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족도 :
대작가라면 자기가 쓴 글에 대해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그는 대작가답게 높은 이상을 가졌을 것이고 자기가 쓴 작품이 그 높은 이상에 미치지 못함을 잘 알 만큼 명석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옛 시대의 훌륭한 저작과 자신의 작품을 비교하며 절망에 빠질 수도 있으리라.

 

 

 

 

 

 

2. 운발 :
흔히 사람들이 ‘운빨’로 발음하는데 정확한 표기는 ‘운발’이다. 부자들을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부자가 되는 건 능력도 중요한 변수이지만 더 중요한 건 ‘운’이라고 한다. 똑같이 똑똑하고 똑같이 노력해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왜 누구는 흥하고 누구는 망하는가. ‘운’의 차이라고 한다. 또한 똑같이 노력해서 글을 썼는데 왜 누구는 세상에 알려지고 누구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는가. 이것 역시 ‘운’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에 글을 투고했을 때 글 심사위원이나 편집자가 자신의 문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게 운발이 아니겠는가.

 

 

누구나 학창 시절에 운이 좋았거나 나빴던 경험이 있지 않나. 난 공부 요령을 잘 몰랐던 중학교 시절에 경험했다. 한 주 동안 중간고사를 치르는 때였을 것이다. 과학 시험을 치는데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면 노트에서 시험 문제가 많이 출제되고, 반대로 노트 위주로 공부하면 교과서에서 시험 문제가 많이 출제된다. 이게 운이 나빠서인 것이다. 시험 범위 중 앞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했는데 그 앞부분에서 시험 문제가 많이 출제되면 운이 좋아서인 것이다. 그런 내게 어머니가 어느 날 말했다. 전부 공부하면 되지 않으냐고. 물론 나도 교과서와 노트를 전부 공부하고 시험 범위 앞부분과 뒷부분을 전부 공부하면 운을 탓할 일이 없다는 것을 안다. 문제는 시간이 없어서였다. 하루에 세 과목씩 시험을 치는데 두 과목을 공부하고 나면 잠잘 시간쯤에 과학 과목이 남아서였다. 잠을 잘 시간에 과학 과목을 공부할 게 남았으니 두세 시간밖에 공부할 수 없다. 잠은 자야 하니까. 그럴 땐 노트 위주와 교과서 위주 중 하나를 선택해 공부해야 하고, 시험 범위의 앞부분과 뒷부분 중 하나를 선택해 공부할 수밖에 없으니 ‘운’이 중요해진다는 얘기다.

 

 

 

 

 

 

3. 품격 있는 글 :  
내가 쓴 서평이나 칼럼은 깊이 있고 품격 있는 글이 되지 못한다. 노력 부족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나, 라는 사람 자체가 깊음이 없는데 어떻게 깊이 있는 글을 쓸 수 있겠는가. 나, 라는 사람 자체가 품격이 없는데 어떻게 글에 품격을 담을 수 있겠는가.

 

 

그냥 생긴 대로 살고 생긴 대로 글을 쓰겠노라.

 

 

내가 문학적 향기를 풍기는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은 수필에서 칼럼으로 방향을 틀면서 해결되었다. 수필과 달라서 칼럼은 굳이 문학적 향기를 풍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문학적인 문장을 쓰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물론 쓸 수 있으면 더 좋겠지만.

 

 

 

 

 

 

4. 요즘 사람들이 식당에서 화를 내지 않는 이유 :
요즘 사람들이 참을성이 많아졌다고 한다. 진짜인 줄 알았다가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예전에는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한 뒤 음식이 빨리 나오지 않으면 화를 내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음식이 늦게 나와도 화를 내지 않는다. 화를 내지 않는 이유를 알고 나서 참을성이 많아진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그 스마트폰 때문에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아서 화를 내지 않았던 것. 

 

 

친구를 만나도, 연인을 만나도 상대에게 집중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자주 들여다보는 사람들. 좋은 현상일까? 스마트폰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가 멀어져 가고 있는 게 좋은 건 아닐 터.

