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엽감는 여자
박경화 지음 / 책나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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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고 싶은 현실과 마딱드렸을 때, 그것이 꿈이거나 소설이라서 딱 덮어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일까. 마음이 딱 그랬다. 책을 읽는 내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일요일을 살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서 끝나고 해가 나왔으면 좋으련만 많이 내리지도 않고 딱 추적추적만큼만 내리는 비가 기분나쁘게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책을 읽는 마지막 순간까지.


현실이 아니라 소설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단편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다 하나같이 도망가고 싶은 현실을 살고 있었다. 모두가 불행한 주인공들. 희망이 없어보이는 그들. 시골의 초록빛이 아니라 도시의 회색빛에 물들어 있는 그들에게서 엿보여지는 것은 "희망"이나 "열정"이 아니라 어딘지 유통기한이 지나 시들어 가는 야채들 같은 시들함이었다. 치열하게 살기보다는 살아지고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인물들을 바라보며 한없이 우울해지고 있었다. 읽는 나 역시.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들을 바라본다. 후회하지 않을 기회를 잃어버린 <가을 몽정>의 그 여자의 상실감을, 금붕어와 뱃속의 아이를 잃어버린 <어항>의 그 여자의 빈어항을.....[태엽감는 여자]라는 책 속엔 8개의 단편과 그들의 삶이 기록되어 있다. 어딘가 조금씩 불행하며, 쓸쓸하고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들은 결코 조르지 않는다. 그 결과를 이미 포기한 듯 절대 조르는 법이 없다. 그 소리없는 항변이 마치 배우가 무대위에서 관객들만을 향한 독백의 손을 내밀듯 독자들에게만  알리고 있는 듯 해서 더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또 다시 다행스러워졌다. 소설이라서 다행이야. 라고. 누군가의 현실이 이런 상태인데, 그 사실을  나만 알고 있다면 얼마나 마음이 무겁겠는가. 우리 모두 땅을 밟고 서 있지만 그 땅의 단단하기가 달라서 모르는 사이 사라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꼭 그런 사람들이 가득 모여 사는 곳 같은 소설이 [태엽감는 여자]였다.


그저 나에게 온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자신의 삶을 타인의 삶처럼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소설가 은희경, 공지영의 주인공들이 항상 자신이 중심인 삶을, 소설가 신경숙의 주인공들이 타인을 관찰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삶을 살지만 그들은 결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놓지 않는다. 어떤 필체건 능동적이게 느껴진다. 반면 [태엽감는 여자]에 주인공들은 반쯤은 그 힘을 누군가에게 주어버린 것만 같다. 너무나 애처롭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물론 작가의 필체는 담담하다. 동정심을 유발한다든지 하는 문장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안타까운 것은 그들의 독백이 향한 곳이 독자이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에 아무도 모르지만 읽는 너는 알리라. 라는 작가의 계산된 독백. 그것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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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비밀
톰 녹스 지음, 서대경 옮김 / 레드박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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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괴베클리 테페에서 각각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무언가 연계가 있어보이지만 주동인물들의 겹침이 없는 가운데 일단은 사건만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데이비드 로리머라는 스코틀랜드인이 혀가 절단된 채 발견되고 이어 30대의 요트 드자이너가 자신의 정원 잔디에 머리가 묻힌 채 발견되면서 영국은 떠들썩해진다. 이 사건에 포레스터 반장이 투입되는데 그는 7살된 딸 사라가 살해당하고 아내가 우울증에 빠지면서 가정이 와해되는 아픔을 겪은 남자였다. 범인을 잡기는 커녕 사건의 단서조차 잡지 못한채 분노하는 그처럼 괴베클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로브 러트렐은 미국 기자다. 전처 샐리와 딸 리지를 부양하고 있지만 그는 현재 괴베클리 테페에 있다. 이 유적 발굴지에 대한 글을 쓰러왔으나 뜻밖에 사건은 그를 고대의 미스테리로 이끈다. 기원전 8000년경의 유적지인 괴베클리 테페를 1994년부터 발굴하던 프란츠 브라이트너가 발굴도중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그가 죽고 노트에 남겨진 외알민과 기록들을 참고하여 조수였던 크리스틴과 기자 로브는 역사속으로 발을 담근다. 


