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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데우스 + 프라하의 봄 - [할인행사]
필립 카우프만 외 감독, 톰 헐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어렸을 때 엄마랑 이 영화를 보다가, 첫 장면부터 여자가 벗는 바람에 꺼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 때 내가 봤던 충격적인 장면은, 병원에서 의사가 간호사에게 보여 달라고 하자 여자가 가운을 열었더니만 알몸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중학교 때였던가 그랬는데 속옷을 안 입고 다닌다는 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그 후로, 대체 "프라하의 봄" 이란 제목과 이런 야한 장면들이 어떻게 연관이 있는 건지 무척 궁금했다.
"프라하의 봄" 이라면 체코의 독립운동일텐데, 저 바람둥이 의사가 독립투사가 된다는 얘기인가? 싶었다.
결론적으로 자유주의 운동과는 별 상관이 없는 얘기다.
그냥 자유주의 운동은 배경으로 삽입된 것 같다.
주인공들의 삶을 뒤흔드는 인생의 큰 사건 정도로 소개될 뿐이지 주인공들이 투사가 된다거나, 이를테면 "화려한 휴가" 처럼 민주화 운동 자체가 주제로 쓰인 건 아니다.
밀란 쿤데라 소설이 원작이라고 하는데 번역을 잘못한 게 아닌가 싶다.
번역자가 멋대로 갖다 붙인 제목이 아닐까?
"프라하의 봄" 이 상징하는 의미와 내용은 너무 다르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아카데미 상을 받은 "나의 왼발" 에서 정박아 역할을 어찌나 잘 소화해 냈는지 지금까지도 약간 떨어지는 장애인으로 인식된다.
그런데 오늘 보니 정말 잘 생긴 미남 배우다.
꽤 오래 전에 만들어진 영화일텐데, 전혀 촌스럽지 않고 키도 훤칠하게 크고 얼굴에 세련미가 넘쳐 흐른다.
더불어 줄리아 비노쉬도 정말 예쁘게 생겼다.
피부가 얼마나 뽀얗고 예쁜지 옆에 가서 만져 보고 싶을 정도다.
키가 큰 루이스에 비해, 조그맣고 가녀린 줄리아 비노쉬는 마치 애기처럼 보인다.
미성년자처럼도 보인다.
프랑스 여자들은 키가 작은 편이라는 게 실감난다.
그리고 그녀의 영어 발음은 역시 외국인이라 그런지 약간 촌스럽고 부자연스럽다.
"웨이러" 를 "웨이터" 하고 정확하게 발음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여튼 이 여배우 정말 작고 아름답게 생겼다.
사실 영화는 좀 지루했다.
세 시간에 걸친 긴 영화다.
화면은 정말 아름답다.
카메라 감독이 기막히게 잘 찍은 것 같다.
특히 프라하에 소련군의 탱크가 들어 왔을 때 시위대들이 탱크에 올라가 항의하는 장면은, 중국의 천안문 사태에서도 본 것 같고, 5.18 민주화 항쟁 때도 본 것처럼 너무 익숙하다.
주인공들을 그 시위대에 삽입시켜 흑백으로 처리한 부분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살짝 흘렀다.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디나 비슷하게 처절하고 가슴아픈 것 같다.
다행히 사진을 찍는 테레사가 잡혀 가거나 고문 당하는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5.18 을 다룬 영화에서 보면 구타와 고문이 너무나 일상적이라 국가 폭력은 언제나 끔찍하게만 인식됐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장면이 거의 없어 정말로 소련군이 야만적인 행위를 했는지조차 쉽게 각인되지 않는다.
토마스의 바람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가 사비나 대신 얌전한 테레사를 선택한 것은, 물론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똑같이 바람둥이인 사비나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토마스가 여자에게만 순결을 강요하는 완고한 가부장주의자는 아니다.
나는 테레사의 말처럼, 사랑과 섹스가 어떻게 별개일 수 있는지, 섹스가 단지 플레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말처럼, 삶이 그렇게 가벼운 남자와 평생을 함께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토마스는 작고 여린 테레사를 아끼고 사랑하지만, 자신의 플레이도 멈출 수는 없다.
부부 사이의 정절 의무를 소홀히 하는, 그러나 무척이나 아내를 사랑하는 이 남자를 어떻게 받아들여 할까?
결국 테레사는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토마스를 떠나 난장판이 된 프라하로 돌아간다.
그녀를 사랑하는 토마스도 혼자 버려진 것을 못 견뎌 되돌아 가지만, 전에 발표했던 반공주의 기고문이 문제가 되어 여권을 뺏기고 만다.
그 때부터 토마스의 사회적 몰락이 시작된다.
토마스는 반공주의 사상 철회서에 사인하는 걸 거부해서 병원에서 쫓겨난다.
결국에는 갈 데가 없자 시골 마을에 농사지으러 들어간다.
그는 공산주의나 외세의 억압을 혐오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민주 투사도 아니다.
그는 정말로 엘리트 외과 의사에서 시골 농부로 전락한 것을 기꺼이 즐거워 하며 받아들인 걸까?
시골로 내려온 후 테레사는 바람 필 상대가 없어 자신에게 충실한 토마스와 행복한 한 때를 보낸다.
일견 아름다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정말로 토마스는 행복한 걸까?
저 불안한 행복은 얼마나 유지될까?
결국 두 사람의 사랑은, 어처구니 없게도 비오는 날 트럭을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결국 그렇게 허망하게 끝나 버릴 일시적인 행복이었던 것이다.
두 사람의 결혼식 날, 테레사는 술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산다.
둘이 처음 만나는 날 안나 카레니나를 읽고 있었던 인연으로, 테레사는 안나라는 이름을 붙이자고 하자, 생긴 건 꼭 수컷 같다면서 안나의 남편인 키레닌으로 붙이기로 한다.
한국의 보신 문화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일수도 있지만, 아이가 없던 이 부부는 키레닌을 마치 자식처럼 돌본다.
테레사의 고백대로 언제나 어렵고 불안하던 당신보다 오히려 키레닌을 더 편하게 사랑했다는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암으로 키레닌은 안락사 하고 만다.
그들을 묻으러 가던 날, 테레사는 계속 속삭인다.
이제 편안해질거야, 아름다운 세상으로 갈 거야...
똘이 생각이 자꾸 나서 마음이 아팠던 대목이다.
사비나와 테레사는 마치 동성애라고 즐기는 것처럼 나와서 당황스러웠다.
결국 아슬아슬한 선을 넘지는 않았지만 카메라 앞에서 벗겨놓고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카메라가 곧 폭력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