 

 

 

 

 

 

 

5. 부자가 되어서 근심이 많다면 :
<사랑에 관하여>라는 단편집에 ‘검은 수사’라는 소설이 있다. 큰 정원을 가꾸며 사는 (나이 든 남자인) 예고르 세묘니치는 집에 놀러온 (젊은 남자인) 코브린에게 큰 규모의 정원이 나무 하나라도 시들지 않고 항상 아름답게 유지되는 비결은 정원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죽고 나면 이 큰 정원을 위해서 누가 일을 할지 걱정이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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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이렇게 묻고 싶어. 내가 죽으면 이 정원은 어떻게 될까? 지금 자네가 보고 있는 이런 모습은 나 없이는 단 한 달도 유지되지 못할 걸세. 이 정원이 성공을 거둔 까닭은 엄청나게 크고 일꾼이 많아서가 아니라네. 성공의 진짜 비밀은 내가 이 일을 사랑한다는 데 있단 말일세. 알겠나? 내가 이 일을 어쩌면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한다는 점 말일세. 날 좀 보게. 난 모든 걸 스스로 한다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지. 접붙이기도 하고, 가지치기도 하고, 묘목도 심고, 모든 걸 나 스스로 하네. (...) 그리고 어딘가를 방문해서 한 시간이라도 집을 비울 때면 혹시 정원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불안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는 그 마음에 있다는 거지. 내가 죽으면 누가 그걸 다 돌볼까? 누가 일을 할까? (...)“(‘검은 수사’, 91~92쪽.)

 

- 안톤 체호프, <사랑에 관하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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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편 소설의 주제는 다른 데에 있다. 하지만 난 주제와 관련없는 것에 주목하였다. 큰 정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외출을 하면 정원에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불안해하고, 자신이 죽은 다음에는 누가 이 정원을 맡아 일을 해 줄 것인가 하는 문제로 걱정하는 것에 주목하였다. 가진 게 많은 자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부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하고 생각하였다. 

 

 

 

 

 

 

 

 

 

 

 

 

 

 

 

 

 

 

 

 

 

 

 

6. 인간은 반전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다 :
<서머셋 몸 작품집>에는 총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담겨 있다. 그런데 하나같이 독자가 예상 못할 반전의 묘미가 있어 특별한 재미를 선사한다. 깔깔 웃게 만드는 대목도 있다. 역시 서머싯 몸은 내 취향과 꼭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이다. 그러니 나는 그의 영원한 팬이 될 수밖에 없다.

 

 

의문이 하나 생긴다. 소설에 반전을 넣어 구성한 것이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함일 뿐인가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아닌 듯하다. 인생 자체가 그리고 인간 자체가 놀라운 반전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본다. 즉 반전이 일어날 수 있는 게 인생이고 인간이라고 본다. 그것을 서머싯 몸은 알고 있기에 반전을 넣은 소설을 썼다고 생각한다. 인간이란 불가해한 존재라는 걸 말해 주기 위해 이런 소설을 썼다고 생각한다.

 

 

단편 소설 ‘척척박사’는 잘난 척 잘해서 밉상으로 보이는, ‘척척박사’라고 불리우는 켈라다 씨의 이야기다. 그는 백 달러를 걸고 하는 내기에서 자신이 이겨서 돈을 받을 수 있는데도 남의 부인이 곤란에 빠질까 봐 자신이 진 것으로 하고 돈을 낸다. 남의 입장을 생각해서 백 달러의 손해를 보고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감수하는 것이다. 그에게 그런 이면이 있을 줄 몰랐던 독자는 그 반전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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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라다 씨는 입을 멍하니 벌린 채 말을 꿀꺽 삼켜 버렸지만,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자기를 억제하려는 모습이 거의 눈에 보일 정도였다.(‘척척박사’, 23쪽.)
 
