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 어쩐지 의기양양 도대체 씨의 띄엄띄엄 인생 기술
도대체 지음 / 예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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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야 깨달았다 나의 평온한 마음은 나 혼자서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평온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건 그들이 예의 바른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평온한 일상은 누군가의 예의 바름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p235

 

저자 소개부분이 참 재미있다. 예명인듯한 '도대체'라는 이름 밑에 "한량 기질 아버지와 부지런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게으른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한량"이 되었다는 말. 게으른 것을 합리화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만 좀 다를 뿐, 그 일상이 나나 내 이웃들과 다르지 않아서 좋았다. 4컷 그림 속에서 유머가 읽혀지고, 소심한듯한 일상 속에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 나는 이렇게 살아왔으니 너도 이렇게 살면 된다식의 에세이였다면 몇 장 읽고 말았을텐데...<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라는 제목은 충고나 당부가 아닌 위안으로 다가와 읽고 또 읽게 만든다.

레몬빛 표지만 보면 얼핏 일본 번역서 같기도 하다. 하지만 첫장을 펼치는 순간부터 엄청난 기운으로 독자를 빨아들이는 그 흡입력은 '일상'에서 가져온 그 이상으로, '공감'의 힘인듯 싶다. '아, 나도 이래!! 그래 이럴 때가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보게 되는 책이 바로 이 책!! 인터넷신문 기자, 웹라디오 작가, 웹에디터, 일러스트레이터, 작사가 등 그 화려한 스펙보다는 그녀의 '오늘'을 채운 생각들에 공감지수를 더하고 싶어진다. 정말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블로그에 올리면서 그 페이지가 내게 어떤 오늘을 선물했는지...어떤 생각들로 채워졌는지....덧붙여 올리고 싶을 정도다.

좋은 말이 반드시 길 필요는 없다! 이렇게 짧은 말, 짧은 그림의 여운이 더 길 수도 있다. '어떻게 이런 멋진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 싶어지는 대목은 우리에겐 멋져야 할 의무가 없어, 살아 있는 것으로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P256)는 내용이었다. 순간 고등학교 시절 성적을 비관해 자살해 버린 동급생이 떠올려졌다. 같은 반이 된 적도 없고, 잘 모르는 아이였지만 안타까웠다. 내가 그때 친한 친구였다면, 혹시 선생님이었다면, 알고 지낸 선배였다면 저 말을 해 줄 수 있었을까? 저 말을 해 주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책, 곧 교편을 잡게 될 친구에게 선물하고 싶은 내용들로 가득했다. 지금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쉽게 포기할 필요 없다고. 좀 더 살아보라고 이야기 해주고 싶어질 정도다. 나의 말은 아니지만. 저자의 말을 빌려서라도.

 

 

내 잘못이 아닌 어떤 일이 나를 망쳤다는 생각이 들 땐
그 생각을 멈춰야 한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나 자신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려야 한다
그 일로 나는 멍청해지지도, 나쁜 사람이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P258

 

 

얼마전에 누군가에게 똑같은 말을 했었다. '무엇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어릴 때 누군가 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라고. 첫째로 태어난 단점은 내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 아둥바둥거리게 된다는 거다. 언니나 오빠가 있어서 실패하지 않는 팁을 알려주었다면 한결 쉽게 살았을텐데...라는 순간들이 있었다. 반면 첫째인 장점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팁을 전할 수 있다는 거다. 동전의 양면 같은 첫째라는 굴레를 옆구리 어디쯤 끼고 살면서 같은 마음으로 살아온 친구에게 한 말이었는데 놀랍게도 책에 실려 있었다. 더 나아가 "늦더라도 살면서 스스로 깨달았으니 괜찮다"라고 덧붙여져 있었다. 아. 이래서 좋다! 이런 위로. 나의 생각보다 반장 정도 더 나아간 생각을 읽으며 다잡게 되는 마음. 그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저자에게 몽땅 몰아서 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확실히 저자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쩐지 웃기는 점을 발견해내는 '특기를 지닌 사람이다. 책 속 내용만 봐도 그가 얼마나 긍정적인 사람인지 표시가 난다. 인정!! 나를 인정하고 나의 오늘을 인정하고, 내게 주어진 삶을 인정하게 만드는 건강한 비타민 같은 노란 책 한 권!! 읽자마자 단숨에 마지막장까지 달리게 만든 재미난 책.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라는 제목부터 나를 매혹시켰던 책. 이 책 한 권을 읽으며 힘을 얻었다. 분명 '오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나는 힘내서 일어선 '내일'을 선물받았다. 그래서 참 고맙다. 도대체씨!!

