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데우스 + 프라하의 봄 - [할인행사]
필립 카우프만 외 감독, 톰 헐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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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엄마랑 이 영화를 보다가, 첫 장면부터 여자가 벗는 바람에 꺼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내가 봤던 충격적인 장면은, 병원에서 의사가 간호사에게 보여 달라고 하자 여자가 가운을 열었더니만 알몸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중학교 때였던가 그랬는데 속옷을 안 입고 다닌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 후로, 대체 "프라하의 봄" 이란 제목과 이런 야한 장면들이 어떻게 연관이 있는 건지 무척 궁금했다.
"프라하의 봄" 이라면 체코의 독립운동일텐데, 저 바람둥이 의사가 독립투사가 된다는 얘기인가? 싶었다.
결론적으로 자유주의 운동과는 별 상관이 없는 얘기다.
그냥 자유주의 운동은 배경으로 삽입된 것 같다.
주인공들의 삶을 뒤흔드는 인생의 큰 사건 정도로 소개될 뿐이지 주인공들이 투사가 된다거나, 이를테면 "화려한 휴가" 처럼 민주화 운동 자체가 주제로 쓰인 건 아니다.
밀란 쿤데라 소설이 원작이라고 하는데 번역을 잘못한 게 아닌가 싶다.
번역자가 멋대로 갖다 붙인 제목이 아닐까?
"프라하의 봄" 이 상징하는 의미와 내용은 너무 다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아카데미 상을 받은 "나의 왼발" 에서 정박아 역할을 어찌나 잘 소화해 냈는지 지금까지도 약간 떨어지는 장애인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오늘 보니 정말 잘 생긴 미남 배우다.
꽤 오래 전에 만들어진 영화일텐데, 전혀 촌스럽지 않고 키도 훤칠하게 크고 얼굴에 세련미가 넘쳐 흐른다.
더불어 줄리아 비노쉬도 정말 예쁘게 생겼다.
피부가 얼마나 뽀얗고 예쁜지 옆에 가서 만져 보고 싶을 정도다.
키가 큰 루이스에 비해, 조그맣고 가녀린 줄리아 비노쉬는 마치 애기처럼 보인다.
미성년자처럼도 보인다.
프랑스 여자들은 키가 작은 편이라는 게 실감난다.
그리고 그녀의 영어 발음은 역시 외국인이라 그런지 약간 촌스럽고 부자연스럽다.
"웨이러" 를 "웨이터" 하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여튼 이 여배우 정말 작고 아름답게 생겼다.

사실 영화는 좀 지루했다.
세 시간에 걸친 긴 영화다.
화면은 정말 아름답다.
카메라 감독이 기막히게 잘 찍은 것 같다.
특히 프라하에 소련군의 탱크가 들어 왔을 때 시위대들이 탱크에 올라가 항의하는 장면은, 중국의 천안문 사태에서도 본 것 같고, 5.18 민주화 항쟁 때도 본 것처럼 너무 익숙하다.
주인공들을 그 시위대에 삽입시켜 흑백으로 처리한 부분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살짝 흘렀다.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게 처절하고 가슴아픈 것 같다.
다행히 사진을 찍는 테레사가 잡혀 가거나 고문 당하는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5.18 을 다룬 영화에서 보면 구타와 고문이 너무나 일상적이라 국가 폭력은 언제나 끔찍하게만 인식됐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거의 없어 정말로 소련군이 야만적인 행위를 했는지조차 쉽게 각인되지 않는다.

토마스의 바람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가 사비나 대신 얌전한 테레사를 선택한 것은, 물론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똑같이 바람둥이인 사비나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토마스가 여자에게만 순결을 강요하는 완고한 가부장주의자는 아니다.
나는 테레사의 말처럼, 사랑과 섹스가 어떻게 별개일 수 있는지, 섹스가 단지 플레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말처럼, 삶이 그렇게 가벼운 남자와 평생을 함께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토마스는 작고 여린 테레사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자신의 플레이도 멈출 수는 없다.
부부 사이의 정절 의무를 소홀히 하는, 그러나 무척이나 아내를 사랑하는 이 남자를 어떻게 받아들여 할까?
결국 테레사는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토마스를 떠나 난장판이 된 프라하로 돌아간다.
그녀를 사랑하는 토마스도 혼자 버려진 것을 못 견뎌 되돌아 가지만, 전에 발표했던 반공주의 기고문이 문제가 되어 여권을 뺏기고 만다.
그 때부터 토마스의 사회적 몰락이 시작된다.

