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을 장악했다기보다 소화하는 과정으로서의 문장, 이라는 느낌.
˝감상주의는 사실상 이기주의의 기만적 형태이기 때문에 타자에게 주는 듯 보이는 것은 결국 비밀리에 자기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다.˝감상적인 사람이 왠지 거북스러운 이유.
이 사람 좀 짓궂다. 배우에게 어떤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쁘겠냐고 물어보고 그걸 대사로 써먹는 것도 그렇고 그걸 책에다 ˝배우와의 소통으로 각본을 풍성하게 만드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적는 것도 그렇고. 그 배우는 다신 질문에 대답안하겠다고 삐지는 마당에.
˝추억은 내성적인 단어니까 (성냥을) 안으로 그어야지.˝저런 생각을 할 수 있는 배우가 있다는 것. 그 생각에 소름이 돋아 내성적인 단어와 밖을 향하는 단어를 구별해보려는 감독이 있다는 것.소름 돋는 일이다.덧. 다시 읽어보니 배우가 아니라 연극감독이다.
니체와 마르크스는 철학을 경멸했으며 이제까지의 인류문명의 누적치가 글러먹은 성과라는 점에서 입장을 같이 하는 반면 ˝자 그럼 이제 어쩌면 좋을까˝라는 질문에 이질적인 혹은 극과 극에 가까운 해답을 제시함으로써 후대의 인간들의 정치적 결투 양상을 사전 예고한듯한 묘한 기시감을 가져온다. 니체는 극우단체 완장을 두른 채 쇠파이프 막대로 무장한 대정부 시위를 주도함에 부족함이 없을 것 같은 극단적인 성향의 소유자로 몇 구절 경구만 단장취의해 음미하고 말기에는 정말 아까운 인물이다.스카이캐슬에서 니체의 위버멘쉬를 두고 토론하는 모습이 나왔는데 뭐 전후 상황상 이태란이 정의의 편이라 예서의 발언이 틀린 것처럼 보이지만 니체가 정말 말하려던 바는 예서가 말한 것처럼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마음껏 지배하고 약자는 봉사해야한다, 에 가까운 듯하다.기독교도 까고 인류 문명도 까고 신도 죽었다고 선언하는 명민하고 냉철한 모두까기 니체 인형이 소름끼치는 엘리트 주의에 경도되어 위버멘시의 활동을 위해 찌끄레기 인간들의 봉공을 당연한 것으로 주장하게 된 데에는 별로 복잡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스스로 머리가 좋다며 지성을 자신하는 부류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은 대체로 포유류보다 양서류에 가깝기 마련이니. 자신보다 덜떨어진 존재의 전폭적인 보살핌과 연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포유류 유체로서의 과거를 니체는 치욕이라 여겼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