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침묵 열린책들 세계문학 13
베르코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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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Le silence de la mer, 1942

  작가 - 베르코르

 

 

 

 

 

 

  저항 문학이라는 분류가 있다.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의해 침략을 받아 지배를 받을 때, 그런 상황에 반발하여 자유와 해방을 염원하는 내용을 담은 문학 작품들을 말한다. 이 책은, 2차 대전 당시에 독일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 프랑스의 작가가 쓴 단편 소설의 모음집이다.

 

  각각의 단편들은 독일의 지배를 받는 것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독일의 정책에 순응하는 사람, 처음에는 순응하다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저항하려는 사람, 처음부터 독일의 지배를 반대하던 사람,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사람 그리고 소극적으로 반감을 표시하는 사람까지. 그 짧은 이야기들 속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다루고 있었다.

 

  그것을 통해 작가는 2차 대전 때 있었던,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사건에 대해 다각도로 보여주었다. 분노하는 청년의 입을 통해서는 절망과 혼란 그리고 좌절을 드러냈고, 인쇄공의 행동을 통해서는 사람 사이의 관계와 신념에 대해 보여줬다. 그리고 아직 어린 소년의 시선으로는 그 사건이 가져다준 상실감의 크기를 알려줬다.

 

  특이하게도 작가는 프랑스를 지배한 독일의 무자비함과 잔인함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지 않았다. ‘이 나쁜 독일 XX’같은 표현은 가급적 자제하는 느낌이었다. 그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은, 사람들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던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지배받는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은근히 말하고 있었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그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어떻게 권력 앞에서 무너지는지, 믿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변해가고 배신을 하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그는 독일인 전체를 ‘살인마 전쟁광’으로 표현하지 않고, 그 중에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면서 예술을 사랑했지만 전쟁 때문에 좌절하는 평범한 독일 장교도 등장시킨다. 그것을 통해 인간이 끝까지 지켜야할 것은 무엇인지 독자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려고 했던 모양이다.

 

  작가를 충격과 절망에 빠트렸던 사건은 바로 1942년 7월에 일어난 프랑스 경찰이 프랑스 국적을 가진 유대인 13000명 이상을 체포 연행한 일이다. 그 중에 4000명은 어린아이들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에 살던 유대인을 축출하는데 앞장선 것이 독일이 아니라 프랑스인들이었다는 것에 대해, 그리고 끌려간 유대인 대부분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작가는 큰 충격을 받았나보다. 그 전까지는 다정하게 지내던 이웃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서로를 외면하고 밀고하는 현실에 절망을 느낀 것 같다.

 

  그런 그의 분노와 슬픔은 이야기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어디서는 너무도 무덤덤하게, 또 어떤 부분에서는 극렬한 분노와 상실감을 드러낸다.

 

  『무기력』에서 작가는 극중 인물인 르노의 입을 통해 분노를 드러낸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성에 좌절한 나머지, 르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보물과도 같은 책과 명화들을 불태운다. 그리고 절규한다. 이것들은 인간의 위선적인 짓거리가 만들어낸 잡동사니에 불과하다고. 다른 사람들 지옥으로 몰아넣고 자기들만 고고하게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베르됭 인쇄소』의 마지막 문단은 너무도 덤덤해서, 마지막 줄을 읽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파아르스는 해방 후 체포되어 사흘 동안 구금되어 있었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보증인을 자처한 덕에 풀려났다. 1943년 말 이후로 그가 몇몇 조직에 막대한 자금을 댔던 것이다. 게다가 그는 전기 분해 구리와 관련된 문제라면 뭐든지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없이는 곤란할 거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조달청을 쥐락펴락하는 거물이 되어 있었다.’ - p.173

 

  문득 우리의 근현대사가 떠오르면서, 과연 일본에 저항했던 조상들이 바라던 나라가 되었는지 생각하자 그냥 눈물이 났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고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적혀있었다고 한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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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
손아람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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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손아람

 

 

 

 

 

  이 책은 1990년대 후반, 이른바 군사 독재 정권이 물러나고 문민정부가 시작된 이후, 특히 해방 이후 처음으로 야당이 집권한 이후를 다루고 있다.

