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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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표지 그림이 딱 오베 아저씨다.  59세보다는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책 속 오베 아저씨가 실제로 존재 한다는 이런 모습일것 같다.  완벽하게 각잡힌 모습이지만 짜증과 신경질로 똘똘 뭉쳐있는 남자.  아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자 말이다.  털이 듬성듬성 빠져 곁에 두고 싶지 않음에도 아내가 좋아한다는 이유 만으로 곁에 두고 있는 고양이를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어쩌지 못하고 있는 남자.  양말이나 속옷도 혼자서는 찾을 수 없고, 언제나 동일한 패턴으로 움직이지만, 아내의 말 한마디에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남자가 오베 아저씨다. 

 

 

 

무엇이든 발길질을 하며 상태를 확인하고, BMW 운전자와는 말도 섞지 않고, 키보드 없는 아이패드에 분노하는 오베 아저씨. 가장 싫어하는 광고 문구는 "건전지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까칠한 오베 아저씨가 어느 화요일 오전,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일을 하게 된다. 부엌 싱크대 앞에 서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는 일. 그리고 아저씨는 결심한다.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고리를 천장에 박겠노라고 말이다.  하지만, 본인 집에 튼튼한 고리를 박는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베 아버씨가 막 고리를 박으려는 순간, 엄청나게 귀찮고 성가신 소리가 들려오면서 고리를 박는 일은 나중에 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따라오다보면 오베 아저씨의 부인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부인에게 꽃을 사주고, 하루에 일어난 일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있는데, 부인은 답이 없다.  그리고 천정의 고리와 함께 그의 아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항상 같은 시간 같은 양의 커피를 내려 아내와 마시고, 동일한 이유로 마을 한바퀴를 돌며, 40년 동안 한 집에서 살고, 한 세기의 1/3을 한 직장에서 일한 남자가 '이전 세대'라는 이유만으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자신의 모든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던 아내가 세상을 떠나 버렸다면 어떻게 이세상을 살아 갈 수 있겠는가?  당연하게 오베 아저씨에게는 아내곁으로 따라가는 일만 남았을 것이다.  이제 오베 아저씨가 가야할 길은 정해졌는데, 59년의 삶보다도 죽음을 찾아가는 그 시간이 이렇게 힘든 일일지 오베 아저씨는 알지 못했다. 오베 아저씨가 보기엔 완전 엉망진창인 사람들이 이사를 오면서 부터 문제가 생겼다.  시끄럽고 제멋대로에 예의라고는 모르고, 자꾸 자신의 인생에 끼어들려고 하는 이 말도 안되는 이웃. 도대체 그들은 왜 오베 아저씨 인생에 끼어들려고 하는 걸까?

 

오베는 그저 평화롭게 죽고 싶을 뿐이었다. 그게 그렇게 과한 요구인가? (p.70)

 

멀대같은 패트릭과 이란인 아내, 파르바네. 제대로 하는게 하나도 없는 패트릭은 지붕위에 올라가서 다리를 다치고, 파르바네는 운전교습을 해달라고 막무가네로 우기면서 오베 아저씨 인생에 끼어든다.  그들부터 였다.  소냐의 제자인 아드리안이 나타나고, 아드리안의 친구인 미르사드가 커밍아웃을 하고, 이웃집 뚱보 지미가 오베 아저씨 인생의 자꾸만 끼어들기 시작한건 말이다.  그뿐인가?  지금까지 교류를 끊었던 루네와 그의 아내, 아니타도 신경이 쓰인다.  빨리 죽어서 소냐를 만나러 가야만 하는데, 심지어 열차에서 죽는것 조차 다른 사람이 먼저 떨어지더니, 그 사람을 구했다는 이유로 지역신문 기저인 레나가 오베 아저씨를 쫓아다닌다.  아.  이렇게 죽는게 힘든 일이었던가?