그리고 예쁜면이 차고 넘치는데도 약간은 소심한 이웃에게 이 책을 소개했다. 친구에게도 가장 좋았던 두 페이지를 나눔했다. 일본으로 번역본이 나가도 참 사랑받을 것 같은데.....쭉쭉 뻗어나갔으면 좋겠다. 이런 힐링북은.

조만간 또 책의 처방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펑펑 울며 위로가 되는 구절을 찾아 읽으면서 눈물을 닦게 될 수도 있다.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좋은 구절을 곱씹고 또 곱씹을 수도 있다. 처세술보다 이런 마음치유북이 요즘엔 더 끌린다. 더 필요한 순간을 살고 있어서 그런가.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상품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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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 모중석 스릴러 클럽 43
제프리 디버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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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 안에 전문가로 레드썬 할 수 있는 마법이 있다면 가장 먼저 달려가 그 마법주문을 구하고 싶다. '캐트린 댄스  시리즈'와 '링컨 라임 시리즈'를 번갈아 쓰고 있는 작가 제프리 디버의 작품은 언제나 완성도가 높았다. 방대한 읽을거리, 치밀하게 짜여진 트릭, 매번 놀라게 만드는 전문성, 매력적인 캐릭터 창조에 이르기까지....그의 소설은 언제나 완벽했다. '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 시리즈가 매력 그 자체였다면, '제프리 디버'와 '요코미조 세이시'의 소설은 읽고 또 읽어도 질리지 않았다. 놀라게 만드는 작가의 신작을 마주하는 일은 마치 소풍 전날 같다. 달뜨게 만드고 설레게 만든다.

기다리던 '링컨 라임 시리즈'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스토커가 등장하는 이번 캐트린 댄스 시리즈도 재미있었다. 유명 가수와 스토커. 익숙한 조합이지만 이 흔한 소재를 제프리 디버는 어떻게 퀼팅해냈을까.


>>>story.... 
고향에서 공연을 앞둔 인기 가수 케일리. 수년간 스토킹을 당해 온 그녀 주위를 스토커가 맴돌고 있는 가운데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십대에 아이를 낳아 언니에게 입적시킨 일은 가족간에 비밀에 부쳐졌지만 그녀의 연인이자 공연책임자였던 보비 프레스콧이 살해당했다. <유어섀도>라는 히트곡에 맞추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살인 앞에 속수 무책인 경찰과 케일리. 대놓고 뻔뻔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에드윈 샤프. 개인적인 친분으로 휴가기간 동안 케일리의 공연을 보러 온 CBI 캐트린 댄스가 수사에 참여하기에 이르르고....쉽게 잡힐 것만 같던 살인범은 법망을 피해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버렸다. 링컨 라임과 아멜리아가 살짝 등장하기도 해서 스토리의 즐거움을 더한 <X0>는 '포옹과 키스'의 의미로 케일리가 팬들에게 보내는 전체 메일에 자동으로 쓰여진 서명이었다.이 서명이 스토커의 망상에 기름을 붓는 격이되어버린 것. 제목의 의미가 참 궁금했는데, 이 궁금증은 이야기의 도입부에서 해갈되었다. 

 

망상이 자신에게는 즐거움을 주지만 타인에게는 고통을 준다는 사실을 외면 했기 때문에 스토커에 대한 시선은 고울 수 없다. 그의 집착에는 애절함이 빠져 있다. 그는 행복한 스토커였다. 완벽한 자신의 세상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현실과의 괴리감 따위는 중요치 않았다. 사이코패스형 인간처럼 미안함, 배려 등이 결여된 인간이 어떻게 '사랑'에 대한 감정은 느낄 수 있는 것일까. 궁금했던 부분은 읽으면서 자연스레 그 답이 찾아졌다. 케일리에 대한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환상'이었고 '열망'이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목표가 되어 버린 것. 목표를 향해 나아가며 방해되는 사람들을 죽이는 행위는 그에게는 해충을 제거하는 일과 동일한 일이 아니었을까. 이해보다는 분석하게 만드는 캐릭터. 캐트린 댄스 시리즈 3번째 이야기는 사건보다는 인물에 집중하게 만들면서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여 나가게 만들었다.



