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타고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광용 옮김 / 해문출판사 / 1988년 11월
평점 :
품절


  원제 - Taken at the Flood, 1948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부유한 자산가 고든 클로드가 2차 대전 때 있던 런던 공습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이제 남은 것은 엄청난 재산과 얼마 전에 결혼한 연하의 부인 로절린, 그리고 그의 돈으로 평생을 살아왔고 유산을 받을 거라 생각했던 친척들이다. 변변한 일자리도 없이 그의 뒷바라지로 살아왔던 친척들은 이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로절린의 죽음뿐이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로절린의 첫 번째 남편이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친척들은 로절린과 클로드의 결혼이 무효가 될지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런데 그 증거를 갖고 있다는 남자가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모든 증거는 로절린의 오빠인 데이비드를 가리킨다. 이때 포와로가 개입하는데…….

 

  읽으면서 무척이나 기분이 좋지 않은 책이었다. 이 놈이고 저 놈이고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포와로가 왜 이딴 인간 같지도 않은 것들을 상대해야하는지 기가 찼다.

 

  클로드의 친척들이 너무도 뻔뻔스럽고 재수가 없어서, 끝까지 읽기가 싫었다. 대충 내용이 어떻게 흘러갈 것이라는 게 눈에 보여서 더 싫었다. 평생 자기 힘으로 살아본 적이 없는 그들이 너무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그들은 고든 클로드를 사랑하고 고마워한 게 아니라, 그의 돈이 고마웠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멍청하고 불쌍한 고든 클로드. 친척들이 그에게 잘해준 건, 그들에게 그가 생활비를 대주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마 그들은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돈을 로절린이 갖게 되자, 화가 났다. 게다가 로절린의 오빠 데이비드는 고든과 달리 그들에게 생활비를 대주지 않았다. 그러면 각자 알아서 살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들은 로절린이 죽기를 빌었다. 아주 그냥 개념이라고는 없는 족속들이었다. 진짜 짜증났다.

 

  게다가 그나마 쓸 만한 머리와 개념을 가졌다고 생각한 린마저 후반부에 가서는 이상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그녀는 처음에 로절린에게 기대려는 친척들을 부끄러워했다. 스스로 뭔가 해보려고 노력을 했다. 그래서 '오, 얘가 가문을 일으키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기대를 가졌다.

 

  그녀는 전쟁에 참가하고 제대를 한 여성이다. 그래서일까? 전쟁을 피해 시골에서 농장을 말아먹고 있는 사촌이자 약혼자인 롤리의 무사태평함과 무사안일주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약간 위험해 보이는 나쁜 남자 스타일의 데이비드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녀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롤리는 절대로 그녀를 뺏길 수 없다며, 그녀를 공격한다. 남에게 주느니 아무도 못 갖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그녀의 목을 조른다.

 

  그런데 포와로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 그녀는 내가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대사를 롤리에게 내뱉는다. "난 그때야 비로소 내가 당신의 여자라는 걸 알았어요! 이제 나는 당신의 여자예요, 롤리!" 그 부분을 읽으면서 책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이 집안은 어딘지 모르게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는 유전자가 흐르는 모양이다. 아니, 이 무슨 미친 X같은! 병신 같은 호구력도 그 집안의 유전인가보다. 설마 린은 SM 플레이를 좋아하는 여자였나? 맞으면서 흥분하고 쾌감을 느끼나? 그래서 그런 거야? 롤리의 목 조름이 엄청난 오르가즘을 느끼게 한 거야? 그래서 그런 거야? 응?

 

  게다가 사건의 해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연히 사고로 사람이 죽은 게 장난인가? 과실치사라는 게 그 당시는 없었나? 아니 왜 그 사람은 안 잡아가지? 뭔가 이상했다. 이건 크리스티가 공정성을 잃고 적은 책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살인만 죄는 아니잖아? 과실치사도 죄고, 사기공모도 죄잖아? 왜 그 사람만 잡아가는 건데!

 

  등장인물의 성격도 그렇고 사건의 진행도 그렇고, 무척이나 읽기 힘든 책이었다. 거기에 후반부에 나오는 린의 이해 불가능한 대사는 정점을 찍었다. 아, 너무 실망스럽고 화가 났다. 크리스티에게도 포와로에게도.

 

  그나마 건진 건, 포와로의 이 대사뿐이다.

