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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1. 독립기관
누군가를 위해 우는 것은 한심한 일이 아니다.
고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은 조금이라도 오래 그 사람을 기억해 주는 것뿐이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으로 남긴다.
독립기관: 본인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타울적인 작용기관
우리 인생을 저 노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음을 뒤흔들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고 때로는 죽음까지 몰아붙이는 그런 기관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분명 몹시 퉁명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혹은 단순한 기교의 나열로 끝나 버릴 것이다.
2. 예스터데이
우리는 누구나 끊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다.
스무살이던 시절을 돌아보면 떠오르는 것은 내가 외롭고 한없이 고독했다는 느낌뿐이다. 나에게는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연인도 없었고 흉금을 터놓고 대화를 나눌 친구도 없었다. 하루하루 뭘 해야 좋을지도 알지 못했고 마음속에 그리는 장래의 비전도 없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내 안에 깊이 틀어박혀 있었다.일주일 동안 거의 아무와도 말을 나누지 않은 때도 있었다. 그런 생활이 일년 쯤 이어졌다. 긴 일 년이었다. 그런 시기가 혹독한 겨울이 되어 나라는 인간의 내면에 귀중한 나이테를 남겼을지 그것까지 나는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근사하게 들리는 충고를 하고 있어보이는 말을 던지지만 그건 나의 내면과 다를 수 있다. 그냥 아무 것도 없어서 텅 빈 마음이어서 그런 말이 더 쉽게 나왔을 수도 있다.)
그 시절 매일밤 나도 둥근선창으로 얼음달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두께 이십센티에 단단히 얼어붙은 얼음달을
4. 기노
물론 처음에는 큰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 제대로 뭔가를 생각할 수 없는 상태가 이어졌지만 이윽고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에는 이런 날을 낮닥뜨리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아무런 성취도 아무런 생산도 없는 인생이다. 누구를 행복하게 해주지도 못했고 나자신을 행복하게 하지도 못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도데체 어떤 것인지 이제 기노는 이렇다 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었다. 고통이나 분노 실망 체념 그런 감각도 뭔가 또릿하게 와 닿지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렇듯 깊이와 무게를 상실해버린 자신의 마음이 어딘가로 맥없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둘 장소를 마련하는 것 정도였다.
어디에선가는 현실과 이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게 된다. 나는 어디에도 없는 사람이 된다.
기노는 그 방문이 자신이 무엇보다 원해왔던 것이며 동시에 무엇보다 두려워해왔던 것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다. 양의적이라는 건 결국 양극단 중간의 공동을 떠안는 일인 것이다. 상처받았지 조금은? 아내가 그에게 물었다.
나도 인간이니까 상처 받을 일에는 상처받아. 기노는 대답했다.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적어도 반은 거짓말이다. 나는 상처받아야 할 때 충분히 상처받지 않았다. 고 기노는 인정했다.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
자신의 비좁은 세계로 도망쳐 그 안에 틀어박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아무것도 보지마. 아무것도 듣지마. 하지만 그 소리를 지워버릴 수는 없다. 설령 세상 끝까지 도망치고 양쪽 귀를 찰흙으로 막아버린다 해도 살아 있는 한 의식이 실날만큼이라도 남아있는 한 노크소리는 그를 쫒아 올 것이다.
그것은 그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사람은 그런 소리로부터 완전히 도망칠 수 없다.
유리창너머로 무엇이 보일지는 대강 상상되었다. 아니 그렇지 않다. 상상은 되지 않았다. 상상한다는 두뇌활동 자체를 지워버려야 한다. 어쨌든 나는 그것을 내 눈으로 차마 볼 수 없다. 아무리 텅 비었을지라도 그것은 아직까지는 내 마음이다. 어렴푹하게나마 거기에는 사람들의 온기가 남아있다.
몇가지 감정은 베어내면 필시 붉은 피를 흘리리라. 아직은 그 마음을 영문 모를 곳으로 떠나보내 헤매게 할 수는 없다.
그래 나는 상처받았다. 그것도 몹시 깊이 기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어둡고 조용한 방안에서
그동안에도 비는 끊임없이, 싸늘하게 세상을 적셨다.
