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가지 인생의 법칙 - 혼돈의 해독제
조던 B. 피터슨 지음, 강주헌 옮김 / 메이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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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터슨이 인간을 관찰하는 곳은 사각에 위치한다.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잘 안보인다.

전제는 이렇다. 문명은 불안정하다는 것.

국가 사회 공동체 대규모 협력과 같은 문명의 열매는 당장이라도 대규모 전쟁 학살 고문 혐오 공멸과 같은 혼돈으로 돌아갈 수 있다. 세계는 비극적이며 따라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가치들이 어떻게 당연해질 수 있는지를 아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

우리가 적절히 행동하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근거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개인에게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그래서 윤리의 심급을 묻는 질문은 늘 곤란하다. 토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도인의 신화속에서 지구를 떠받치는 코끼리와 거북이처럼 허공에 떠 있을 뿐, 지금껏 그것의 기원은 종교와 전통의 이름 속에 은장되어 왔다.

혼돈의 도래를 경계하라는 그의 예언자적 외침이 호소력을 갖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인류가 20세기를 거쳐오면서 붕괴된 가치들이 토대를 덮은 장막 위로 쏟아져 내리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현대인들에게는 모든 가치를 상대화하라는 정언명령의 실천이며 적절하게 마음에 쏙 드는 일이다. 누군들 똑똑한 척 하고 싶지 않을까.

그러나 슬프게도 인간은 허공 위에 설 수 없다. 우리는 한 번 황폐해진 땅 위에 새로운 땅을 일구어야 한다. 우리가 너무 못나서가 아니라 위대한 탓에 이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은 노동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믿음을 잃었고 다 큰 아이에게 다시 산타크로스를 믿으라고 해봐야 소용없듯 솔직히 이 작업의 전망이 그리 밝아보이진 않는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대체로 최악의 상황에 가까웠고 뭐 밑져야 본전이니 망하기 밖에 더하겠는가라는 것. 서로를 일깨우고 도닥이며 가능성을 모색한다면 작은 단서라도 나오지 않을까.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어보는 일이 무모한 낙관만은 아니기를 희망한다.

벤야민이 말했듯 역사를 폭파시키는 것은 작고 소소한 것일 수도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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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레이라는 이름은 왠지 가명 같다. 존 스노우나 지미 카터처럼 그냥 왠지.

시리즈가 꽤 많은데 이런 종류의 책이 그렇듯 우려내기로 보일 소지가 있으나 타깃군이 명확하달까 복붙하고 양산하는 책과는 달리 문장이나 구성이 나쁘지 않다.

일종의 실용서인데 얄팍하지 않다. 그게 롱런하는 비결이겠지. 팬을 실망시켜서야 장사 오래 하긴 그른 가게일테니.

제목은 ˝넘어서(beyond)˝이지만 자기부정은 아니다. 전통적 남녀 역할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에 자신의 해법(이론이 아님에 주의)이 어떻게 적용되고 활용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그래서 왠지 웃음이 나는) 고찰 탐색 뭐 그런 것들의 집대성이다. 기존 팬에 대한 애프터서비스라는 느낌도 들고.

테스토스테론=남성성, 에스트로겐=여성성이라는 암묵적인 등식이 전제되어 있는 점은 이 책이 가지는 힘이자 한계로 보이는데, 과학적 사실을 가치 판단의 영역으로 일대일 번역하는 일은 인정하기 어려우나 ˝성차˝의 존재를 여전히 긍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꽤 논쟁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성차가 존재하냐 마냐를 두고 토론하는 건 학술적으로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실용성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대체로 생물학적 사실이라는 근거가 있다손 치더라도 타인을 차별해선 안된다는 윤리적 가치를 공유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시아인이 아프리카인에 비해 열등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치고 그 사실로 인해 아시아인은 이등인류이므로 비행기 좌석 선택에서 선거권 행사에 이르기까지 (황송하게도) 절반에 해당하는 권리만을 보장받는다는 주장을 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주요 논거로 사용되는 호르몬 물질 들에 대해서도 본인에 맞게 유연하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 (왠지 꼭 씨를 붙여드려야 할 것 같은) 존 그레이씨도 여성성이 많은 남성, 남성성이 많은 여성이 꼭 생물학적 성에 근거하여 지침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감사하게도) 명시하고 있다.

이를 덜 논쟁적인 언어로 희석해보면 공격적인 행동 타인을 지배하는 행동을 해야 만족감이 높아지는 사람이 수동적이고 피지배적인 행동으로의 교정을 통해 자신을 극복하는 극기의 과정을 통과해야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 옳다고 믿어지는 행동들이 나의 성향과 부딪힐 때 자신의 성향을 부정하기 쉬운데 그보다는 사회적 요구(이 책에서는 상대의 요구)와 조화를 이루면서 자신의 성향을 분출할 수 있는 길을 찾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일 듯 하다.

쓰다보니 왠지 비꼬는 것 같은 말투가 되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예전부터 이러저러 여러모로 큰 신세를 지고 있는 존 그레이 씨에게 이죽거릴 이유가 있나. 긴 글을 쓰게 된 것도 그에 대한 과도한 애정 탓이라고 생각한다.

고마워요 그레이 씨.

추신. 화성과 금성에는 물론 우주에는 인간형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현저히 적다고 하네요. 하지만 박테리아는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하니, 다음 신간으로 ˝화성원핵생물과 금성진핵생물˝ 같은 제목 제안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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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지식 - 인류 최후 생존자를 위한 리부팅 안내서
루이스 다트넬 지음, 강주헌 옮김 / 김영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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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려면 종이책을 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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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하마터면 깨달을 뻔 - 인지심리학자가 본 에고의 진실게임
크리스 나이바우어 지음, 김윤종 옮김 / 정신세계사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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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그것이 왜 불가능한 질문인지를 개인적으로(동시에 인지심리학자로서) 파고 들어감.

단지 저 경우 ˝깨달음˝의 정의가 선행된 게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지지하는 형태의 것으로 사후적으로 승인되고 만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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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유물론 - 니체, 마르크스, 비트겐슈타인, 프로이트의 신체적 유물론
테리 이글턴 지음, 전대호 옮김 / 갈마바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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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의 ˝유˝가 어디서 온것인지 잘 모르겠다. materialism에는 ˝유˝라는 의미가 들어간 단어가 없고 무슨ism이라고 하면 대체로 ˝론˝보다는 ˝주의˝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으니 관습에 따르면 ˝물질주의˝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유물론이라는 친족 관계가 없는 조어가 탄생했다. 그편이 유물론스럽기는 하다만 좀 불만스런 점은 이게 무엇에 대한 이론인 것처럼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라 사실 그보다는 하나의 태도에 가깝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 같다.

루키즘을 외모지상주의라고 하고 그것이 외모론과 같은 이론적 체계를 전제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물론은 이 세계를 물질에 기반한 무엇무엇 들로 바라보는 자세이지 정교한 이론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마르크스 이전에 무수한 유물론이 가능하며 이글턴은 그의 최애철학자 아퀴나스로부터 니체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유물론을 검토하는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자신이 목표로 하는 이른바 신체적 유물론 혹은 생리학적 유물론을 도출하고 있다.

비트겐슈타인은 사자의 말을 우리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을 거라 단언했지만 생리학적 유사성에 근거하여 뛰어난 사자 전문가라면 꽤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 이글턴은 상상하며, 이는 피터슨이 랍스터와 같이 인간의 중추신경계와 계통발생적인 유사성을 공유하는 생물을 지배구조와 같은 오래된 개념의 역사성을 설명하는 사례로 활용하는 경우에도 역시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으로서의 생리학적 유물론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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