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덕혜옹주, 잊지 않고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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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어머니독서회 3월 토론도서로 정한 것은 작가의 말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고종황제의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황녀로서의 귀한 삶을 살지 못했던 여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흔적도 없이 잊혀져버린 그 삶이 너무 아파 도저히 떨쳐낼 수 없었습니다. 그녀에 대한 책은 국내에 단 한 권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일본 번역서로 말이죠. 덕혜옹주 집필은 사명감이고 자존심이기도 했습니다. 일제치하를 견뎌야 했던 황제와 황족들, 청년과 여자들. 아이들의 고통과 울분을 감히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한 여자의 삶만큼은 오롯이 살려내기 위해 열정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토론에 참여한 일곱 명의 회원들은, 너무 기대가 컷기 때문인지 모두 실망스럽다는 반응이었다. 그간 수준 높은 팩션소설에 우리 눈이 높아졌거나, 일본인이 쓴 덕혜옹주가 국내에 번역되어 작가가 소설을 출판하기 전 전면 수정했기 때문인지 소설도 다큐도 아닌 어정쩡한 작품이 되어 버렸다. 역사에 휘말린 옹주의 삶을 오롯이 살려내지도 못했고, 자신의 삶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일본에 맞서지도 못한 실제의 덕혜옹주를 그렸을 뿐이다. 지나치게 영민했다는 옹주의 영민함이나 조국을 그리워 한 그리움이 잘 살아나지도 않았다. 죽음을 피하려고 상궁의 옷을 입었지만 덧없이 죽은 명성황후의 죽음을, 실제와는 다르지만 국민적 정서에 맞게 그렸던 드라마 '명성황후' 같은 카타르시스도 없었다.
고종의 부마가 될 뻔했던 김장한을 '박무영'으로 재창조하고, 몸종도 대동하지 못했던 덕혜의 일본행에 '복순이'란 아이를 붙여준 것은 괜찮은 설정이었다. 그러나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덕혜의 캐릭터와 더불어 무영과 복순의 역할도 빛나지 못했다. 그들의 덕혜옹주 구출작전이 좀 더 치밀한 구성이었다면 분명 빛날 수 있었는데 아쉽다. 다큐가 아닌 덕혜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었으니 좀 더 과감하게 그려냈거나, 아니면 정신병에 함몰될 정도로 괴로웠던 옹주의 심리를 파고 들었어도 좋았을텐데... 영친왕 부부와의 일본 생활이나 남편과의 결혼생활도 실제 알려진 것 외에 별다른 것이 없어, 여러가지로 아쉬움이 남는 소설이다. 그래도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고 조선의 옹주로 그 권위를 지키고 싶었던 그 마음과, 일본이 전쟁에 패하자 딸 '정혜'를 데리고 조선으로 돌아오고 싶었던 갈망은 알아주고 싶다. 어쩌면 이 책을 읽기 전에 동화 '덕혜옹주'를 먼저 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실존의 덕혜옹주 삶이 알고 싶다면, 굳이 소설보다는 동화 덕혜옹주를 보는 것이 더 나을 거 같다. (http://blog.aladin.co.kr/714960143/3548016 )
그래도 소설 덕혜옹주 덕분에 많은 이들이 그동안 잊고 있던 옹주를 떠올리며 미안해하고, 비운의 삶을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건 고마운 일이다. 힘없는 제국의 마지막 황녀로서 불행하게 살았던 덕혜옹주를 잊지 않게 부활시킨 권비영 작가의 공로는 인정한다.
금욜 토론모임에 64세 된 어머니가 처음으로 참여했는데, 우리가 나누는 책 이야기를 듣고도 덕혜옹주에 대해 알게 돼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곤 초등 4학년이 된 손자랑 같이 보신다며 내가 밑줄 그어가며 읽은(밑줄이 그어져 더 좋다고^^) 동화 덕혜옹주를 기어이 사 가셨다. 회원들은 소설 덕혜옹주가 못내 아쉽고 미진함이 남아 일본인 혼마 야스코씨가 쓴 덕혜옹주를 사봐야겠다고 말했다. 나도 역시 그 책을 보고 싶다. 그러면 국내에 출판된 덕혜옹주 3권을 다 읽고, 덕혜옹주의 딸을 그린 '정혜'까지 읽으면 좋을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