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신화
서정오 지음 / 현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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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서정오

 

 


 

 

  우선 신화와 설화의 차이점에 대해서 미리 짚고 글을 시작하겠다. 신화는 신적인 대상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이고, 설화는 한 민족 사이에서 구전되는 이야기를 의미한다. 즉, 주몽 이야기는 그의 부친이 신이기에 건국 신화가 되는 것이고, 구미호 이야기는 그냥 설화 또는 민담 내지는 괴담이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말을 하고 한글로 된 책을 읽고, 한글 간판이 즐비한 거리를 다니면서 한국 배우들이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있지만, 정작 한국 신화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게네스나 클라이템네스트라 또는 아리아드네 같은 서양 이름에는 익숙하지만, 신산만산할락궁이나 개울각시같은 한글 이름은 낯설기만 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단군이라든지 박혁거세나 알영 같은 이름은 익숙하다. 그것은 어쩌면 건국 신화를 시작으로 하는 왕 중심의 역사 교육이 현재 교과서의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국 신화는 나라를 만들면 그것으로 끝이 나버린다. 알에서 태어난 주몽과 박혁거세도, 바위를 타고 바다건너 일본으로 간 연오랑 세오녀 부부도 왕위에 오르는 것으로 신화는 끝이 난다. 그나마 더 나온다면, 가야의 김수로 왕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부인을 맞이했는지, 고구려의 주몽은 누가 후계가 되었는지가 더 첨가되어있다. 물론 그 경우에도 후계자가 왕위에 오르면서 끝이 난다.

 

  그러면 왕을 제외하고는 신화나 설화에서 나올 인물이 없단 말인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왕 얘기가 아니면, 전설의 고향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가 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주 많았다. 그 중에는 바리데기 공주처럼 어린 시절 동화책에서 접했던 이름들도 있었고, 또 노가단풍자지명왕처럼 난생처음 접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얼마나 우리 것에 대해 무지했는지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모든 곳에 신이 있다고 믿었다. 방문을 비롯해서 돌담, 부엌 심지어 화장실까지! 물론 만물에 신이 있다는 사상은 예전 석기시대부터 있었다고 배웠지만, 각각의 신에게 명칭을 주고 개성을 불어넣었으며, 어떤 연유로 그 곳을 지키게 되었는지 각각의 사연을 읽으면서 감탄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였으며 이런 나쁜 놈을 왜 신으로 만들었냐고 화를 내기도 했다. 또한 조상들은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모든 것은 신들의 보살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죽은 후에도 살아있을 때 얼마나 남을 위해 봉사를 했는가에 따라 염라대왕의 판결이 내려진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덕을 베풀며, 미물이라 해도 함부로 여기지 않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하나가 되는 그런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요즘 대두되는 친환경 정책을 우리 조상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는 말이 나온 걸까?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부재였다.

모든 신화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신화에서 아버지라는 존재는 초반에 잠깐 나왔다가, 후반에 다시 나올 뿐이었다. 속된 말로 씨만 뿌리고 사라졌다가, 나중에 아들들이 장성해서 찾아갔을 때야 반갑다고 눈물지으며 거둬주는 역할이었다. 하긴 건국 신화에서도 그런 부분은 볼 수 있다. 주몽의 아버지 해모수도 유화 부인과 며칠 놀다가 하늘로 떠나버렸고, 그 아들 주몽 역시 피치 못할 사정이었다지만 그러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아버지가 하나둘이 아니었다. 옥황상제 천지왕도 서천꽃밭 꽃감관도, 칠성님도 다 그러했다. 그리고 홀로 남은 부인들은 자식을 키우면서 온갖 고초를 다 겪어야 했다. 재미있는 건, 어떻게 된 것이 그런 자식들은 거의 다 아들이다. 이윽고 장성한 아들들은 아버지를 찾길 원했고, 어머니를 혼자 남겨두고 먼 길을 떠나버렸다. 남편도 아들도 다 떠나고 홀로 남은 여인들은 또 고생만 하다가 외로이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러면 아버지를 찾은 아들들이 그제야 어머니를 찾아와 한바탕 슬피 울고 서천의 꽃밭에서 꽃을 가져와 죽은 어머니를 다시 살려낸다.