일요일에서 금요일. 목차에는 토요일이 빠져 있다. 이야기의 방대함에 비해 날짜는 매우 짧다. 하지만 재미의 길이는 매우 길다. 그래서 다음 네번째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벌써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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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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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이 일기를 쓴다? 의아한 일이었다. 완전범죄를 꿈꿨을 킬러가 발목잡힐지도 모를 빌미를 남겨두다니. 흡사 족적이나 DNA를 현장에 남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설프기 짝이 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주인공은 얼치키 초짜인가? 아니다! 십대때 폭력가장이었던 아버지를 죽이면서 시작된 살인은 그의 나이 마흔 여섯에 멈추었지만 그동안 그는 잡히지 않았다. 노련했고 냉철한 남자였다. 그런 그가 일기를 쓴다. 솔직하게. 빠짐없이.

WHY?

그의 병명은 알츠하이머. 마지막 살인을 저지를 당시 사고가 있었고 그로 인해 뇌에 문제가 생겼다. 가까운 과거부터 지워지는 병이기에 그는 잠시 전에 무엇을 했는지, 어디로 가려고 했던 것인지,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하지 못한다. 온갖 기억이 뒤죽박죽되어 있지만 자신이 '연쇄살인범'이었다는 사실은 너무나 강렬해서 잊혀지지 않았나보다. 그래서 최근 마을에서 다시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혹시 내가 한 일일까?'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때로는 이토록 잔인하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영화로 먼저 보고 뒤이어 원작소설을 읽은 케이스다. 물론 순수문학도인 친구에게 매력적인 이야기라고 소개를 받은 적 있지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이후 김영하 작가의 책에서 멀어진 상태였다. 당시 절친이었던 또 다른 친구가 홀딱 빠져 지낸 작가였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작가의 책을 읽고난 후 많은 것들이 혼란스러웠으므로. 최근 한 예능 방송을 통해 보여진 작가는 생각보다 밝고 위트있는 사람이었다. 급호감이 발동해서 읽을 소설을 고르던 중 <살인자의 기억법>이 떠올려졌다. 그런데 영화가 한 발 빨랐다. 책읽기를 결심한 남 저녁, 충동적으로 영화부터 보고왔다. 더 좋았다. 결말이 다른 두 이야기는 서로에게 윈윈이 됐다. 만약 원작이 묘사가 상세하고 그로인해 문장이 긴 소설이었다면 혹여 상상에 제한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의 문체는 토끼꼬리처럼 짧았다. 문단도 길지 않았다. 한 줄 혹은 서너 줄 일때도 있어서 이 길이로 어떻게 영화  한 편의 이야기 분량이 나왔을까? 책 한 권이 쓰여졌을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작가는 노련했고 또한 영리했다. 과거 연쇄 살인범이었던 주인공의 머릿 속을 옮겨놓은 즉 1인칭의 내레이션이 팔할인 작품이기에 문장은 짧막짧막할 수 밖에 없다. 문장이 곧 그였으므로. 왕년의 연쇄살인범은 냉철하면서도 치밀하며 감정이 배제된 인물이므로. 그의 생각 속 문장이 늘어지거나 길어진다면 그답지 않았을 것이다. 문장의 길이조차 주인공을 대변할 수 있다니....왜 진작 김영하 작가의 책들을 섭렵하지 않았던 것일까.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일관성 있는 독자는 못되는 모양이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독자로 살아온 내게 <살인자의 기억법>은 재미와 반성을 함께 가져다 주었다.

 

