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자서전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이지수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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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전반적으로 고요하고 온화한 분위기와는 달리 감독으로서의 그는, 첫번째 영화가 유럽과 북미에서 ˝일본적인 선을 표방한 것˝으로 상찬받자 다음 영화는 전혀 일본적이지 않은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거나 기존의 영화를 대체로 ‘연극을 촬영한 영화‘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는 식의 반골 기질이 꽤 있는 사람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주 무시되는 사실로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은 전원에 잘 닦여진 푸르른 잔디밭을 마르티즈 한 마리를 품에 안고 거니는 경험과는 거의 정반대에 가까운, 외려 고비 사막에서 홀로 생존하는 일에 근사한 체험일 것이다.

그런 저항정신을 외적으로 광고하느냐 온전히 내적으로 갈무리하느냐는, 투쟁 전략과 개인의 성향에 달렸을 테지만 ˝싸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바에 도달한다는 꿈은 악몽으로 재현될 확률이 높다.

그냥 주어진 분수에 자족하며 얌전히 살라고 사회가 말해도 정을 맞고 머리가 깨져 피흘리며 두 눈 멀쩡히 뜬 채로 꿈꿀 때 현실은 악몽이 되어도 우리는 비로소 ˝낙관하지 않는 희망˝을 가슴에 품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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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온전히 사랑할 순 있다.

라는 말을 듣고 나는 내가 늘 그 반대를 생각해오며 살아왔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마도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반드시 배척하는 관계는 아닐 테지만 종국에는 어느 하나의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결국 이해 끝에 증오에 서기도, 사랑 끝에 외면하기도 하는 존재이니, 타자를 이해/사랑하기 위한 제도를 요구하는 일이 우리가 타자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랑의 지극한 실천이라는 믿음이 마냥 허황된 것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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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 정치는 정치적 참여를 독려하는 적절한 수단의 하나로 인식될 수 있는 한편, 부의 편중이나 고착화된 계급 구조와 같은 사회 구조적 문제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미끼 역할에 머무를 가능성도 함축한다. 애초에 양자는 서로가 서로를 촉발하는 피드백루프의 고리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양쪽의 문제를 상호 대립적이지 않은 형태로 동시에 인지하고 논의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포비아 페미니즘이 그런 작업을 선취하고 있는지는 좀 생각해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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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풍경을 주변으로 만들고 여행은 주변을 풍경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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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유물론 - 니체, 마르크스,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의 신체적 유물론
테리 이글턴 지음, 전대호 옮김 / 갈마바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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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턴과 피터슨의 전개에서 유사성이 감지되는 연유는 뭘까. 유행 지난 신학에 대한 집착적 시간 낭비?

이글턴이 공들여 발전시킨 생리학적 유물론의 주요 전제는 인간은 몸이라는 물질의 완고함에 따라 한계지워진다는 사실로, 다시 말하면 조건지워진다고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자유롭지만 또한 구속되어 있다. 좀더 분명히 밝히면 구속과 자유는 이음동의관계다. 우리는 달릴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날지 못하기 때문이며 우리는 사랑을 느낄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가 이웃에 대한 애착과 인정을 갈구하도록 되어있기 때문이다.

경이롭고 한편으로 황당한 인간의 출산과정을 살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은 인간의 사회 문화는 종의 번식과정이 요구하는 조건이자 환경으로 인간은 혼자 출산이 불가능하다는 생리학적인 이유에서 반드시 신뢰 관계에 있는 조력자가 필요했으며 하나의 개체로 성숙되기까지의 시간을 고려할 때 이런 조력관계는 거의 전생애에 걸쳐 지속된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사회성은 이 과정을 지지하는 방향에 기초하여 형성된다.

피터슨은 암수, 부모와 자식, 지배구조 등의 사회적 개념을 인간의 생리학적 메카니즘의 오래된 작동 기제들로 이해한다. 이것은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하며 따라서 ˝무의식적˝이다. 오히려 무의식적인 조건들이 이성과 의지의 토대로 동작한다. 그는 칼융의 신화분석을 통해 이와 같은 토대가 인간의 생리학적 조건과 연계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 쉽게 변할 수 없는 혹은 디폴트값으로서의 문화, 가치들을 옹호하는 입장에 섰다.

이글턴이 유대 기독교적 윤리 전통에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는 데에는 명시적이진 않지만 피터슨과 같은 장을 공유하는 측면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과 같은 아시아 문명에도 해당될지는 의문이다. 우리에겐 애초에 죽일 신이 없었다. 기원은 은폐되기 마련이므로 이성과 의지 만으로 사회가 조직되고 유지되고 기능한다는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 우리를 조건 짓는 물적 토대와 생산관계의 분석이 객관화에 이를 수 있게 할 지니 모두 유물론자가 될 시간이 임박한 것이다.

이론은 이론을 넘어서기 위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론가는 의사나 마찬가지다. 그 소임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의 용도 폐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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