 

  그리고 온 가족이 웃으면서 마무리는 훈훈하게 마무리……는 개뿔. 결국 예전에 유행했던 개그 프로에서 우스갯소리가 사실은 신화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 나라의 전통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여자들이 자기 할 거 다 하면 소는 누가 키워?’

 

  처음에 남자 개그맨의 저 말을 들었을 때, 왜 여자들이 소를 키우는 걸까라고 의문이 들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년 만에 드디어 해답을 얻었다. 집안일에다가 논일 밭일도 혼자 다 하고, 소까지 혼자 키우고, 거기다 자식까지 키우면서 남편 봉양하는 것은 부인이 할 일이다. 반면에 집안 살림은 물론이거니와 자식 양육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다가, 나중에 장성한 아들의 봉양을 받는 것이 남편의 역할이라고 신화는 말하는 것 같다. 아, 그래서 모든 것은 부인에게 맡기고 바깥으로 돌기만 하셨던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종종 들을 수 있었던 거구나. 거기에 축첩은 기본이고 말이다. 이런 경우에는 전통을 잘 지키고 있었다고 좋아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책임감이 없으셨다고 해야 하는 걸까?

 

  물론 신화를 현대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랬다면 막장 불륜 드라마 뺨치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당장 악서로 분류되어 출판 금지를 당해, 우리는 접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면 비너스 상 같은 예술 작품들은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것이고, 트로이 발굴 역시 꿈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되었을 것이다.

 

  세대차가 있으니 시대차도 있는 법. 어느 정도는 감안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현대의 눈으로 고대를 판단한다는 것은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신화는 신화, 현실은 현실이니 말이다. 우리 역사에 이런 놀라운 신들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만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적어도 서양의 신들처럼 근친 불륜 스캔들을 저지른다거나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부족을 몰살시키지는 않으니까.

 

  그렇지만 역시 사고는 남자가 치고 뒷수습은 여자가 한 전래 동화들이 떠오른다. 아, 그게 우리의 전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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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사바 SE [dts] (2disc) - 할인행사
안병기 감독, 김규리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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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작 - 이종호의 '모녀귀'

  감독 - 안병기

  출연 - 김규리, 이세은, 이유리, 최정윤

 

 

 

 

  분신사바는 귀신을 불러내는 주문이다.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귀신 놀이인데, 그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나 같은 사람은 진짜 주술적인 힘이 있다고 믿어서 절대로 하지 않고, 어떤 사람은 그냥 일본에서 건너온 질 낮은 장난이라고 여긴다.

 

  이 영화는 분신사바를 이용해 자신들을 괴롭히는 일진에게 보복하려는 여학생 무리로 시작한다. 전학생 유진은 학교 아이들의 괴롭힘이 극에 달하자, 다른 아이들 두 명과 함께 밤늦은 학교에서 분신사바를 시도한다.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저주를 내린 아이들이 하나둘씩 죽어간다.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자기 손으로 라이터 불을 붙이는 끔찍한 방법으로.

 

  한편 그 학교에 미술 선생으로 새로 부임한 은주는 수업 첫날 29번 인숙의 출석을 부르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번호의 학생은 오래 전에 죽었는데, 소문으로는 아직도 학교를 떠돌아다닌다고 한다. 아이들이 계속 같은 방법으로 죽어가는 가운데, 인숙의 죽음에 얽힌 마을의 비밀이 하나둘씩 드러난다.