 

이렇게 오베 아저씨를 따라가다보면 죽음이 한편의 코메디처럼 느껴지고 차태현 주연의 <헬로우 고스트>가 떠오른다. 주인공 상만이 죽을려고 할때마다 실패를 하는 내용이었는데, 오베 아저씨 역시 상만과는 다른 이유로, 아저씨가 죽음을 준비할때마다 이웃들의 사고로 인해서 자살 시도는 실패를 하게 된다.  프레드릭 배크만은 오베 아저씨의 단조로운 일상과 함께 59년이라는 아저씨의 인생을 교묘하게 교차시키면서 보여주고 있다.  아저씨의 아버지 이야기. 그들이 살던 집과 소냐 아줌마를 만나고, 아줌마의 아버지를 만난 이야기, 왜 오베 아저씨가 루네 아저씨와 원수가 되었는지, 소냐 아줌마가 휠체어를 타야만 했는지까지 오베 아저씨가 소냐아줌마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아저씨의 일생을 그려내주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아저씨에 대한 모든것을 알아갈 즈음에는 아저씨가 사랑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미소짓지 않고, 고집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베 아저씨는 요즘 아이들 말로는 '츤데레'에 딱 맞는 사람이다.  무뚝뚝한거 같지만, 친절한 사람.  자신이 친절을 베풀려는 의도는 조금도 없었겠지만, 아저씨의 행동들은 결론적으로는 선한 방향으로 향해있고, 어쩌면 소냐 아줌마가 보이지 않은 손길로 남편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으로 이끌어 낸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수가 없다.  오베 아저씨가 죽음을 선택하려 했던 이유도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선택하려던 순간 오베 아저씨 주위로 한사람 한사람 모이면서 오베아저씨는 더이상 외로운 존재로 남지 않게 된다.  파르바네가  "젠장, 오베는 이거 진짜 싫어했겠다. 그치?"(p.450)라고 말하는 그런 날들이 오는것처럼 말이다.  선한 영향력은 빛이 어둠을 몰아내는 것처럼 의도하지 않아도 그냥 흘러 나가는 그런 힘이 있고, 오베 아저씨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순간 선한 영향략을 펼치고 있으니, 소냐 아줌마의 힘이 가장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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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의 나라
김나영 지음 / 네오픽션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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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이라는 작가명이 생소하게 다가왔다.  인터파크 주최 K-오서어워즈 최종후보작 선정이라고 되어 있으니, 필력이 대단하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신예작가에겐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작가의 필명이 '수(秀)'가 아닌가?  웹소설로 처음 만났던 『이매망랑애정사』의 저자가 '수'였는데, '수'작가가 김나영 작가라니 책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삽화는 좀 유치하다.  도박판을 다룬 영화들을 워낙에 많아 봐서 그랬을수도 있지만, 사자탈을 쓴 여자 아이라니...  게다가 전작만큼 달달한 표지도 아니고 말이다.  『야수의 나라』는 도깨비의 사랑이야기인 『이매망랑애정사』에서 만났던 달달함은 찾아볼 수가 없지만 펼치는 순간 페이지가 넘어가 버린다.  짧은 호흡에 글로 되어 있어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고,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몰입도도 높다.

 

 

 

"아까 그자가 속임수를 쓰긴 했네.  그런데 그 속임수 말이야.  자기가 이기려고 쓴 게 아니었어." (p.15)

 

도박은 확률 게임이라고들 이야기 하지만, 프로 도박사들이 가득한 곳에서는 이길 수가 없다고 이야기들을 한다.  영화를 통해서 만났던 천재적인 도박사들도 결국엔 빈털털이가 되거나 죽음을 따라가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기에, 김나영 작가가 그려낸 도박판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카드가 그냥 계산이 된다는 천재 도박사, 이정연의 아들인 '재휘'는 양아버지인 용팔을 따라 도박판을 전전하면서 살아간다.  상대방의 패를 눈빛으로 읽어내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재휘.  재휘와 용팔은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여고생 '선영'을 만나게 되면서 서로 의지하는 가족이 된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은 도박판에 강회장으로 인해 부모를 잃은 재휘와 선영은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만, 어느새 이야기는 그들과 강회장의 싸움으로 압축되어진다.  내가 알고 있는 도박은 '타짜'나 '신의 한수'에서 만났던 내용들이기 때문인지, 책을 읽으면서 만나게 되는 에피소드들은 영화 속 이야기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잔인하고 힘으로 군림하고 있는 도박사와 천재적이지만 약점을 가지고 있는 도박사.  도박으로 딸까지 팔아버린 아버지임에도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가는 선영과 선영이 유일한 약점인 재휘.  비열한 도박판에서도 너무나 인간적인 용팔.  도박이 이토록 화려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책은 몰입도가 높고, 영화의 한장면들처럼 머리속에서 휙휙 지나가 버린다.   