토마스는 반공주의 사상 철회서에 사인하는 걸 거부해서 병원에서 쫓겨난다.
결국에는 갈 데가 없자 시골 마을에 농사지으러 들어간다.
그는 공산주의나 외세의 억압을 혐오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 투사도 아니다.
그는 정말로 엘리트 외과 의사에서 시골 농부로 전락한 것을 기꺼이 즐거워 하며 받아들인 걸까?
시골로 내려온 후 테레사는 바람 필 상대가 없어 자신에게 충실한 토마스와 행복한 한 때를 보낸다.
일견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정말로 토마스는 행복한 걸까?
저 불안한 행복은 얼마나 유지될까?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어처구니 없게도 비오는 날 트럭을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결국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 버릴 일시적인 행복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 날, 테레사는 술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산다.
둘이 처음 만나는 날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었던 인연으로, 테레사는 안나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하자, 생긴 건 꼭 수컷 같다면서 안나의 남편인 키레닌으로 붙이기로 한다.
한국의 보신 문화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일수도 있지만, 아이가 없던 이 부부는 키레닌을 마치 자식처럼 돌본다.
테레사의 고백대로 언제나 어렵고 불안하던 당신보다 오히려 키레닌을 더 편하게 사랑했다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암으로 키레닌은 안락사 하고 만다.
그들을 묻으러 가던 날, 테레사는 계속 속삭인다.
이제 편안해질거야, 아름다운 세상으로 갈 거야...
똘이 생각이 자꾸 나서 마음이 아팠던 대목이다.

사비나와 테레사는 마치 동성애라고 즐기는 것처럼 나와서 당황스러웠다.
결국 아슬아슬한 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카메라 앞에서 벗겨놓고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카메라가 곧 폭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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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pie 2008-04-04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씀하신 대로 [프라하의 봄]은 번역되면서 붙은 제목이 맞습니다. 밀란 쿤데라의 [프라하의 봄]은, 요즘은 원제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소설입니다. 이 영화 원제도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 입니다. '프라하의 봄' 이야기라기보다 그 때를 배경으로 한 '어떤 사람들' 의 이야기라고 보는 게 맞겠지요. ^^

tereza 2010-10-30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귓가에 테레사가 "토마쉬"하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테레사로 분한 '줄리엣 비노쉬'가 정말 예쁘게 예쁘게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음,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원작을 한반 읽어보시면 어떨까하고 생각했습니다. 작가는 한 개인의 삶이 역사, 세계, 국가라는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영향받고 영향주는지를 재치있게 쓰고 있었습니다. '프라하의 봄'사건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합니다. 체코출신의 밀란 쿤데라는 정말 지적인 작가더군요. 아무래도 영화와 책은 매체 자체가 다르므로 책을 영화화하는 것은 책을 먼저 접한 사람에게는 이래저래 부족한 것이 많이 보이지만 저는 영화는 영화대로, 책은 책대로 정말 좋았습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책제목으로는 아주 멋지지만 영화 제목으로는 관객들에게 어필하기가 힘들 것 같기에 '프라하의 봄'이라고 지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구요. 원작을 한번 읽어보시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민음사 우리말 번역본도 보시고, 영어원서도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더스틴 호프만의 표적 - 초특가판
샘 페킨파 감독, 더스틴 호프만 출연 / 영상프라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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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더스틴 호프만을 만난 건 좋은 영화의 보너스 같다.
같이 나오는 여배우는 매우 육감적이고 머리가 비어 보이는 전형적인 금발 미녀를 잘 소화해 낸다.
영국이라는 공간은 헐리우드와는 매우 달라 보인다.
똑같은 영어를 쓰는데 도 전혀 다른 공간 같다.
껄렁껄렁한 악당들로 나오는 다섯 명의 건달패들은 폭력적인 성향과는 어울리지 않게 마치 비틀즈 멤버들을 보는 것처럼 아주 전형적인 영국 청년들로 보인다.
바지가 어찌나 짧은지, 거기다가 운동화까지 신고 머리는 장발인 마치 60년대 패션을 보는 기분이었다.
사실 나는 이 영화가 언제 제작된 것인지 모르겠는데 60년대가 아닐까 생각해 봤다.
더스틴 호프만은 여리고 섬세한 미국인 수학자를 잘 표현해 낸다.
이 사람은 정말 연기의 천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섬세한 감정의 변화를 잘 잡아낸다.
내가 남들에게 할 말 잘 못하고 사는 성격이라 그런지, 건달패들을 향해 항의하고 싶으나 못하는 그 머뭇거리는 장면이 어찌나 실감나던지, 완전히 이 배우에게 확 빠져 버렸다.