 

  음, 영화는 이것저것 많이 말하려고 노력한다. 원한을 품은 소녀 귀신, 심령술사, 빙의 내지는 환생,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 남자의 추악한 욕망과 여자들의 질투 등등. 나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말하고 싶은 게 많으면 중구난방 주저리주저리 떠들게 된다. 그래서 상대방이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영화도 처음에는 그런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산만했던 곁가지들은 싹 가지치기가 되어간다. 그 때문일까? 앞부분에 나왔던 이야기가 뒤에서는 나오지 않아, 어떻게 된 걸까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대목도 있고, 왜 그렇게 연결되는 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아이들이 계속 죽어가기에 집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다는데, 어떻게 아이가 짐을 다 챙겨서 몰래 빠져나올 수 있을까? 암만 봐도 대문으로 나온 거 같은데……. 그리고 왜 짐을 비닐봉투에 싼 걸까? 가방은 어디에 두고? 왜 비밀 얘기를 꼭 그렇게 위험한 장소에서 해야 했을까? 애가 늦게 들어온다고 혼을 내는 게 아니라, 못 나가게 막아야 했지 않을까 등등.

 

  초반에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귀신의 저주가 몰아친다. 아주 그냥 숨 쉴 틈이나 마음을 가다듬을 여유조차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흐름이 중반이후부터는 느릿해진다. 인숙과 그녀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후반의 메인을 차지하면서, 사건이 아닌 설명조로 영화는 흘러간다. 황당하게도 30년 전 두 모녀가 살해당한 사건의 진상이 유진과 은주에게 최면을 걸었던 호경의 입을 통해서 술술 나온다. 아,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 잘 잡고 잔뜩 긴장하게 만들다가 뜬금없이 최면으로 전생을 알아내는 건 뭐람?

 

  추리 호러 스릴러를 보는 재미가 뭔데? 감독이 영화 곳곳에 배치한 퍼즐을 짜 맞춰 추측하여, 맞추면 좋아하고 틀리면 다음 기회를 노리는 그 아슬아슬함에 있다고 본다. 사건의 배경과 숨은 동기까지 몽땅 다 최면술사의 입을 통해서 알려주는 건 관객의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생각한다.

 

  제일 좋았던 건 세 여배우의 연기였다. 유진 역을 맡은 배우 이세은의 눈이 무척 컸는데, 두 눈을 부릅뜨고 화면을 바라볼 때면 가슴이 철렁한다. 거기에 요즘 '연민정'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유리의 귀신 연기도 역시 꿈에 나올까 무서웠다. 김규리 역시 후반에 으아……. 세 여자들이 완전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만들면서 오들오들 떨게 했다. 영화의 분위기도 그에 어울리게 충분히 서늘했는데, 중간에 너무 많은 정보를 한꺼번에 주려고 해서 흐름이 삐끗했다. 그래서 앞으로 나올 결말이라든지 뒷이야기까지 추측할 수 있게 되었다. 맞춰서 좋긴 하지만, 끝나기 20분 전에 모든 것을 알게 되면 무척 허무해진다.

 

  문득 얼마 전에 읽은 이춘풍전 배비장전 이야기가 생각난다. 사고는 남자들이 치고, 그 대가는 여자가 떠맡는……. 이 영화에서는 여자, 특히 여고생들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했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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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독 소사이어티 - 82명의 살인 사건 전문가
마이클 카프초 지음, 박산호 옮김 / 시공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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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Murder Room, 2010

  저자 - 마이클 카프초

 

 

 

 

  이 책은 그러니까, 경찰이나 검찰, FBI 쪽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민간 범죄 수사 기구인 ‘비독 소사이어티’라는 모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다들 자기들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능력자들이었기에, 그 재능을 썩히기 싫기도 하고 정보 교류 등을 위해 매년 네 번씩 모여서 사건을 얘기하고 친목을 다진다고 한다. 저자는 특히 모임의 주춧돌인 세 사람, 프랭크, 리처드 그리고 윌리엄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딱딱한 설명문이나 다큐멘터리가 아닌, 소설 형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 특이하다.