 

분명 재미있다.  몰입도도 강하고, 내가 좋아하는 결말로 그려내고 있다.  게다가 천재적인 능력이 자식에게 이어지니,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는 없다.  어디선가 본듯하고, 읽은듯한 이야기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책을 읽으면서 이야기가 눈앞에 펼쳐진다는 건 분명 작가의 필력이 그만큼 뛰어나다는 이야기인데, 왜 이 이야기들이 이렇게 익숙하게 다가오는 걸까?  달달한 로맨스가 아닌, 새로운 소재로 가독성과 트렌드를 버무려 놓은 것은 좋았지만, 너무 흔한 이야기들의 집합이라 아쉬움이 남는지도 모르겠다.  김나영 작가는 근사한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는 능력이 무한한 작가이기에 기대가 컸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녀의 다음 작품은 기다려지는 이유는 이야기를 펼쳐내는 작가의 필력엔 분명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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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조선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78
김소연 지음 / 비룡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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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는 요즘 역사수업으로 조선을 만나고, 초등학교 6학년인 작은 아이는 작년에 대한제국까지의 역사를 만났었다.  아이가 수업시간에 역사를 통해 과거를 만나게 되면 엄마 역시 아이들과 함께 역사를 만나게 된다.  책으로 만난 역사는 엄마가 더 많으니, 아이들과 드라마나 소설책을 읽을때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해주곤 했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조선이 정확한 정보였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니 모르겠다.  몸으로 겪지 않은 이야기는 그저 이야기일 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굿바이 조선』속 알렉세이가 그의 조국인 러시아 군인들에게 들었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들 처럼 말이다.

 

 

'굿바이 조선'이라고 되어 있어서,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조선을 한얀 백조의 나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낯설게 다가왔고,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름하고 있을때, 다혈질의 퇴역 군인 비빅과 함께 귀화한 조선인 통역관 니콜라이 김이 나오고, 가마실로 불리는 근석이 함류를 하면서 로시아 소령 알렉세이의 눈에 보이는 1905년의 조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알렉세이 뿐 아니라 비빅, 니콜라이 김, 근석의 눈으로 만나는 조선의 모습은 분명 동일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동일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젊은 러시아 소령 알렉세이가 왜 조선을 탐사하게 되었는지는 이야기를 하면서 조금씩 보여지고 있지만, 이 젊은 소령이 세상물정을 모르는 풋네기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덕분에 근석을 만나게 되지만 말이다.  돈만 받고 배째라는 식으로 노름으로 돈 쓰고 몸 망가진 아비에게 어찌 이리 똘똘한 아이가 나왔는지, 가마실이라는 말을 빌려주는 곳에만 살던 소년 근석이 아비를 대신해서 러시아인들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왔다.