  '강해지지 않으면 세상은 살기가 더욱 어려운 곳으로 변해가는 겁니다.' -p.202

 

 

 

  오타 발견

  64페이지 밑에서 네 번째 줄, '걱정하해요.' 걱정마세요라고 적어야 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콜
브래드 앤더슨 감독, 모리스 체스트넛 외 출연 / 캔들미디어 / 2013년 9월
평점 :
품절


  원제 - The Call, 2013

  감독 - 브래드 앤더슨

  출연 - 할리 베리, 아비게일 브레스린, 모리스 체스트넛, 마이클 에크런드

 

 

 

 

  911센터에서 전화응답을 맡고 있는 조던. 어느 날 누군가 집에 침입했다는 리아의 전화를 받는다. 911 요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 그녀와 통화를 하던 조던은 결국 리아가 범인에게 살해당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6개월이 지난 후 그 충격으로 조던은 현장이 아닌 업무교육을 맡고 있는데, 케이시가 납치를 당해 트렁크에 갇혔다고 연락을 해온다. 범인에게 들키지 않게 어떻게든 케이시가 납치당한 차종과 방향을 알아내는 것은 이제 조던의 판단에 달려있다. 그리고 우연히 듣게 된 범인의 목소리로, 그녀는 그자가 6개월 전 리아를 살해한 놈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데…….

 

  초반에 리아가 집에서 공격을 당하는 장면부터 영화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누군가 전화선 너머에서 공격을 받고 살해당하는 것이 들리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은 물론이고, 너무도 적나라한 비명소리가 조던이 느꼈을 공포감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했다.

 

  그리고 케이시가 납치당했을 때의 상황 역시, 보면서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트렁크에 갇혀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녀의 불안감과 그녀를 구하고 말겠다는 조던의 비장함이 여유 있는 범인의 태도와 맞물리면서 보는 사람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아마 자리에서 두어 번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하고, '어떡해!' 내지는 '젠장!'이라는 소리를 내질렀던 것 같다.

 

  특히 조던이 시키는 대로 케이시가 자동차 후미등을 깨서 바깥을 보는데, 그 장면이 무척이나 공포스러웠다. 게다가 페인트를 그 구멍으로 쏟아 부어 경찰들에게 위치를 알리려는데, 지나가던 다른 운전자가 범인에게 차가 이상하다고 알려주는 장면에서는 한탄이 절로 나왔다. 그 사람은 선한 의도로 알려주었지만, 그게 조던과 경찰의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를 비난하는 건 아니다. 남을 돕는 건 좋은 일이니까. 하여간 영화의 그런 장면을 보면서, 납치당해 트렁크에 갇혔을 때 써먹을 수 있는 몇 가지 대처방법도 배울 수 있었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긴장감을 조였다가 풀었다가 하면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딱 중반부까지만.

 

  초반과 중반의 진행은 너무도 좋았다. 두 배우, 조던 역할을 맡은 할리 베리와 케이시로 나온 아비게일 브레스린의 호흡은 나무랄 데가 없었다. 갇힌 자와 구하려는 자의 팽팽한 긴장감과 불안감도 잘 느껴졌고, 그와 동시에 구하겠다는 의지는 물론이고 살아남겠다는 강한 생명력도 보여줬다.

 

  하지만 후반에 가면서는 그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감독은 주인공을 어떤 여전사로 만들고 싶었던 걸까? 주인공이 직접 현장으로 가서 범인을 후려패지 않으면 안 된다는, 그러니까 물리적인 접촉을 가해서 범인을 굴복시켜야 진정한 여전사라고 생각했던 걸까? 물론 그럴 수도 있다. 나도 여전사를 떠올리면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니까.

 

  하지만 이건 뭐랄까, 주인공을 여전사로 만들기 위한 설정이 너무도 많은 우연의 남발이라 반발감만 들었다. 왜 수많은 911요원들이 쥐 잡듯이 현장을 뒤지면서도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곳을, 조던이 밤중에 혼자 가서 딱 알아챘을까? 그 장면에서 '에이,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전까지 영화를 이끌어오던 좋은 분위기들이 싹 사라졌다. 게다가 범인이 왜 그런 짓을 하는지 알려주는데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했다. 이건 범인도 사실 알고 보면 불쌍한 사정이 있었다며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일본 만화 '소년 탐정 김전일' 같은 설정이었다. 아니, 이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렇다고 다 사람을 잡아다가 죽이지는 않잖아?

