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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만의 산책 - 자연과 세상을 끌어안은 열 명의 여성 작가들을 위한 걷기의 기록
케리 앤드류스 지음, 박산호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22년 3월
평점 :
제목: 자기만의 산책
지은이: 케리 앤드류스 / 옮긴이: 박산호
펴낸 곳: 예문아카이브
걷기보다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 운동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특정한 조건이 갖춰진다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즐기며 걸을 수 있다. 이른 아침, 지저귀는 새소리에 갓 깨어난 듯 신선한 공기를 머금은 숲길은 더없이 매력적이다. 가을의 오후 3시경, 솜사탕 같은 구름을 한가득 품은 하늘을 즐기며 걷는 산책길도 아름답다. 길을 따라 타박타박 걷다 보면, 이내 사뿐사뿐 몸이 가벼워지고, 걷고 있다는 자각을 잊은 채 주변의 풍경을 눈에 담으며 사색에 잠긴다. 많은 생각이 물밀듯 들어오지만, 머리가 복잡하기보다는 정리되는 느낌. 때론 아무 생각 없이 오롯이 산책하는 순간을 즐기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걷는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그들에게 산책은 영감의 원천이자 창작의 강한 원동력일 거다. 같은 여자로서 더 마음이 가고 궁금한 여성 문인 10인의 산책. 이번에 읽은 책 《자기만의 산책》은 끊임없이 읽고 걷고 생각하며 글을 쓴 그녀들의 소중한 순간을 다정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관찰한다.
마음으로 다가가는, 여성 산책가들의 의미 있는 산책
엘리자베스 카터, 도로시 워즈워스, 엘렌 위튼, 사라 스토다트 해즐릿, 해리엇 마티노, 버지니아 울프, 낸 셰퍼드, 아나이스 닌, 셰릴 스트레이드, 린다 크랙넬. 반가운 이름과 낯선 이름이 뒤섞인 명단. 시대도, 살아 온 환경도, 성향도 제각각 다른 이 여인들의 공통점은 글을 쓰는 작가이자 걷기를 즐기는 산책가였다는 사실이다. 비범한 지성을 지녔던 엘리자베스 카터는 한평생 집 근처 켄트 해안을 거니는 걸 가장 큰 기쁨으로 여겼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한 시간 정도 독서를 한 후, 산책길에 나서는 카터에게 걷기란 기분 좋은 오락을 넘어 '삶의 방식'이었다. 도로시 워즈워스에게 걷기란 건강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용기'를 내게 해주는 행위였다. 엘렌 위튼은 여자로 살아가는 고단한 일상을 해소하고자 걷고 또 걸었다. 한없이 병약해 보였던 버지니아 울프가 가능한 매일 산책을 즐겼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외였다. 그녀의 보행 리듬에 따라 소설의 플롯도 맞춰졌다고 한다. 걸으며 우정, 행복과 영감을 발견한 울프에게 산책은 살아가는 내내 멈출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습관이었다.
여성 작가들과 거닌 특별한 산책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말이 있다. 그 위험이 남성 중심의 기득권 세력에 대한 위협인지, 아니면 치명적인 매력을 뜻하는지는 해석하기 나름일 듯하다. 우리의 걷는 리듬은 생각하는 리듬과 일치한다고 한다. 걷기는 관찰과 사색으로 이어지며 일상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또 다른 자아와 이상을 경험하는 신비로운 순간을 선사한다. 이 책은 지난 3백 년간, 여성이자, 작가,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걷고 산책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했던 여성 작가 10명에 관해 탐구한다. 그들의 대표작을 떠나, 산책에 집중했던 삶의 루틴과 그 산책이 미친 다양한 영향을 살펴보며 함께 성숙해지는 특별한 시간. 기쁨, 환희, 고뇌, 외로움, 사랑 등 수많은 감정이 스민 그 발자취에서 그들이 한 시대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긴 여성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걷기에 관한 여성 작가들의 사색과 기록 덕분에 내 몸과 마음은 열정으로 휩싸였다. 내일은 풀잎에 맺힌 이슬이 따스한 아침 햇살에 익기 전에, 꼭 집을 나서야지.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