 

  그 당시 기억을 더듬어 보면, 학생 운동이나 시위가 예전처럼 호응을 얻지 못했었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받은 인상으로는 그랬다. 아마 공공의 적이었던 군사 정권이 이미 물러났는데 또 뭐 할 것이 있겠냐는 분위기가 흘렀던 것 같다. 거기에 IMF 위기가 닥치면서, 나라가 당장 망할 것 같은데 무슨 시위냐는 생각들을 했던 것 같다. 시위를 위한 시위를 한다는 얘기도 들은 기억이 난다. 독재 정권이 사라졌으니 우리의 적은 북한이고, 그들이 따르는 사상을 따르는 것 같은 학생들의 구호는 허황되고 불온한 것으로 여겨졌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학 내에서 운동권이라 불리는 학생들이다. 아마 그들이 지금의 정의당이나 민노당 내지는 얼마 전에 헌재 판결로 해체된 통합진보당을 구성하는 사람들로 성장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과거 열정적으로 이상을 좇던 사람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단편적인 사건들의 나열로 보여주고 있다.

 

  여성 평등을 주장하고 농활에서 남자들에게 요리를 시키던 미쥬는 외국인 남편을 위해 인도 요리를 배우는 경제학자가 되었다. 시위에 앞장서다 경찰에 잡혀갔던 대석은 검사가 되었다. 생방송 발언을 새치기하고 술값을 미루던 윤구는 국회의원 경선표를 조작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변해버렸을까? 그 대답은 뜻밖에도 시위 학생들을 잡아 취조하던 경찰의 입에서 나온다.

 

  “세상을 바꾸려고 젊음을 다 쏟아 부었는데, 뒤늦게 세상이 바뀌지 않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차라리 세상이 되어버리는 거야. 아주 철저하게 세상이 되어 낭비한 젊음을 보상받는 거지,” -p.407

 

  아……. 그렇구나. 그래서 과거 학생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이 그 누구보다 집권당의 입에 맞는 소리를 해대고 있고, 자신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정권에 빌붙어 의원직을 하고 있는 거구나. 그들은 지금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청춘을 보상받으려는 것이구나.

 

  사실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이 무슨 확고한 신념이 있어서 시위를 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또는 자기가 마음에 들어 하는 이성이 그 모임에 들어가 있어서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남학생들은, 그 여학생과 틀어지면 결국은 조직을 떠나버렸으니 말이다. 그건 여학생들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문득 그건 그들이 돌아갈 곳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서울대생이었다. 대학 간판만으로도 웬만한 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이었다. 게다가 어떤 학생은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었고, 또 다른 학생은 미국 시민권자였다. 사실 주인공도 그리 좋은 학점을 받지 않았고 시위 경력도 있지만,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서울대생이 아니었다면, 소위 말하는 지잡대 출신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들은 그냥 호기심에 기웃거렸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정치나 사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개화시키겠다는, 일종의 우월감으로 발을 디뎠을 수도 있다. 그런 점을 느낀 것은, 농활에서 일어난 성희롱 발언 사건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모 유력 일간지에 과거 노인네들이 꼬꼬마들에게 ‘고추 좀 보자!’라고 말하던 시절이 그립다는 칼럼이 버젓이 실리는데……. 그러다가 문 경사의 말대로, 자신들이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는 포기하는 것이다.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에 동화되어 과거 자신들의 모습을 흑역사로 파묻고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들이 그렇게 혐오하던 권력자들의 행태를 고스란히 따라할 수 있는 것이다. 난 왜 예전 학생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요즘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아주 조금은 깨우칠 수 있었다. 결론은 보상이다.

 

  그런 면에서 그들이 바랐던 이상을 지키고 있는 진우는 특이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모임에 가입한 계기부터 달랐다. 여자를 따라 온 것이라기보다는, 자기가 스스로 생각해서 들어왔다. 그래서 그는 안전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었나보다. 그곳에서 남의 이름을 팔아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거부한 사람은 진우뿐이었으니 말이다.

 

  대우 자동차 시위 이후, 태의는 진우를, 대석은 태의를, 전학협 간부는 대석을, 이런 식으로 위로 거슬러 올라가며 모두가 다 다른 사람을 경찰 손아귀에 밀어 넣고 자기들은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 모두 다 그랬으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그 고리를 끊은 것은 진우였다. 그 때문에 그는 징역형을 살아야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가려는 사람은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어영부영 남들 하는 대로 따라하다가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인간이란 자기가 믿는 사람이나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에게 얼마나 무례하고 잔인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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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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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권여선

 

 

 

 


  버스 차장이 있고, 마을에 우물이 있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여자들은 계모임을 핑계로 옹기종기모여서 동네 소문을 옮기고, 남자들은 통장을 중심으로 모여서 나름 화기애애하게 지내던 그런 시절이었다. 삼악산, 일명 삼벌레고개는 상중하로 나뉘어 사는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달라진다. 가장 부유한 아랫동네, 그럭저럭 사는 중간 그리고 제일 못사는 윗동네.

