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엄마를 졸업하다 -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 에세이
김영희 지음 / 샘터사 / 2012년 11월
평점 :
품절
유진, 윤수,장수,봄누리,프란츠의 엄마 김영희는 엄마로 유명해지기 전에 먼저 닥종이 인형작가로 유명해졌다. 그녀의 특별한 삶보다 우리는 그녀가 풀어내는 인형들의 이야기에 눈도장을 먼저 찍었으며 그녀의 삶이 담긴 에세이보다 전시에 얽힌 인터뷰기사를 먼저 접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아이들을 슬하에서 다 떠나보내고 일흔을 바라보고 있다.
노작가의 일대기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만족스러운 삶? 행복했던 삶? 치열했던 삶? 과연 그녀라면 스스로의 삶에 얼마만큼의 점수를 부여할 것인지....! 그것이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엄마라는 자리를 꿰차보질 못했기에 나는 이 질문을 자식의 입장에서 먼저 바라보고 있다. 이런 엄마가 내 엄마라면 어떨까. 하고.
작가 공지영은 [즐거운 나의 집]을 통해 성이 각기 다른 자식들을 키우면서 작가엄마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낸 바 있다. 그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동안 도도하고 딱딱하게만 보였던 한 여성 작가의 일상이 이토록 일반적일 수 있구나...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구나...라는 공감기류를 형성할 수 있었는데 마찬가지였다. 일흔의 나이에도 "엄마"라는 자리에 앉아 있는 저자는 각자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 다 큰 자식들의 걱정을 어제도, 오늘도 거두지 못하고 있으며 변호사가 된 딸은 딸대로, 디자이너이기를 포기하고 스님이 되겠다는 뜬금없는 말을 건넨 아들에 대한 걱정은 걱정대로 쌓아두면서 예술가로 살기를 바랬던 다른 아들이 돈을 벌겠다는 목적의식을 갖자 그것 또한 걱정으로 떠 안으면서도 "믿고 있다"라는 말을 자식들에게 건네고 있었다. 또한 독일인이면서 동시에 한국인인 봄누리와 프란츠에 대한 남다른 애정에 대한 에피소드들도 털어놓으면서. 마치 이웃집 할머니가 또는 아주머니가 담장을 하나 사이에 두고 자신의 일상을 털어놓듯 우리에게 정겹게 건네고 있어 읽는 내내 나는 따뜻한 느낌을 거둘 수 없었다.
제목은 [엄마를 졸업하다]지만 역설적으로 그녀의 고백은 죽는 순간까지 거두지 못할 엄마라는 자리에 대한 회고이며 반성이고 행복이기도 했다. 세상 모든 엄마들은 같으면서도 또 다른다. 나의 엄마도 그렇고 그녀의 엄마도 그러했으며, 또한 다섯 아이가 바라보는 엄마인 그녀의 모습도 그러했다.
p.26 부지런하면 뭘해도 먹고 살 수 있어. 즐거움 없이 일하면 안되지
사실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엄마는 세상에 몇 안될 것이다. 맞는 말인 줄 알면서 당장 깨물리면 아픈 손가락인 제 자식의 인생을 두고 이렇게 바른 말만 해댈 수 있는 간 큰 엄마가 몇이나 될까. 싶다. 하지만 그래도 자식들은 언제나 제 자신을 믿어주는 부모를 제일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왜 자식에서 부모가 되는 순간 새카맣게 까먹고 마는 것일까. 인간에게 가격표가 붙지 않아 다행이듯 엄마들에게도 점수가 매겨지지 않아 다행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부모합격증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하다. 다소 엉뚱한 발상이지만 세상에는 부모의 자격이 없는 부모들도 있기에 한없이 따사롭고 한없이 멋진 부모들만 부모가 되는 세상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졌기 때문이다. 다소 부족하고 다소 엉뚱하고 다소 일반적이지 않아도 좋을 그런 엄마의 모습들이 있다. 작가 공지영보다 엄마 공지영의 모습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왔듯 닥종이 인형 작가 김영희 보다 오늘은 엄마 김영희가 더 다정스럽게 느껴진다.
다시금 인생의 봄 속에 서 있다는 작가의 단 한 줄 고백이 그래서 더 따사롭게 느껴진다.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였던 그녀가 20년이 지난 지금, 잘 만든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 속에서 인생의 봄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글들을 마주하고, 이런 사람들이 만나질 때면 나는 세상은 아직은 살기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곤한다. 그래서 오늘이 힘든 사람들에게 좀 더 살아보라는 용기를 건네게 된다. 살아보니 좋은 때가 오더라...라는 이야기를 덧대면서.
얼마 살아보진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세상이 궁금하다. 그리고 인생에 행복의 순간들이 곧 오리라 믿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