 

러시아와 일본이 대한제국의 지배권을 두고 러일전쟁을 벌이고, 듣도보도 못했던 나라들이 그들의 이권을 위해 대한제국으로 몰려들던  그 시절이 '굿바이 조선'의 배경이다.  백의 민족이라고 우리는 이야기하는데, 열강의 눈에는 다른 모습으 보였기에 작가는 소설속에서 아름답지만 무기력하고 조용하지만 슬퍼 보이는 철새의 운명을 타고난 나라, 겁 많고 현실을 모르는 하얀 백조들이 사는 나라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허약하기 짝이 없고, 게으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손만 뻗으면 다 가질수 있고, 풍속엽서속 여인처럼 미개한 나라. 악습과 민간 신앙이 난무한 나라. 그곳이 대한제국이었다. 4인의 탐사대는 조선땅을 탐사하면서 그들이 전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기 시작한다. 백성을 돌보지 않는 관청의 사령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의병들, 황금의 이교도땅이라 외치면 금을 찾는 게으른 서양인에겐 보일리 없는 새벽의 부지런한 들판과 문명인의 양심을 이야기하는 베델.

 

기울어져가는 러시아의 젊은 귀족에게, 다혈질의 군인에게, 나라를 바꾼 의병장과 세상 밖으로 나온 소년에게 조선은, 대한제국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을까?  젊은 귀족도 다혈질의 군인도 아닌 세상을 알아버린 소년에게 눈이 가는 이유는 내가 대한민국인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하는 어린소년에게 조선의 미래는 그리 밝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년들로 인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힘없는 백조가 아닌 작지만 강인한 설표의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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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쿠터를 타면 바람이 분다
석우주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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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에 읽는 달달한 이야기인지 모른다.  첫장을 넘겼을때는 그냥 그런 이야기일까 싶었는데, 책장이 넘어갈수록 가슴을 콕콕 찌르다가 쏴하게 다가오면서 오만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 버린다.  잠들기 전에 몇장만 읽겠다는 것이 화근이 되어 밤을 꼴딱 넘겨버렸다.  이야기의 잔재가 꽤나 오래도록 남아서 분홍이와 신묵이의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내야할지 모르겠더니, 깜빡 잠이 든 순간엔 분홍이의 오토바이를 타고 신묵이를 내 뒤에 태우고 있으니 이를 어쩌면 좋은지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어린 아가씨에게 동화되어 신묵이를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남편과 함께한 세월이 얼마인데, 여전히 난 신묵과 분홍이의 사랑을 꿈꾸고 있었던 걸까? 

 

 

'만약이라는 가정은 유턴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리는 시간의 힘 앞에서 헛되고 무력하기 짝이 없다.  칼날이 달린 부메랑처럼 되돌아와서 그 말을 내뱉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다.  분홍은 만약이라는 단어를 천 번쯤 반복한 후에야 그 사실을 넘칠만큼 배웠다.' (p.70)

 

세상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그랬다.  어떤 상황이 닥칠때마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만약...'을 떠올리게 되는것은 나만 그런건 아닐것이다.  그 상황이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때는 더 할 것이다.  신은 감당할수 있는 시련만 주신다는데, 분홍에게 주어진 시련은 그녀에게 넘치도록 힘들게 다가왔다.  그래도 이 여자, 연분홍은 역시나 주인공이다.  세상에 혼자 남겨져 '연분홍'이라고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조차 거부하는 그녀는 참 강하다.  수술을 받다 죽은 오빠, 주홍.  화재로 인해 병마와 싸우다 돌아가신 엄마.  분홍에게 남은건 오로지 외로움과 넘치는 빚뿐이었음에도 분홍인 강하다.  스무살 조금넘어 아가씨가 어쩜 이렇게 강할 수 있을까 의아할 정도로 분홍은 자신을 다스리고 다스린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짧은 머리에 스쿠터를 타던 아가씨가 조카의 과외 선생님이라는 사실에 놀랐던건 아니었다.  자신으로 인해 스쿠터를 폐기했고, 과외에서 짤렸다는 사실로 그녀에게 관심을 가졌던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준 스쿠터를 바로 팔아버린것이 괘심하게 다가온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신묵에게 분홍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녀가 자꾸만 궁금하게 다가왔다.  우연히 다시 만난 분홍은 ‘연강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외로움과 피곤으로 힘이들어하는 모습이 왜 이리 신경쓰이는지, 이 어린 아가씨에게 왜 이렇게 궁금함이 일어나는지 모르겠다.  신묵을 만날 때마다 안 좋은 일이 생기는 분홍과 자신을 밀어내려고만 하는 분홍이 이해되지 않는 신묵.  계속되는 우연은 신묵과 분홍을 인연으로 만들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겁먹지 마. 난 너하고 연애할 생각 없어. 심심할 때 같이 밥 먹을 친구가 필요하면 전화해. 나도 아주 가끔은 심심하니까.” (p.136)

