았다. 마리 앙트와네트의 전속 화가로 살았던 여성의 삶은 그녀 뿐만 아니라 그녀가 그려낸 여성들의 삶까지 "인물 기록화"의 모습으로 남게 만들었다.

 

이삭을 줍는다거나 봉기를 든 서민 여성의 삶이 아닌 여유롭고 화려한 삶을 살았던 사교계 여성들의 모습이 그들의 성이나 후손들에게 물려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도 그녀로 인한 일이었으니 이는 매우 고마운 일일 것이다. 지금은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고풍스러운 여성들의 모습을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을 약간 미화시켜 그렸다는 단점을 보완하고도 남는다.

 

미술사적으로 그녀가 얼마나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름다움을 구경하는 독자의 입장에서 그녀의 그림은 매우 훌륭하게 느껴졌다. 그 아름다움만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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