 

  후반부는 감독이 대충 찍은 느낌이었다. 레드 불 한 박스를 다 마셔가면서 앞부분을 하얗게 불태우는 바람에, 후반을 이끌어갈 에너지가 없었나보다. 아깝다. 감독의 필모를 보니, 미국 드라마 '프린지 Fringe, 2008'의 연출을 맡았었다고 나온다. 그 시리즈도 초반은 무척이나 좋았었는데, 갈수록 이야기가 산으로 갔었다. 후반 뒷심 부족이 감독의 특징인가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위스퍼
스튜어트 헨들러 감독, 사라 웨인 칼리스 외 출연 / 버즈픽쳐스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 Whisper, 2007

  감독 - 스튜어트 헨들러

  출연 - 조쉬 할로웨이, 사라 웨인 칼리즈, 블레이크 우드러프, 마이클 루커

 

 

 

 

 

  생일날 주인공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떨어진 데이빗. 집이 부자라서 초대 손님은 많지만, 그는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를 띄우기위해 초대한 산타클로스에게 납치를 당한다. 소년을 납치한 사람들 중에는 새 출발을 위한 식당 개업기념을 마련하기 위해 가담한 커플인 맥스와 록산느가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에게 데이빗의 유괴를 지시한 자가 조건을 바꾼다. 소년을 죽이라는 것이다. 납치범들은 의견이 맞지 않아 우왕좌왕하고, 그 와중에 데이빗은 그만이 가지고 있는 능력으로 그들을 하나둘씩 처리하는데…….

 

  문득 귓가에 끊임없이 뭔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무척이나 괴로울 것 같다. 게다가 그 소리가 말하는 것이 진실로 보인다면? 그러니까 환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어떨까? 영화에서 납치범들은 그 속삭임과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서로를 의심하고 급기야 서로 죽이려고까지 한다. 납치당하는 와중에 자신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도 꼼꼼하게 저주를 내리는 데이빗의 능력은 대단하다. 거기다 그가 벽에 그리는 그림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보면, 저절로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하지만 아쉬운 부분도 많았다. 우선 광고 포스터였다. 호러 스릴러의 묘미는 숨기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포스터에서 모든 것을 보여준다. 카피를 보자. ‘<오멘><오펀>의 뒤를 잇는 초자연적 공포스릴러!’ 예시로 든 영화는 두 편 다 어린아이가 주연이다. 하지만 어린아이 영화다운 상큼발랄코믹한 내용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멘 The Omen, 1976’같은 경우에는 적그리스도로 태어난 꼬마가 주인공이고 ‘오펀 The Omen, 2006’은 자신이 바라는 가족을 얻기 위해 무자비한 면을 보이는 아이가 등장한다. 고의적이건 의도적이건 간에, 아이를 중심으로 어른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가는 내용이다. 그 뒤를 잇는다고 했으니, 영화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예측이 가능하다.

 

  게다가 포스터 중간에 어린 소년이 혼자 피가 흐르는 하얀 눈 쌓인 숲에 앉아있다. 그걸 보니 짐작이 간다. 아, 쟤 때문에 사람들은 물론이고 동물들도 죽어가겠구나. 그리고 하단의 카피. ‘악마의 실체가 밝혀진다!’ 아놔 진짜, 이건 뭐 대놓고 광고가 스포를 하고 있다.

 

  아이들이 나오는 호러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캐스팅은 오리지널 '오멘 The Omen , 1976'의 데미안이다. 리메이크 '오멘'이나 '오펀'의 아이들과 달리 곱슬머리가 미소가 귀여운 꼬마였다. 그러니 아무도 그를 의심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그의 정체가 밝혀질 때, 설마 했던 것이 사실로 밝혀졌을 때, '우와!'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두 영화의 주연을 맡은 꼬맹이들은 다들 음침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내는지 모르겠다. 보자마자 ‘난 남들과 달라.’라는 포스를 풍기고 있다. 그래서 그런 애들이 연쇄 살인을 저지르거나 흑마술이나 부두 주술을 쓸 줄 안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러니 아이들 주위의 사람이 죽어나가도 별로 놀랍지 않다. 긴장감이나 공포심 같은 걸 느낄 건덕지가 없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데이빗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러니 생일파티에서 그와 같이 노는 아이가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마 걔네 집이 부자이고 엄마가 사장이라서 어쩔 수 없이 참석한 모양이다. 아, 진짜 상큼발랄한 꼬맹이가 환하게 웃으면서 악마로 자각하는 영화를 보고 싶다. 그러면 아마 데이빗이 록산느에게 자신이 천사라고 말했을 때, 더 그럴듯하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아쉽기만 하다. 좀 더 어린아이다운 면을 부각시켰다면, 그의 어두운 면과 대비되어 더 오싹하게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러면 영화의 흐름도 덜 지루했을지도 모르겠다. 소년의 납치를 주도한 범인의 정체는 진짜 멋진 반전이었다. 그걸 제대로 살리지 못해서 더더더더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아쉬움이 철철 넘치는 영화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이트 하우스 다운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 제이미 폭스 외 출연 / 소니픽쳐스 / 2013년 10월
평점 :
품절


  원제 - White House Down, 2013

  감독 - 롤랜드 에머리히

  출연 - 채닝 테이텀, 제이미 폭스, 매기 질렌할, 제임스 우즈

 

 

 

 

  제목이 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 미국 백악관이 무너지는 내용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부실공사 때문이 아니고, 공격을 받아서 그렇게 된다.

