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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조지 오웰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읽고 있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은 가볍게 지하철 안에서 머리를 좀 식히려고 빌린 책이다
보통 내가 읽는 책들은 독서대에 책 올려 놓고 커피 준비하고, 노트와 필기구 갖춘 후, 책갈피까지 있어야 하는, 이를테면 정독을 요하는 책인데 지하철 안에서까지 그렇게 머리 아픈 책을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좀 가볍게 읽어 볼까 하고 빌렸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고 감동받고 있다
옛날에는 감동이라는 단어를, 눈물 줄줄 흐를 만큼 슬플 때만 썼는데, 요즘은 작가 생각에 100% 공감하고, 글솜씨에 감탄할 때도 쓰게 된다
어찌 보면 감탄보다 더 많은 찬사를 보내는 말이, 날 완전히 감동시켰어, 이게 아닐까 싶다
하여튼 조지 오웰, 이 사람 마음에 쏙 든다
벌써 대문호 반열에 오른 (솔직히 괴테나 톨스토이처럼 사람 주눅들게 하는 위대한 성인 같은 작가는 아니지만), 고전으로 남을 만한 책을 쓴 작가이니 나 같은 평범한 독자의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대세에 아무 지장도 없겠으나, 그러나 정말 나를 감동시킨다
이 사람이 스페인 내전에 직접 총들고 참전했다는 게 충분히 믿어진다
난 가끔 번역서가 일상의 자잘한 재미와 감동을 충분히 전달시킬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은데, (큰 줄거리라면 모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문장력기 훌륭하다면 번역해서 읽더라도 그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가난에 대해 이렇게도 상세하게,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그러나 이렇게도 재미나게 묘사할 작가가 또 있을까!!
작가각 직접 겪어 보지 않았으면 모를 일이고, 김훈이 "칼의 노래"에서 배고픔의 고달픔을 생생하게 묘사했다지만 이 책에 비하면 그건 정말 추상적이다
이 사람의 다른 책, "동물농장" 도 정말 재밌게 읽은 몇 안 되는 소설 중 하나인데 이 소설도 참 맛깔스럽다
문득 "카탈로니아 찬가"도 읽어 보고 싶어진다
밑바닥 생활이라는 제목에서 벌써 가난에 관한 얘기라는 게 짐작이 간다
가난, 언제나 비루하고 끔찍하고 남루하기 짝이 없는, 지지리도 궁상맞은 삶을 떠올리는 단어지만 위대한 작가에 의해 묘사되니 그것도 나름 매력적으로 들린다
물론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식의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주장 따위는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 소크라테스는 배가 덜 고팠던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얘기하는 가난이란 책을 사 볼 돈은 물론 며칠을 굶어야 하는 절대 가난을 뜻한다)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삶도 위대한 작가가 맛깔나는 문장으로 풀어쓰면 나름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게 살짝 위안이 된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이 구질구질한 상황도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위로받고 재미나게 생각될 여지가 있다는 얘기로 들리니 말이다
그런데 저자는 대체 언제쯤 이런 극도의 가난을 겪어 봤을까?
저자에 관해 아는 게 거의 없어서 잘 매치가 안 된다
아마 내가 책을 끝까지 안 읽어 봐서 그럴지도 모른다
첫 부분에 저자가 나중에 부자가 된다는 암시가 있기 때문이다
하여튼 접시닦기는 노예의 노예라는 식의 재치가 번득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묘사가 가득한 이 책이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원어가 아닌 한국어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