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30일 중학생 남매의 중간고사 첫날이다. 1학년 학부모 봉사단에 들어있으니 시험감독을 하러 갔다. 교장샘께서 "누가 컨닝할까 두리번거리기 보단, 아이들이 편안하게 시험 볼 수 있게 돕는다"고 생각하라 하셨다. 옳은 말씀이시고 좋은 말씀이다. 큰딸이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이름은 껄끄럽지만 '시험감독'을 간혹 하게 되었다. 해마다 참여하진 않아도 누군가 해야 될 일이라면~ 생각하고 간간이 참여했다. 이제 막내가 중1이니 고등학교까지 앞으로도 서너 해는 더 참여하게 될 거 같다.

자기 자녀의 반은 들어가지 않으니 4,5,6반 순서로 3교시를 채웠다. 갈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시험내내 다리나 발을 흔드는 아이들이 참 거슬린다. 저런걸 틱장애라고 하던가~ 계속 펜으로 딱딱 소리내거나 손가락에 끼우고 돌리는 아이도, 저러면서 집중이 될까 의문이다.

첫시간 영어 시험, 상당히 산만하고 삐딱한 녀석이 있었다. 별로 아는게 없는지 처음부터 문제를 풀지 않았다. 대충 골라서 찍기로 했는지 시험지를 살펴보지도 않았다. 10분 쯤 지나고 마킹을 하는데 이름을 안 썼기에 짚어주었더니, 정 00 이라고 썼다. 아하~ 요녀석 내가 아는 사람 아들이구나 싶었다. "음, 네 엄마가 박 00씨구나!" 했더니 " 어떻게 알아요?" 놀라며 묻는다. "네 이름 보고 알았지." 헐~~ 이 녀석, 그래도 엄마 아는 사람이라 체면은 있었는지 그 다음부터 삐딱한 태도도 바로잡고 제대로 했다.ㅋㅋ 영어시험에 주관식이 몇 개 있었는데, 나도 슬쩍 넘겨다 보니 정답이 '앵무새'인줄은 알겠던데 대체 어떻게 쓰지? 스펠이 생각나지 않더라. 지금도 몰라서 못쓴다.ㅠㅠ  본문에 'She is Bird'라고 나왔던데, 어떤 녀석은 'Dog'라 썼고 그녀석은 주관식 답 하나도 안 썼다.ㅜㅜ

둘째 시간 도덕시험, 다들 열심이었다. 사실 문항만 잘 읽어보면 그런대로 할 수 있을 만만한 과목이다. 맨 뒤에 앉은 선머슴아 같은 여학생이 "저기요~ '천성'이 뭐에요?" 하고 묻는다. 얼른 문제를 살펴보니 뭐 가르쳐 줘도 정답과는 상관없기에 '본래 타고난 성질을 말하는 거야." "오호~ " 이녀석 필이 왔는지 제대로 정답을 골랐더라. 사실 물어봐도 안되고 답해줘도 안되는 거지만, 그래도 잘 해보겠다고 살짝 물어보는 녀석이 대견해서 나도 살짝 알려줬다. 뭐, 정답을 알려준건 아니니까.^^

셋째 시간은 한문이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 한 녀석이 학교이름을 한자로 쓰는 것도 나오냐고 묻는다. "나도 모르지, 뭐가 나오는지 어떻게 알겠니?" 웃었는데, 사실 나도 걱정됐다. 만약 시험에 나왔다면 우리 민경이는 쓸 수 있을까? 큰딸이랑 아들녀석 1학년 땐, 엄마가 한문은 확실히 해준다고 학교 이름도 쓰게 하고, 설명도 해 줬는데 막내는 완전 방임이다. ㅎㅎ  어젯밤 혹시 모르는거 없는지 물어보니 가차문자와 형성문자를 설명하는데 틀리더라. 아침에 다시 확인하니 정확히 답하기에, '아차~ 실수다!' 이런 일만 없도록 침착하게 검토하라 일렀다. 다행히 학교이름을 한자로 쓰는 건 안 나왔다. 교실에 들어가면 얼굴 안다고 인사하는 녀석들이 제법 기특하더라! ^^

3교시 끝나기 20분 전에 나와, 집에 들러 점심 먹고 나의 일터로 쌩~~~ 하루 일정을 다 마치고 집에 오니, 친구집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민경이...오늘 세과목 올백이란다.ㅎㅎ 역시 애를 셋이나 키우니, 엄마들의 로망인 올백을 맞는 녀석도 있구나~ 물론 내일 모레 다섯 과목 남아있지만...... 민경이 말을 들으니, 민경샘이 도덕샘인데 시험지에 자기반 애들 이름이 많이 나왔단다. "세현이는 농구를 잘하고, 민경이는 책읽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는데, 그래서 오늘 시험을 잘 본 걸까?ㅎㅎㅎ  아들녀석은 한문만 100점이고 도덕은 세 개나 틀리고, 영어는 81점이란다. ㅠㅠ 그래도 평균 90은 되는구나 싶어 '내일 시험에서 만회해라!'정도로 끝냈다. 그래도 욘석이 중학교 배치고사 1등으로 엄마 얼굴 좀 세워줬었다. 우리애들 학원 안 다니는 건 학교나 동네에서 다 아니까......