 

  이런 유의 책으로는 예전에 나온 ‘마음의 사냥꾼 Mindhunter, 1995’나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a.k.a. FBI 심리 분석관 Whoever Fights Monsters, 1992’과 비슷하다. 다른 점을 고르자면 위에 언급한 두 책은 FBI 요원들이 자기들이 면담하거나 참여했던 범죄에 대해 자서전 형식으로 서술했고, 이 책은 민간 요원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들이 개입한 사건을 소설형식으로 적고 있다.

 

  그래서일까? 위의 두 책은 보면서 자기 자랑이 심하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이 책은 그러지 않았다. 그냥 덤덤하게 사람 사는 얘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그 사람들은 나처럼 평범하게 사는 것이 아닌, 괴물 같은 범죄자들의 세계에 몸을 반 정도 담고 있는 게 달랐다.

 

  그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했다. 법의학 예술가인 프랭크는 변사체의 얼굴 복원 일인자인데 영감을 주는 뮤즈를 찾아 헤맸다. 그의 다양한 여성 편력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또한 범죄 심리학자인 리처드는 타인과의 교류를 썩 달가워하지 않는, 이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절대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정반대 성격의 두 사람이지만, 범죄를 앞에 두고는 의기투합한다. 두 사람은 모든 것이 다르지만, 단 한 가지는 일치했다. 범죄자가 죗값을 치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용납 못한다는 점이다.

 

  저자가 저술한 사건들 중에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다루었던 것도 있고, 처음 접하는 경우도 있었다. 범행 수법은 예전에 FBI 요원들이 쓴 책에서 다룬 사건들보다 더 잔인하거나 마음이 아픈 경우도 있었다. 아마 몇몇 경우에는 범인의 체포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희생자 가족의 아픔까지 아우르는 요원들의 인간적인 면까지 같이 다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탈을 쓴 짐승만도 못한 것이 많은 세상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을 잡아가두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물론 제일 좋은 건, 그런 것들의 희생자가 되지 않는 것이지만.

 

  하지만 한편으로 무척이나 아쉬움이 많은 책이었다. 특히 교정 부분에서 그러했다. 비문은 그렇다고 쳐도, 오탈자는 물론이거니와 맞춤법 부분에서 한숨이 나왔다. 가격에 비해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편집/구성면에서 별점을 좋게 줄 수가 없었다.

 

  아래의 문장들은 중간에 글자가 빠져있는 경우이다.

 

 

  2주 내에 체포하 머리를 이렇게 금색으로 물들였을 겁니다. -p.129 (체포한다면 정도가 들어갈 것 같다)

  당신이 아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싶어 애가 타니까 신을 의심하지 않도록 -p.265 (당신을)

  레이샤는 스미스를 유혹해서 범행을 돋게 한 후 그를 차버렸다고 그리고 이어서 동네 레스토랑 -p.306 (차버렸다고 한다. 가 어울릴 듯)

  위리엄은 충동적으로 프랭크를 와락 잡아당겨서 안았다. -p.520 (윌리엄이다)

  미국 제 1세대 범죄 프로파일러이자 리처드 월터의 동료인 이 뛰어난 비독 소사이어티 회원들은 -p.557 (누군가의 이름이 생략되었다.)

 

 

  다음에 이어질 문장들은 주어와 술어의 호응이 맞지 않는, 비문이라고 불릴 수 있는 문장들이다. 수식문장이 길 경우에 굳이 영어 원문처럼 하나로 잇기 보다는 끊어서 두세 개의 문장으로 만드는 것이 의미 파악을 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짐이 이야기하는 동안 리처드의 작고 파란 눈으로 냉정하게 이야기를 쫓아가며 관심을 보이다가 끝내는 부드럽게 인내심을 발휘하며 듣게 되었다. -p.258 (누가 이야기를 들은 것인가? 리처드는 이라고 썼어야 할 듯)