문화적 차이를 실감했던 부분도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자연스럽게 담배를 권하는 장면이었다.
한국 영화에서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면 십중팔구는 팜므파탈처럼 도발적이고 난잡한 캐릭터일 것이다.
착하고 얌전하며 순진하기까지 한 주인공이 과연 담배를 피운다고 설정될 수 있을까?
어떤 나라나 문화권이든 터부시 되는 비합리적인 금기가 있기 마련이지만 하여튼 남자들에게만 열려 있는 기호 선택의 자유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에서 내가 인상깊게 본 부분은 강간 장면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에이미의 도발적인 행동들이 못마땅 했다.
처녀 시절 만나던 껄렁패들을 차고 고치는데 고용한 것도 이상하지만, 노골적인 눈빛으로 불쾌한 시선을 던지는 이 양아치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브래지어도 하지 않은 윗몸을 벗어 제끼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더군다나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찾아온 옛 남자 친구가 거침 숨소리를 내면서 찾아 오자 내보내기는 커녕, 오히려 술까지 권하는 행동은, 아예 날 잡아 잡수라는 노골적인 행위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 같은 강간 행위가 용서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무리 창녀 같은 여자라도 원하지 않은 성행위는 절대로 즐거움이 될 수 없다.
대체 남자들은 상대가 죽을 것처럼 반항을 하는데도 일단 삽입을 하면 쾌감을 얻는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강간 당하는 에이미의 고통이 너무나 리얼하고 끔찍하게 잘 묘사되어 간담이 서늘했다.
폭력으로 그녀를 제압하는 제임스가 악마처럼 보였다.
한 술 더 떠 그 패거리 중 한 놈이 찾아와 연이어 강간하는 걸 보고, 육체적으로 약한 여자가 그동안 사회에서 얼마나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고 오직 힘과 폭력성만이 권력관계를 만드는 사회, 확실히 인권과 민주주의가 발달하기 전 사회는 약자들에게 생존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곳이었으리라.

끔찍한 이야기는 계속된다.
마을에는 절름발이 정신지체자가 있다.
어린 소녀가 그를 성적으로 유혹한다.
어른들에게 거부당하자 자기가 만만하게 유혹할 수 있는 헨리를 건든다.
어린 소녀가 정말 도발적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사람들에게 발각당할 위험에 처하자 당황한 나머지 헨리가 제니스를 목졸라 죽여 버린다.
절름발이가 착할 거라는 편견을 버리라는 니체의 명언이 생각나는 장면이었다.
또 헨리는 쫓기는 자신을 숨겨 준 에이미 마저 강간하려고 덤빈다.
지능이 부족하기 때문에 도덕적인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고 욕정에 자신을 맡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인간의 본성이 공격적이고 폭력적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사건의 반전은 제니스를 죽인 헨리를, 마을 건달패들이 찾으러 더스틴 호프만의 집으로 몰려 오면서부터다.
운전하다가 헨리를 치게 된 호프만은, 총을 들고 위협하는 그들에게 절대로 헨리를 내주지 않는다.
지금까지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 소심하던 호프만이 분노한다.
부당한 폭력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것이다.
그 변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아무리 힘없는 사람도 진정으로 분노하면 무서워진다.
호프만은 그들의 폭력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고, 헨리를 결코 내주지 않는다.
그들이 집을 위협하고 공격하는 모습은 얼마나 끔찍하고 잔인하지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결국은 주인공이 이기는 식으로 다섯 명은 다 죽고 만다.
주인공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가 약간 작위적이긴 했지만, 부당한 폭력에 분노하는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정의가 승리하는 기분이랄까?
그런데 정작 헨리가 제니스를 죽였다는 걸 알게 되면 주인공의 기분은 어떨까?
혹은 헨리가 자신의 아내를 강간했다면?
자기 딸을 강간한 후 죽였다면?
어디까지 정의가 혹은 균형감각이 적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DVD 소개서에 어찌나 형편없이 줄거리가 나왔던지 짜증났다.
제대로 영화를 보기나 한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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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채널 : 1000년을 빛낸 세계의 100인 (2disc) - 히스토리/큐 채널 프로모션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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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 채널은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다큐멘터리다.
가끔 케이블에서 보는데 DVD로 출시가 되서 반갑다.
이런 다큐멘터리를 대여해 주는 곳이 많으면 좋으련만 죄다 사서 봐야 하니 가격 부담 때문에 선뜻 보기가 힘들다.
다행히 도서관에서 대여를 해 줘서 볼 수 있게 됐다.
도서관에서 히스토리 채널 같은 다큐멘터리 DVD는 많이 구입을 했으면 좋겠다.