오늘 처음 시험감독을 해본 엄마들 왈, 감독할 일도 없고 굳이 필요하지도 않은 것 같던데...

오늘 알라딘에서 주최한 '지식e' 제작팀과의 만남, 지난주 집에 왔던 큰딸이 가고 싶어해서 신청했는데 당첨되었다. 어제 확인하고 꼭 시간내서 가보라 했는데 저녁때 문자가 왔다. 친구랑 둘이 갔는데, 작가나 피디가 미리 질문을 받지 못한 것 같다는 내용. 그 후는 어찌 됐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특별시는 아니어도 인천에 있으니 이런 자리도 가본다 싶어, 아이들 서울로 보내는 부모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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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맹이 2008-05-01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학교도 학부모 감독님이 오시는데요, 사실 교사 입장에서는 도움이 많이 되어요. 늘 많이 감사하게 여기고 있답니다. 요즘 어머님들이 다들 많이 바쁘신데 '동원'하는 것이 죄송하기도 하고요. 민경이 올백 축하드려요~! 쉽지 않은데요.. ^^

순오기 2008-05-01 08:1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학생들도 엄마들이 참관하는게 도움이 되겠지요? 그렇게 믿고 내 역할은 열심히 하렵니다. 내일은 초등운동회로 금요일과 바꿔달라는 엄마가 있어 또 갑니다.^^ 결국은 우리딸 올백 맞았다고 자랑한 페이퍼가 됐어요.ㅎㅎ

프레이야 2008-05-01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딸, 활동적으로 잘 지내고 있군요. 엄마의 덕이 큰 것 같아요.
민경이 올백은 대단해요. 중학교 시험에서요. 축하해요~
저도 이번에 7월에 시험감독 잡혀있는데 재작년에 높은 구두 신고 가서 4시간동안
고생한 생각이 나요. 이번에 편한 신발로 신고 가려구요. 헤헤..
오늘도 또 가시는군요. 수고하세요. 오기언니^^

순오기 2008-05-01 08:33   좋아요 0 | URL
아니~ 엄마들 학교 실내화 신고 교실 들어가지 않아요? 헉~
우린 학교에서 실내화 내어주고 교실 뒤에 의자 준비하고 점심까지 제공해요. 나야 항상 점심은 못 먹고 왔는데, 오늘은 방과후학교 휴강이라 점심까지 먹고 오려고요! 의자가 준비돼 있어도 난 거의 앉지 않는데, 처음 하는 엄마들 3교시 서 있으려면 힘들죠.^^

글샘 2008-05-01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는 3시간 4일간 모조리 우리만 들어갑니다. ^^
학부모님 오면 모시느라 신경, 책임 소재도 불분명하고... 차라리 우리끼리 하는 게 훨~ 마음 편하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사실... 피곤하긴 해요. 3시간 내리 감독하면...

순오기 2008-05-01 17:23   좋아요 0 | URL
작년 마지막 시험은 학부모 감독 없이...덕분에 우린 편했고요.^^
이번엔 1학년만 들어갔는데, 2~3학년에서 부정행위를 하려던 아이들이 있었다고 하는군요.
음, 엄마들이 참관하면 선생님도 더 신경써서 감독하지 않을까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어요. 장단점은 있겠지만, 엄마들이 선생님들의 수고를 아는 계기도 되거든요.^^

무스탕 2008-05-01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자나도 지성이네 담임선생님도 시험감독 신청받는다고 문자 돌리시더군요
(이 감독일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문자 자주 보내주시는 여자 못지않게 살갑고 꼼꼼하신 남자선생님이세요)
어쩔까.. 하다가 부족하면 반장엄마든 누구든 연락하겠지 싶어 관뒀는데 기말고사땐 어찌 해볼까 싶기도 하고요..
오늘도 수고 많이 하시고 오세요~ 점심도 맛있게 드시고요~ ^^*

순오기 2008-05-01 19:23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어찌 하는지 분위기도 알고, 막간에 내 아이 만나서 격려도 하고 좋잖아요.^^ 점심도 맛나게 먹었어요. 후식으로 케익 한조각까지!