 

이들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된다.  어릴 적의 상처로 사랑이 두려워 가족을 만드는 것이 두려운 몸집만 커버린 남자, 태신묵.  '핑크'라 불러주던 따뜻한 가족이 사라지고 끝없이 아파해야만 할것 같음에도 가족이 그리운 여자, 연분홍. 사랑의 정은 먹으면서 쌓여가는 것이 맞는것 같다.  어린시절 이후 먹지 않았 다는 김밥도 먹고, 특별할것 없는 인스턴트 커피도 함께 먹으면 함께한 시간만큼 정이 쌓여가니 말이다.  함께 하면서 서로가 궁금해지기 시작하고, 아니라고 이야기 하면서 어린시절 이야기에 가슴아파 해주고, 위로를 해주게 되니 말이다.  같은 극의 자석이 서로를 밀어내듯이 신묵과 분홍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도 밀어 내고, 왜 가슴이 아린지를 모르고 있으니 몸만 커버린 어린아이들 같다. 

 

굉장히 많은 우연이 신묵과 분홍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주홍의 전 여친 다정,  신묵의 누나와 조카,  금새 팔아버린 스쿠터, 커피를 마시던 시간과 가계의 화재, 너무 많은 우연으로 식상할만도 한데, 난 이 우연을 기다리면서 책을 읽고 있으니 사랑이 고팠나보다.  신묵과 커피를 마시던 시간이 분홍을 살려낸 시간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던 주홍.  주홍을 버리고 간 다정.  사랑은 참 그렇다.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도 없는 것이 모두에게 자신의 관점에서는 주인공이니 그들의 선택되로 이야기는 진행되어진다.  이런 어려운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두사람이 행복하게 끝을 맺어서 나는 좋다.  아픈 사랑이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오랜만에 읽은 스쿠터로 인해 맺어진 사랑이야기는 다시 '핑크'라 불리울 분홍이와 가족을 갖게될 신묵으로 인해서 스쿠터에서 느끼는 바람만큼 시원하고 행복한 에필로그에 빠져들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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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둥글 지구촌 신화 이야기 함께 사는 세상 17
김춘옥 지음, 윤유리 그림 / 풀빛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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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우리 집엔 신화 관련 책들이 꽤나 있다.  그리스 로마신화, 북유럽신화, 동양신화와 건국신화까지 신화 이야기들은 많은데, 딱 요렇게만이다.  오대양 육대주라고 함에도 내가 알고 있는 신화라는 것이 참 편파적이다.  어느 책에서 봤는지 알수 없는 이야기들이 지구촌 신화 이야기를 읽다보니, 신화의 뿌리를 두고 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나 많은 나라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지만, 그게 신화였는지는 몰랐었다.  신화는 나라 마다 등장인물이나 내용이 비슷한 듯 다르다.  창세부터 시작되는 하늘과 땅의 이야기, 커다란 홍수의 이야기들이 나라마다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난 일인가?  어찌보면 기후, 자연환경, 부족이 다르니 다른 이야기들이 만들어 지는것이 당연한데도, 사람들은 어떻게 이처럼 비슷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것일까?

 

 

 

고대로부터 사람들은 '자연현상'에 대한 경외와 함께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고, 자연은 축복이면서도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기에 신화 속엔 당시의 사람들이 자연을 바라보던 자연의 원리와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담겨져 있다.  저자의 말처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오래된 관습이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세계 곳곳의 갈등을 이해하는데 분명 신화는 도움이 될것이다.  세계 곳곳에 숨어있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신화들은 다른 사람, 다른 나라, 다른 대륙에 대해 폭넓고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니 말이다.  지구촌 시리즈는 각 대륙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번 역시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의 신화를 다루고 있다.