- <서머셋 몸 작품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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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소설 ‘편지’는 남편이 자기 아내가 권총으로 한 남자를 죽였지만 그건 실수라고 여기며 정숙한 아내라고 끝까지 신뢰하였다가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되는 반전이 숨어 있다. 죽은 그 남자는 자기 아내의 애인이었던 것. 자기 아내가 변심한 애인인 ‘하몬드’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그를 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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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왈칵 분노가 치밀어 권총을 집어 들고 쏘았어요. 하몬드가 뭐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맞았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인 비틀비틀 베란다로 도망했습니다만 저는 쫓아가서 또 한 방을 쏘았어요. 그가 거꾸러졌어요. 저는 그이 바로 위에서 한 발 또 한 발 연거푸 쏘아대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에 권총이 딸각딸각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탄환이 없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편지’, 95~96쪽.)

 

- <서머셋 몸 작품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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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정숙한 여인으로 알고 있는 한 여자가 자신이 썼던 편지가 살인의 증거물로 밝혀지자 솔직하게 고백하는 장면이다. 인간의 이중성을 작가는 꿰뚫고 있는 듯하다.

 

 

 

 

 

 

 

 

 

 

 

 

 

 

 

 

 

 

 

 

 

 

 

 

7. 미운 사람이 있다면 그가 임종할 때를 생각해 보기 :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예전에 읽었다. 사실 읽지 않은 줄 알았는데 읽은 게 확실했다. 내 ‘독서 목록 노트’에 기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돼서 어떤 내용이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아 이번에 오디오북을 구매해 폰으로 들었다. 죽음에 임박한 한 남자의 독백이 처절한 절규로 들리면서 나도 언젠가는 맞게 될 그 시간이 두렵게 느껴졌다. 불치병으로 죽어 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소설이다. 갖고 있는 책을 찾아보니 내가 그은 밑줄이 많이 있었다.

 


 
이반 일리치는 왜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하는지 자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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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건 무엇을 뜻하지? 왜? 인생이 그렇게 무의미하고 끔찍한 것일 리가 없어.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끔찍하고 무의미한 것이었다면, 나는 왜 죽어야 하지? 게다가 왜 이런 고통 속에서 죽어야 하지? 뭔가가 잘못됐어!“(‘이반 일리치의 죽음’, 270쪽.)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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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에게는 육체적 고통보다 더 심한 것은 정신적 고통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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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말대로, 이반 일리치의 육체적 고통이 끔찍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육체적 고통보다 더 심한 것은 정신적 고통이었다. 아니, 실제로는 이것이 그의 주된 고통이었다.(‘이반 일리치의 죽음’, 275쪽.)

 

”내 인생 전체가 정말로 잘못되었다면 어떡하지?“
전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던 일, 즉 자기가 인생을 잘못 살았다는 생각이 결국 옳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는 것과 맞서 싸우려고 애쓴 적도 몇 번 있었지만, 그런 노력은 겨우 감지할 수 있을 만큼 미미한 것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그런 가벼운 충동을 느껴도, 당장에 억눌러버리곤 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미미한 노력과 가벼운 충동만이 진짜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직무도, 생활과 가족에 대한 모든 약속도, 사교적 관계는 물론 직무상의 관계도 모두 가짜였을지 모른다.‘(이반 일리치의 죽음’, 275~276쪽.)

 

그는 속으로 말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그리고 내가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잃어버렸고 또한 그걸 돌이킬 수도 없다는 자각을 가진 채 이 세상을 떠나고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되지?“(‘이반 일리치의 죽음’, 276쪽.)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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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그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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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났습니다!“ 곁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들었고, 영혼 속에서 그 말을 되풀이했다.
”죽음도 끝났어.“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죽음은 더 이상 없는 거야.“
그는 숨을 들이키다가, 깊은 호흡 중에 갑자기 멈추고, 몸을 쭉 뻗었다. 그리고 죽었다.(‘이반 일리치의 죽음’, 280~281쪽.)