>>> story

표면적으로는 전직 수의사였던 일흔의 남자가 실은 연쇄살인범이었던 내면의 비밀을 간직한 채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미 살인은 마흔 여섯에 멈추어졌고 이대로라면 그의 죽음과 함께 미제의 살인사건들은 조용히 묻힐 판이었다. 그런데 천형처럼 그에게 '알츠하이머'가 찾아왔다. 마지막 살인을 저질렀던 마흔 여섯 때 겪은 사고로 조금씩 진행되던 병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뒤죽박죽 섞어버렸다. 그래서 그는 지금 혼란스럽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부족한 표현력을 보강하기 위해 시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기록이 더 풍성해졌는지는 알 수 없다. 어차피 등단할 것도 아닌 그가 기록에 더 집착하게 된 것은 또 한 명의 연쇄 살인범과 마딱드리면서부터였다. 자신과 똑같은 죽음의 향기가 나는 사내. 자신의 어린 딸이 표적이 되어 사내의 그물에 걸려 있었다. 지킬 자식이 있는 아비는 용감했다. 하루의 모든 포커스가 놈에게 맞추어졌다. 그 사이사이 병은 빠르게 진행되어 갔고 종종 그를 잊었다. 마주할 때마다 그는 낯선 사람이었다. 그래서 일기를 들춰보며 '그 놈이었다' 각성하곤 했다. 그리고 결말에서 우리는 이 모든 상황의 진실을 함께 목도하고 만다. 늙은 연쇄살인범에게 일어난 형벌의 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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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맨 -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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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의 손에 죽어나간 사람이 열 명. 연쇄살인범의 행적을 쫓듯 글이 올려지던 '우리들의 킬러 카페' 카페지기가 마지막 피살자로 밝혀졌다. 제 13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저스티스맨>은  쉽게 읽혀졌으나 도리어 마지막 장을 덮은 후 많은 화두를 던져주는 소설이었다. 그 옛날 미드 <덱스터>를 재미있게 보면서도 '과연 이것이 옳은가?'에 대한 딜레마에 빠졌던 것처럼 <저스티스맨>도 '이것을 정말 정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남기고 말았기 때문이다.

너무 잔혹하게 느껴졌던 <한니발>과 달리 <덱스터>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단죄할 수 없었던 죄인들을 살해하는 '우리들의 사형집행인' 같은 연쇄살인마가 등장한다. 연쇄살인마를 죽이는 연쇄살인마. 보는 입장에서야 이야기 속의 인물이고 현실에서 어쩌지 못한 답답함이 해갈되는 부분도 일부 느껴볼 수 있어서 통쾌감이 들 때도 있었지만 달리 보자면 개인대 개인의 살인을 인정하는 꼴이 되고말아 '옳고 그름'의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저스티스맨>에서 차례차례 죽임을 당했던 인물들 역시 소위 '죽어 마땅하다'는 인물들이었다. 멀쩡한 얼굴로 사회 생활을 영위해 왔던 그들의 민낯은 추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법망에 걸리지 않았던 인물들이었다.

 >>>> story

'오물충' 사건으로 인터넷 도마 위에 오른 이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사회 속에서 언제나 갑이 아닌 을이었고 억압되고 매사에 성실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적이 따라주지 않는 비운의 보험설계사로 살아왔다.  굴욕감은 수없이 찾아왔고 누르고 눌러온 스트레스가 회식을 기점으로 폭발해 버린 날 그는 정신줄을 놓았다, 그날의 일탈이 그의 인생을 시궁창으로 처박아버리게 된 건 누가 인터넷을 통해 그의 사진이 유포되면서부터였고  곧이어 신상이 털렸다. 어마어마한 댓글이 이어지자 주변 지인들도 그가 오물충임을 알아봤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그를 환영하는 사람은 없었다. 소설에 따르면 이 사건이 연쇄살인의 신호탄이 된 셈이다.

최초로 인터넷에 사진을 올렸던 사람이 피살되고 그 사진에 오물충의 고등학교 사진까지 첨부해서 올렸던 그의 동창이 두 번째로 피살, 세 번째는 인터넷 언론사의 사회부 기자, 네 번째는 성매매를 했던 유부남 선생의 휴대폰을 수리했던  엔지니어였고, 성인 사이트의 운영자인 엔지니어의 친구가 다섯번째로 피살된다. 여섯번째 피살자는 자신이 성매매했던 여학생 또래의 딸을 둔 공립 고등학교의 국어 교사였는데 그는 가족과 함께 떠난 여행지 펜션에서 살해되었다. 개연성 있게 이어지는 듯한 킬러의 연쇄 살인은 펜션지기를 쥐꼬리만한 권력으로 좌지우지했던 여행자 카페 운영자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유부남이면서도 펜션지기를 찝적댔던 파렴치한인 동시에 실생활에서 잔망스러울 정도의 정치력을 펼치면서 그것을 처세력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놈이었다.

저스티스맨이 밝힌 글 속에서 피살된 모두는 '유죄'. 총맞아 줄을만한 행동을 일삼던 사람들이었다. 총기소지자 일반화 되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이마에 탄흔 두 발'을 맞고 사망하는 일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다. 1. 총기에 의한 살인 / 2. 이마 탄흔 두 개 / 3. 저스티스맨의 글   이 세 가지만으로 연쇄살인의 띠가 채워졌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들고 말았다.