  프리드는 77세로 ‘유아 돌연사 연구의 할머니’이자 메리 노의 다섯 번째 아이인 콘스탄스를 1958년 부검한 마리 발데스 데프나 박사를 인터뷰했다. -p.353 (d;거 잘못 읽으면, 콘스탄스가 연구의 할머니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는 독실한 복음주의자 신자인 스미스가 레이셔가 스콧을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0년형을 선고받은 지 1년이 지난 후에 레이샤의 공범으로 스콧의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것을 지켜봤다. -p.385 (읽으면서 욕 나왔던 문장. 스미스와 레이셔가 20년 형 받았다고 오해할 뻔 했다. 첫 줄의 ‘스미스가’를 1년이 지난 후에 다음에 넣어야 의미 전달이 확실해진다.)

 

 

  본문에도 나와 있지만, 비독 소사이어티의 회원들이 논문이나 저술을 발표하면 그것을 꾸준히 읽는 사람 중의 일부는 범죄자라고 한다. 아마 잡힌 사람들의 사례를 보면서 완전 범죄를 완성할 방법을 궁리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책이나 논문은 범죄자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의문이 들었다. 이런 유의 책이 꾸준히 나오는 것이 득일까 아니면 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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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룰에 의문을 던져라 - 틀을 깼을 때 만나는 유쾌한 일상
리처드 템플러 지음, 조혜란 옮김 / 시그마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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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제 - 틀을 깼을 때 만나는 유쾌한 일상

  원제 - The Rules To Break, 2013년

  저자 - 리처드 템플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엔 알게 모르게 지켜야할 것들이 많다. 활자화된 공식적인 규칙이나 법이 있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은연중에 이래야한다고 퍼져있는 것도 있다. 그래서 혹시 그걸 못 지키면, ‘그런 건 상식으로 알고 지켜야 하는 거 아냐?’라는 공격을 당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은 때로 너무 고지식하다거나 요즘과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그런 것들을 룰이라고 부르며, 과거와 달리 새롭게 재해석이 되어야할 룰들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잠언이라고 소개글에는 적혀있지만, 어떻게 보면 자기계발서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책에는 모두 93개의 새로운 룰이 소개되어 있다. 읽으면서 ‘아, 그래. 맞아. 이렇게 생각해야지’라고 공감 가는 부분도 있었고, ‘이건 좀…….’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대목도 있었다. 저자의 말이 진리는 아니니까 찬찬히 읽으면서 취할 부분은 취하고, 아닌 부분은 그냥 참고만 해도 좋을 것이다.

 

  인상 깊은 몇 가지를 들어보면, 우선은 73번 ‘계획한 일을 제대로 한다.’를 들 수 있다. 저자는 룰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룰을 바꾸었다. ‘섣불리 큰일에 뛰어들지 않는다.’ 저자는 차근차근 목표한 것을 놓치지 않고 때로는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무모하게 일을 벌이는 것보다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보다는, 나에게 알맞은 속도로 일을 진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또한 78번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한다.’라는 룰을 저자는 ‘당장 원하는 바를 알지 못해도 좋다.’라고 재해석했다. 하지만 여기엔 단서가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내기보다는 무엇이라도 실질적인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경험을 겪어보라는 것이다. 생계를 유지시켜주지 못해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라고 한다.

 

  20번의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라는 룰도 역시 ‘상대방을 바꾸려고 애쓰지 않는다.’로 바꾸었다. 95%의 장점을 가진 사람을 5%의 단점 때문에 바꾸려고 한다면, 그건 비현실적이라 말하며 차라리 그 5%를 받아들이도록 자신의 생각을 바꾸라고 말한다. 이건 나중에 나오는 뉴 룰 65번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와 연결이 되는 것 같다.