천년을 빛낸 위인에 레이건이 들어간다는 건 좀 웃긴 일이고 한 술 더 떠 다이애나 왕세자비까지 들어간 건 왠지 가십 기사 같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인류 역사에 획을 그은 위인들이 선정된 것 같기는 하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다.
미치광이 살인마였던 조세프 스탈린이나 아돌프 히틀러의 끔찍한 만행을 봤고, 평가가 나뉘기는 하겠지만 레닌이나 모택동 역시 수많은 인민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다는 비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종두법을 개발해 천연두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만든 제너라든지, 세균의 존재를 규명한 파스퇴르 같은 과학자들의 업적은 얼마나 대단한가!
미켈란젤로가 20위 권 안에 든 건 좀 의외였다.
위대한 예술가임은 분명하지만 베토벤이나 모짜르트가 50위권 너머에 있는 걸 보면 다소 의아하다.
모짜르트를 소개하면서 나온 터키행진곡은 정말 경쾌하다.
베토벤, 바흐, 모짜르트 등이 있어서 인류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워졌던가!

순위가 좀 이상하다 싶은 것도 있지만 위인전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반가웠다.
100명이라는 너무 많은 인물을 짧은 시간에 소개하려다 보니 한 사람에게 할당된 양이 좀 적다는 게 불만이었다.

세상을 빛낸 10명의 위인은 이 사람 없으면 안 되겠다 싶은 이들이었다.
아이작 뉴턴, 코페르니쿠스, 다윈, 갈릴레이, 마르틴 루터, 아인슈타인, 세익스피어 (이건 다소 의외였지만 문학사에 남긴 그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것도 좀 의외, 차라리 모짜르트가 더 큰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등이었고 최후의 1인은 바로 구텐베르크였다.
인쇄술이 인류에게 끼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선택이다.
인쇄술로 인해 정보의 혁명이 가능했고 비로소 민주주의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장 위대하고 가장 똑똑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세계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이를 뽑는 것이니, 구텐베르크의 선정이 과연 일리가 있다.
인쇄술이 없었다면 정보에서 소외된 계층은 여전히 피지배민의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대중의 시대를 만든 것은 인쇄술이 힘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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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롯트 그레이 - [할인행사]
질리안 암스트롱 감독, 케이트 블란쳇 외 출연 / 유니버설픽쳐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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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막연하게 "폭풍의 언덕" 을 쓴 에밀리 브론테의 동생이 쓴 작품을 영화화한 DVD 라고 생각했는데 샬롯 브론테 하고 헷갈린 모양이다.
샬롯 그레이라는 이름이 고풍스러워 마음에 든다.
나는 처음 본 여배우인데 고전적인 미인이다.
케이트 윈슬렛과도 약간 비슷한 이미지다.
모자와 투피스가 무척 잘 어울리는 여자다.
상대역으로 나온 남자배우도 키가 좀 작아서 그렇지 윤곽이 분명하고 고뇌하는 지식인 역을 잘 소화해 낸다.
특히 독일군이 진격했을 때 탱크 부대 앞에서 실종된 사람들의 명단을 외치며 분노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행동하는 지식인, 공산주의자, 마을을 나치로부터 지켜내려는 레지스탕스!
아무 상관도 없는 유대인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아버지가 유대인이라고 자백할 때의 그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 희생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이들은 어처구니 없게도 아버지와 같이 수용소로 끌려 가고 만다.
그들은 어떻게 됐을까?
줄리앙과 샬롯은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 재회했지만 아버지와 아이들 소식은 나오지 않아서 아쉽다.
입양해서 키우면 좋으련만...
언젠가 봤던 레지스탕스 영화에서도 고아가 된 아이를 두 남녀가 가족으로 받아들여 전쟁 중에 가족애를 그리던 장면이 보기 좋았다.
어떤 상황에서든 사람끼리의 애정은 빛날 수 있다.