 


  이 책은 중간 동네에 영과 원이라는 자매가 있는 한 가족이 이사 오면서 시작한다. 자매의 아버지는 영이 중학교에 갈 나이가 되어가지만 부인에게 존댓말을 한다. 그래서 자매의 엄마는 새댁이라고 불린다. 다른 동네 여자들과는 다른 분위기의 새댁은, 아는 것도 많고 요리도 잘하고 글씨도 바르게 잘 쓰고 다정하다. 주인집의 큰아들 금철은 언니인 영에게 관심을 갖고, 작은아들 은철은 원과 친하게 지내게 된다. 은철과 원은 같이 스파이 놀이를 하기도 하고, 새댁이 만들어준 맛난 것도 먹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스파이놀이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내려고도 하고, 저주의 주문을 외우기도 하고, 몰래 얘기를 엿듣기도 하지만 아직 어린 두 사람에게 어른들의 세계는 어렵기만 하다.

 


  언제까지 어린 시절의 행복을 누릴 것 같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이 생긴다. 그 일로 인해, 어린 두 친구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큰 상처를 입는다.

 


  초반에는 어린 은철과 원의 귀여운 행동에 고모 미소를 지으면서 읽었다. 그런데 새댁이 시아주버니와 나누는 대화에서, 중반 이후 자매의 아버지 친구들이 모여서 나누는 대화를 읽으면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 시대에 저런 대화는……. 거기에 자매의 고모는 6.25때 북한군에 부역한 혐의로 고초를 겪은 과거가 있다. 감시를 받고 있다는데 저런 말을 해도 되는 건가? 어쩐지 어린 두 친구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길 거 같았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딱 들어맞았다.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마음 한구석이 얹힌 것처럼 묵직하니, 마치 체한 것 같았다. 먹은 게 체했을 때는 손을 따거나 소화제를 먹으면 풀리겠지만, 마음이 얹힌 것은 어떻게 풀 방법이 없었다. 그냥 길게 한숨을 내쉬고, 영이와 원이 그리고 은철이가 나중에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았으면 하고 바랄뿐이었다. 그 시대에는, 지금도 많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살아가기 힘들고, 연좌제가 불문율처럼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고난을 당할지는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까지 가지 않는다. 아이들이 각자 떠나는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아이들은 각자 갈 길을 떠난다. 어쩌면 그들은 그 전에 보여줬던 아이다운 신선함과 독특함을 잃어버렸을 지도 모른다.

 


  새댁에게서 효자효녀 얘기를 들은 은철이는 옛날 부모들은 무섭게 먹을 걸 밝힌다고, 식탐이 끝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아빠가 아프다고 하면 자기 간과 창자를 빼줘야 하는지 말아야하는지 고민을 할 정도로 순진했다. 원은 인형을 동생이라고 데리고 다니면서 온갖 기발한 상상을 하며 은철과 신나게 뛰어논다. 영은 차분하니 동생을 잘 돌보고 집안일도 야무지게 잘 한다.

 


  하지만 모든 것은 바뀌었다. 계주네 집에 모여 수다를 떨던 마을 사람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서로를 보았고, 더 이상 예전처럼 어울리지 않았다. 효자효녀 얘기를 해주던 새댁도, 유쾌하게 떠들던 원이도, 형을 따라다니면서 신나게 놀던 은철이도 이제는 중간 동네에서 볼 수가 없다.

 


  어쩌면 우리 윗대들이 겪어야했던 아픔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함께 할 줄 알았던 사람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려야했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느껴야했던 두려운 나날들의 기억이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이름과 형태는 다르지만, 지금도 우리 곁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게 이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갖고 있어야 하는 슬픈 운명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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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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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전경린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문득 백조가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백조에 얽힌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백조가 수면 위에서는 우아한 것 같지만, 실제 물 밑에서는 열심히 발을 놀리고 있다는 비유 말이다.