 

  영화는 꽤나 개성이 강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우선 대통령 경호원에 지원했지만 과거의 불성실한 행동에 퇴짜를 맞은 딸 바보 주인공 존. 화장실에 간 딸을 찾으러갔다가 엉겁결에 테러범의 표적이 된 대통령을 보호하게 된다. 그래도 그의 목표는 딸 구출. 백악관과 대통령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정치적인 감각도 있는 그의 어린 딸 에밀리. 특히 그녀는 인질로 잡힌 상황에서도 몰래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테러범들의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해, 상황 파악에 큰 도움을 준다. 유머감각이 있고 꽤나 보좌관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대통령. 중동 국가들과 평화 협정을 맺으려 한다. 하지만 그의 정책은 중동 지역의 전투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과 무기를 팔아먹으려는 군수업체들의 반발을 산다. 이번 백악관 테러 역시 그런 상황과 맞물려있다. 그리고 테러를 지휘하는, 조국을 배신해야하는 갈등과 가족을 잃은 아픔을 적절하게 드러내는 한 남자.

 

  두 시간 동안 백악관의 여러 건물들이 펑펑 터진다. 중앙, 이스트 윙, 웨스트 윙, 농구대, 외벽, 수영장 등등. 멀쩡한 건물을 찾는 게 더 빠르겠다. 오죽했으면 ‘참 꼼꼼하게도 부순다. 감독이 백악관에 감정이 있나봐’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게다가 도망 다니면서도 쉴 새 없이 떠드는 대통령과 주인공덕분에 심심할 틈이 없다. 어떨 때는 너무 장난스럽게 대화를 해서, 이 사람들이 지금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알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혹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일부러 감독이 의도한 것이라면 음……. 대통령이 자기 발목을 잡는 테러범에게 내 한정판 조던 신발 건드리지 말라고 하는 게 웃기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긴 주인공은 진지진지 열매를 먹은 사람인 것 같으니, 누구 한 사람은 개그감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테러범들의 목표가 된 대통령이라니……. 모든 각료들은 그를 구출하기위해 안간힘을 쓰고, 가족들은 그의 생사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울고 있는데 정작 당사자는 농담 따먹기나 하고 있으면…….

 

  감독의 전작 중에 ‘인디펜던스 데이 Independence Day, 1996’가 있다. 거기서 대통령이 감동적인 연설을 하고 비행기를 몰고 UFO를 공격한다. 이 영화에서는 대통령이 총을 쏜다. 그것도 그냥 총이 아니라, 손에 들고 쏘는 로켓이다. 군미필이라는 설정답게 쏘고 나서 차에서 떨어뜨리긴 하지만, 테러범에게 반격을 가하긴 한다. 그런데 군미필이라면서 어떻게 로켓을 조립했는지는 의문이다.

 

  영화는 여러 가지를 비판하고 있다. 특종을 위해서라면 취재원을 보호하지 않는 언론,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목숨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집단, 적의 적은 동지가 되는 냉혹한 현실 등등.

 

  특히 인상적인 것은 자국을 보호하기 위한다면서 설치한 수많은 미사일과 핵폭탄이 역으로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상황이었다. 컴퓨터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미친 천재 하나가 해킹에 성공하면 그 많은 미사일들을 눈뜨고 빼앗기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것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게 더 낫다는 걸 알려주려는 것 같다.

 

  그나저나 거의 마지막 장면에 백악관 공습을 하려는 전투기들에게 공격을 중지하라고 깃발을 흔드는 에밀리의 모습은 어쩐지 낯이 익다. 그렇가.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더 록 The Rock, 1996’과 비슷하다. 거기서는 섬을 폭파하려는 전투기들에게 상황이 끝났다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깃발이 아닌 연막탄을 터트렸지만 말이다.

 

  참고로 에밀리로 나온 소녀는 영화 ‘컨저링 The Conjuring,2013’에서 공포에 가득찬 표정으로 비명을 질러댔던 꼬마였다. 거기서는 보이시한 모습이었는데, 여기서는 꼬마 숙녀의 면모를 보여준다.

