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 - 알래스카와 참사람들에 대한 기억
이레이그루크 지음, 김훈 옮김 / 문학의숲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올해 가장 추운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울의 온도는 영하 15도였고 체감 온도는 그보다 더 낮았다. 더욱이 엄청난 폭설로 인해 차가 다니지 못했고, 지하철은 만원 사례였다. 눈을 치우고 치워도 끝 없이 쏟아지는 눈발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거리를 돌아다니면 곳곳에 녹지 않는 눈이 많이 쌓여 있고, 치웠다 할지라도 검은 먼지가 묻은 눈은 자칫 공사중인 파편마냥 산처럼 쌓아져 있었다. 볼이 얼얼하고, 손끝이 저릴 정도로 시렸던 날씨를 체감하며 절로 알레스카의 이누피아트 족의 생활이 생각났다.

추운 날씨에 몸을 웅크리며 있었더니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 갑자기 왼쪽 어깨가 아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처음엔 잠을 잘 못 자서 그런가 했는데, 어제는 잘 때 고개를 가눌수가 없어 조금만 움직여도 눈물이 핑 돌았다. 옆에서 엄마가 1시간 가까이 주무르고 나서 까무룩히 잠이 들었다. 겨울에 춥다고 웅크리고 들어앉아 있다보니 몸이 경직되서 근육통을 일으키다보니 새삼 이레이그루크가 쓴 알래스카에 살고 있는 이누피아트 족의 사람들이 생각났다.

움직이는 것조차 아파 엎드리지 못하고 앉아서 보다가 누워서 보다가 천천히 보기는 했지만 너무 아파 이레이그루크가 쓴 이누피아트 족의 생활 속에 푸욱 빠져 들지는 못했다. 서울의 한파가 매서웠던 것 보다 훨씬 더 추운 알래스카의 겨울은 아홉 달이나 계속 된다고 한다. 한 겨울이면 24시간 내내 밤이 계속되며, 태양이 지평선 위로 고개를 들지 못한다고 한다. 거센 바람이 자주 벌어 밖에 나갈  엄두도 낼 수 없는 날이며 그들은 이트랄리크라고 부르는데 '살점이 떨어져나갈 만큼 혹독한 추위'라고 하니 상상도 못할 추위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에스키모인이라고 부르는 에스키모는 사실 서양에서 부르는 말이다. 원래 이름은 이누피아트 족. 날짜 변경선 동쪽으로 80킬로미터 떨어진 해안에서 태어난 저자 이에이그루크의 성장기와 더불어 알래스카에 사는 이누피아트 족을 알 수 있는 최초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가족은 전통적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 가장 혹독한 환경들 중의 하나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통해 모든 것을 배우고 익혔다. 우리 친척들 대부분은 설사 글을 읽고 쓰는 법을 배웠다 해도 기껏해야 초등학교 과정에서 배운 게 전부였다. 초등학교를 다녔다 해도 사오 학년 과정 이상을 다닌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보다 더 나이 든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몸이 튼튼한 남자아이들은 사냥하고 덫을 놓고 물고기를 낚고 개썰매를 끄는 일을 거들어야 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관례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 p. 114

 미국의 역사에 관심도 많지만 그들이 미국을 세우기 이전, 원주민들의 역사에도 관심이 많은 나는 <내일로부터 80킬로미터>가 서양인의 시선이 아닌 원주민인 이레이그루크의 시선을 통해 느껴보고 싶었다. '에스키모'라는 말도 나는 원래 원주민의 이름이 그렇게 불려진지 알았는데 이 책을 읽고서야 서양인이 그들을 보고 지은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40년대에 내가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원래 인디언들을 미국인들의 삶에 동화시킬 목적으로 설계된 인디언 사무국의 교육 시스템은 원주민들의 전통적인 정체성과 지식의 모든 흔적을 아주 효과적으로 말살하는 기능을 하고 있었다. 원주민들이 이제는 미국들의 삶에 어떤 위협을 가하지 않는데도 선교사들은 원주민 아이들을 전통의 뿌리와 단절시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아이들을 자기네 문화로부터 분리시키고 과거의 생활 방식으로부터도 단절시켜 옛 세계와 새 세계 사이의 어느 지점인가에 고립시키자는 것이었다.

 

1890년대 말부터 20세기가 한참 지날 때까지 원주민 학생들은 학교에서 자기네 모국어를 사용해서는 안 되었으며, 심지어는 학교 밖에서조차도 쓰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생략) 그러는 한편 수업을 진행할 때는 원주민들의 역사, 유서 깊은 음악과 미술과 참에 관한 내용은 의도적으로 전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갔다. - p.116

새롭게 개척된 땅이 아니라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나라의 주권이 개입되고 그들의 생활 방식을 바꿔 놓는다. 다른 나라의 식민지를 개척하듯 미국 또한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문화를 단절시켰다. 미국의 연방 정부나 주정부에게 빼앗길 위기해 처 있을 때, 저자가 신문기사를 보고 놀라 동분서주한 기록들이 함께 담겨져 있어 더욱더 실감나게 그들의 삶을 알 수 있었다. 함께 나누고, 협동하면서도 극강의 추위 속에서 살아가는 강인하면서도 지혜로운 이누피아트 족의 지혜와 순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성장기를 통해 양부모님과 형제들의 삶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 좀 더 세밀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이끌어 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어떻게 커왔고, 어떤 것을 배웠으며 알래스카에 살아가는 원주민이 아무것도 모르고 땅을 빼앗길 무렵 그는 원주민의 대표로 나서서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는 내용과 함께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 도구나, 집, 그들의 사진과 함께 주정부를 통해 어떻게 노력을 했는지에 대한 사진을 함께 볼 수 있었다면 더욱더 알찬 책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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