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비의 달 문예중앙시선 35
박태일 지음 / 문예중앙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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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보내놓고




사랑을 보내놓고
보낸 나를 내려다본다
동리 간이 우편취급소는 새로 바뀌었고
바뀐 사무원은 손이 작다 몸집이 작다
아아 이별도 작게 하리라
사랑은 특급으로 떠났다 특급이 못 된 사랑은
행낭에 물끄러미 포개져 존다
특급 사랑을 못 해본 내가 특급 우편을 부친다
사랑이 떠난 뒤에도 사랑 가게를 볼 수 있을까
사과를 깎고 비 내리고 차들 오가고
나는 사랑과 이별을 나눈다
침대 위에서 침대 아래서 나눈다
이별은 멍든 구석이 어디쯤일까
사랑을 보내고 한 달 사랑에게 전화를 건다
출타 중, 기별해야 할 다른 이별이 남았나 보다
저녁 술밥집처럼 축축한 목소리로
다른 사랑을 만나나 보다
사랑은 멀고 나는 사랑을 잊는다
길에서 잊고 지하철에서 잊는다
사랑이 떠난 뒤에도 사랑 가게를 볼 수 있을까
사랑 많이 버세요 다른 사랑이 웃는다
나도 사랑을 별만큼 많이 벌고 싶다
사랑을 보내놓고
사랑 가게 문을 닫는다
어느 금요일까지 기다리리라
토요일 일요일에는 전화를 걸 수 있으리라
은행나무가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수루루 사랑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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