 

- <이문열 세계명작산책 2>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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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부자라고 해도, 아무리 신분이 높다고 해도, 아무리 오만하다고 해도 죽을 때엔 혼자만이 감당해야 하는 고독이 있다. 살고 싶은 욕망이 죽음과 투쟁을 벌이면서 누구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절박한 순간이 있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다가 모든 고통이 끝나는 지점에 ‘죽음’이 있다. 누구나 한 번은 치러야 할 ‘죽음’이 우리 미래에 분명히 있다. 누구나 직면하게 될 ‘죽음’이.

 

 

그러니 인간이란 얼마나 미약하고 가엾은 존재인가.

 

 

미운 사람이 있다면 그가 임종할 때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8. 자신에 대한 평가의 시간은 죽음을 앞두고 찾아온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 대해 글을 쓰고 나니 칼럼 하나가 생각난다. ‘2월의 졸업생들에게’라는 제목의 칼럼이다. 자기 삶에 대한 진정한 평가의 시간은 죽음을 앞두고서 찾아온다는 것. 그러니 앞으로 용기와 도전을 가지고 살라는 것. 그 내용을 옮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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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즉 여러분들에게는 창창한 미래가 있고, 진정한 평가의 시간은 죽음을 앞두고서야 찾아옵니다. (...) 그때 평가 기준은,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사회적 명예를 누렸느냐, 누가 오래 살았느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보기에 보다 근본적인 평가 기준은, 누가 좋은 인생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 그런데 부자가 많이 등장한다고 해서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공으로만 점철된 이야기라고 꼭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실패담도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용기와 도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의 졸업은 끝이 아니라 앞으로 남아 있는 그 큰 도전의 이야기의 일부입니다. 이제 막 그 큰 이야기의 첫 장을 탈고한 여러분의 졸업을 다시 한 번 축하합니다.(2018. 2. 11)(‘2월의 졸업생들에게’, 115~116쪽)

 

-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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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스토리텔링을 하라 :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켰는데 글이 써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글을 쓰긴 틀렸군, 하고 생각하며 이메일을 보기 위해 내 이메일함에 들어갔다. 마침 친구가 보낸 이메일이 있었다. 그것을 반갑게 읽고 답장을 썼다. 나의 근황을 전하고 요즘 생각한 것들에 대해 썼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답장을 쓰고 나니 글이 꽤 길었다. 쓰려고 해도 써지지 않던 글이 친구에게 말하듯 쓰는 이메일은 길게 써지는 게 아닌가. 그때 깨달았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글을 쓰면 된다는 것을.

 

 

뒤로 글감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이메일함에 들어가서 내가 누군가에게 보낸 이메일을 살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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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무심코 읽던 신문 칼럼을 스토리텔링의 관점에서 다시 읽어보시라. 의외로 많은 필자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라거나 남에게서 들은 에피소드를 많이 활용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글의 생생한 실감을 살리는 건 물론 재미있게 만드는 데엔 그런 이야기만큼 좋은 게 없다.(125쪽)

 

- 강준만, <글쓰기가 뭐라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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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칼럼을 쓸 때 내가 겪은 일을 넣어 쓸 때가 많다. 그러면 글이 술술 풀린다. 내 경험을 쓰는 거니까. 내가 간접 경험을 통해 얻은 것, 즉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넣는 경우도 많다. 재밌는 이야기이면서 그 속에 교훈이 담겨 있다면 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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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의 힘을 말해주는 최고의 증거는 여러 심리학자가 이른바 ‘스토리 편향story bias’의 위험을 경고하는 데에서 잘 나타난다. 스토리 편향은 이야기가 진실보다 큰 힘을 발휘하는 현상을 말한다. 심리학자들의 다양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복잡한 설명과 단순한 설명 중에서 단순한 설명이 더 참일 것 같다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125쪽)

 