왜 샬롯은 굳이 전쟁에 끼어 들어 첩보원 노릇을 한 걸까?
군인도 아니면서 말이다.
실제로 첩보 활동을 한 민간인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과연 어떤 동기로 전쟁에 참여했는지 궁금하다.
공군 조종사의 말대로, 동료가 죽고 내가 산 것은 용감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다.
단지 운에 불과하다.
스탕달을 불어로 읽는 여자라는 표현이 무척 마음에 든다.
그런데 재밌는 건 프랑스에 가서도 영화는 영어로 진행된다.
나치는 항상 나쁜 놈으로 그려져서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게 나온다.
비시 정부의 모토는 협력이었다고 한다.
협력만이 프랑스를 지키는 길이다, 이 변절자의 최후는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다.

영화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서 촬영됐는데 나치의 탱크 부대가 지나갈 때 노인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실제로 전쟁을 겪은 사람과 영화로만 보는 사람의 차이일 것 같다.
나치 점령 치하는 마치 공산군 점령하의 한국과 같았을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현재의 우호 관계를 회복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간다.
북런치라는 단어가 작가와의 오찬으로 번역되는 걸 봤다.
우리는 아예 이런 단어 자체가 없는 걸 보면 문화 차이가 확실히 크다.
작가가 싸인해 주는 정도가 아니고, 아예 칵테일 파티를 열어 춤추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확실히 서양의 파티 문화는 일반적이다.

2차 대전 이야기는 영화의 영원한 소재가 될 것 같다.
영상이 아름다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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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리버 - [초특가판]
린 스톱케윅 감독, 몰리 파커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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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독특한 영화라 솔직히 감독이 뭘 얘기하려고 한 건지 모르겠다.
여성 감독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한 감각, 이런 식의 상투적 문구를 도저히 적용시킬 수가 없다.
여자의 성적 본능이 주제인 것 같기는 한데, 즉, 여자가 성의 주체인 것 같기는 한데 너무 비정상적이고 특이하며 폭력적이라 공감이 안 간다.
매춘은, 즉 돈이 들어간 관계는 아무리 포장을 하려고 해도 아름답지가 않다.
역시 감정이 개입되야 섹스도 따뜻한 인간의 교류가 된다.
엄마가 불륜 때문에 살해당한 일이 상처가 되서 비정상적인 섹스에 탐닉한다는 것이 영화의 설정인데, 기본적으로 나는 인간의 성향은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사건이 본성을 강화시키거나 약화시킬 수는 있겠지만, 기본적인 성향 자체는 큰 변화가 없다고 본다.
내가 보기엔, 이 여자는 처음부터 메저키즘 성향을 가지고 있다.
매춘이 자유로운 성본능의 발산으로 보이는 게 아니라, 고통을 당하고 싶어 하는 수동적이고 종속적인 비정상적인 성향으로 보인다.
게리라는 남자가 그녀의 구원이 될 수 없음은, 영화 분위기를 봐서 짐작은 했지만, 그렇다고 이 여자를 마을의 창녀로 팔아 먹기까지 한다는 건 정말 너무 깬다.
첫 섹스에서 다짜고짜 뺨을 갈길 때부터 위험한 놈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하여튼 이 캐릭터도 매우 비정상적이다.
왜 남자들은 여자를 때리면서 희열을 느낄까?
섹스를 할 때 공격적이기 되기 때문에 성행위시 욕을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마귀가 정사 후 상대를 잡아 먹는다는 사실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나는 맞는 것도 당연히 싫지만, 때리는 것도 정말 싫다.
뭐가 됐든 간에 고통을 주는 건 끔찍하고 무섭다.
지배적인 성향이 부족한 건가?
하여튼 이 레일라라는 캐릭터는 창녀로 팔려가 죽음의 위협 속에서 간신히 빠져 나오긴 했으나 정상적인 생활은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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