 

  등장인물들이 다 백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하고 여유 있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 속은 누구보다 타들어가고 있었다. 덤덤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 없었다. 많은 고민을 하고, 포기를 하고, 체념을 하고, 결국 덤덤하게 받아들이고서야 입을 떼었던 것이다.

 

  내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하면서 읽어봤다. 그들처럼 행동하고 살아가는 게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자 이 글의 화자인 '손유지'가 비뚤어지지 않고 자란 게 다행이었다. 작은 고모인줄 알고 자란 사람이 알고 보니 생모였고, 같이 살게 된 생모는 자신을 없는 사람 취급한다. 그리고 유부남인 자기 학교 선생님과 생모가 가까운 사이라는 걸 알자, 그녀는 어쩌면 선생님이 자신의 생부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좀 더 커서는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사귀던 남자 부모에게서 모욕적인 말을 들으며 헤어져야 했고, 생모는 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일본으로 훌쩍 떠나버린다. 유지는 생모와 살던 마을에 작은 피아노 학원을 차리고 살아간다. 제목인 '해변 빌라'는 그녀가 생모와 살던 집의 이름이다.

 

  이야기는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마을 사람들, 예를 들면 그녀가 생부라고 믿고 있는 생물 교사이자 화가인 '이사경'과 그의 부인인 '백주희', 두 사람의 아들인 '연조', 해변 카페 주인인 '편사장'과 그의 애인 '해영', 유지의 첫사랑인 '오휘', 그리고 작은 고모이자 생모인 '손이린'과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재회를 그리고 있다.

 

  주인공 유지의 성격이 참 독특했다. 자신을 낳았지만 돌보지 않은 작은 고모에 대한 미움 내지는 이사경과 고모의 관계에 대한 배신감이나 경멸 같은 감정을 보이지 않는다. 그녀에게 작은 고모는, 생모도 고모도 아닌, 손약사였다. 약사일을 하니까 손약사다. 그녀는 모든 것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처음에는 애가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건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쩌면 출생에 얽힌 비밀을 알게 된 후부터, 모든 것에 관심을 끊고 욕심내지 않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것이라고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생모에게서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컸으니 말이다. 그녀가 그토록 원하던 애정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이 지구상에 없다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이사경의 부인인 백주희라면, 마음은 다른 사람에게 가 있는 남자의 몸만 잡고 살고 싶지는 않을 것 같다. 게다가 남편의 애인이 낳은 딸인 유지가 자기 집에 매주 와야 하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비록 유지가 남편의 아이는 아니지만, 자기 아들인 연조와 친하게 지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가정보다 일을 택했다. 그녀에게 일은 일종의 도피처였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도도했고 단정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 그녀는 유지를 받아들인다. 어쩌면 그녀는 유지 역시 자신과 비슷한 입장이라고 생각한 게 아닐까?

 

  제일 마음에 들지 않는 인물은 역시 이사경이다. 손이린이 그렇게 좋았으면 부인과 이혼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는 한 손에는 가정을 다른 한 손에는 이린을 잡고 있었다. 이건 뭐 우유부단해서 여러 사람에게 피해주는 전형적인 인물이다. 특히 이린이 떠난 이후, 그가 유지를 자주 만나러 오는 장면에서는 혀를 찼다. 제자였던 유지가 걱정되어 오는 게 아니라, 이린과 닮은 그녀의 모습을 보러 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자책하는 낭만적인 분위기로 포장을 하는 것 같은데, 바람둥이는 바람둥이고 불륜남은 불륜남일 뿐이다. 미화해봤자 그 우유부단함과 비겁함은 지워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백조처럼 고고하지만, 속으로는 욕망과 질투, 비난, 포기, 체념 등등으로 얼룩진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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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섬
이경자 지음 / 자음과모음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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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 이경자

 

 

 


  여덟 개의 이야기가 실린 단편집이다.

 

  읽으면서 참 먹먹한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우리가 겪었던 과거와 뗄 수 없었고, 삼신 할매의 변덕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우리 가족의 얘기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더 가슴이 답답하고 공감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콩쥐 마리아』는 남자 형제들을 위해 희생했던 여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공장에서 일하며 형제들의 학비를 대다가 기지촌에서 만난 미군과 결혼한 한 여인. 그녀를 통해 미국으로 이주한 형제들과 그 자식들은 성공해서 잘 살고 있지만, 정작 그녀에게 고마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건너편 섬』 역시 혼자 사는 노인이 주인공이다. 파출부 일을 하면서 홀로 키운 아들. 하지만 성장한 아들은 돈을 보내오지만 얼굴은 내밀지 않는다. 전화도 제대로 받지 않는다.

