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평점 :
헌책방에서 그녀의 책을 사려다 1.2권이 판형이 맞지 않아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왔던 적이 있었다. 그 후 그녀가 웹에서 연재하고 묶은 따끈한 신간을 품에 안았다. 영화 밀애의 원작자이기도 한 그녀의 글은 제목이나 표지에 그려진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식사'를 떠올리게 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게 만든다. 마네가 '풀밭 위의 식사'를 출품 하기 이전에 '목욕'이라는 제목을 써서 출품했지만 평화로운 풀숲에서 여자의 '누드'는 외설적이라는 비난과 조소를 받은 작품이었다.
마네의 그림의 제목을 딴 이 소설은 단순히 제목만을 차용했는지, 아니면 비난과 조소를 받을 작품인지 그 내용이 궁금했다.'풀밭 위의 식사'는 누경과 강주, 기현 세 사람의 '사랑'이야기다. 공기 중에 떠도는 미세한 먼지같이, 조용한 수면에 돌을 던지듯이 파르르 떠는 물결처럼 누경의 마음을 묘사한다. 이 소설을 읽고 있으니 문득 몇 년전에 보았던 여명과 서기가 주연한 '유리의 성'이 생각난다. 그때 친구와 그 영화를 보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결국은 그들은 '불륜커플'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가 하면 '사랑'이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이름이 붙듯이.
영원과 순간의 억눌린 틈에서 흘러나오는 사랑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엇이 될까? 갈망, 불가능, 광기, 죽음······ 당신을 사랑해요 대신, 당신을 갈망해요 라든가, 당신이 불가능해요 라든가, 당신에게 미쳐요 라든가, 혹은 당신은 나의 죽음이에요 라고 대체할 수 있을까. 안으로 파고들수록 점점 더 비켜나고 사랑한다고 말할수록 더욱더 외로워지고 마음이 첨예해질수록 점점 더 협소해진다. 특히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는 사이일 때. - p.159
누경과 강주의 사랑은 많은 장벽이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누경의 나이 열 여섯일 때 강주는 결혼을 했고 이미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되었다. 나이가 든 강주의 모습을 보면서 올곧은 판단을 하는 그에게 '동경'이 생겨났고, 또 그를 보면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되면서 그는 더 그에게 빠져든다. 단순히 나이가 든 남자와 젊은 여자와의 관계가 아니라 그들의 결합은 마음속에 격렬한 전쟁이 치러지듯 불꽃이 터질지라도 그 사랑이 언젠가 깨질지 모르는 '유리알 사랑'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수십번 마음의 날씨가 변하는 누경의 변화는 유리를 만지는 공예가로서의 직업과 맞닿아 있다. 높은 고열로 만들어지는 유리가 조그마한 문제에도 틀이 변하고, 쉽게 깨지는 것 처럼 그녀의 마음은 늘, 우중충한 날씨의 변화를 겪고 있었다. 누경의 깊은 '사랑않이'는 남의 사람인 강주를 내 사람으로 만들 수 없는 경계선에서 멀어질 수 밖에 없는 아픔인지,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갖고 있는 특권인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녀가 겪는 사랑의 격렬함은 이미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사랑않이보다는 더 크고, 미세한 작은 떨림마저도 마음의 파장이 되어 되돌아 나간다.
병을 않고 있는 누경과, 누경과 다른 병명을 않고 있는 강주와 그것을 지켜보는 남자 기현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말하는 보편적인 사랑이야기의 범주를 넘어 '기형적인' 사랑을 지니고 아파하는 남녀의 사랑을 그린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나를 누군가의 심장에 담아지는 '사랑'은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소유하지 않는 '남녀'를 이야기 한다. 사랑에 있어 조금은 고지식하고 완고한 면이 있는 나에게는 누경의 사랑은 '독'이자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이었다. 한 사람을 오롯하게 담아내는 것, 그것을 지켜내고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