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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병호의 대한민국 기업흥망사 - 실패의 역사에서 배우는 100년 기업의 조건
공병호 지음 / 해냄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진로. 쌍방울, 우성, 새한, 뉴코아, 대농, 한일, 갑일, 쌍용, 해태, 한보, 극동, 동아 그리고 대우.
이 이름들의 공통점은 외환위기와 함께 사라져간 재벌들이란 것이다. 외환위기는 재벌의 위기였다. 그러나 그 위기는 2류 재벌의 위기였다. (다음은 외환위기에 대해 썼던 글을 재활용한 것이다. 외환위기에 대해 새로 쓰기엔 게으름을 이길 수 없었다.)
“외환위기는 공식적으로 1997년 11월 7일 환율절하와 함께 시작되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위기는 1996년부터 시작되었다. 1995년부터 수출이 줄면서 내수가 위축되었고 1996년 이틀에 하나씩 189개 건설회사가 파산했다(그 중 대다수는 대형건설사들이었다). 건설업이 무너지면서 철강수요가 줄어든데다 자동차, 기계, 전자, 조선업 등 수출부문의 수요감소가 겹치면서 1993-95년 반도체 호황으로 내수경기가 좋을 때 시설을 확장한 한보, 삼미, 기아가 차례로 무너졌고 역시 호경기 때 사세를 확장했던 해태, 뉴코아, 대농, 진로, 한신 등 내수부문의 재벌들이 무너졌다. 1999년 5대 재벌 중 대우가 파산할 때까지 25개 재벌이(이중 40%는 외환위기 직전에) 빚의 무게에 압사당하면서 외환위기는 막을 내린다.
그러나 정작 수출을 주도하던 삼성, LG, 현대, 대우는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대우의 파산은 자동차 산업에 무모한 투자를 한 것이 원인이지 전자산업과는 무관하다. 1995년 주력인 반도체 부문의 수익이 감소하자 삼성전자는 TV, 냉장고, 핸드폰 등의 마케팅에 주력했다. 1996년 반도체 판매가 17% 감소했지만 비 반도체부문 매출이 31% 증가하여 삼성전자의 1996년 매출은 1995년을 상회한다.
‘계란은 한 바구니에 담는 것이 아니다’는 속담처럼 다각화는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한 전략이다. 그러나 2류 재벌들은 그러한 전략을 구사하기엔 너무 작았다. 리스크를 분산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매출을 자동차, 철강, 건설, 유통 등 특정 시장에 의존하던 한보, 삼미, 기아. 해태는 파산할 수 밖에 없었다. 2류 재벌들이 무너지면서 상위재벌들의 경제지배력은 더욱 강화된다. 1996년에서 1999년 30대 그룹 중 4대 그룹의 자산은 전체의 48%에서 58%로 증가하였다.
경제의 집중도가 높으면 기업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어떤 중간재를 만들던 그룹 안에서 대량으로 소화할 수 있으므로 다양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합리적이며 경제전체로 볼 때 제품의 다양성이 줄어든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것을 내부에서 해결하는 수직계열화는 거대한 고정비용을 만든다. 부품과 원료를 내부에서 조달한다면 중간재를 공급하는 자회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동일한 투자로 되도록 더 적은 품목에 더 많은 물량을 만들어야 비용을 낮출 수 있고 그룹 전체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재벌은 소수의 산업에서 적은 품목의 제품을 만들게 되었고 철강, 자동차, 전자제품, 반도체 등 규모가 클수록 유리한 시장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했으며 이윤율보다는 규모와 시장점유율을 우선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시장구조에서 재벌이 만드는 제품의 다양성은 줄어들었고 반도체 등 재벌의 주력시장이 침체된 것이 외환위기의 원인이 된 것처럼 해당 시장의 주기에 따라 재벌에 의존하는 한국경제 역시 번지점프를 하면서 외적 충격에 취약한 경제구조를 갖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과 (경제집중도가 낮은)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비교하면 한국은 시장규모가 큰 메모리에 특화되어 있었고 대만은 특수한 목적에 맞춘 소량, 다품종 생산에 특화되어 있었다. 물론 장난감 강아지가 ‘왈왈’ 짖는 소리를 내는데 쓰이는, 주문자의 필요에 맞추는 칩들이 반도체 시장의 꽃이라 할 수는 없고 그러한 차이는 수출규모의 차이로 나타났다. 반도체뿐 아니라 상위 재벌들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에 특화한 것 역시 동일한 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리스크가 크게 마련이다. DRAM 가격이 오르면서 공급이 늘었고 공급이 늘면서 1995년 $54이던 16M DRAM의 가격은 1996년 $13, 1997년 $3로 폭락한다. 메모리 가격이 떨어지면서 다양한 제품을 만드는 대만은 다른 제품을 팔아 충격을 비껴갔지만 수출의 12%를 메모리에 의존하던 한국은 충격을 완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환위기를 겪게 된다.
1995년 30%에 달하던 수출증가율은 1996년 마이너스로 돌아선다. 반도체뿐 아니라 1996년 한국의 주력시장인 석유화학, 철강, 전자 시장에서 평균수출가격은 1995-96년 6%, 1996-97년 15% 떨어진다. 그러나 다양한 제품을 수출하는 대만의 수출단가는 같은 기간 한국의 반정도 떨어지는데 그쳤다.
그러나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파산한 것은 수출기업이 아니라 건설, 철강, 유통 등 내수업종에 종사하는 2류 재벌들이었다. 충분히 다각화되어 있는 상위재벌들은 리스크를 회피하기에 충분히 다양한 제품군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상위재벌들에게 자원이 집중된 결과 경제 전체로는 다양성이 작아질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외부충격에 취약한 경제구조로 나타났으며 그 극적인 결과가 외환위기였다.