인간 평균 수명이 20년 정도였던 시절 여러 세대를 거쳐 완성한 괴베클리 테페를 왜 매장해야만 했으며 이 장소는 고대인들에게 어떤 의미의 장소였는지를 찾아가는 가운데 살인사건의 배경과 범인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풀사 디누라라는 아랍 고대의 저주와 프랜시스 대시우드가 창립한 헬파이어 클럽의 인신공희, 프리메이슨이었던 벤저민 플랭큰린 등 우리에게 약간씩 알려져 있던 사실들이 더해져 소설은 그 재미를 복리이자처럼 덧불려가고 있었다. 


이제 범인이 누구인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나? 그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 보다는 괴베클리 테페는 어떤 장소이며, 이 곳은 왜 매장되어야만 했고, 범인이 요구하는 검은 책 속에는 어떤 내용이 숨겨져 있는가가 독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가운데 밝혀지는 사실은 너무나 놀라운 것들이었다. 다윈이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나 연구를 위해 삶을 연장해 달라고 악마에게 빈다고 해도 놀랍지 않을만큼.....


검은 책이 감추어진 장소보다는 내용이 궁금해져서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다가 한 페이지에서 손가락이 딱 멈추어졌다!!! 책 속에서 나온 것은 그 어떤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 그 어떤 종족의 해골이었다. 본즈가 나타나서 빠르게 분석을 해줘야 할만큼 그 어떤 인류와도 부합되지 않는 독특한 인골. 그 해골에 답이 있었고, 그 해골이 괴베클리를  "에덴의 동산"으로 증명하는 유물인 셈이었다.


괴베클리 테베는 역사학적으로 한 사원,도시가 매몰된 장소가 아니었다. 세 종교의 성지이며, 출발지였고 성경에서 그 시작점이었던 에덴의 동산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젖과 꿀이 있는 동산은 어느새 노동터로 변해갔고, 잔악한 인신공희의 장소로 변해갔으며 강간과 살육의 현장이었다는 사실이 그 유적지에서 발견된 잔인한 사실이었다. 


저널리스트가 바라본 역사와 소설의 교차점은 소설가들이 짓는 그들의 영역과는 다르다. 또한 고고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기에 우리는 어디까지가 진실이며 어디서부터가 그의 상상력인지 잘 나누어야 함은 물론 그가 역사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을 따라 줄거리를 읽어나가야한다. 창세기 비밀의 재미는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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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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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독은 때에 따라 인간이 얼마나 암적이 존재이며, 마음 먹기 따라 누군가를 악질적으로 괴롭히면서도 희열을 느끼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 소설이었다.

읽으면서 주인공 스기무라 사부로가 장인의 의뢰를 받아 해결했던 일이 무슨 일이었을까 궁금했는데, 다행스럽게 그 전편이 존재하고 있었다. 제목은 [누군가]였다.

2003년에 발표한 소설 속에서 사부로는 재벌 장인의 사위지만 소소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남자였다. 후처의 딸인 아내는 집안에서 사랑받는 존재였으나 재산 다툼에 관심이 없었고 장인이나 나이차가 많이 나는 처남들도 그들 부부를 다정하게 대했다. 하지만 사부로는 처가댁 식구들의 포스에 눌려 항상 기가 죽어 있었다.

그런 그에게 장인이 사건을 하나 맡긴다. 휴일 운전수인 가지타씨가 뺑소니 사고로 죽는데, 자동차도 아니고 자전거 뺑소니를 당해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의 두 딸이 아버지의 회고집을 내고 싶다는 말에 회장은 출판 경력이 있는 사위를 급파했다. 의뢰한 쪽은 활발한 작은 딸 리코였다. 하지만 장녀 사토미는 부모님의 살아온 과정을 대강 알기에 이 의뢰가 탐탁치만은 않은 듯 보였다. 그녀는 아버지가 살해당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1975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십팔 년 전 그녀는 유괴를 당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 때문에-. 그런 이유로 사부로의 탐색방향은 회고록을 쓰기 위함이 아니라 살인사건을 파고드는 방향으로 전환되어 버렸다.

 결국 범인의 등장도 아주 초라해져버렸다. 사실 범인과 아버지의 과거는 사건에서 큰 얼룩을 남기지 못했다. 이 두가지 사실로 인해 사부로가 움직였지만 결과적으로 드러난 것은 두 자매의 경쟁구도뿐이었다. 자매로 자란다고 다 이런 것은 아닐진데, 이런 소재의 소설이 각국에서 심심찮게 발견된다. 언니의 애인을 가로채는 동생. 그것을 묵과하는 언니. 자매관계를 떠나서 사람대 사람으로 봐서도 올바른 관계가 아닐텐데도 말이다. 