5. 드라이브 인 마이카
우리가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설령 그 사람을 깊이 사랑한다고 해도
책을 정리하면서 책속의 문장들을 모아둔다.
책의 내용이 아닌 문장들이 필요하거나 위로가 될 때가 있다.
다시 읽은 하루키는 음....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가 정말 잘 만든 영화라는 걸 느낀다.
이 소설집 <여자없는 남자들>의 각 단편의 여러 부분을 모아서 근사한 영화를 만들었다.
여자 기사를 고용한 배우 (영화에서는 배우이자 연출가) 차안 테이프에서 나오는 바냐 아저씨의 대사들, 섹스를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자,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자신의 흔적은 은밀하게 남겨놓은 소녀, 아내의 외도 장면을 목격하고 그대로 집을 나온 남편, 그리고 아내 정사 대상과 나누는 이야기들
여기저기서 뽑은 장면들이 모여 꽤 좋은 이야기 한 편이 되었구나
여자없는 남자들이란 남자들의 세계 라는 땀냄새가 풍길 것 같은 존재가 아니라 여자가 있었다가 없게 된 남자들, 그러니까 남겨진 남자들 땀냄새보다는 향수냄새가 은근히 남아 있는 조금은 관리한 모습이 흐트러지기 시작한 남자들의 이야기다.
아예 없던 것보다 있다가 없는 것이 더 상실감과 외로움을 준다.
있을 때는 몰랐다가 부재하는 순간 느끼는 것이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라는 걸 그들은 여자들이 없고서 비로소 알게 된다. 조금은 찌질하고 난감하고 귀찮은 남자들이다.
중년의 남자들이 나오는 (드라이브 인 마이카 영화에 차용된) 이야기들은 그냥 하루키의 세계구나 하는 걸 느낀다.
다시 읽었을 때 남는 건 젊은 청년의 이야기인 예스터데이다.
이 역시 이해한다고 생각했던 친구를 잘 알지 못했음을 느끼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 둘 사이의 어떤 여자에 대한 선망과 생각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나는 하나의 성장소설처럼도 보였다.
화자가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고 잘 지내고 있다. 외형상 좋은 대학을 갔고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은 가족이 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사회성도 좋지만 사실 그렇게 보여진 모습과 달리 혼자 빈 시간을 계속 견디고 있었다는 말미의 묘사들이 좋았다.
사실 젊음이 싱그럽고 찬란하다는 건 그 시간을 지난 사람들의 후일담일 뿐이다.
그 시간을 지나는 사람들에게는 그 시간이 견디는 시간일 수 있다.
무엇도 되지 못한. 그러나 무엇이 되기를 기대하며 바라보는 시선들에 둘러싸인,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 즐겨야 한다. 외향적이어야 한다. 도전해야 한다. 등등등
그런 말들을 기성세대는 아무 생각없이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하나하나가 다 부담일게다.
화자는 자신의 친구를 보면서 툭툭 던지는 말들, 말하지 못하고 에두르는 표현들에서 친구를 한심하게 보기도 하지만 자신 역시 한심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나중에 어른이 되어 고백한다. 그때 친구의 여자친구가 들려준 얼음달의 꿈 이야기를 들으며 아주 작고 사소한 위로가 되었을까. 그렇게 화려하지만 허망한 달 반쯤은 물에 잠겨서 언젠가 녹아내려버릴 달., 그러나 매일 다시 그 달을 바라보는 꿈을 꾸는... 그 달이 나에게도 위로가 되었기를
하루키의 남자들은 여자를 동경하고 숭배하지만 그 마음이 존중은 아닌 것 같아서 조금 아니 많이 씁쓸하다. 그냥 바라보는 대상일 뿐이다. 대상은 화려하고 멋질수록 좋은 법이니까
그냥 나와 같은 인간으로 함께 삶을 살아가는 동반자 라거나 동료가 아닌 바라보고 숭배하고 감탄하는 존재로서 바라보고 그 부재를 슬퍼하고 후회하는 인간들이라....
읽긴 하지만 별루다.
책을 정리하기 전 다시 읽으니 정리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