세실 2008-05-01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도 시험감독하고 오더니 기진맥진 합니다.
아이들이 신경 쓰인다고 돌아다니지도 못하게 한다네요. 왜 서는지 모르겠다고. ㅎㅎ
님 애들한테 큰 도움되셨습니다.
아 올백 축하드리옵니다^*^

순오기 2008-05-01 19: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뒤에서 가만히 있어야 해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고 하는 봉사의 즐거움이 있지요.
음, 오늘은 두과목 100점이니가 다섯 과목이네요. 내일만 잘하면~ ^^

하늘닮은호수 2008-05-01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리 많이 아프셨겠다. 그래도 아이들 열심히 시험보는 모습 보는 거 기특해보이셨겠네요!
지금도 감독하고 계시겠네요. 열심히 한 아이들이 좋은 점수 얻는 정당한 세상 알려주시는 도우미 어른들이 해야지요^^ 님은 벌써 실천 중이십니다. 수고하세요!!! 그리고 저도 축하합니다. 열심히 한 아이 민경이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순오기 2008-05-01 19:27   좋아요 0 | URL
엄마들이 참관하면 선생님들은 더 신경쓰일 것 같아요. 아이들은 별 신경 안쓴대요.^^ 민경이는 오빠보다 성실하게 한 결과인 듯...감사해요!

큰딸!! 2008-05-01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질문 미리 받아봤다고 하더라구ㅡㅡ; 내가 보기에는 준비가 별로 안 된 것 같았는데.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어! 여러가지 생각도 들었고.
근데 기숙사 지각계쓰고 갔는데도 늦어서 벌점 맞았어. ㅠㅠ 마이너스 1점...
내일은 청계천 소라광장에서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가 있다고 해서 가볼려고.
온라인에서 신나게 mb까다가 경찰서 불려간 사람도 있고 검증도 안 된 사실들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퍼뜨리며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사람들도 있고 시끌시끌하지만
오프라인에서 행동으로 옮기는게 가장 옳은 일인 것 같아. 조금 더 냉정하고 차분한 자세로.
여기서도 쇠고기 때문에 아주 난리도 아니야.
'미국산 쇠고기 너나 쳐먹어라, 미국산 소고기 먹으면 다 뇌에 구멍뚫려 죽는데!'
하는 건 좋은데 그렇게 떠들기만 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
그런데 가입 안하면 비밀댓글은 못쓰는거야?-ㅁ-?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어.
주절주절 떠들기 쫌 그러네.
음... 그럼 엄마, 여름방학 때 봐! 안녕!!!

순오기 2008-05-02 09:20   좋아요 0 | URL
좋은 경험이 좋은 선생님 되는 것에도 도움이 될거야~ 잘했어 우리딸!
흥분하고 떠드는 것보다 조용히 실천하는 사람이 진정 용기있는 사람이겠지. 사먹는 음식 최대한 자제하고, 앞으로 풀만 먹여도 군소리 안하고 잘 먹어줄 것같은 분위기야~ 성주랑 민경이도 심각성을 인식하니까!
비밀글은 로그인한 사람만 쓸 수 있어~~~ 비밀이 아니어서 하고 싶은 말 못하면 문자로 보내든지 통화하면 되지 않을까?^^

BRINY 2008-05-03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학교에서도 학부모 감독제 해봤는데, 지금은 안해요. 학부모 감독 섭외하는 것도 담임들에겐 스트레스거든요. 순오기님같으신 분들이 많으시면 좋은데, 흔쾌히 와주시려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았어요. 그리고 학부모님 오셔서 열성으로 감독해주시는 게 아니라, 교사들은 내내 답안지 확인도 해야하고 답안지도 바꿔주고 해야 하는데, 교실 구석에 의자 놓고 앉아계시거나...또 학부모님들 대기실도 마련해놓고 관련부서에서 다과준비도 해야했거든요. 결국 교사들이 한 교실에 2명씩 들어가서 감독하는 걸로 바꾸었어요.

순오기 2008-05-03 15:2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학교측에선 좀 성가시긴 할거에요.
그래도 엄마들이 이런 일이라도 참여해야 학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알게 되죠.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도 학교에서 원하면 참여하고, 작년 마지막 시험은 학부모감독 없이 했어요. 또 안 부르니까 편하긴 하더라고요.ㅎㅎ

마늘빵 2008-05-05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부모 감독제 하는 학교 안하는 학교 있는데, 제가 경험해본바로는 필요없습니다. 예산만 낭비되고. -_- 전혀 도움이 안돼요.

순오기 2008-05-06 03:34   좋아요 0 | URL
ㅎㅎ 예산이 얼마나 낭비될까요? 우리학교는 차와 약간의 간식과 점심을 준비하던데... 저야 학교에서 부르면 가고, 안 부르면 안 가니까 편하고요.^^

마늘빵 2008-05-05 23:58   좋아요 0 | URL
앗, 전에 보니깐 3-4만원씩 주는거 같더라고요. -_-a 학교마다 다른건가. 학부모마다 감독 스타일이 달라서, 도움이 되는 분도 있긴 하지만, 경험상 있으나마나인거 같더라고요.

순오기 2008-05-06 03:35   좋아요 0 | URL
오호~ 시험감독에 일당(?)을 주는 학교가 있다? 뭔가 잘못 안게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