철강, 건설업종의 과잉투자를 외환위기의 원인이라 말한다. 상위재벌이 지배하는 전자, 자동차 등과 달리 철강, 건설업은 진입장벽이 낮은 업종이었다. 외환위기로 무너진 2류 재벌들은 5대재벌의 지배력이 덜한 업종에 진출할 수 밖에 없었다. 수출수요가 갑작스럽게 감소하면서 경제전체가 충격을 받았을 때 5대재벌에선 1/5이 2류 재벌에선 반이 3류 재벌은 1/3이 무너져 2류 재벌이 가장 심한 타격을 받았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력은 더욱 집중되었고 경제의 활력은 집중도와 반비례해 줄어들었다. 저성장, 양극화는 집중도 증가의 결과이다. 오늘날 한국경제를 먹여살리는 산업은 전자,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등이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70년대에 씨가 뿌려진 산업들이라는 것이다. 그 이후 한국경제의 역동성은 사라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때 벤처붐이 한번 있었다. 경제력 집중이 완화되고 경제의 성장동력이 만들어질 것이라는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잊혀진 꿈에 불과하다. 외환위기로 그 많은 2류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들의 생존은 87년에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책에서 다루어지는 사라진 재벌들의 대다수는 다각화에 실패해 무너졋다. 다각화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다각화는 분명 필요햇다. 주력업종이 사양길을 걷고 있거나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할 수 없거나 업종 자체의 성격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변덕이 심한 널뛰기를 하거나 이책에서 다루어지는 2류들이 다각화를 한 이유는 여러가지이다. 대부분은 87년을 전후한 충격에 대한 대응이었다고 볼 수 있다. 몇 년만에 임금이 3배가 오르면서 사업성이 없어진 섬유업종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책은 2류 재벌들이 직면했던 구조적인 문제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언제 사업이 어렵지 않은 때가 있었는가? 언제 어디서나 어려움은 차고 넘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문제를 인식하고 해법을 내놓는 사람이 문제이다. 저자의 관점은 그런 것같다.
실패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은 배우기 위해서다. 성공사례를 보아 봤자. 배울 것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성공이 그때 그 사람에게 특수한 상황이고 행운인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을 해서 성공할 확률은 0.3%이다. 어떤 새로운 기술을 기초로 제품을 만들려는 회사를 차린다고 하자. 회사가 성공하려면 자금, 사람, 설비, 고객 등 10가지 요소가 필요하고 이 모든 것이 맞아떨어질 뿐더러 서로 상승작용을 해야 성공을 한다. 드물 수 밖에 없다.” (‘실패학의 법칙’ 리뷰에서)
실패도 성공만큼이나 드물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산업재해보험사의 조사관이었던 하인리히는 하나의 사고가 나기 전엔 29건의 사소한 사고가 있었고 300건의 아차할 뻔한 불발사고가 있었다고 말한다. 사고 즉 실패가 나올 확율은 0.3% 이하이다.
그러나 실패는 성공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사고를 막으려면 28건과 300건의 불발사고가 났을 때 메커니즘을 고치면 실패를 막을 수 잇다. 성공처럼 10박자가 맞아떨어져야하는 어처구니없는 수준의 확률을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2류 재벌들의 실패를 돌아보는 것은 87년을 전후해 한국경제의 체질변화란 도전이 무엇이엇는가보다 그 도전에 응전하는데 왜 실패했는가 그들의 대응에서 어떤 메커니즘이 잘못되었는가를 돌아보는 것이다. 저자는 무너져간 2류들이 왜 망했는가를 더듬으면서 많은 경우 피할 수 있는 인간적인 이유들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여러가지 이유를 들고 있지만 과욕, 과신, 과속의 3과로 요약한다.
대우의 예를 들어보자. “나는 일을 벌이기를 좋아한다. 도대체 가만히 잇지를 못하는 편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여야 한다.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자꾸만 일을 만들어내게 된다.” 김우중 전회장의 말이다.
저자는 대우의 성공과 실패가 모두 이말에 있었다고 말한다. 많고 세계는 넓다는 ‘세계경영’은 일 벌이기 좋아하는 김우중 철학의 궁극이엇다. 그러나 “전선은 엄청나게 넓어졋지만 실질적인 경영은 현장의 전문경영인이 아니라 여전히 김우중 회장 혼자서 진두지휘하는 형식이엇다. ‘대우그룹이 그처럼 전선을 넓히는 세계경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시스템적 노하우를 갖고 잇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기업 확장전략에서는 시스템적인 접근보다는 김 회장의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 부분이 많았다. 대우그룹의 문제는 기업 규모가 재계 3위로 커졌는데도 김회장이 혼자 끌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 점이었다. 과감한 도전 정신이 무모함으로 연결되지 않기 위해서는 체계화된 과정을 통해서 육성되는 실질적인 경영자 풀이 존재해야 했다. 그리고 회장은 자신의 능력을 과도하게 신뢰하지 않고 권한위임으로 각자가 자기 역할 이상을 맡도록 독려해야 햇다.” 그러나 일 벌이기 좋아하는 부지런한 오너는 권한을 위임하지 않았다. 사람을 키우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을 거수기로 만들었으며 시스템도 갖춰지지 않았다. “제대로 사람 움직이기가 사업의 핵심이라면 김우중회장은 매우 중요한 조직관리 부분에서 실패를 보이고 말앗다.”
지금 와서 대우와 함께 죽어간 기업들에게 이책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의 죽음이란 수업료를 내고 가르쳐준 교훈은 기억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