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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호의 인연 - 최인호 에세이
최인호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12월 31과 1일의 경계선에 선 그 시각, 나는 엄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방으로 돌아왔다. 그러고도 쉬이 눈이 감기지 않아 다시 불을 켜고 노트와 펜을 꺼내 들었다. 2010년 한 해에 대한 계획을 세우며, 2009년과는 다르게 꼼꼼하게 계획을 세웠다. 사각사각 노트에 촘촘하게 글을 메우고서야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한참 곤하게 자는데 '딩동'하는 문자음이 크게 들려왔다. 확인을 안하면 2분마다 울리는 설정을 해 놓았더니 이른 아침 알람이 되어 나를 깨웠다. 졸린 눈을 비비며 확인을 해보니 친구에게 온 메세지였다. 한 해의 덕담이 가득 담긴 메세지를 보며 나도 눌러지지 않는 버튼을 손으로 꾹.꾹. 눌리며 메세지를 보냈다. 연말의 끝과 새해에 많은 문자 메세지들을 받으며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덕담을 보내주시는 나의 인연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꼈다. 올해는 시기마다 번번히 '핀트'를 놓치는 무심하고 덤덤한 나의 모습이 아니라 바지런하게 지인들과 좋은 인연을 가꾸어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해본다.
파스텔 톤의 물감이 한방울 툭, 번지는 것처럼 살다보면 오랫동안 이어져 오는 '인연'들을 만난다. 첫 날 노(老)작가의 인연을 만나며 붓글씨로 쓴 '인연'의 글귀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또 다른 책인 작가 피천득의 <인연> 또한 생각이 나는 만큼 '인연'이라는 두 글자가 크게 다가온다. 이런 노(老)작가가 아니고서야 쉽게 이름붙일 제목이 아닌 것이다. 밤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별처럼 수 많은 사람 중에 그 사람을 만나, 마음을 나누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로 매김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작가 최인호는 말한다.
해방둥이인 그는 중학교 때 변호사인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형과 누이, 동생과 함께 살던 가난한 시절을 추억한다. 대학 때 캠퍼스에서 아내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고, 달콤한 신혼생활을 추억하는가 하면 가난했던 날을 기억한다. 가족들간의 얽힌 추억과 자신을 형성하고 인연을 이어온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고해성사하듯 신에게 기도드리는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의 글을 읽노라면, 세월이 흘러 낡아져서 버려하는 물건임에도 함께한 시간과 추억이 얽혀져 있어 버리지 못한다는 그의 말에 나 또한 절로 끄덕거렸다. 나 또한 한번 손에 쥔, 물건들은 왠만해서는 버리지 못하고 챙겨두곤 하는데 그럴 때 마다 왜 새 것을 두고 헌 것을 고집하냐고 하지만, 그 속에 닳고 달은 내 지문과 추억담이 섞여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물건'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 뿐만 아니라 물건도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다. 요즘 나의 식으로 말하자면, 책도 하나의 인연으로 얽혀져 나에게 다가온다. 하루에도 수십만권의 책이 쏟아지는 가운데 선택 되거나 선택 받아져 오는 것 또한 보이지 않은 실타래로 묶인 하나의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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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러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이다. 이 별들이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소명하는 것은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다. 나는 너의 빛을 받고, 너는 나의 빛을 받아서 되쏠 수 있을 때 별들은 비로소 반짝이는 존재가 되는 것. - 머리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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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들어서 그런지,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자주 마주치게 된다. 되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시간 속에서는 스쳐간 인연들과, 현재 나를 지탱해주고 사랑주는 인연들과, 앞으로 만나야 할 인연들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이 폴폴 내리는 요즘, 인연이란 무릇, 눈을 밟는 것처럼 마음의 눈을 뽀드득,뽀드득 밟고 지나온 시간들을 함께 공유하는 사이를 말하는 것일지도. 103년만에 내리는 폭설 속에 상념만 많아져서 큰일이다. 새해에 공기 안 좋은 서울을 덮어 버리듯, 새하얀 세상으로 변해버린 눈길속에 또 하나의 인연을 만나 추억과 인연들을 만나고 생각한다. 앞으로 만날 수 많은 인연들과의 좋은 조우를 위해, 오늘도 내일도 스쳐간 바람이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인연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간절히 읊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