 

    컨저링에서의 이 꼬맹이가 에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스터데일 미스터리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6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유인숙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제 - The Listerdale Mystery and Other Stories, 1934

  작가 - 애거서 크리스티

 

 

 

  총 10개의 이야기가 실린 단편집이다. 포와로나 미스 마플, 배틀 총경은 물론 톰과 터펜서 부부는 등장하지 않는다. 어떤 것은 살인사건이 일어나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해프닝에 불과한 것도 있으며, 또 다른 것은 살인은 일어나지 않지만 범죄가 일어나긴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남녀가 만나 로맨스가 싹트기도 한다. 그러니까 솔로가 만나서 커플로 끝나는, 모 포털 사이트의 표현법에 따르면 배드 엔딩으로 끝나는 공포 이야기모음집이다.

 

  『리스터데일 경의 수수께끼』는 수수께끼처럼 사라진 리스터데일 경의 저택에서 살게 된 한 빈센트 부인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의 아들인 루퍼트가 과연 리스터데일 경에게는 무슨 일이 생겼을지 의문을 품고 조사를 시작한다. 아, 로맨스에는 나이구별이 없다는 걸 새삼 깨달은 이야기다.

 

  『기차에서 만난 아가씨』에서 조지는 우연히 기차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한 아가씨를 도와주게 된다. 그런데 이후 그에게 위험이 닥치는데……. 아니, 상대가 어떤 사람인줄 알고 도와달라고 하면 그냥 덥석 수락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난생처음 보는데 말이다. 역시 여자는 예쁘고 볼 일인가보다. 쳇.

 

  『6펜스의 노래』에서는 왕실 변호사인 팰리저 경이 오래 전에 알았던 한 소녀의 부탁으로 살인사건을 수사하는 내용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사건의 해결에 힌트를 얻은 식당 이름이 '스물네 마리의 검은 지빠귀'인데, 이곳은 포와로도 가끔 오는 곳이다. 어쩌면 두 사람은 식당에서 만났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에드워드 로빈슨은 사나이다』는 퀴즈 응모에 당첨된 돈으로 멋진 차를 산 에드워드의 모험담을 그리고 있다. 유약했던 그가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였을 때, 그의 애인인 잔소리꾼 모드의 반응이 볼만하다.

 

  『취직자리를 찾는 제인』에서 제인은 일자리를 찾다가, 황녀의 대역을 맡게 된다. 그런데 그녀는 납치를 당하는 것과 동시에 함정에 빠진 것을 알게 된다. 사실 사건의 해결이 좀 흐지부지한 느낌이 드는 에피소드이다. 남자와 키스하는 걸로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건 아니잖아?

 

  『일요일에는 과일을』은 장에서 산 과일 바구니 밑에서 발견한 목걸이에 관한 이야기다. 마침 그 때, 값비싼 목걸이가 도난당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실린다. 도로시와 에드워드는 이 목걸이가 그 목걸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하는데……. 아, 참으로 깔끔하고 귀여운 이야기였다.

 

  『이스트우드의 모험』도 역시 생면부지의 예쁜 여자가 도움을 요청하자 냉큼 수락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아무리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다. 설마 남자들이 여자에게 홀라당 넘어가는 일이 많으니까, 그걸 미화시키기 위해 '신사의 나라' 어쩌고 하는 걸까? '우리나라 남자들은 호구에 병신이에요.'라고 하는 것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신사라서 레이디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는답니다.'라고 하는 게 더 보기엔 그럴듯하다. 그렇다고 내재된 호구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황금의 공』은 내가 이해하기에 난해한 사고방식을 가진 여자가 나온다. 그와 그녀가 아는 사이라고 나온 적이 없는데, 단지 외로워 보인다는 이유로 길에서 그를 헌팅하고 청혼을 한다. 이 여자 뭐지?

 

  『라자의 에메랄드』는 줄을 기다리기 귀찮아서 몰래 들어간, 해수욕장 개인 탈의실에서 발견한 보석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문득 '인실좆'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마지막 공연』은 무척이나 비극적인 이야기였다. 오페라 '토스카'의 노래와 같이 들으면 더 슬프다. 어쩌면 크리스티가 '토스카'를 약간 각색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반적으로 읽으면서 '허허'하고 웃음이 나왔다. 재미있어서 웃는 게 아니라, 그냥 허무해서 웃음이 나왔다. 크리스티의 기발한 상상력이 드러나긴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이야기가 붕 뜬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읽은 단편집 중에서 제일 별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