저스티스맨의 글은 선의일까? 악의일가?  또 인터넷에 써진대로 믿어도 좋은가?

왜 사람들은 이 같은 거름망 없이 덥썩 그의 말을 믿어버렸던 것일까. 이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현실이 가장 잘 투영된 모습은 아닐까. 약간 씁쓸해지고 말았다. 쉽게 믿고 쉽게 분노하는 사회. 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만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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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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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을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영화로 인해 '박열'이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미실>의 김별아 작가의 소설로 드디어 그와 만났다.

 

 


김별아 작가가 주목한 인물은 이번에도 불꽃같은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었다. 1926년 봄, 도쿄 대심원 대법정을 흔들었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삶은 그 자체가 '인간증명'이었으며 용맹스러웠다. 죽음이 뻔히 보이는 길을 걸어가면서 한치의 두려움도 없었던 것일까. 어린 나이의 그들은 열정적이었고 독했다. 그들의 인생에 있어 가장 강렬했던 순간을 담아낸 작가의 문체는 생각보다 쉽고 간결했다. 술술 읽히는 페이지 사이로 분노보다는 존경을, 상처보다는 다짐을 담게 만드는 일 역시 작가의 필력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 같은 역사가 반복되는 일이 없도록 '오늘을 가열차게' 살아낸 것일까. 우리는. 과연.

 

 



책을 읽으면서 박열과 가네코에게 조금 미안해졌다. 너무 느슨하게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얼마전 읽었던 발레리나 강수진의 책 속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한 걸음만 걸어도 나인줄 알게 하라." 이 말에 어울리는 삶을 살다간 사람인데, 역사를 배우면서 그들의 이름을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미안하게도 그랬다.

 

 

 

1923년 9월 도쿄를 중심으로 무려 진도 7에 해당하는 큰 지진이 발생했다. 아비규환 같은 상황 속에서 누가 만들어냈는지 악랄한 괴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는데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푼다더라'는 내용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물에 독을 푼 사람은 없었고 이로인해 사람이 죽는 일도 없었다. 누구의 입에서 제일 먼저 튀어나온 말인지 간에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이로 인해 조선인은 억울하게 6천여명이나 학살 당했다. 사과를 하고 범인들을 단죄해도 모자랄 판에 일본은 이를 덮기 위해 조선인 한 명을 지목했고 그의 이름이 바로 '박열'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유학왔지만 여전히 굶주린 삶을 이어나가야했던 남루한 옷차림의 청년 박열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소설 속 박열은 의젓하고 당당한 사내로 그려지고 있지만 조선을 짓밟은 일본땅에서 그는 얼마나 외로운 사람이었을까. 가네코 역시 태어나는 순간부터 외면 당했던 여자였다. 누군가의 호적에도 오르지 못한 채 이 남자, 저 남자를 전전하며 자식에 대한 의무를 저 버린 어머니와 여러 여자를 거느리다가 결국 이모와 도망가버린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가네코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채 자라났다. 성폭행을 당했고 진심을 외면당한 채 잠자리 상대로 만난 남자 몇몇과도 이별하고 학업과 알바를 이어나가던 중 박열의 시를 읽고 그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남루한 차림 속에서도 감추어지지 않는 당당함에 반해 그의 연인이 되기를 자처했고 가장 든든한 동지로 그의 인생에 걸어들어갔다. 요즘 같은 세상도 아니고 1920년 대, 그것도 일본인 여성이 조선인 남자를 선택한다는 건 보통의 용기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더 놀라운 건 박열과 함께 감옥에 갇히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일본측의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녀는 감옥 안에서 자살했다. 박열처럼 버텼다면 함께 출소해서 인생을 이어나갈 수 있었을까. 박열은 이후 재혼 했지만 가네코는 박열의 고향인 경북 문경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태어나서부터 줄곳 외롭고 쓸쓸했던 그녀에게 사랑하는 이의 고향땅은 따뜻한 위로가 되었을까. 영화 제목은 <박열> 이었지만 김별아 작가의 소설 제목은 <열애>다. 박열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진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열과 가네코. 조선인과 일본인, 남자와 여자. 이 모든 이야기와 더불어 서로의 외로움과 생각까지 끌어안았던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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