 

  한인촌에서 자신을 숨기며 살던 마리아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녀가 그렇게 살아온 것이 죄일까? 그녀의 도움으로 떵떵거리게 살게 되었으면서, 정작 그녀를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가족의 행동에 화가 났다. 『건너편 섬』의 그녀 역시 비슷한 처지이다. 물론 대가를 바라고 아들을 키운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가 그따위로 할머니를 대하니 손자들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말은 어쩌면 진리일지도 모르겠다.

 

  『미움 뒤에 숨다』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 되어 모인 가족들의 이야기이다. 살아생전에는 폭력을 휘두르고 권위주의적이었던 아버지였지만,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가족들이 느끼는 감회는 다른 것이었다.

 

  『언니를 놓치다』는 이산가족 상봉으로 만난 두 자매에 관한 이야기이다. 금방 돌아오겠다는 언니의 말만 믿고 살아온 동생. 하지만 몇 십 년 만에 만난 북의 언니는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그 언니가 아니었다.

 

  『박제된 슬픔』은 남파간첩으로 돌아온 외삼촌과 그 때문에 괴로워하는 식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물보다 진하다는 피 때문에 외면할 수 없었던, 그 때문에 고초를 겪어야 했던 조카와 간첩을 아들로 둔 노모의 슬픔이 참 아프게 다가왔다.

 

  이 두 단편은 분단과 이념의 대립이라는 상황에서 한 개인, 더 나아가 가족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고 있다. 북에서 온 언니는 동생을 만난 반가움이나 미안함을 말하기보다 당과 장군이 베푼 은혜를 먼저 줄줄 읊어야 했다. 당연히 동생은 그런 언니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토록 기다렸던 이산가족의 만남은 지나간 세월보다 더 멀어진 거리만 남긴다. 핏줄을 택해서 모든 것을 좌절당한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이들은 그 핏줄을 거부한다.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지 생각해본다.

 

  『세상의 모든 순영 아빠』는 특이하게도 화자가 이미 죽은 사람이다. 시골에서 영향력 있는 집안의 난봉꾼에게 강간당했지만, 엉뚱하게 무고죄를 뒤집어쓰고 자살한 여인이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그녀의 남편이 굴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재판을 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상 사람들에 대한 여러 가지 감정과 남편에 대한 마음을 토로하고 있다.

 

  좋은 게 좋다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흉기인지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 괜히 평지풍파 만들지 말라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서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단지 소설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더 화가 난다.

 

  『고독의 해자(垓字)』와 『이별은 나의 것』의 주인공은 이혼한 여류 소설가이다. 전자의 주인공은 가족들에게서 동떨어져 고립되다시피 하며 글을 썼다. 그래서 두 딸들은 그런 엄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녀의 장례식 날, 팬들이 슬퍼하는 것을 보면서 남겨진 가족들은 어쩐지 모를 배신감을 느낀다. 자기 자식은 방치하다시피 내버려두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쓰는 데 열정을 바친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후자의 주인공은 이제 갓 이혼한 여류 소설가이다. 그녀는 앞선 이야기와 달리 딸들의 이해를 얻고 있다. 이혼한 전남편의 결혼식 날,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혼자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한꺼번에 두 가지를 가질 수 없기에, 두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그 결과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는 들지 않을 수 있지만, 어차피 인생은 자신을 위해 사는 것. 그들은 자신을 위한 선택을 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콩쥐 마리아』나 『건너편 섬』, 그리고 『미움 뒤에 숨다』에서의 여인들은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한 삶을 살았다. 그들이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았던 때는, 그녀들을 옭아매고 있는 짐들을 내려놓았을 때였다. 고생은 고생대로 다 하고, 다 늙어서 말이다. 이해해주는 사람도 거의 없고, 갖고 있던 마음의 상처는 곪아서 짓물러진 뒤였다.

 

  그래서 그들은 더 외로운가보다. 남을 위해 살건 나를 위해 살건, 그들은 혼자였다. 하지만 그 외로움마저 그들은 껴안았고, 자신들의 일부로 만들었다. 그들은 섬이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 있는,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하지만 가까이 갈 수 없는, 그런 섬이다. 아니, 그들뿐만 아니라 인간은 모두 섬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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