어딘지 모르게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치고는 사회고발적 냄새도 약하고 구성도 유기적이지 못한 느낌이 들지만 주인공 사부로 가족의 등장만으로도 읽어보기 좋은 책으로 손꼽고 싶다.

그런 그는 아주 꼼꼼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적인 능력과 왠만해서는 화를내지 않는 너그러운 마음씨를 지녔는데, 이는 꼭 안철수 아저씨를 떠올리게 만들어서 괜시리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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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트 맨
존 그리샴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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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클라호마 에이다엔 1만 6천 명의 인구가 살아가고 있었다. 조용한 시골 마을인 이곳은 단거리 경주마 사업이 주 사업인 마을이다. 그러나 우호적인 이 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80년대 일어난 두 건의 끔찍한 살인 사건 때문이었다. 


1982년 12월8일 코치라이트의 웨이트리스 데비 카터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벌거벗은 채 살해되어 있었고, 1984년 4월 28일 드니스 해러웨이는 사라졌다. 



이 두 사건의 용의선상에 오른 것은 론 윌리엄슨과 데니스 프리츠였다. 그들은 꿈을 잃고 망가진채 살아가던 젊은이 들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런 그들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에 반쯤은 수긍한 상태인 듯 했다. 그래서 그들은 억울하게 유죄 판결을 받았고 감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다. 88년 그들의 무죄를 증명해줄 변호사 마크 배럿을 만나기 전까지.



사실 론 윌리엄슨은 응석받이로 자란 막내 아들이었다. 가족들의 사랑이 그를 망쳐놓았고 그는 제멋대로 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자제력 없는 어른으로 자라버렸다. 조그마한 좌절에도 무너졌으며 세상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래서 방탕해진 그에게 남은 결과는 살인 누명이었다. 



베스트 셀러 작가 존 그리샴의 전공은 법정 스릴러다. 법을 전공한 그는 자신의 재능을 잘 살려 여러편의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그들 모두 100% 만들어진 소설이었다. 그런 그에게 실제 사건을 토대로 구성된 소설을 집필하게 만든 계기는 뉴욕 타임스의 사망 기사 헤드라인 한 줄 이었다. 



그 한 줄이 논픽션의 계기가 되었고 오늘날 전세계 사람들이 죽은 론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작가는 때론 사람들을 관찰하기도하지만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존재라는 사실을 그를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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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파이어 1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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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파이어는 한 염화방화능력을 가진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아오키 준코는 남다른 능력자다. 그녀는 스스로를 발화시켜 남을 타버리게 만드는 초능력자인데, 미야베 미유키의 한 단편 속에서 그녀의 스토리를 구경했던 적이 있다. 

여고생 연쇄납치 살인사건의 3번째 희생자 다다 유키에의 범인을 오빠인 다다 가즈키와 함께 찾고 "처형"에 성공한 짧은 단편이었다.

그때엔 짧지만 강렬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렇듯 장편이 준비되어 있는 줄 알았다면 장편부터 읽고 단편을 번외편처럼 읽을 것을...이라는 후회도 조금 남는다. 

각설하고,  아오키 준코는 사람을 버리는 네명의 젊은이를 발견했다. 후지카와라는 남성을 버리고 있었는데, 그들은 이전에도 동일범죄를 저질렀던 것이 아닐까 의심될만큼 재범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숨어서 이드을 지켜보던 준코는 그만 들키고 마는데, 이 과정에서 그녀는 능력을 사용하고 만다. 

4명의 젊은이 중 이름을 아는 것은 계속 불리워지고 있던 "아사바" 하나. 그 단서를 기점으로 준코는 죽은 후지카와가 부탁했던 "나쓰코"를 찾아 나선다. 첫 데이트 하던 남녀 중 남자만 버렸다면 그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바, 준코는 빠른 시간내에 그녀를 찾기 위해 아사바 게이이치의 집으로 향하고 그녀를 찾았지만 마지막 순간 누군가에 의해 나쓰코는 총격당하고 만다. 이에 준코는 나머지 일당들을 쫓게 되고..

한편 경찰측도 여고생 연쇄납치 살인사건의 주범인 이들을 쫓고 있는 과정에서 파이로키네시스(염화방화능력자)가 관련되어 있음을 알아내는 단계에 이르른다.  경찰 마키하라는 20년 전 놀이터에서 의붓동생 쓰토무가 갑자기 타죽는 현장을 목격했는데, 이는 어린 준코가 실수로 태워버렸던 일이었다. 이제 그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 그래서 1권의 끝은 더없이 흥미롭게 마무리 되어졌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2권을 기다릴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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