- 강준만, <글쓰기가 뭐라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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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따르면 미국의 24시간 케이블 뉴스 채널 ‘폭스뉴스’의 성공 비결 중 하나가 ‘스토리 만들기’였다고 한다. 글쓰기를 너무 근엄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글을 쓰는 게 좋다고 이 책은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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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당장 글쓰기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글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글을 쓰겠다는 자세를 가져보라.(124~125쪽)

 

- 강준만, <글쓰기가 뭐라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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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특수성과 보편성을 갖는 글 :
대식가는 음식의 ‘질’보다 ‘양’에 더 관심이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난 음식의 질보다 양이 중요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많이 먹을 수 있는 똑같은 조건이라면 누구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좋다고 생각하리라. 대식가라고 할지라도 음식의 양도 중요하지만 음식의 질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맛있음’이 곧 음식의 ‘질’을 의미하겠다.

 

 

그렇다면 글에 있어서 ‘질’이란 무엇일까? 쉽게 말하면, 질 높은 글이 좋은 글이고 질 낮은 글이 좋지 않은 글이다. 내가 칼럼을 쓸 때 새로운 관점으로 쓸 것을 지향하는데, 이것은 당연한 걸 쓰지 않기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써서 특수성을 가진 글이 될 때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특수성만을 가지면 안 된다. 글에는 보편성도 있어야 한다. 남들이 공감할 만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수성과 보편성, 이 두 가지를 담은 글이라면 빼어난 글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두 가지를 담은 글을 쓰는 게 쉽지 않다. 이것이 글을 쓸 때 나의 고민거리다.

 

 

새로운 관점으로 쓴 글을 보고 독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걸 당신이 글로 썼네.“라고 하면 그 글은 특수성(개성)을 가진 글이 된다. ”그런데 읽고 보니 당신의 글에 공감이 가네.“라고 하면 보편성을 가진 글이 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질 높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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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께 눈이 왔다.


지금은 대부분 눈이 녹았지만 아직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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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2-17 23: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매일 잡담인 페이퍼라서 그런지, 친구에게 편지쓰는 느낌이나 일기 쓰는 느낌으로 쓸 때도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잘 써야한다는 생각이 조금 덜 들어서 조금은 편안한 느낌이 되는 것 같아요.
페크님, 주말 잘 보내셨나요. 따뜻하고 좋은 밤 되세요.
잘읽었습니다.^^

페크pek0501 2019-02-18 10:54   좋아요 2 | URL
반가운 서니데이 님!
친구에게 쓰는 편지 같은 글이 좋은 것 같아요. 어디서 읽은 것 같은데 수필이 그렇다는군요. 친구에게서 온 편지 같은 글처럼 친근감 있게 쓰는 글이 수필이라는 거죠.
아마 님의 글도 그래서 친근하게 느껴졌던 모양이에요.
간이역 같은 2월이 벌써 반 이상 지났네요. 좋은 시간 많이 가지세요.
댓글, 감사합니다.

cyrus 2019-02-18 16: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부터 느꼈던 건데, 저는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신경 쓰지 않고, 제가 쓰고 싶은 대로 쓰려고 해요. ^^

페크pek0501 2019-02-18 22:17   좋아요 0 | URL
아, 좋은 생각입니다.
발전을 지향하기보다 즐거움을 지향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만든 폴더 하나가 맘대로글, 입니다. 그야말로 맘대로 써 보자, 는 뜻에서요.
항상 제가 저에게 하는 주문이 있죠. 어깨에 힘을 좀 빼. ㅋㅋㅋ
굿밤 되세요.



stella.K 2019-02-18 16: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글을 잘 쓰면 소원이 없겠어요.
글 잘 써서 까까 사 먹어야 하는데...ㅠ

페크pek0501 2019-02-18 22:20   좋아요 2 | URL
스텔라 님이 까까 사 먹을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하긴 저도 아직까지 떡볶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서 딸과 함께 분식점을 다닐 때도 있어요. ㅋ

그런데 책까지 내신 분이 책도 안 내 본 저에게 하실 말씀은 아닌 걸로 아옵니다.
굿밤 되시길...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