 

세계 4대 문명 중에서 3개의 문명이 발생한 아시아.  대륙중에서 가장 넓고 인구가 많은 대륙인 만큼 아이사엔 창조 신화와 건국 신화가 많다.  그뿐인가?  삶과 죽음의 신비를 밝히는 종교적인 신화도 여럿있다. 하늘과 땅을 가른 반고(중국), 사람이 되고 싶은 곰과 호랑이(한국), 비뉴수의 일곱 번째 아바타(인도), 저승으로 친구를 찾아 떠나는 길가메시(메소파타미아), 인간을 만들었다는 키유마르스(페르시아)들을 들여다보면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들이다.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유럽으로 넘어가 보자.  올림포스 신들의 이야기가 담긴 그리스 로마 신화, 요정과 거인, 기사와 마법사가 등장하는 북유럽 신화와 켈트족의 신화. 너무나 자주 봐와서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신화들은 북유럽 예술과 건축, 역사와 철학 등 다방면에 큰 영향을 끼쳤고, 신화를 통해서 유럽사람들의 생각을 엿볼 수가 있다.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아메리카 신화는 유럽인들이 발견하기 전에 살던 원주민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부족마다 다른 신화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신화는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고 교감하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거북의 등에서 생긴 땅을 이야기하는 북아메리카 신화, 우화같은 코요테의 법칙과 멕시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세상의 창조와 파괴는 지구의 긴 역사를 보여준다. 신화는 그 지역의 생활환경과는 영향이 있다.  홍수 신화는 어느곳에서든 찾을 수 있는데, 남아메리카 홍수 신화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걸 그리고 있고, 안데스 산 중턱에 있던 착한 목동 형제와 그들이 돌보던 라마의 이야기를 통해 지금의 생활 모습까지 그려준다.  

 

아프리카의 신화는 신화라고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알고 있는 것이 꽤나 많다.  끝없는 사막위에 웅장한 피라미드와. 나일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이집트 문명.  그 빛나는 문명은 태양과 달, 별의 움직임, 모래와 강의 성질을 고대로 부터 연구해왔고, 그들에겐 단연 신들 중 으뜸은 태양신이었을것이다.  자연의 은혜가 없이는 살아갈수 없는 곳이었으니 말이다.  1년을 360일로 정한 태양신 라와 5일을 더 얻어준 지혜의 신 토트의 이야기.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오시리스의 아내인 이시스의 현명한 모험, 오시리스 앞에서 죽은자들이 받는 심판까지 근래에 들어서 이집트 신화는 광범위하게 알려지고 있고, 박물관에서 그 신화의 결과물들을 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태평양에 있는오스트레일리아, 멜라네시아, 미크로네시아, 폴리네시아와 뉴질랜드 등의 여러 섬과 대륙으로 이루어진 오세아니의 신화가 있느데, 이들은 아메리카처럼 원주민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면서 신화가 되었다.

 

신화 이야기를 만나보면 다른듯 비슷한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다.  가까운 거리도 아닌 대륙들에서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을까?  그리스 로마 신화의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을 닮은 모습으로 인간을 빚었고, 중국의 창조의 여신 여와는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었으며, 고대 마야의 신들은 옥수수로 인간을 만들었단다.  신들은 하늘과 땅을 떼어놓으면서 또 다른 신들을 만들지만, 인간은 항상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로 그려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존재로 신들이 존재하려면 인간은 그들로 부터 만들어진 존재여만 하기 때문일것이다.  지구상의 홍수를 두고도 만들어 지는 홍수 신화들은 세상의 타락을 정화하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 곳들이 상당히 많다.  다른듯 비슷한 신화의 이야기들은 지구촌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고, 그들의 생활상과 관습 뿐 아니라, 오래도록 이어오는 생각들을 공감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신화를 읽고 만나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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