 

  저자는 자신에게 자신감과 자존감을 갖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움직이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적고 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건강관리에 대해 언급한다. 신기했다. 이걸 말하는 책은 기억에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성묘를 갔을 때, 운동을 꾸준히 한 올케들은 쌩쌩한 반면 그렇지 않은 나는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다. 운동 열심히 해야겠다.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종종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줄 알고, ‘난 이상한 사람인가 봐.’라고 침울해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다른 것이지 틀린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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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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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원제 - 迷宮

  작가 - 나카무라 후미노리

 

 

 

 

 

  아무 기대 없이 첫 장을 넘기는 순간, 낯익은 향기를 느꼈다. 글자하나하나마다 찍혀있는 점들! 그 순간 작년에 읽은 소설 '왕국'이 떠올랐다. 아, 그 작가구나! 그와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마구 들었다. 그 작품처럼 빠른 전개와 냉소적이면서 가차 없는 성격의 인물들이 등장할까? 역겨울 정도로 가혹한 현실과 시적인 분위기의 문장이 이번에도 조화를 이루고 있을까?

 

  주인공 신견은 어린 시절, R이라는 분신을 만든 적이 있다. 어렸던 그는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또 다른 자아인 R을 봉인시키는데 성공한다. 이후 그는 그럭저럭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며 나름 좋은 평가를 받으며 살고 있다. 우연히 중학교 동창이라 기억되는 사나에를 만난 그는, 그녀와의 관계에 차츰 익숙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탐정이라는 남자가 나타나 뜻밖의 제안을 한다. 사나에가 사귀던 남자가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혹시 그녀가 아는 게 있는지 알아봐달라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탐정의 태도에 반감을 느낀 주인공이었지만, 결국 그를 돕게 된다.

 

  그러다 주인공은 탐정에게서 사나에가 예전에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가족 피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것을 알게 된다. 농담인 듯이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하는 사나에를 보면서, 주인공은 그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는데…….

 

  자신의 음울함 모두를 분신에게 떠넘기고, 모든 것을 잊은 채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아무리 쾌활하고 밝은 사람이라도 남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뭔가가 한두 가지씩은 꼭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흑역사일 수도 있고, 아픈 기억일 수도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 신견과 사나에 역시 그런 비밀이 있다.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어린 나이였기에 그 둘은 서서히 자기 자신을 감춰야 했다. 신견은 R에게 모든 부정적인 면을 떠넘기는 것으로, 사나에는 수면제가 든 주스를 마시는 것으로 그 사실에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것들은 절대로 그들을 떠나지 않았다. 확실히 잊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그 어두움은 불현듯 자신이 건재함을 일깨운다. 그러면 그들은 불안해하고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주인공이 평소에 하지 않던 짓을 하는 것도, 사나에가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하는 것도 다 그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비슷한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은 어둠과 같은 어린 시절을 겪었으니까 말이다. 주인공은 그렇기에 사나에 가족의 죽음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고자 했고, 사나에는 그에게 비밀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을 것이다.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해줄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나보다. 주인공이 사나에 가족의 비밀을 듣는 순간, 사나에의 어둠을 마주하는 순간, 그제야 그는 잊고 싶었던 자신의 어둠을 받아들인다.

 

  어떻게 보면 이 이야기는 주인공의 성장을 다루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인간은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다고,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그냥 눈에 보이지 않게 미뤄두거나 미봉책으로 덮어두는 것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주인공은 그제야 행복을 느끼고 편안한 나날을 보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사나에가 어린 시절에 겪은 일은 무척이나 끔찍했다. 어쩌다가 그녀는 그런 일을 겪어야 했을까? 잘못된 만남이 잘못된 인연을 만들고, 그 잘못된 인연이 거짓 포장되어 사랑이라 이름이 붙여지면서부터일까? 아니면 한 사람의 일방적인 집착이 다른 사람의 포기와 좌절을 양분삼아 자랐기 때문일까? 게다가 그 집착은 대를 이어가면서 더더욱 끔찍한 괴물이 되어버렸다. 그 희생자가 힘없는 어린아이와 여성이라는 점이 제일 화가 났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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